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차 포럼 <고령화 시대 새로운 가족 그리고 징-어디서 누구와 함께 나이 들어갈 것인가> 준비중
오전부터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했습니다. 포럼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온 성수동, 비를 뚫고 사람들이 올까… 걱정스러웠지만 준비는 해야지요^^
오늘도 품격 챙겨 간식을 준비했습니다. 주최측에서 맥주를 제공한다고 해서 땅콩 안주까지 완비^^
2. 강의 하실 선생님들과 저녁 도시락을 먹으며 담소 중^^
3.그치지 않은 비가 걱정스러웠는데요, 우와…. 노쇼가 이렇게 적었네요^^ 속속 자리를 채운 신청자들
4. 6시 30분, 강의 시작! 키노트 스피치는 나이듦연구소 소장 이희경님
-노년, 주택이 아니라 마을이 필요하다 라는 주제로
인문학 공동체를 꾸려서 함께17년 동안 공부를 하고 있는 친구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상황이 바뀌어 갔다. 부모님의 돌봄이 시작된 것도 변화 중 하나다. 그러면서 우리가 노후에 어떻게 서로 돌보는 관계로 이어질 것인가 그리고 공간적으로 모여 살 수 있는 집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으로 이어지면서 나이듦 연구소 첫 번째 프로젝트로 시니어코하우징을 기획했다. 관련 책을 세미나도 하고 탐방도 시작했다. 오늘 공동체, 공동체 주택 여백, 강화도 바람의 언덕 공동체 주택, 제주 볍씨마을 공동체주택도 가 보았다. 이런 과정에서 친구들이 저마다 다른 조건을 감안하여 땅을 마련하는 것부터 돈을 섞고 싶었다. 그러려면 법인을 만들어 공동소유를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동체 주택을 건축하는 기노채 선생님을 만나고 그 계획을 접었다. 우리나라는 법인으로 집을 지으면 임대 사업자로 분류되어 세금을 엄청 많이 나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부동산을 통해 땅을 보러 다니고 탐방도 하면서 점점 우리가 정말 어디서 누구와 어떻게 살고 싶은 건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한편에서는 사회적으로 중산층용 실버스테이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이 나오고, 대기업들까지 가세해서 아주 호화로운 상위 0.01%를 위한 시니어 레지던스를 짓는다고 한다. 초고령화 사회를 맞아 노인 관련 사업이 전망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계획일 것이다. 이렇게 국가가 주도하고 민간이 투자하면서 중산층용 실버 스테이 같은 것을 대량 공급하면 우리는 노년을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살게 되는 것 아닐까. 일본의 나스마을의 사례를 보면 지방의 폐교를 활용하여 노인들이 살 수 있는 주택과 돌봄이 가능한 시설들도 함께 지어서 나름대로 상호 의존적인 마을을 만들었다. 어쩌면 우리도 주택이 아니라 노후에 이런 마을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5. 두번 째, 여주 노루목 향기 이혜옥 선생님
-노인들 셋이 살고 있습니다
여주 산골 노루목 향기에 살고 있는 우리 셋은 모두 72살이다. 두 사람은 친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 지역에서 펜션을 하다가 정리하고 8년 전부터 함께 살기 시작했다. 2년 전에 칠순 기념으로 셋이 산티아고에 갔다 왔다. 같이 사는 친구가 성당에 다녀서 가보고 싶다고 해서 가게 되었다. 나이 들어서 여행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시간도 맞아야 되고 돈도 있어야 되고 성격도 고려한다면 나이 들어 여행 친구가 있는 게 참 중요하다. 우리는 셋이 같이 살아서 그게 가능한 게 좋다. 주록리에 처음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할 때는 마을 분들이랑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집을 개방하고 밥도 먹자, 커피도 마시러 와라 하면서 계속 다가갔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조금씩 마음을 열어서 지금은 마을 분들과 함께 여러 활동을 한다. 그 중에는 마을 분들과 수학여행을 갔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 산골에 사는 어르신들은 학교를 못 간 분도 많고 글자를 모르는 분도 꽤 된다. 그런 분들과 교복까지 맞춰 입고 수학여행을 간다하니 정말 좋아하셨다. 이런 추억들이 점점 쌓이면서 지금은 한 마을 사람들이 되었다. 현재는 부녀회 사람들까지 합심해서 빵을 만들어서 마을에 나눠주는 일을 하고 있다. 바로 먹을 수 있는 거라서 마을 사람들이 좋아한다. 시에서 지원도 받고 마을에서 도와주는 분들도 있어서 올해는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다음은 그 때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가 2018년도부터 같이 살았는데 우리 생활이 알려지면서 노인 생활 공동체 확산 방안 토론회에 가게 되었다. 그때 주장했던 것은 시골에 빈집 매입해서 노인 서너 분정도 함께 살게 하고 냉난방 할 수 있도록 태양광 설치, 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방문, 경로당 문화프로그램 등을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노인들도 집에서 서로 돌보면서 살 수 있다. 그 제안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연락은 없다. 현재는 초고령화사회라고 하니 노인들이 여기저기 많이 언급은 되고 있지만 실효가 있는 정책이 만들어지기보다 들러리로 휘말리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우리는 이렇게 살면서 오지 않는 내일을 걱정하지 말자는 주의다. 당장 내일 셋이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런 걸 걱정하지 말고 현재 서로를 챙겨주는데 집중한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믿는 구석이 생기니 서로 기대는 마음도 점점 커지는 것 같다. 이렇게 여주 산골마을에서 우리는 서로 돌봄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5. 세번째, 전주 비비협동조합 김난이 선생님
-비혼여성들의 주거와 돌봄을 위한 실험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는 전주에 있다. 여성 생활 문화 공간 비비 협동조합은 40여 명의 회원이 있고, 여성 주거공동체 사회적 협동조합은 14명이 함께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고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던 친구 다섯과 함께 2003년 2월에 모임을 시작했다. 비비는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서로의 성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 모임에서 좀 주제에 맞게 책, 영화 등을 선정해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다. 주제는 우리의 생애에 필요한 거였는데 예를 들면 여성 비혼 경제 리더십, 사랑 이별, 공동체, 아픈 몸, 나이듦으로 확산되어 갔다. 이렇게 공부하면서 서로의 삶을 나누고 돌보게 되었다. 2016년에 협동조합을 개소, 50평의 넓은 공간으로 이사를 했다. 이후 여러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했는데, 초기 모임 기간을 포함 16년을 넘긴 장수프로그램도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50년 거주권이 보장되는 공공임대 아파트다. 현재 1인 가구로 사는 17 가구가 단톡방을 만들어 정보를 공유하고 위급한 상황에는 서로 돕는다. 비비협동조합 공간을 매개로 나눔도 이루어지고 여러 활동도 이루어지고 있다. 2019년에 비혼 여성 부모 돌봄 사례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독박 돌봄으로 인한 가족 간의 갈등 그리고 또 요양원을 선택하는 문제등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이 모임이후 부모 돌봄을 하고 있는 비혼 여성을 대상으로 자기 돌봄 캠프도 만들었다. 후속 모임으로 비혼 여성 부모 돌봄 자조 모임을 만들어서 지금도 운영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성 노인 공동체 주택을 한번 만들어볼까 생각했다. 마침 해외 연수 기회가 와서 파리의 바바야가의 집, 런던의 뉴 브라운을 탐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3년전 공동체 주택과 관련 협동조합도 만들고 집을 지을 땅을 알아보고 하는데 진척이 없다. 우리도 이런 과정에서 우리가 정말 살고 싶은 공동체는 어떤 곳인가 질문이 깊어졌다. 집을 짓지 못하고 있지만 그 때 모인 조합원들은 꾸준히 모여서 나이들어도 함께 돌보면서 살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6.네번째, 무지개집 전재우 선생님
-퀴어들의 노년주거에 대한 상상
무지개 집은 2016년부터 제가 지금 10년째 살고 있는 성소수자 공동주택입니다. 성소수자모임에서 여러 활동을 하면서 함께 모여 살면 어떨까 라는 상상을 실천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려고 하니 어려운 점이 많았다. 집을 짓겠다고 결정한 후 연결된 곳이 함께 주택협동조합이다. 조합분들과 함께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망원동이 48평 정도의 공간을 매입해서 새로 집을 짓게 되었다. 주택조합 워크숍을 하면서 재정위원회를 또 따로 만들어서 사업비를 마련하고 거주 출자금도 정했다. 일단 똑같이 내는 게 아니라 내고 싶은 만큼 내는 대신에 한 층을 셰어하우스로 만들어서 적게 내는 사람들은 그 층에서 살고 1억 원 이상 내는 사람들은 3 4 5층에 단독 가구로 살 수 있도록 정했다. 조합원들이 7억 정도를 모았고 나머지 7억 정도는 사회투자기금 융자를 받았다. 무지개 텀블벅으로 천만 원 정도를 또 따로 모으기도 했다. 얼마를 냈든 월 사용료는 똑같이 내기로 정했다. 집을 완공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고, 실제로 입주 직전에 포기하는 멤버도 있었다. 초창기에는 망원동 이웃 주민들까지 참여하는 행사도 기획하면서 여러 활동을 함께 하며 재미있게 지냈다. 코로나 시기는 공동체 주택으로는 상당한 타격이 있던 시기였다. 방 하나를 정해서 코로나에 걸린 친구를 격리하고 돌보는 시간도 있었다. 변화와 전망 무지개 집이 원래 5세대 16명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5세대 8명 정도가 살고 있다. 처음에는 가족이나 사회의 박해에서 벗어난 안전하고 자유로운 공간으로서의 거주 공간에서 돌봄 기능이 조금 추가되고 있는 상황으로 바뀌고 가고 있는 정도다.
7.다섯번째, 탄탄협동조합 김수동선생님
-노년의 주거에 대한 선진적 사례
에이징 투게더라는 비영리 노년학 연구 단체에서 기획한 프로젝트로 일본의 노인 요양 시설을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공동체 주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29년생이신 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위해서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 주택과 관련해서는 선택지가 별로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경제력이 좋고 나쁨에 따라 건강 상태에 따라 다양한 선택지가 많이 있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노인 주택에 살다가 노쇠해져서 돌봄이 필요하면 그 집에서 계속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유형이 많다. 일본 노인들은 절대 다수가 자기 집에서 살고 있다.
방문했던 곳 중에 한 8명 정도 수용하는 작은 호텔과 노인 요양시설을 결합시켜서 공간적으로 멋지게 해서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노인복지나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는 청년들도 왔다. 요양시설에 있는 어르신들하고 차도 한잔 마시기도 한다고 했다. 한 노인 그룹은 대학생 셰어하우스를 같이 지어서 셰어하우스에 사는 대학생들이 어르신들하고 말벗하는 정도의 자원봉사를 활동을 하면 주거비를 깎아주기도 했다. 그런 교류를 통해서 그 사람 사이에 세대가 연결되는 정서가 생겼다. 시설이 공급자 중심이 아니라 당사자 중심으로 운영하는 모습이었고, 노인 주택이 있던 요양시설들이 지역사회 교류 공간과 함께 결합이 돼 자유롭게 출입도 가능했다. 또한 돌봄을 받는 노인이라고 하더라도 쓸모를 느낄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 최대한 할 수 있는 잠정 기능을 유지시키도록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이제 노인을 수동적 돌봄 대상이 아니라 시민 노인으로서 노년의 삶을 사회적으로 누릴 수 있게끔 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래서 요즘 계속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건 정말 이 집이 좋냐 이제 시설이 좋냐 이런 논의가 이제 우리는 좀 한 차원 좀 벗어나서 넘어서야 된다. 지역에서 소규모의 복합 공간에 대한 하드웨어 구현 방식은 한국과 일본이 좀 다르겠지만, 자유 연결 역할의 가치와 권리가 지켜지는 모두를 위한 마을과 집을 만드는 게 우리가 모두 함께 노력해야 될 길이라고 생각한다.
8. 질의응답 시간
1)김수동 선생님께 시설에 계시는 노년의 분들의 쓸모를 느끼게 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시도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사례로 제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어머니가 빨래만큼은 개고 널고 개어 셋이 사는 각자의 방에 배치하는 것까지 담당하세요. 어머니가 그 일 하는 것만 갖고 저는 어머니의 컨디션을 알 수가 있어요.
2)이혜옥 선생님께 처음에 마을에 들어가셔서 이웃들과 친해졌던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마을에 주지도 받지도 않고 마음을 내 주지 않는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방송에도 나오고 점점 알려져도 관심 없었지요. 그러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어쨌든 계속 낯을 익혀서 드나들다 나중에는 방송국에 가요무대도 함께 보러 가게 되었어요, 그 후에 그 분이 집안에 결혼식에 간다는데 옷차림을 고민하길래 한복 가져 오래서 드라이하고 만져서, 입혀 사진 찍어 자식들한테 보냈더니 좋아했대요,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었어요, 그후에 그분에 우리 집에 알사탕 3개 갖고 와 주더라고요.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던 분이었는데요. 그만큼 폐쇄적인 분위기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주민과 선주민의 차이가 있는데,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서 신뢰를 쌓고 마음을 전달하는 노력을 계속할 수밖에 없습니다.
3)노루목 향기에서 오신 심재식 선생님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우리 둘이 살 때는 잘 몰랐는데 한 명이 더 들어왔는데 나보고 넌 도전적이야 그리고 명령조야 라고 했지요. 저는 스스로 천사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 말을 듣고 깜짝 놀랐어요. 옛날 동기들 모임에 나가 그 얘기를 했더니, 제 별명이 ‘전두환’ 이었데요, 명령하고 바로 저지르고 해서요. 지금 마을에서 하고 있는 빵 만드는 일도 하겠다고 하고 나서는 바로 기계 들이고 제빵 기능사 시험을 보러 다닌다고 요새 맨날 그거 하러 다닙니다. 이렇게 미쳤어요. 미치지 않으면 못해요. 앞 분들 발표를 보니까 다 연구하고 그러던데 저는 그런 거 몰라요. 그냥 막 내질러서 무모하게 해 보는 거죠.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이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네요.
이렇게 이틀간 <체인지 메이커스 컨퍼런스>에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참가한 나이듦연구소의 일정이 마감되었습니다.
시골쥐 서울에 나들이하는 심정으로 두리번 두리번 하느라 핫플레이스의 진면목은 느끼지 못했지만, 세대를 막론하고 돌봄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현장은 제대로 목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날의 라운드 체이블, 둘째 날의 강의 등을 통해 서로의 돌봄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다니게 되기를 바라면서, 많은 배움을 준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 하게 되어 기쁩니다. 참석해 주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