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은 소년들과 함께
선흘포럼의 마지막 세션은 <난감모임 2. 소년을 위하여 소년과 함께> 프로그램이었다. 가부장의 이데올로기가 깨진 시대,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들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다. 또한 성별 간 소통이 어려워진 시대, 청년 남녀들이 다시 소통하고 서로 도우며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존의 감각은 어떻게 길러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기 위해 기획되었다고 한다.
두 아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흔치 않은 엄마, 이연희대표(레이지마마)가 사회를 맡았고 범상치 않은 네 명의 소년들이 패널로 참여했다.

먼저 참여자들을 소개한다.
K : 30대. 자칭 공동육아 엘리트. 학생운동, 노동운동가 출신의 어머니 덕분에 공동육아와 대안학교를 경험했고 대학을 가지 않는 것으로 엘리트코스를 완성시켰다. 스무살이 넘어 인문학 공동체에 10년간 공부하고 목수일을 배워 현재 공간디자이너로 활동 중. 페미니즘을 공부하고나서 변기에 앉아서 소변을 보고, 손을 잘 씻는다.
S : 20대. 공동육아를 통해 자랐으나 엄마의 대안학교 권유를 뿌리치고 일반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 음악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는데 엄마에게 털어놓으니 굳이 인문계고등학교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해서 자퇴했다. 스무살 때부터 집을 떠나 인문학 공동체에서 공부 중이이지만 여전히 예전 친구들(페미니즘과 거리가 먼)과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L : 20대? 제도권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 때 학생운동을 했었고 K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밀양 송전탑 운동경험이 어필되어 채용되었다. 예정에 없었으나 갑자기 패널로 투입된 1인이다.
J : 노년을 연구하는 1955년생 인류학자. 남성의 기득권을 다 누릴 수 있었던 시대에 살았지만 마초남자선배들보다 여성들과 친하게 지냈다. 기질적으로 집단주의, 권위주의 마초적 문화에 알러지가 있었다. 부부싸움을 하면 90%는 자신이 울어서 상황이 종료된다는 잘 우는 남자이다.
페미니즘과 남성성에 관하여
노년 인류학자 J는 자기소개 끝에 이런 질문을 던진다.
20대 남성의 극우화에 대한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그들이 느끼는 지위불안, 상대적 박탈감이 좌절, 분노,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인터넷 극우커뮤니티에서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훼손된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극우들은 왜 여성으로 향하는가, 이런 한국적 폭력사회에 대한 맥락적 분석이 필요하다. 왜 우리 사회는 차이가 수평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먹이사슬처럼 존재하는가. 신자유주의적 경쟁이 심화되고 그것이 폭력으로 드러나는 현실에서, 우에노지즈코가 말한 ‘약자가 약자로서 존중받는 사회가 되는 페미니즘’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K는 디지털 플랫폼 환경의 끼친 영향이 크다고 봤다. 디지털네이티브 세대와 그 이전 세대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의 경우, 마초적 남성의 문화, 물리적 폭력이 실제 세계에서 구현되었고 알파 메일이 되었을 때의 보상체계가 작동했다. 하지만 페미니즘 리부트(2016년 강남역 사건을 계기로) 이후 그 보상체계는 무너져버렸다. 그러면서 SNS나 커뮤니티가 그들의 탈출구가 되었으며 그 안에서 실물세계에서 받지 못한 보상을 대신 받는 경험을 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나 남성성에 관한 공적 이야기의 장은 없는 상태에서 이런 사적 커뮤니티같은 공간에서만 재생산되고 왜곡된 피드백들만 떠도는 상황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K의 경우 대안학교를 나온 덕분에 갈등을 꺼내놓고 이야기할 줄 아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에겐 이것이 부족한데, 대면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디지털 환경이 이를 더 심화시켰다는 분석이다.
S는 조금 다른 세대 경험을 이야기했다. S는 최근 『폭주하는 남성성』(권김현영)을 읽고 알파 메일에 공감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일단 지금까지 그런 친구들을 별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린시절에는 ‘노터치’가 유행이었고 폭력성이 드러나는 행동은 엄격하게 통제되는 분위기였기에 오히려 그런 행동을 하면 친구들로부터 ‘구린’것이라는 반응을 얻는 편이었다.
S 주변의 친구들은 페미니즘 공부를 하든 하지 않든, 현재 사회가 제도적, 문화적 차원에서 여성향이라고 느끼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축구게임에서도 렌덤으로 여성축구선수들을 기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면서. 그래서 S는 20대 남성의 극우현상을 시장에서 중심이 되지 못하는 남성들의 무기력감과 절망이 커뮤니티안에서 재생산되는 방식으로 보여지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K가 극우화의 원인을 알파 메일을 알고 있는 세대의 박탈감으로 봤다면 S는 처음부터 가지지 못한 자들의 동경에 대한 시뮬레이션 같은 것으로 파악하는 것 같다.
L 역시 주변 남성들의 정서를 억울함과 인정욕구로 정의했다. L은 남성들이 취업시장에서 느끼는 열패감. 자존감의 위협 같은 감정들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혐오, 정치인혐오와 같은 밈놀이를 하며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또한 그 사람들이 모두 악인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오히려 그런 낙인이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은 아닌지.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고 구분짓는 방식으로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연희대표는 우리 사회에서 왜 ‘남성성’은 이렇듯 부정적으로만 소비되고 있는가. 우리가 말하는 남성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했다.
J는 남성이 언어권력과 담론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세상에서 남성성이란, 소수자와 약자를 타자로서 열등한 존재, 모자란 존재로 규정하면서 그 반대항으로 상정된 권력의 주체로서의 남성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고 했고
청중 N은 남성성을 사회적 합의의 문제로 봤다. 그 사례로 스웨덴에서는 아이들을 놀리거나 괴롭힐 경우, 거의 아동학대가 아닌가 싶을정도로 훈육한다. 대만의 기숙사에서는 남녀배구게임을 할 때 스파이크를 하지 않고 토스만으로 경기를 한다. 눈치를 안봐도 되니까 눈치가 없는 것처럼 사회에서 어떤 것을 허용하고 허용하지 않는가의 문제가 더 크다는 것이다.
청중 K는 남성성의 핵심을 여성의 몸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나 성적 통제로 이해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적 친밀성과 욕망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며, 여성의 몸에 대한 상상력 자체를 변화시켜야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새로운 남성성의 발견
그렇다면 남성성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 것일까. 패널들이 생각하는 각자의 변화된 남성성에 대한 간증이 이어졌다.
K는 ‘내가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을 말로 표현하는 힘’이라고 했다. S는 인문학공동체에 있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들 속에서 소수자성을 실감한 이후 고향친구들을 만나서 펑펑 울었던 기억을 털어놓았다. S에게 변화란 다름을 이해하는 능력인 것 같다. L은 친구들에게 약함을 드러낼 수 있는 용기, 그것을 허용하는 분위기로 이해했다. 마지막으로 J는 기득권을 다시 바라보게 되고 나서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꼽았다.
세션 내내 놀라웠던 점은 사회자와 청중이 모두 여성인(레이지마마 이연희대표 남편을 제외하면) 현장에서 네 명의 소년이 보여준 각자의 서사능력이었다. 이들은 서사능력 뿐 아니라 공감능력과 자제력까지 겸비했기에 청중들로부터 ‘신인류’라는 찬사를 받았다. 한편, 이연희대표가 서두에 이야기한 것처럼 페미니즘에 덜 교화된 일반적(?) 남자들의 이야기도 함께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새로운 남성성이 무엇인지, 아니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는 여성들이 아니라 남성들이 들어야 할 이야기이니까.
말그대로 디지털네이티브 고1아들을 둔 나는 ‘노터치’의 시대라는 이야기도, 디지털플랫폼이 미친 영향에 대해서도 깊히 공감했다. 내가 처음으로 아이에게 다른 언어가 있다고 느꼈던 어느 날을 기억한다. 순하고 다정한 아이인 줄 알았던 아들이, 내가 옆방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고 순도 높은 욕설을 내뱉으며 게임에 몰두하고 있었다. 물론 친구들 사이에서는 욕을 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직접 그 날것의 언어를 듣는 느낌은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그리고 영드 <소년의 시간>을 본 후 나는 아이를 더 깊은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게임커뮤니티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종종 체크하게 되는데, 그 시절을 먼저 통과한 선배 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약간은 안심이 되기도 했다. 또한 집에 있는 두 남자들과 변기 뚜껑문제부터 해결해야겠다는 결심도 했다. 마지막으로, J를 보며 내가 찾던 ‘새로운 할아버지’(올해 나이듦포럼의 내 주제가 ‘남자의 나이듦’이다)임을 확인했다.
네 명의 소년에게 다시금 감사를 전하며,
약자가 약자로서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선흘포럼 포에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