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28일 평창 공유재에서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2)를 주제로 ‘어떻게 죽을까’ 존엄사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나이듦대중지성 2학기에 함께 공부하고 있는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다른 일정과 겹쳐서 참석하지 못한 두 분(석공, 한스)를 빼고 다섯 회원과 나이듦연구소 연구원 다섯 해서 열 명이 함께 진행했습니다.
오후 2시에 시작해서 연구소에서 제작한 ‘존엄사’와 관련하여 의사 조력사를 둘러싼 찬반 의견과 관련 책, 언론 기사 등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연이어 스위스 조력사망을 현지에서 취재한 다큐멘터리도 시청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자료들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진 후 4시부터 6시까지 찬성과 반대의 의견을 각자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분홍 방울이 달린 고깔모자를 쓰고 찬성의 의견을 발표하고, 파란 방울이 달린 고깔모자는 반대 의견을 밝히는 차례에 쓰기로 했습니다.
<찬성의 분홍, 반대에 파랑, 인디언샘의 주황모자는 사회자 모자>
조력 존엄사를 찬성하는 의견으로는 완화의료로도 다스리기 어려운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에게는 조력존엄사가 허용되어야해야 한다, 말기 질환으로 더 이상 선택지가 없을 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 존엄사를 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상태, 예를 들어 스스로 용변을 해결할 수 없는 상태라면 조력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다고 본다, 존엄사를 허용함으로써 의료영역에서 말기 환자를 위한 조치가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죽음을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찬성한다, 스스로 판단했을 때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때 자율적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고다르 감독의 예)등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반대의 경우, 죽음은 끝까지 우연의 영역으로 둬야 하지 않을까, 죽음은 권리의 영역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선택하는 정황을 보면 심각한 우울의 결과일 수도 있는데 정말 자발적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조력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하게 되면 치매환자나 중증장애환자 등에게 강요되는 등의 남용되는 ‘미끄러운 비탈길’ 같은 위법사례가 늘어날 수 있다 등의 의견이었습니다.
저녁을 해결하고 7시 반부터는 의사조력사와 관련해서 종합토론이 있었습니다. 종합토론에서는 찬반토론에서 나왔던 의견을 중심으로 좀 더 심화된 주제를 다루어보았습니다. 죽음과 관련한 자기 통제 혹은 선택을 어떻게 볼 것인가, 통증과 관련 고통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그렇다며 과연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등에 대해 토의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선택과 관련 근대 이후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로 보는 인식의 확산이 죽음에도 적용된다고도 볼 수 있다면, 푸코의 개념으로 고대의 자기배려로써 자신의 삶을 재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으로 죽음을 생각해 보자, 고통은 꼭 제거되어야 할까, 현대 사회에서 아파도 쉬지 못하는 현실을 감당하기 위해 진통제를 강요하는 현상 등도 고통을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보게 할 것이다 등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죽음에 대한 질문에서는 자료에도 나왔던 단식 존엄사가 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책도 나와 있는데, 단식 존엄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삶에서도 절제가 일상적으로 몸에 배어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계속 늘어나는 초고령화 사회에서 장 아메리가 주장했던 ‘자유죽음’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죽음과 관련한 공부를 통해 이런 주제로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자주 나누어야 한다, 좋은 죽음은 좋은 삶의 결과로 드러나는 것 아닐까 등의 의견으로 이번 워크샵을 마무리 했습니다.
다음 날은 비가 와서 산책 등의 일정을 접고, 인디언샘이 해 주신 전복죽으로 든든한 아침을 해결하고 해산했습니다.
봄, 가을 두 번에 걸쳐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엔딩노트 작성, 의사조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로 워크샵을 진행했습니다. 죽음을 주제로 두 번의 워크샵을 하면서 죽음과 조금 더 친근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