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성산동 공동육아 원년 멤버들이 평창 코하우징에 모였다. 성산동에서 소행주 1호 에 살며 소행주의 확장에 여념이 없는 ‘박장’네, 하고 싶었던 해외봉사를 한 2년간 하다가 돌아온 ‘밤비’, 공동육아와공동체 사무총장을 지내고 은퇴한 ‘올리브’네, 마포 두레생협을 만들어 오랫동안 운영하고 지금은 원주생협 활동하고 있는 ‘참깨’네, 추운 것을 싫어하는 ‘짱아’를 위해서 양평으로 이사간 성산동 활동가 짱인 ‘짱가’네가 왔다. 모두들 지난 이야기를 하며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아이들 어렸을 적 이야기로 시작해서, 녀석들이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하이라이트는 그 때 말썽이란 말썽은 골라서 피우며 부모들의 속을 그렇게도 썪이던 두 녀석이 함께 창업하여 제법 자리를 잡았단다. 녀석들이 사장이 되어 “요즘 얘들은 열정과 끈기가 없어서 조금만 힘들면 걍 그만 둔다“고 힐난했다고 할 때, 모두가 빵 터졌다. 아이들의 결혼이야기를 거쳐서, 얼마 전에 손주를 본 우리와 ‘밤비’네의 육아 이야기로 건너 갔다. 소행주 1호에 살고 있는 ‘밤비’는 직장있는 딸네가 아이를 낳고 매우 힘든 일상을 지내는 것 같아서 주중에 손주를 돌본다고 하였다. 30년전, 공동육아를 시작할 때에 ‘우리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서 육아하지 않는 나은 사회’를 꿈꾸며 무던히도 목소리를 내었는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 사회의 육아환경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나저나, 언제 우리는 평창에 들어와 살 수 있을까?“ 10여년 전부터 만든 이곳 평창 ‘꽃숲마을’. 계획한대로 한다면 이제 이곳으로 이사들을 와야 하는데, 아직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도시에 살고 있으니 여기에 들어와 노후를 함께 보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모두가 침묵으로 대답한다.
일단 깃발부터 들고……
2008년, 성산동에서 반백(50세)행사를 한 후에, 아이들을 함께 키우느라 고생한 우리들이 “은퇴 후에는 새끼들을 훌훌 털어 버리고 도시를 떠나 함께 살아 보자”고 의기투합하였다. 우선 성산동 동네에서 귀촌모임에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 해 9월, ‘성미산 귀촌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열댓 가구가 손을 들었다. 일단 돈 계산부터 해야 했다. 시골이면서 나무가 많은 임야를 찾을 것이니까 대략, 토지비용으로 평당 4만원~5만원, 토목비용은 평당 1만원 정도로 잡고, 개별 건축에 필요한 토지 100평과 마을 공동공간 1,000평, 그리고 전체면적 대비 택지비율을 20%~30%를 잡았다. 그러면 15가구를 가정하고, 토지는 8,500평~12,500평 정도가 필요한데 10,000평을 목표로 한다면, 토지와 토목을 위하여 약 5억원~6억원의 예산이 필요했다. 15가구당 비용으로 나누면 3,300만원~4,000만원이 나온다. 입회비를 우선 3,500만원으로 정했다. 가구당 입회비가 결정되니 서너 가구가 포기한다. 시골 땅인데, 내가 쓸 수 있는 100평 대비 3,500만원은 평당 35만원으로 다소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가?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개별적으로 3천만원 정도의 토지비용에 1.2억 ~ 1.5억원 정도로 건축을 한다면, 내집 마련으로 1.5억 ~ 2억원 정도의 비용을 감수해야 할텐데…… 좀더 조건이 좋은 땅이 나올지 모르니 일단 11가구로 출발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성산동 공동공간인 ‘꿈터’에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졌다. 팀을 만들어 서로의 의견을 모아가면서 우리들의 은퇴생활을 그려 보았다. 어떤 마을을 만들 것인지, 어떤 건축들을 지을 것인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등등. 구체적으로 마을에 필요한 것, 생태적인 건축 등등 분야별로 담당을 정하고 그가 공부하여 발표하는 내용에 맞춰서 마을을, 우리의 은퇴생활을 함께 꿈꾸면서 즐거워하였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시골에 가서 산다고 하면서 ‘그 곳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에 대해서 치열하게 묻고 생각을 나누며 조율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공동육아를 하면서 서로 그 사람이 하는 일을 자세히 묻지 않는 불문율이 적용되었기 때문일까? 물론 공동체적 삶의 방식에 대한 논의는 하였다. 공동체 규약 같은 것 말이다. 예를 들면, 앞서 포기한 사람들의 생각, 마을 전체인 10,000평에서 함께 살고 있다는 의식보다는 내 토지 100평을 3,300만원으로 구입한다는 의식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토지매입 등기는 성미산귀촌위원회 명의로 공동소유하고, 건축물의 등기는 개별 등기로 하며, 건물은 99㎡(30평) 정도로 점유한다.’로 토지 공동소유의 개념을 도입하였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한다‘는 등 제법 강한(?) 규약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규약들도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혹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구성원 모두가 심도있게 논의되지 않으면 한낱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알았다.

좀 더 모아 보자.
성산동에서 항상 모임공간이 필요했던 우리는 마을 공동공간으로 ‘마을마당’이외에 ‘마을회관’을 만들기로 하였다. 공간이 늘어나기도 하였지만 회관 건축비용도 필요했다. 사람들을 좀더 모으면 되지 않을까? 회원이 많아지면, 가구당 입회비용도 줄어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또 성산동 사람들은 항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성미산을 넘어선 공동체를 꿈꾸고 있었다. 우리 안의 이질성이 공동체를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성미산 마을의 ‘도시 속에 마을 만들기’ 내용들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있었다. 자연스레 우리의 미래 계획이 알려 지게 되었고, 우리는 간단한 신문광고 하나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명회를 할 수 있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은퇴 시점에 귀촌하자는 것이고, 성미산 마을 사람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이긴 하나 기본적인 삶의 방식에 대하여 동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어야 했다.
삶의 방식에 대한 생각들
- -자발적 불편함의 실천 • 최소한의 건축규모선정
- -시설과 기구의 공동(협동)이용 방법의 극대화
- -개별 및 공동시설의 경계 및 구획의 최소화
- -토론과 대화를 통한 해법과 공감대 형성의 생활화
- -지속적 보수 및 유지관리 또는 변화에 대한 이해와 협력
성산동 밖에서 서너 가구가 신규로 참여하였고, 성산동 멤버 중에 치과의사인 친구가 관심있는 동료 의사들을 대 여섯 가구를 몰고 왔다. 전체적으로 22가구 정도가 되었다. 입회비는 그대로 3,500만원인데, 회원 수가 두 배로 늘었으니 예산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를 알 수 있는 성산동 그룹과 신규 그룹이 반반정도로 구성되었다. 당시에는 잘된 결과로 생각되었는데, 이것은 지극히 모순적인 접근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계산은 자본주의적으로 하면서 생활방식은 자본주의를 떠난 공동체 방식을 추구한 점에서 그렇다.
어디까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나?
신규그룹에게 공동체가 무엇인지 알리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전국의 공동체 마을을 탐방하였다. 신규로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성산동 멤버들은 소풍가는 기분으로 참여하였다. 성미산 마을에서 이미 가본 곳도 있고, 동네에 살다가 귀촌한 사람이 사는 시골 공동체이어서 그랬기도 하였다. 1박 2일로 진행된 탐방은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으로는 충분하였다. 문제는 신규그룹 중의 의사그룹이었는데, 탐방과 모임에 자주 빠지고 있었다. 탈퇴를 선언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그들의 직업적 생활 리듬을 이해하며 그대로 진행되었다.
공동체 마을을 다녀 올 때마다 그 들의 규약에 대해서 토론을 하였다. 큰 틀에서는 별 다른 이견(異見)들이 없다. 문제는 상세한 조항이었다. 한 번은 상당히 심각한 난상토론이 있었는데, 어느 공동체에 있는 규약 -‘개는 키우지 않는다’ 때문이었다. 시골에서 단독주택의 특징이 집집마다 큰 개를 한 마리씩 키우는데, 이 녀석들이 밤이 되면 숲속의 동물들을 보고 짖어 대는 바람에 시끄러워서 잘 수가 없다는 것이다.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한 마리가 울면 동네의 모든 개들이 동시에 짖어 댄다. 성미산 마을 유기견들을 돌보며, 동물복지를 추구해온 ‘짱아’는 개를 키우지 못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은 시끄러운 것은 안된다는 입장이었다. ‘큰 개는 키우지 않는다’로 좁혀졌는데, ‘짱아’는 ‘큰 아이는 키우지 않는다’와 다르지 않다며 그런 제약도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이런 취지만을 기억하고 규약에 넣지 않기로 하였다. 또 모임 때마다 의사그룹은 ‘마을’이라는 단어보다 ‘세컨 하우스(Second House)’라는 말을 사용하여 신경이 거슬렸지만, ’반려견 사건‘이후로 삶의 방식에 대한 깊이 있는 논의를 피하고 있어서, ’마을‘과 ’세컨 하우스‘는 분명하게 다름을 이슈화하지 못했다. 결국, 건축 후의 생활 규약은 뒷전으로 밀리고, 건축하는 것에 필요한 규약이 합의되었다. 어디 까지 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 것도 나이 먹고 고집이 세진 사람들이 모여 대부분의 일상을 함께 해야 하는데……
주요 규약 사항
- -2014년부터 건축 시작하여 15년까지 완공, 2017년까지는 내려와 산다.
- -토지매입 등기는 성미산귀촌위원회로, 건축물의 등기는 개별 등기로 한다.
- -점유방식: 99㎡(30평) 구획선 범위 내에서 82.6㎡(25평) 초과하지 말 것.
- -층수: 2층 이하, 층고 8m 미만. • 1.5층 이하, 6m 이하의 다락개념의 낮은 2층을 권유
-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는 마을총회로 하며, 모든 의사결정은 만장일치로 한다.
건축에 대한 권장사항
- -단순, 소박함을 바탕으로 비대칭 양면 경사 또는 한 방향. 대칭적 경사지붕의 회피
- -다양한 재료를 허용하되 외부에 노출되는 경우에 인조 모사․ 모방제품, 합성수지, 스테인리스스틸, 짙은 색 유리 또는 반사유리, 인조(모조)제품의 사용 피할 것.
- -다양한 색상을 허용하되 재료 본래의 색상을 존중할 것(원색보다는 무채색 계열의 색상)
그나저나 토지 구입은 만만치 않았다. 일단 경기도 지역인 양평, 가평, 여주, 이천 등지는 큰 규모의 토지도 찾기 어려울 뿐만아니라, 평당 가격이 조금 과장해서 서울 뺨친다. 서울에서 두어 시간 정도의 거리에서 찾아보기로 하였으니 아래로 내려가서 충주, 괴산, 보은 등 충북지역으로 내려간다. 그곳도 귀촌바람이 불어서 인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 아래로는 너무 멀지 않나하는 의견이 많았다. 은퇴후 귀촌할 지역을 찾는데, 우습게도 서울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디로 간다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