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던 4월 9일 목요일 오후, ‘중장년 네트워크 포럼: 컴 투게더’(이하 포럼) 행사를 찾았다. “이 땅의 모든 중장년에게, 이대로 괜찮을까 생각했다면 Come, Together!”라는 슬로건에 끌려 신청해둔 행사였다. 당시에는 정보가 그리 많지 않아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를 키웠다. 생각해보면 그럴 만도 하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에게 ‘은퇴’는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고, ‘이대로는 괜찮지 않다’는 생각이 기본값이 되는 갱년기를 지나고 있으니 말이다.
사전 신청자들을 초대한 카톡 단체대화방은 행사 당일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출발했다는 참석자들의 상황 보고(?)가 바쁘게 올라왔다. 비가 제법 내리고 쌀쌀한 날이었는데도, 포럼이 열리는 서울 청년문화공간JU 니콜라오홀에 마련된 100여석의 자리가 다 채워졌다.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시작된 10여년 전 즈음부터 소위 ‘신중년’이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서울시 50플러스재단을 시작으로 인생 2막 재설계 프로그램이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50+인생학교나 중장년 갭이어 같은 유의미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이번 포럼은 이러한 흐름 속에서 활동해온 단체와 모임들의 주도로, 전국의 중장년 활동가와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전환과 연대를 모색하는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나처럼 아무런 연고 없이 참석한 사람은 드문 것 같았다.
주최측은 “앞으로 중장년의 경험과 지혜를 사회 속에서 다시 연결하고 사회적 우정과 연대를 바탕으로 더 의미있는 삶의 길을 열어가려고 한다”면서 이번 포럼은 중장년이 서로 만나고 배우며 새로운 사회적 역할과 가능성을 만들어가는 첫걸음이라고 설명했다. 포럼은 1부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 2부 토크쇼 3부 공동선언 등 총 3부로 진행되었다.

1부 ‘내 이야기 우리 이야기’
흩어진 경험을 연결하며 만나는 장으로, 미리 선정한 여덟명, 즉석 신청한 한 명 등 총 아홉명의 중장년이 ‘전환, 활동, 연결, 연대’를 키워드로 한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서울 북촌에서 운영하는 탁구장을 마을 사랑방으로 만든 박현정 님, 전업주부에서 집필 여행가로 변신한 엄마학교협동조합 김정은님, 퇴직 후 기후 위기 대응을 중심에 두고 ‘방탄노년단(BTN)’, 어슬렁행동 등 소모임도 활발히 하고 계신 한승동 님 등 3~4분으로 제한된 시간에 압축해서 나누어준 이야기들은 간결했지만 다양했다. 아홉명의 아홉가지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 후반전은 무엇이든 ‘도전하기 좋은 나이’, ‘도전할수록 유쾌해지는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전이 청년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발표자별 주요 내용]

2부 토크쇼

정광필 50+인생학교 학장이 사회를 맡고, 이기영 부산대 교수, 정선애 9월아침 이사, 김만희 패스파인더 대표, 김수동 탄탄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이 패널로 참여해 ‘전환, 활동, 연결, 연대’를 주제로 발표하고 토론했다.
<전환> 이기영님은 중장년의 ‘전환’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를 탐색했다. 전환이란 단순히 재취업이나 창업 같은 경제적 성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계급장을 떼고 ‘나를 정의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즉, 조직이 짜준 시간표가 아닌 내가 주체가 되는 하루를 만들고, 위계적인 관계에서 벗어나 비슷한 고민을 가진 이들과 수평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전환의 진정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은퇴와 인생 후반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막 들기 시작했을 때가 떠올랐다. 우리 사회는 이 시기에 대해 ‘은퇴 자금’, ‘두번째 직업’ 정도의 담론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나도 많이 두려웠고, 나의 건재함을 증명해야 할 것 같아 조급했다. 삶의 전환기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 좀더 성숙해지고 다양해져야 한다. 전환은 무엇을 더 해내는 문제가 아니라, 나를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이라는 것에 공감이 됐다.
<활동> 정선애님은 제주에서의 삶을 통해 ‘멈추고 비우는 과정’으로서의 활동을 소개했다. 거창한 전략이나 사회적 기여를 설계하기보다, 스스로를 해독하며 ‘재미있는 일, 돕는 일, 배우는 일’이라는 소박한 초발심을 유지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특히 동네 스포츠 클럽을 운영하며 이웃과 먹을 것을 나누는 ‘제3의 장소’를 만드는 과정은, 작고 유연한 보폭으로 삶의 숨구멍을 내는 것이 어떻게 지속가능한 활동으로 이어지는지 증명해 주었다고 한다.
<연결> 김만희님은 중장년 전환기의 중요한 키워드로 ‘연결’을 꼽았다. 여기서 연결은 같은 세대끼리의 협업을 의미한다. 그는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라는 유혹을 이겨내는 것이 연결의 핵심이라면서 중장년에게 ‘연결의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역량을 가진 이들이 결을 맞추어 나갈 때 발생하는 번거로움을 중장년 특유의 포용력으로 버텨내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얻는 ‘협업의 기쁨’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푸는 유일한 해법이기 때문이다.
<연대> 김수동님은 “명랑한 동네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자신의 활동이 결국은 ‘나 자신을 위한 행복한 이기주의’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녀에게 집 한 채 물려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신, 기성세대가 연대하여 청년들의 주거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진정한 ‘어른의 역할’임을 강조했다. 특히 98세 노모와의 삶을 통해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아는 사람들 곁에 머물며 나답게 생을 마무리하는 권리”를 말했다. 그의 발표는, 나를 위해 시작한 작은 연대가 어떻게 우리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동력이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토론에서는 전환이 결코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 나를 지키기 위한 능동적인 선택이어야 한다는 점에 의견이 모였다. 특히 남성 참석자들에게는 과거의 권위를 내려놓는 ‘하찮아지는 연습’이, 교육 현장에는 교실을 넘어 지역사회로 연결되는 ‘실천적 경로’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즐겁게 공을 놓칠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비비며 기댈 수 있는 느슨한 연대가 중장년 인생 2막의 핵심 열쇠라는 정선애님의 이야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행정 주도의 전환 교육을 넘어 중장년 스스로가 교육과 활동의 주체가 되는 ‘당사자 주도 캠퍼스’와 각자의 자원을 나누는 ‘공유 자산 만들기 운동’에 대한 제안도 있었다.
열띤 분위기를 모두 담아내기에는 많이 부족했던 시간 덕분에(?) ‘가을에 전세기 타고 제주에서 만나자’는 정선애님의 기분 좋은 제안으로 토크쇼를 마무리했다.
3부 공동선언
참석자들은 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활동을 만들어 나가며, 서로 연결하고, 연대하면서 사회적 상속을 실천한다는 내용을 담은 ‘중장년 네트워크 포럼 선언문’을 함께 낭독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공동선언까지 이어지는 흐름을 보며 개인적으로는 거리감도 느껴졌다. 이미 인생학교와 같은 과정을 거쳤거나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이 중심이 된 자리였고, 나보다 10년쯤 앞서 인생의 전환을 고민해 온 사람들의 이야기였기에 아무래도 시간 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 발짝 떨어져 선배들의 고민과 실천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이 자리가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인생 후반전은 내게도 먼 미래가 아니기 때문이다. 전환, 연결, 연대라는 말들이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각자의 삶 속에서 구체적인 선택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흐름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경험해보고 싶다는 마음도 생겼다. 50+인생학교나 패스파인더, 갭이어와 같은 프로그램을 알게 된 것 또한 하나의 수확이었다. 이 선택지들을 조금 더 진지하게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