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의사조력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에디터 이희경
1.
“때가 되면 난 스위스로 갈 거야.”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했지만, 사실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스위스’는 소망이나 의지의 기표였을 뿐, 구체성의 영역은 아니었다. ‘안락사(安樂死, euthanasia)’는 여전히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 <씨 인사이드>(2007), <아무르>(2012)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2022년, 어머니와 함께 ‘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서 이 문제가 내 삶 속으로 들어왔다. 연명의료, 연명의료 중단, 존엄사 등의 개념을 얻었고, ‘논쟁으로 읽는 존엄사’라는 부제가 붙은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2020)라는 책을 읽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2019)이라는 훌륭한 책을 낸 바 있는 서울신문 탐사보도팀의 취재 결과를 담은 그 책을 통해, 나는 한국에서도 스위스에 가서 의사조력사를 선택한 이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스위스에서조차 조력사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그니타스’와 ‘블루하우스’ 등의 존재도 알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6월, 국회에서는 소위 ‘조력존엄사법’이라 불리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발의되었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사이 또 한 번 국면이 바뀌었다. 작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룸 넥스트 도어>가 조력사를 정면으로 다루었고,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메리 킬즈 피플>과 <은중과 상연>이라는 두 드라마가 조력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도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는데, 2024년에는 <단식 존엄사>(비류잉), <나의 때가 오면>(다이앤 렘)이, 2025년에는 지금까지 <오늘이 내일이면 좋겠다>(남유하), <살레카나>(양영순), <내가 죽는 날>(애니타 해닉), <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에리카 프라이지히) 등이 출간되었다. 대부분 조력사를 경험적으로 다룬 책들이다. 이제 조력사는 우리나라에서도 공론장 안에 들어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2.
나이듦연구소도 지난 주말 의사조력사 워크숍을 열었다. 우리가 유행에 민감해서라기보다는, 상반기에 함께 읽은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후 좋은 죽음(존엄사)을 화두로 삼아 상반기에는 연명의료를 다루는 ‘엔딩노트 워크숍’을 열었고, 이어 하반기에 ‘의사조력사 워크숍’을 열기로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자료를 미리 읽고 공부한 후 찬반 디베이트(debate)를 하려고 했다. 하지만 ‘두 모자 기법’이라는 토론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우리는 그 방법이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이는 토론 주제에 대해 참석자들이 모두 한 번은 찬성 의견을, 다른 한 번은 반대 의견을 내는 것이다. 우리 워크숍 참석자 열 명은 ‘O이소’에서 생일축하모자를 사 들고 워크숍으로 향했다.
먼저 찬성 의견은 크게 다섯 가지로 모아졌다. 첫 번째는 고통과 관련된 문제이다. 몇 달 남지 않은 여명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자비심 혹은 측은지심으로서의 찬성. 둘째는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듯이 다양한 죽음의 모습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 결국 원칙적인 자기결정권 지지. 세 번째는 맑은 정신으로 남은 사람들과 잘 이별하는 것의 필요성. 즉 애도 차원에서의 찬성, 네 번째는 의료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 즉 초고령화사회에서 의료가 삶과 생명 연장에만 관여할 수 없고, 조력사를 포함한 말기 돌봄으로 관점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 다섯 번째는 안락사를 근대적 주체의 ‘자유죽음’이 아니라 스토아적 맥락, ‘자기배려’로서의 삶의 완수로 볼 수 있지 않냐는 의견이었다.
반대는 크게 세 가지 정도였는데 첫 번째는 생사는 그 어떤 경우도 개인의 권리가 될 수 없다는 것, 산다는 것은 언제라도 부득이함을 통과하는 것이고, 결국 순명(順命)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견, 두 번째는 이반 일리치가 말했던 것처럼 근대사회는 고통을 회피하는 사회이고, 조력사 역시 어떤 점에서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 세 번째는 (이 의견이 가장 많았다) 소위 ‘미끄러진 비탈길 이론(slippery slope argument)’으로 “한 번 예외를 허용하면, 그 경계가 점점 더 확장되어 결국 통제 불가능한 결과에 이른다”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영화 <플랜 75>에서 이 문제를 목도한 바 있다.
3.
워크숍이 열린 평창의 날씨는 화창했다. 숲과 나무는 아직 여름이었지만 해는 완연히 짧아졌다. 저녁을 먹고 어둑어둑해지는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 멀리 손톱 같은 초승달이 떠있었다. 죽음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아름다운 밤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마지막 종합 토론. 자기결정권과 통증, 그리고 좋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6시간 반의 워크숍이 마무리되었다.
처음 “의사조력사, 찬반을 넘어 성찰과 대화를 여는 워크숍”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었을 때만 해도 따옴표 속의 말은 원론에 불과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진짜 모자를 쓰고 한 번은 찬성, 한 번은 반대 입장에서 말을 해보니 처음 가졌던 각자의 직관을 유지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다. 이 문제는 단순한 찬반으로 처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맥락과 층위와 차원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 가지 공통된 결론에 도달했는데, 좋은 죽음은 죽음의 문제라기보다는 차라리 돌봄의 문제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육체적 통증, 실존적 고통, 삶의 의미 등은 우리가 어떤 관계망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돌봄을 받느냐와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조력존엄사 단체 디그니타스(Dignitas)의 대표가 말한 것처럼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려면 모든 국민이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공공의료 시스템과 통증완화의료 제도도 동시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유영규 외, <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도 몇 가지 질문을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 우선 이번 토론을 통해 반대 논리가 주로 사회적 맥락에서, 찬성 논리가 개인적·실존적 맥락에서 제출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 그럴 것 같았다. 미끄러진 비탈길 논리에 충분히 동의하지만, 만약 내가 나중에 극심한 육체적 통증에 시달리게 된다면, 혹은 고다르처럼 백 살이 넘어서도 죽지 못한 채 지루한 삶을 이어가게 된다면 스위스에 가고 싶지 않을까?
물론 나는 그것을 시종일관 ‘자기선택’이 아니라 ‘자기배려’라고 주장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배려’라는 개념이 조력사라는 구체적 사안과 맥락 속에서 어떻게 재담론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반 일리치가 이야기한 것은, 어떤 사회든 통증을 해석하는 문화가 있었는데 지금은 오로지 그것을 의료적으로만 처리하려 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런 현실 속에서 통증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지?
다음 날은 억수같이 비가 왔다. 그 빗속을 뚫고 집에 도착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몇 년째 책꽂이에 얌전하게 꽂혀 있던 <통증 연대기>를 꺼낸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조력사 고민은 끝난 게 아니라 이제 비로소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크랩 플러스
📌 이 달의 스크랩
▶ 우리나라 노인은, 가난하다
-우리나라 노인은 가난하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8.2%로, OECD 평균(15%)을 두 배 이상 웃돈다. 노인 인구 열 명 중 네 명은 중위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 결과는 통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지난 5년간 전체 절도 범죄는 줄었지만, 61세 이상 고령 절도는 오히려 늘었다. 생계를 잇기 위해 폐가전이나 신발, 심지어는 식료품을 훔치다 법정에 서는 노인들이 매년 늘고 있다. 빈곤이 노인을 범죄자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자료: 문화일보
-그렇다면 왜 한국의 노인들은 이토록 가난할까.
첫째 이유는 연금제도의 미비다. 65세 이상 노인의 90%가 연금을 받는다고 하지만, 월평균 수령액은 69만 원에 불과하다. 1인 최저생계비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정년(만 60세)과 국민연금 수령 시점(현재 만 63세, 2033년 이후 만 65세) 사이에는 길게는 5년 가까운 소득 공백이 생긴다. 실제로 60~64세 인구 4명 중 1명은 일도 하지 않고 연금도 받지 못한 채 소득이 전혀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둘째는 노인 일자리의 한계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4.9%로 OECD 최고 수준이지만, 이는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안 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부가 마련한 노인 일자리가 완충 역할을 하고는 있지만, 대다수는 단순 노무직에 머물러 있으며 수입도 월 30만 원 남짓이다. 최근 들어 ‘보행로 정보수집’, ‘연금 가이드’ 같은 사회서비스형 일자리가 늘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해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노인은 극히 일부다.
셋째는 사회 안전망의 취약성이다. 현금 지원이나 기초연금으로는 빈곤을 벗어나기 어렵고, 공공요양시설·돌봄서비스는 수요에 한참 못 미친다. 결국 민간시설에 의존하거나 가족에게 돌봄을 떠넘기게 되고, 이는 또 다른 불평등을 낳는다
-대안은 무엇일까?
첫째, 연금소득을 포함한 노인 기본 소득을 확충
둘째, 일하고 싶은 노인들에게는 다양하고 양질의 일자리 제공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
셋째, 돈 없어도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공공적 안전망—주거, 돌봄, 의료, 문화—확충 등…
-노인빈곤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 구조의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는 것은 곧 우리 모두의 미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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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엄한 죽음
▶치매 환자 안락사, 의료진도 ‘팽팽히 갈렸다’ (디멘시아)
-치매 환자 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뜨겁다. 최근 국제 학술지에 실린 조사에 따르면, 6개국 임상의 205명 중 44%는 “윤리적으로 수용 가능하다”, 비슷한 비율은 반대했다.
-국가별 편차도 뚜렷했다. 네덜란드는 66%가 찬성했지만, 스위스는 23%에 그쳤다. 미국은 일부 주에서 말기 환자 대상 ‘의료적 조력사’를 허용하지만, 치매는 제외된다. 일본·이스라엘은 전면 금지다. 한국도 불법이다.
-치매 환자 안락사는 단순히 제도적 허용 여부를 넘어, 깊은 철학적·윤리적 난제를 동반한다. 초기 단계에서 남긴 ‘사전 의사’를 질병이 진행된 후 어디까지 존중할지, 그리고 현재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 안녕감과 어떻게 조율할지가 핵심 쟁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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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피스
▶가정형 호스피스 전체 9%… 집에서 품위 있게 죽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동아일보)
-국내 호스피스 서비스 가운데 가정형 호스피스 이용은 여전히 미미하다. 지난해 신규 호스피스 이용자 2만4318명 중 가정형은 2245명(9.2%)에 불과했으며, 운영 기관도 전국에 40곳뿐이다. 특히 경북·경남·전남 지역에는 아예 기관이 없어 지역별 격차도 심각하다.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 역시 1751개에 그쳐, 환자들은 2~3개월씩 대기하다가 결국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
-정부와 국회는 호스피스 대상을 세계보건기구(WHO) 권고 기준으로 확대하려는 계획을 추진 중이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낮은 수가와 인프라 부족으로 수용 자체가 어렵다는 현실적 제약을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호스피스가 늘어나면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줄이고, 환자가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 절감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단순한 대상 질환 확대를 넘어, 체계적인 생애말기 돌봄 전략과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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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인간 퇴비장’을 아세요? -미국에서는 확산 중 (KBS)
-죽으면 나의 시체는 어떻게 처리되기를 원하는가? 화장(火葬)? 그다음 남은 뼛가루는?
-미국에서 사망자의 시신을 흙으로 환원하는 ‘인간 퇴비장’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엔 뉴저지주가 퇴비장을 합법화했다. 이로써 미국에서 퇴비장을 허용한 주는 14곳으로 늘었다.
-퇴비장은 시신을 흙과 미생물 등이 담긴 용기에 안치한 뒤 ‘한 줌의 흙’으로 만드는 절차다. 이 흙은 유골처럼 보관할 수도 있고, 정원이나 나무·꽃에 뿌릴 수도 있다. 실제로 한 뉴저지 여성은 남편의 시신을 워싱턴주로 보내 퇴비장을 치른 뒤, 그 흙을 화분에 뿌려 남편의 존재를 일상속에서 느낀다고 전했다.
-일부 종교단체는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최근 친환경 장례 절차를 선호하는 이들이 많아지며 미국 장례문화는 전통적 매장에서 퇴비장을 비롯한 친환경 장례로 변화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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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개의 나이듦
▶성소수자의 나이듦(일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는 2021년부터 성소수자의 노후 인식조사와 컨퍼런스를 이어오며, 성소수자의 ‘나이듦’을 본격적인 사회 의제로 제기해왔다.
-2023년 열린 ‘아시아 성소수자 컨퍼런스’에서는 네팔, 대만, 일본, 태국의 활동가들이 참여해 성소수자 노인의 현실과 과제를 공유했다. 공통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가시화된 롤모델의 부재, 주거 불안정, 의료 접근의 어려움, 커뮤니티 내에서도 배제되는 이중의 소외였다. 그럼에도 각국 단체들은 성소수자 노인 모임, 구술사 작업, 정책 제안 등을 통해 노년의 삶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실험들을 이어가고 있었다.
-2025년 8월에는 도쿄를 찾아가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퀴어여성들을 만났다.
1970년대, 와카바야시와 사와베 같은 젊은 여성들은 우먼 리브 운동과 미국 여성건강운동을 경험하며 ‘여성을 사랑하는 여성’으로서 자신을 정체화하고 레즈비언 잡지와 모임을 만들어 일본 레즈비언 운동의 기틀을 닦았다. 이들의 활동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며, 70대가 된 지금까지 단체를 지키며 후배 세대에게 길을 열어주고 있다.
한편, 2015년 시작된 파트너십 제도는 일본 인구의 92%까지 확산되었으나 상속, 연금, 친권 등 핵심 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수십 년을 함께한 커플들은 국가를 상대로 지금도 혼인평등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노후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롤모델 부재, 높은 자살률, 경제적 취약성, 부모 돌봄 부담, 시설 입소 시 커밍아웃의 두려움은 성소수자의 노년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젊은 성소수자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 가장 큰 과제라는 절절한 말은 지금 세대의 삶과 직결된다.
그러나 이들은 불안만 말하지 않는다. 파프스쿨(PAFSCHOOL-성소수자의 지혜와 용기를 나누는 공간)의 세대 간 모임, 중년 레즈비언의 주거와 커밍아웃 지침서, 친구들과 함께한 장례와 슈카츠(終活,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활동)모임 같은 실천은 성소수자 노년을 현실 속에서 준비하는 방식이다. 70대 활동가들은 여전히 젊은 세대와 경험을 나누며 “역사는 반드시 변한다”는 믿음을 전한다.
결국 이들은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도 다양한 노년의 모습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다음 세대의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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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만난 20~70대 퀴어여성들 이야기(일다)
②日 동성 파트너십 제도 10주년…‘혼인평등도 필요해’
▶요양원 탈출 후 인기 인플루언서 된 80대 수녀 3인방 (KBS)
사진출처 : KBS 뉴스 유튜브 캡쳐
오스트리아에서 여든을 넘긴 할머니 수녀 세 분이 요양원에서 나와 자신들이 평생 보냈던 옛수도원으로 돌아왔다. 이들은 수년간 폐쇄되었던 그곳에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다시 생활을 시작했고, 그 일상을 SNS에 올려 유명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교구측은 수도원의 열악한 환경과 수녀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지만 수녀들은 “집으로 돌아와 행복하다”고 말한다.
■노인혐오
▶노인 돌봄시설이 ‘혐오시설’이라구? (MBN)
서울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지만, 노인 돌봄 시설은 ‘집값 떨어뜨리는 혐오시설’로 취급되며 건립이 가로막히고 있다. 실제로 재건축을 추진 중인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단지 내 노인 돌봄 시설 설치 계획에 대해 주민들이 반대 동의서를 돌리고 “집값이 안 오른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런 반대 탓에 최근 3년간 서울 내 신규 요양시설 수는 절반으로 줄었고, 시립 요양시설 정원은 90명도 안 되지만 대기자가 900명에 달하는 상황이다
☑️ 코멘트
▶소위 ‘시니어 머니’ – 상품화된 죽음관리 (한겨레)
초고령 사회를 맞아 ‘시니어 머니’ 4,300조 원, ‘치매 머니’ 154조 원이라는 표현이 금융권과 언론을 장식한다. 그러나 이런 언어는 노인을 존엄한 주체로 보는 대신 거대한 ‘시장’으로만 환원한다. 유언대용신탁, 상속·증여 신탁, 간병보험… 등도 어떤 점에서는 돌봄과 죽음의 문제를 공적 권리로 논의하기보다 금융 상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셈이다. ‘웰다잉’이 아니라 ‘상품화된 죽음 관리’다. 정부 역시 공공신탁제도를 추진한다고 하지만, 공적 돌봄과 사회적 안전망 확충이 아니라 금융 모델을 따르고 있다. 초고령사회가 묻는 질문은 단순하다. 노후와 죽음을 금융시장의 새로운 먹거리로 둘 것인가, 아니면 존엄과 돌봄의 권리로 보장할 것인가.
🖇️ 기타
▶인천 청라의 민간 실버타운 안에 자리한 원불교 청라교당의 의미있는 실험 (경향신문)
▶유품 안 남기려… 평생 써온 물건 ‘당근’에 파는 7080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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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짚고 가는 동네 사랑방 (경향신문, 김수동, 탄탄주택조합 이사장)
집 안에 머무는 ‘경계선 위 노인들’은 고립과 노쇠의 위험에 쉽게 내몰린다. 닫힌 경로당을 대신해 누구나 드나드는 열린 사랑방이 절실하다. 일본의 지역 살롱은 세대를 잇는 공동체의 힘을 보여주고, 홍은동의 타임뱅크하우스는 상호 돌봄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2026년 통합돌봄지원법이 실효를 갖추려면, 지팡이를 짚고도 마실 갈 수 있는 동네 사랑방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기반이다.
에디터스 픽
▶첫여름 / 허가영 감독 / 허진 주연 / 2025년 8월 개봉
오랜 춤 파트너이자 애인이었던 학수와 연락이 끊긴 지 여러 날. 그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영순에게 학수의 아들은 이미 지나버린 부고 소식을 전한다. 손녀의 결혼식이 있는 하필 그날, 학수의 사십구재(四十九齋)가 열린다는 소식에 영순은 가야 할 곳과 보고 싶은 사람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리는데… 가장 뜨거운 순간을 선물한 학수의 죽음 앞에서 영순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돌봄의 목소리들 N인분 / 돌봄과미래, 빠띠(지은이) / 이매진/ 2025년
지난 5월 10일 ‘가장 사적인 돌봄의 목소리에서부터 돌봄의 공적 대안을 마련합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열린 ‘100인 돌봄시민회의’를 정리한 기록이다. ‘돌봄 커뮤니티 N인분’, ‘재단법인 돌봄과미래’, ‘디지털시민광장 빠띠’ 등이 힘을 모아 마련한 ‘100인 돌봄시민회의’는 청년 돌봄부터 생애 말기 돌봄까지, 가족 돌봄에서 지역 사회와 이웃 기반 돌봄까지, 장애인 돌봄부터 치매 돌봄까지, 암 환자와 중증 질환자 돌봄부터 정신 장애 돌봄까지 돌보는 삶 100명이 모여 돌봄 이야기를 실컷 나누고 돌봄 정책 시민 공약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이제 돌봄시민회의를 함께 꾸린 세 단체는 돌봄 시민 100인이 쏟아 낸 돌봄 넋두리가 공허한 메아리로 사라지지 않게 책으로 펴냈다.
▶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 에리카 프라이지히(지은이) / 박민경(옮긴이)/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한 스위스 의사의 개인적인 고백에서 출발하지만, 곧 생애 말기 환자들이 겪고 있는 절박한 현실로 독자를 이끈다. 인간으로서 존엄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을 선택할 권리,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자기 결정’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는 의료인의 시선과 우리가 마주한 법적·윤리적 공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는 단지 죽음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책임을 다시금 성찰하게 하는 기록이다.
▶고요한 결심 /이화열(지은이) / 앤의서재 / 2025년
어느 날, 이화열 작가는 시어머니 아를레트가 스위스 조력사망기관에 조력사를 신청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조력사 결정부터 시어머니의 마지막 여정에 동행하기까지, 작별을 준비하면서 보낸 세 달의 시간, 죽음이 일깨운 삶의 감각을 기록한 책이다.작가는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남고자 했던 한 존재의 여정을 곁에서 지켜보며, 삶의 주체성을 조금씩 잠식해 가는 노화의 과정과 그 안에서 지켜내야 할 존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늙음과 죽음을 일상의 언어로 기록했다. 삶이 다르듯, 죽음을 대하는 태도도 모두 다르다.
▶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 / 비테 안데숀(지은이) / 이유진(옮긴이) / 쥬쥬베북스 / 2024년
76세 마리아는 파트너와 사별 후, 아파트 화재로 인해 시니어 성소수자 공동주택 단지인 플레이아데나에서 임시로 지내게 된다. 그의 입소 소식을 들은 당돌한 이웃 밀란은 환영 인사차 찾아와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 사이로 마리아를 끌어들인다. 세상에 마음을 닫은 마리아는 플레이아데나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을까?『76번째 여름날의 무지개』는 슬픔, 사랑, 좋은 이웃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용기에 대해 활기차게 그리고 로맨틱하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클로짓 성소수자의 삶, 그리고 노년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