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드 히미코, 이누도 잇신 감독, 2005, 일본
게이 아버지를 만나다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병원비로 큰 빚을 떠안은 사오리에게 아버지의 젊은 애인 하루히코가 나타난다. 아버지가 암 말기로 심각한 상태이니 그가 지내고 있는 게이 요양원에서 아버지와 게이 노인들을 돌봐달라는 것이다. 가족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이 컸던 사오리는 하루히코의 부탁을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그가 일당 3만엔에 아버지의 유산도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메종 드 히미코(Maison de Himico, 히미코의 집)라는 이름의 이 양로원은 도쿄 긴자거리에서 유명한 게이바를 운영하던 히미코가 이 바를 폐업한 후, 게이들을 위해 바닷가에 있는 호텔을 인수해 만든 것이다. 매니큐어를 칠하고 곱게 화장을 한 게이 노인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는 그곳에서 사오리는 낯선 아버지와 재회한다.
이 영화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알려진 이누도 잇신 감독의 2005년도 작품이다. 무려 20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보적인 이 영화 속에서 히미코의 집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아름다운 미쟝센으로 표현된다. 히미코의 집은 낡았지만 이국적이며,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취향이 뚜렷하고 옷차림은 화려하다. 이국적인 집은 주류사회에서 벗어난 이질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을 상징하며 화려한 컬러는 그들이 가진 개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영화 속에서 창문, 문틀 같은 프레임 속에 등장인물들이 배치되는 장면들이 특히 많은데 이는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제한된 시선을 암시한다.
건강, 경제력, 주거의 문제는 취약한 노년의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게이들은 여기에 소수자로서의 낙인까지 더해지기 때문에 돌봄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여도 노인 요양시설이나 복지시설에서 배척되기 쉽다. 그러니 히미코가 게이바에서 함께 지내던 친구들과 만든 게이 양로원이라는 컨셉은 너무 이상화된 곳으로 보여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이 빚어낸 매우 개연성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게이 노인으로 산다는 것
작년 12월 한국게이인권단체 친구사이에서 ‘퀴어의 돌봄은 남다르지’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김순남교수가 게이 남성들의 돌봄을 연구한 두 개의 논문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강조된 것은 우리나라에서 ‘비혼 게이 첫 세대’가 탄생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전 세대의 게이들은 시대적인 압박에 의해 대부분 결혼을 해야 했지만, 90년대 이후부터는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늙어가는 비혼 게이들 1세대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결혼하지 않은 첫 세대, 곧 자식이 없는 첫 세대로 기존의 사회적 규범을 따르는 대신 새로운 삶의 형태를 발명해 내야 하는 존재들이다.
메종 드 히미코의 게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들은 개별적인 공간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존중받으며 생활한다. 누군가는 발레를 하고 누군가는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드레스를 만들고, 누군가는 아픈 이를 돌본다. 함께 모여 식사하고, 카드놀이를 하고 노래하고 춤춘다. 때로는 동네 아이들이 혐오의 욕설을 써놓기도 하지만 화를 내지 않는 마음의 여유도 있다. 메종 드 히미코의 분위기는 밝고 따뜻하고 활기차다. 그런데 리더인 히미코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히미코의 집은 조금씩 어두워진다. 게다가 재정적 후원자였던 히미코의 옛 애인이 탈세혐의로 수감되며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사오리는 그런 히미코의 사람들과 더 친해지고 그들의 삶에 애착을 갖게 된다. 자신을 향해 마음을 열어준 사오리에게 야마자키는 평생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간직했던 자신의 숨겨진 모습을 공개한다. 야마자키는 사오리에게 바니걸스 의상을 선물하며 함께 다양한 코스튬플레이를 해본다. 이 행위는 사오리에게도 해방과 자유를 맛보게 했고 침울하기만 했던 사오리의 표정도 점차 밝게 변화한다. 야마자키는 꿈꾸던 흰 드레스를 입은 채 잘 차려입은 게이 친구들과 클럽에 가고 여자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는 로망을 실현한다. 사오리는 그렇게 게이 노인들과 친구가 되면서 아버지에게도 마음을 열게 되고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화해의 시간을 갖는다.
남다른 퀴어 돌봄을 위해
하지만 이들이 여생을 보내기에 히미코의 집이 완벽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이유를 찾아 보자. 첫째는 가족과 주변으로부터의 소외이다. 가족이나 가까운 직장 동료로부터 배척되고, 이웃들과도 융화되지 못한다. 둘째, 아픈 몸에 대한 돌봄의 부재이다. 히미코는 생활 공동체, 즉 양로원이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에서만 살 수 있다. 그래서 히미코의 웃음을 담당하던 루비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본인의 의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가족에게 돌려보내진다. 사오리는 그를 히미코에서 돌봐야한다고 주장하지만 별도의 돌봄인력이 없는 히미코에서 노노(老老)돌봄을 감당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 세대 통합의 문제. 나이든 게이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이들이 하나 둘씩 사망하면 서로 돌봄을 할 수 있는 대상이 줄어든다. 영화에서는 히미코의 애인으로 등장하는 하루히코가 중년의 게이로 등장할 뿐 모두 노인들이다.
‘퀴어의 돌봄은 남다르지’ 교육에 참석한 사람들 중 한 명이 실존적 질문을 했다. 우리나라에 성소수자들을 위한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이 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아직 없다. 더구나 한국에서 남자 노인은 일반적으로 여자 노인보다 훨씬 취약한 존재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립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자 노인에 게이라는 조건이 더해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순남교수는 우리 사회가 게이나 트렌스젠더를 바라보는 시각이 고작 ‘화장실은 어떻게 할 것인가’의 수준에 그치고 있는데 이제는 그들의 ‘생애’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변해야 그 생애 안에서 상호의존적 존재로서의 돌봄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동의한다.
우리 모두는 늙는다. 그 안에 다양한 형태의 몸과 성별과 성적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대한민국의 1세대 게이의 나이듦과 돌봄은 망원동의 퀴어하우스 <무지개집>과 같은 공간이 더 늘어나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기존의 돌봄 시스템에 자연스럽게 그들이 합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글로벌 리서치 회사인 입소스가 2023년 30개 국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성소수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응답자의 6%가 자신을 성소수자로 응답했으며, 응답자의 7%는 자신의 친척, 친구, 직장 동료 중 동성애자가 있다고 답변했다. 그들은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고 바로 우리 곁에서 늙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의 메종 드 히미코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본다.
제가 이 영화 보고 문탁이 이제 작업장, 대안학교를 넘어 요양원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디…ㅋㅋ
게이 양로원, 필요하기도 하고 (모두 함께 모여 사는 게 더 좋다는 차원에서)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필요한 쪽에 더 가깝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