지난 토요일에는 2025 나이듦대중지성 2학기의 마지막 에세이 발표가 있었습니다.
1학기에는 ‘나이듦’을 읽었고, 2학기에는 ‘생명’을 탐구하기 위해 나무,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물과 무생물 사이, 창조적 진화 등 총 네 권의 책을 읽고 13번의 세미나를 했습니다.
처음 세미나를 여는 말로, 요요샘이 올린 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생명은 언제나 서로-의존하며-함께-살아가는 공생(共生)입니다.
그리고 끝없는 생성의 흐름이자 창조적 진화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과학과 철학을 교차적으로 읽으며 생명의 관점에서 우리 자신의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성찰합니다
생명에 관한 책들을 읽고 나니, 이 문장들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오는군요. 저는 ‘흐름’이라는 단어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번에 발표된 에세이에도 많이 등장한 흐름이란, 지속이고 변화이고 창조이기도하며 결정적으로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것이기에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드네요.
또한 이번 학기에는 세미나에 참여하신 선생님들이 각자의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해 주시려고열심히 준비해 나누어주셨던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나무를 읽을 때 니은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을 때 석공샘과 한스샘, 창조적 진화를 읽을 때 아렘샘. 덕분에 더 흥미진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부가 아무리 즐거웠어도 마지막에는 어김없이 고통스러운 에세이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시댁행사로 참여를 못한 그믐샘 외에 모두 아홉 분이 에세이 주제에 따라 4조로 나누어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1조 베르그손의 지속 그리고 직관에 관하여 – 아렘, 자갈
2조 생명과 나이듦 – 기린, 서해, 니은
3조 죽음(자유죽음과 종의 죽음) – 앙코르석공, 요요
4조 생명의 흔적과 시간 – 마음, 인디언

[1조]
1. 자갈샘은 세미나 때에도 특히 직관에 관심이 많았는데요 직관을 잘 이해해보고자 에세이 주제로 삼았다고 합니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지성은 부동적 외관만을 포착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약동하는 생명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직관이란 기(氣)나 감(感)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이를 공감과 연결로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주장과 함께 반지성을 한탄하는 이 시대에 지성과 직관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2. 아렘샘의 글은 지속과 초월’이라는 제목으로 베르그손의 철학이 드러나는 문장을 하나하나 해석해본 글이었습니다.
“철학은 전체 속에 다시 한번 용해되기 위한 노력일 수밖에 없다. 지성은 그 원리 속에 흡수되면서 자신의 본래 기원을 거슬러 체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도는 단번에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집단적이고 점진적이 될 것이다. 그것은 무수한 인상들의 교환으로 이루어지며 이 인상들은 서로 교정하고 또한 서로 위에 겹치면서 결국 우리 안에서 인간성을 확장하고 인간성 자체를 초월하는데 이르게 될 것이다.” 라는 인용문을 한 문장씩 펼쳐서 베르그손 철학의 핵심인 지속을 설명했습니다. 결론은 그래서 그의 마지막 저서<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같이 읽읍시다!
두 에세이 발표 후 ‘직관’에 대한 긴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직관이라는 게 과연 경험적이고 심리적인 것인가?에 대한 문탁샘의 질문에 의한 것이었는데요. 다 요약할 순 없지만 결국 지성이 절대 커버할 수 없는 직관이란 결국 ‘감응’이거나 ‘공감’이다. 문탁샘은 소통과 공감이라는 단어가 싫다고 하셨지만 아렘샘의 ‘느낌’을 강조하셨지요.
또한 베르그손의 내적 충동과 자유는 어떻게 연결되는가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요. 아렘샘은 지속으로서의 시간을 인과나 필연으로 포섭되지 않는 것을 자유로 설명했고, 또한 ‘내적 충동(엘랑비탈)’이 인간 개체적으로 표현된다면 윤리나 도덕이 될 것이라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정진웅선생님이 아렘셈에게 질문하신 초월이라는 것의 예시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세상에 가끔씩 나타나는 천재들(붓다, 예수 등)이 변곡점의 예가 아닐까라는 답변을 주셨죠.
갤러리로 오신 정진웅선생님께서 지금 우리가 토론하고 있는 말들을 각자 서로 같은 의미로 소통하고 있는게 맞냐라고 질문하실 정도로 어려운 개념과 용어가 난무했던 첫 번째 세션이 지나고 이제 좀 귀에 잘 들어오는 내용을 담은 3명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2조]
3. 기린샘은 지속을 통해 본 노년의 의미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기린샘은 베르그손의 지속의 관점에서 볼 때, 노년은 과거와 단절된 상태가 아니라 과거를 현재 속에서 재해석하며 새롭게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직관의 힘을 빌어 과거의 경험을 응축시킨 어떤 것을 새롭게 문제화할 때 다른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재해석’이란 단어에 대해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재해석이란 고정된 주체가 상정되어 있는 것이므로… 지속은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냐의 문제로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세이에 등장하시는 가마솥님이 재해석을 베르그손적으로 이해한다면 공부를 통해 꼰대가 되지 않고 자기의 삶을 계속해서 환기시키는 것이 아닐까라는 설명을 보태주셨습니다.
4. 서해는 <생물과 무생물 사이>, <창조적 진화> 두 권의 책을 통해 ‘생명과 노화’라는 주제로 안티에이징의 시대에 새로운 노화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노화를 거스르는 시술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길어진 삶을 견뎌내기 위한 비유기물질의 이식에 의한 공존도 진화의 한 분기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다시 문탁샘의 어려운 질문, 테크놀로지가 동정평형과 결합을 해서 정말 죽지 않는 불멸의 삶이 나타난다면? –> 역시나… 문탁샘은 SF를 너무 많이 읽으셨죠!
저는 물론 그런 삶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지만 나이듦과 테크놀로지는 앞으로 더 공부해보는 것으로…
5. 니은샘의 에세이 ‘적당히 뛰고 있구나, 내 심장!’은 후퇴할 수 없는 노년으로의 일방통행의 길 위에서 자신이 겪고 있는 새로운 노년을 시적 문장으로 표현한 글이었습니다. 작년 <사랑의 노동>을 읽고 자극받아서 아이등원돌봄과 장애인활동지원사 활동을 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통해 향후 늙을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딱딱한 문장으로 쓰여진 글 들 속에서 니은샘만의 문체가 돋보이는 글에 모두 감동을 받았던 타이밍이었던 것 같네요.
[3조]
6. 앙코르석공님은 ‘나이듦과 자유죽음’이라는 주제로 자신이 오랫동안 고민한 자유죽음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장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책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스스로가 생각하는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란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또한 삶의 유의미함이란 결국 유용함의 문제가 아닐까라는 질문이 담겨있었습니다.
석공샘은 특히 돌봄을 받는 상황에 대한 큰 두려움을 털어놓으셨는데요. 이에 대해 많은 분들이 삶의 유의미함이라는 것이 단지 유용성이나 유익뿐은 아니지 않나, 그 의미를 더 넓히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을 주셨고요. 유용함이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7. 요요샘은 ‘멸종의 시대, 죽음을 생각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습니다.
세포에 프로그래밍된 예정된 죽음(아포톱시스)로 시작해 우리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생명 전체의 관점에서는 죽음조차 삶의 일부이며 ‘환상’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개체와 종의 관점에서는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며, 우리는 그 고통을 돌보고 애도하며 책임을 져야 한다. 대멸종을 우리가 3인칭적 통계로만 받아들여 무감각해져서는 안 된다.지금 벌어지고 있는 멸종을 “환상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애도해야 할 2인칭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 양가성이 오늘의 과제다.라는 주장을 폈는데요,
요요샘은 이 글을 쓰면서 결론적으로 환상에 불과한 죽음과 우리가 애도하고 책임을 느껴야 하는 죽음은 다른 차원으로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대멸종은 비선택적인가, 자연선택의 일종인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요.
[4조]
8. 마음샘은 얼마전 경남 고성의 백악기 공룡발자국 화석을 본 이후 이 화석을 매개로 생명에 관한 3권의 책에 나오는 핵심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흐르는 존재, 흔적 속의 역동성이 그 주제였습니다. 1) 존재의 본질은 흐름이다(후쿠오카 신이치). 공룡발자국은 역동적인 흐름을 담고 있다. 2) 진화의 동력은 공생이다(린 마굴리스). 공룡발자국의 화석에는 공생의 상호작용이 포함되어 있다. 3) 시간의 본질은 창조적 약동이다(베르그손). 공룡의 약동의 표현인 추진력으로 인해 화석이라는 물질에 새겨진 것이다.
문탁샘은 팀 잉골드가 말하는 선, 즉 실과 흔적에서 흔적을 연결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9. 인디언샘은 ‘생명에는 시간이 있다’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발표했는데요. 베르그손의 지속과 신이치의 동적평형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생명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끝없이 흐르는 과정이다. 생명은 기계가 아니다. 시간과 불가역성이 생명을 만든다. 생명은 환경과 분리되지 않은 흐름이며,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시간 속의 흐름이며, 시간을 되돌리려는 욕망 대신 시간과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구체적 사례와 함께 잘 정리해주셔서 생명에 대해 우리가 배운 것들에 대한 총정리 텍스트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아렘샘의 베르그손 관련 수많은 질문에 대한 주옥같은 디펜스(?)는 제가 다 주워담지 못해 아쉽네요.
그리고 지적 성실성이 아주 높은 문탁샘 옆에서 적절한(!) 코멘트를 많이 해주셨던 정진웅선생님과 갤러리로 함께 참여해주시고 경청해주신 나랑샘, 진달래샘, 새은샘, 가마솥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니은샘의 명언 첨부하면서 마치겠습니다.
니은, “남편 돈은 달콤하다. 내 돈은 달콤쌉사름하다”
(그러니 문탁샘 원고청탁하시려거든 원고료들고 가시와요.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