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분해장을 아십니까?
우리의 몸은 70%가 물이다. ‘물은 열량이 없고 유기 영양분을 제공하지 않지만 생명을 유지하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 요소이다.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물질이며, 생체의 중요한 성분이다. 성인은 약 70%, 2차 성징 이전의 어린이는 약 90%, 어류는 약 85%, 그 밖에 물 속의 미생물은 약 95%가 물로 구성되어 있다.’(위키피디아 ‘물’) 물은 생명 유지에 꼭 필요하지만 생명체를 분해하는 데에도 쓰일 수 있다. 물로 시신을 분해하는 장법이 수분해장(Alkaline hydrolysis 또는 Water Cremation)이다.
수분해장의 원리는 알칼리 가수분해이다. 그 방법은 이렇다. 먼저 스테인리스 스틸로 된 거대한 챔버에 알칼리용액(5%의 수산화칼륨과 95%의 물)에 시신을 넣는다. 이때 액체의 양은 사람의 크기에 따라 조정된다. 다음으로 챔버를 93~160℃로 가압 가열한다. (화장 시의 온도는 통상 870~980℃) 자연분해를 돕기 위해 혼합물을 순환킨다. 분해과정 후 시신은 뼈와 아미노산, 당, 소금, 펩타이드가 포함된 녹갈색 액체로 변한다. 멸균된 폐수는 방출되고 유골과 장비는 깨끗한 물로 헹궈진다. 남은 유골은 건조 분쇄 후 유족들에게 돌려준다.
투투 대주교의 장례식, 사진:한국일보
수분해장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건 2022년 1월 1일에 치러진 노벨평화상수상자이자 인권운동가 데스몬트 투투(남아프리카 공화국)성공회 대주교의 장례를 통해서이다. 투투 대주교는 자신의 장례식에서 “과시적이거나 사치스러운 지출”이 없어야 하며, “가장 싼 관”을 선택하고, 성당에 있는 유일한 꽃은 “가족이 보낸 카네이션 꽃다발”이어야 한다고 유언했고 수분해장을 희망했다. 장례 의식에는 그의 뜻에 따라 카네이션이 올려진 소나무관이 사용되었다. 평소 환경과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았던 투투주교가 수분해장을 선택한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환경오염과 에너지 사용량이 적은 친환경 장법이기 때문이었다.
이 방법은 어떤 점에서 친환경적일까? 첫째, 화석 연료를 태우지 않으며 에너지 사용량이 화장의 10%밖에 되지 않는다. 둘째, 온실가스 배출을 35%까지 줄일 수 있으며 수은과 같은 유해물질을 방출하지 않는다. 셋째, 사용 후 멸균된 물은 하수나 폐수처리 시스템을 통해 폐기할 수 있다. 넷째, 치아의 보철물을 포함하여 우리 사이보그 인간들이 몸속에 이식하거나 삽입했던 다양한 금속들도 다시 돌려받는다. 심장박동기, 인공관절, 인공무릎 등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이것들은 분해과정이 끝나면 새것처럼 깨끗한 상태로 남고 재활용이 가능하다. 2020년 기준으로 미국인들이 장착하고 있는 인공 고관절/인공 무릎의 양과 그들의 사망률을 고려할 때, 수분해장을 통하면 매년 자유의 여신상 크기의 구조물 4개를 설치할 만큼의 금속을 재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에스콘디도에 있는 White Rose Aqua Cremation의 알칼리 가수분해 기계, 출처 : www.smithsonianmag.com
깨끗한 뼈를 얻고 싶어 – 하와이의 전통 장례식과 수분해장
하와이의 전통적인 장례법은 뼈를 보호하고 보존하는데 중점을 두는 방식이었다. 하와이 원주민 문화에서는 생명력, 영적 본질을 의미하는 ‘마나(mana)’가 DNA처럼 사람의 뼈에 저장되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천년 동안 이어왔던 그들의 장례법은 이랬다. 먼저 시신을 이무(imu)라고 불리는 해안 근처의 지하 오븐에 안치해 쪄서(?!) 살을 분해한다. (하와이가 화산섬이라는 특성 때문인 듯하다.) 다음 남은 뼈 중에서 온전하고 긴뼈만을 꺼내 유족에게 전달하고 나머지 유해는 바다에 버렸다. 유족은 고인의 마나를 보존하기 위해 그 뼈를 씻어 카파(관목의 섬유로 만든 직물)에 싸서 비밀의 장소에 숨겼다. 매장하는 장소는 그 사람이 땅과 살았던 장소와의 연결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 도굴이나 모독을 방지하기 위해 공개되지 않았다.
하와이 주 의회에서는 지난 2015년 하와이 전통 매장 풍습을 되살려 보존하려는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고인의 시신에서 살을 제거하는 것이 시신 훼손에 관한 미국 현행법에 저촉된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결국 전통 매장 법제화 시도는 무산되었다. 전통을 되살릴 수 있게 된 것은 2022년 수분해장을 합법화하면서부터이다.
수분해장이 하와이에서 합법화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뼈에 있다. 화장(火葬)을 하면 무기질의 일부가 타서 손실되지만 수분해장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수습할 수 있는 유골의 양이 화장보다 20~30%가 더 많아진다. 또한 수분해장에서 남은 뼈는 화장 후 수습하는 뼈에 비해 부드럽고 부서지기 쉬운 형태이며 다른 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유골로 회색이 아닌 흰색이나 황갈색을 띤다. 이제 하와이 사람들은 고전적인 방식의 이무를 사용하는 대신 알칼리 가수분해를 이용해 시신을 분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깨끗한 뼈’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확대되는 수분해장
이 방법이 처음부터 사람의 장례에 이용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94년에 미국에서 연구나 실험에 사용된 동물을 안전하게 폐기하는 방법으로 수분해장이 고안되었다. 그다음에는 1995년 Albany medical college에서 의학연구를 위해 기증된 시신을 처리하는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2011년부터 일반인들의 장례를 위해 장의사에게 도입되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동물을 위한 장법으로는 이미 수분해장이 널리 허용되고 있다. 사람을 위한 장법으로 허용하는 국가는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소수의 국가뿐이다. 세계적으로 수분해장에 대한 인지도는 여전히 낮은 편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수분해장 자체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기독교, 이슬람교 등은 시신의 훼손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하수구에 버리는 것과 같아서 비도덕적이라고 느끼거나 고인에 대한 무례한 행동이라고 보기도 한다. 이론적으로 이해가 되지만 감정적으로는 설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화장협회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 수분해장을 합법화한 주는 전체의 50%를 넘었고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매년 발생하는 200만건의 화장(미국에서는 유골을 수습한다는 측면에서 수분해장도 물화장이라 칭하여 화장에 포함시킨다.)중 수분해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10% 미만이지만 아마도 매장에서 화장으로의 전환속도보다는 빠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영국의 경우도 23년 여름 최대 장례서비스 업체인 Co-op Funeralcare가 수분해장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발표를 했다. 영국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 성인의 89%가 수분해장이라는 용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설명을 듣고 난 응답자의 29%가 가능하면 자신의 장례식에서 수분해장을 선택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1) 그리고 그 이유는 사후 자신의 신체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반려동물에 한해 수분해장이 허용된다. 지난 2021년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에 따른 것인데 이는 이 설비를 개발해 온 업체가 2016년부터 중소기업 옴부즈만에 건의하면서 가능해 진 것이다. 하지만 현재 동물보호관리시스템 홈페이지에 등록된 동물장묘업 허가 업체 중 수분해장을 시행하는 곳은 없다.
이성적이고 젠틀한 대안
후지하라 다쓰시의 『분해의 철학』에서는 분해를 이렇게 설명한다. “분해란 에너지의 방출과 합성된 영양염의 무기화(mineralization)이다. 무기화란 원소가 유기태에서 무기태로 변환되는 것이다. 분해는 죽은 생물 조직이 서서히 붕괴되는 것이라 정의되며, 그것은 물리적 작용과 생물적 작용 모두에 의해 진행된다. 분해는 풍부한 에너지가 담겨있는 복잡한 분자가 그 소비자(분해자와 ‘유기 쇄설물을 먹는 생물’)에 의해 이산화탄소, 물, 무기 영양염으로까지 분해되면서 끝난다.” 이 설명을 읽고 나면 수분해장의 과정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의 몸은 약 70%가 물이고 나머지는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로 구성되어 있다. 이정도면 사람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보다 물로 돌아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분해란 어떤 형체가 아주 작은 것들로 붕괴되어 원래의 형체는 사라지는 것이지만 그로인해 다른 물질과의 결합이 가능한 상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생태계의 새로운 여정을 위한 다른 결합을 위한 준비이다. 우리는 결국 분해될 운명이고 어떤 방식을 택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런데 기후위기의 책임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은 그 이전의 방식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나라에는 아직 수목장 이외의 친환경 장법이 허용되고 있지 않다. 나는 ‘좋은 시체 되기’의 희망 장법 두 번째로 수분해장(첫번째는 퇴비장이다!)을 목록에 올려본다. 수분해장을 설명하는 해외의 여러 기사나 자료들에는 ‘gentle’이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불보다는 물이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물로 해체되기. 젠틀하지 않은가.
수분해장 FAQs
Q: 사람을 산(acid)으로 녹이는 것인가?
A: 그렇지 않다 가수분해란 물을 이용해 큰 분자를 작은 이온이나 분자로 끊어내는 것이다. 알칼리용액에 사용되는 5%의 성분은 수산화칼륨(KOH)인데 이는 우리가 양잿물로 알고 있으며 비누나 화장품 등에 사용되는 수산화나트륨(NaOH)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그러니까 산성이 아니라 염기성 용액으로 서서히 살과 피부를 분해시키는 것이다.
Q: 수분해장에 걸리는 시간은?
A: 화장에 비하면 더디다. 이 과정은 통상 150℃(약 300℉)에서 6~8시간, 93℃(약 200℉)에서 14~18시간이 소요된다. 때문에 낮은 온도로 천천히 분해할 경우 이틀에 3구, 높은 온도로 분해할 경우 하루에 3~4구의 시신을 처리할 수 있다.
Q: 수분해장에는 얼마나 많은 물이 사용되나?
A: 통상 시신 한 구를 처리하는데 1300리터의 물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한 가구가 하루에 사용하는 물보다 적은 양이라고 한다.
Q: 수분해장 후 발생하는 폐수는 물을 오염시키거나 감염의 위험이 있지 않은가?
A: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남은 액체는 모두 자연분해의 부산물이다. 이 액체는 멸균된 상태이며 하수 또는 폐수처리 시스템을 통해 폐기할 수 있다고 한다.
1)https://www.euronews.com/green/2024/02/16/what-is-water-cremation-uk-to-offer-eco-friendly-burial-alternative-for-the-first-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