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사망자가 될 가능성?
“앞으로 결혼할 계획 있으세요? 만약 없다면 당신은 ‘무연고 사망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
설마?’ 하실 분이 많을 겁니다. 그렇다면 형제·자매는 있으신가요?
있다면 당신 장례를 치를 정도로 관계가 친밀한지 잘 생각해 보세요.”
저소득자 및 무연고자 장례지원을 하고 있는 단체 나눔과나눔의 박진옥이사가 오마이뉴스에 쓴 칼럼(2024년 3월 26일자)의 일부이다. 결혼 계획이 없다면 무연고 사망자가 될 수 있다니 비약이 심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서울시의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치르면서 접한 고인들의 가족관계를 확인해 보면 무연고 사망자의 50%가 미혼이었으며, 또한 형제들이 시신을 위임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서 집계하는 <전국 무연고 시신 처리 현황>에 따르면 무연고사망자는 2023년에 5415명으로 2022년의 4842명, 2021년의 3603명에 비해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수치만 느는 것이 아니라 전체 사망자 중 무연고 사망자의 비중도 늘고 있다. 2013년 전체 사망자의 0.5%였던 무연고 사망자 비중은 2023년 1.5%로 3배 증가했다. 인구의 고령화, 1인가구의 증가, 가족관계 단절 등이 무연고 사망자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지만 연고자를 혈연과 법률혼상의 관계로 제한하는 법제도의 문제도 있다. 연고자(緣故者)의 사전적 의미는 ‘혈통, 정분, 법률 따위로 맺어진 관계나 인연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현실에서는 그 관계가 혈연과 법률이 맺어준 것이 아닌 경우 연고자라 주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고’가 대체 뭐길래?
쪽방촌에서의 연고 있는 장례식
동자동 쪽방촌에서의 현장연구 기록을 바탕으로 한 정택진의 책 <동자동 사람들>에는 조금 특별한 장례식이 소개되어 있다. 쪽방촌에서 살던 최경철이 계단에서 쓰러지면서 머리를 다쳐 전신마비가 되었을 때 그를 보살핀 사람은 윗집에 살던 이웃 강영섭이었다. 강영섭은 1년 반 가까이 가능한 방법을 총 동원해서 최경철이 세 번의 수술을 받도록 도왔지만 이미 치료의 골든타임을 놓친 상태라 돌이킬 수 없었다. 병원순례 끝에 마지막으로 입원해있던 요양병원에서 최경철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사람도 강영섭이었다. 가족과 연락을 끊고 지냈던 최경철이 사망했을 때 그가 무연고 장례 대상이 되는 것은 쪽방촌에서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절친인 강영섭은 그를 그렇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초수급자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을 부담하며 일반 장례식을 선택했다. 유가족의 참여 없이 쪽방촌 사람들과 함께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간소하게 진행된 장례식은 겉으로 보기에는 무연고장례와 거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가 일반 장례를 고집한 이유는 유가족을 찾기 위한 절차가 진행되는 긴 시간동안 자신의 친구가 차디찬 영안실에 방치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경험을 통해 통상 연고자를 찾고 연고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 짧게는 30일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걸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가족이 아닌 강영섭은 어떻게 고인의 사후 나흘만에 일반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2020년 개정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덕택이다. 보건복지부는 가족의 다양성 등 사회적 변화를 반영하고 사망자의 의사 존중과 생전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방향에 따라 기존의 연고자 순위에 더하여 “사실상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라는 항목을 추가했다. 또한 “사실상 관리하는 자”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도 마련했다. 예를 들면, 사실혼 관계, 법적으로는 친자가 아니지만 실제 친자인 경우, 지속적으로 동거하며 생계나 주거를 같이하며 정서적 유대관계와 돌봄을 제공한 경우, 또는 친구, 이웃, 같은 종교활동 및 사회적 연대활동 등에 따라 장례주관을 희망하는 경우 등이다. 강영섭은 이 지침에 의해 최경철에게 ‘정서적 유대관계와 돌봄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그가 지출한 병원비 내역을 근거로 인정받았다. 그가 이토록 경제적으로 큰 부담과 절차적 번거로움을 감내하며 연고자가 되고자 한 까닭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강영섭은 화장 후 남은 친구의 유골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산골했다. 유택동산에서 다른 사람의 분골과 섞이는 대신 오롯이 한 사람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한 행위였다. 강영섭으로 인해 최경철은 애도받을 자격과 권리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에 대한 장사업무안내 지침 (2020년 신설)
탈가부장:례식 – 애도의 자격
가족이 있고 없고를 떠나 성별, 가족구성, 고인의 정체성, 경제성 상황이 어떤 죽음에 대한 애도의 자격을 정하기도 한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사회복지연구소 물결, 퀴어페미니스트 문화운동단체 언니네트워크는 2023년 10월 27일부터 열흘 간 <탈가부장:례식> 전시회를 열었다. 이 전시는 직계혈연가족을 1순위 연고자로 삼는 현재의 법률체제가 유발시키는 죽음과 장례와 추모에 관한 차별을 알리며, 자격을 따지지 않는 평등한 장례식을 상상해 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곳에서는 가족구성권연구소에서 작성한 <가족질서 밖 소수자의 장례와 애도를 위한 사례보고서>(이하 보고서)의 일부가 발췌 전시되었다. 부계혈통주의, 이성애규범적 결혼제도에 부합하지 않아 고인을 무연고자로 떠나보내야 하는 사실혼 배우자, 동거 지인, 동성파트너를 비롯하여 동거하지 않지만 가족보다 더 가까이 서로를 돌보는 관계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특히 퀴어들에게 죽음은 그것이 삶에서 겪었던 불평등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확인하는 사건이 된다. ‘죽음과 슬픔과 애도에 대한 지배적인 이야기들은 사회적으로 비장애인중심이며, 지적장애가 없고, 문명화된 중산층 시민이자, 이성애 시스젠더인 규범적인 시민주체들만의 삶과 연결’되고 있기에 그 당연한 관계와 유대에 관해 질문한다. 죽음과 애도에 자격이 필요한가?
자료 : 언니네트워크
“특히 가족과 불화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퀴어나 사회적 소수자에게 장사법이나 혈연가족중심의 장례문화로 인한 차별은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누가 나의 인생에서 유대하는 존재인지 누가 나의 연고자인지는 혼인이나 혈연으로 미리 정해질 수 없으며, 이성애가부장제 가족제도를 공고히 하는 장례문화는 변화하는 시민들의 생애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가족질서 밖 소수자의 장례와 애도를 위한 사례보고서, 가족구성권연구소, 2023)
누구에게나 연고자는 있다.
이제 주변을 둘러보자. 나에게도 비혼 친구들이 많다. 예전 직장 동료였던 남성 비혼 친구는 고독사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남일 같지 않다고 했었다. 나 역시 당장 내 일이 아니라고 여기기엔 초고령사회의 구성원이 될 날이 멀지 않다. 어쩌면 내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는 사람이 어떤 법적 연고인보다도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까운 사람일 수 있다. 그들을 나의 연고자로 인정하고 나를 애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법제도의 개선을 포함해, 죽음과 장례에 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가족질서 밖 소수자의 장례와 애도를 위한 사례보고서>에는 법적 가족을 넘는 돌봄망과 관계성의 의미를 찾기 위한 제언들이 담겨있다. 그 중 공감되는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째, 연고자의 범위를 확장하고 고인의 의사를 반영해 그 연고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이는 사후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 혈연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하더라도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친구를 나의 연고자, 나의 장례주관자로 지정할 수 있다.
두번째, 장례와 애도에 소요되는 비용을 공공화함으로써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겪게 되는 장례나 애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쪽방촌의 강영섭에게 그가 원하는 방식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셋째 가정의례준칙을 폐지를 통해 가부장적 장례문화와 장례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것이다. 현재의 과도한 의례와 남성중심적 애도문화에서 탈피한 새로운 장례문화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소수자의 삶을 이해하는 죽음과 애도과정의 조력 제도화를 제안한다. 이는 연고자의 범위 확장과도 연결되면서 사회적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문제이다.
법과제도의 개선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 마음속에 쌓여있는 관습과 편견의 벽이 현행 법제도보다 더 견고하거나 높은 것은 아닌지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장례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 어떤 사람들이 오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이다. 구술생애사 작가인 최현숙은 공공연하게 자신은 자유죽음과 공영장례를 희망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공영장례를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돈과 연을 과시하는 것이 아닌 ‘고인과는 혈연도 애증도 없이 그저 뒤늦게나마 함께하려는 마음들이 모인 단출한 의식’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연고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는 것은 고인이 평소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단출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아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