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침몰가족』을 읽다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다는 기사를 클릭했다가 책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찾아 읽게 되었는데 감독인 아들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가 그 인상을 뛰어넘었다. 사연인즉슨, 1995년 봄 도쿄에 있는 한 연립주택의 골목에 붙은 전단지로 시작된다. “공동(?)육아 참가자 모집중”이라는 내용이었다. 태어난 지 만 1년이 지난 아기(가노 쓰치)를 함께 돌보는 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모집한다는 것이었다. 이 전단지를 만든 이는 가노 호코, 당시 스물 두살로 비혼 싱글맘이었다. “집에 틀어박혀 종일 가족만 생각하느라 타인과 아무런 교류도 없이 살다가 아이는 물론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라는 모집 이유가 적혀 있다. 전단지를 보고 집으로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호코의 뜻에 동참하는 친구들이 한 둘씩 그가 집을 비울 때 쓰치를 돌봐주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육아가 이루어졌다. 육아에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점점 늘어나 육아일지도 함께 작성하는 관계로 확장되었다. 일지에는 쓰치가 했던 행동이나 말들도 기록되어 있고, 쓰치와 함께 시간을 보낸 돌보미들의 소감도 적혀 있다. 이들의 실험이 알려지면서 1996년에는 방송국의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 영상에 나온 돌보미들이 가장 많이 한 일은 ‘그곳에 있는 것’이었다. 직접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아이가 하는 것을 봐주고 때때로 반응하면서 함께 있는 모습만으로도 서로 안심이 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한 돌보미가 받아 온 전단지에 당시 일본에서 가족의 유대가 희미해지고 있는 현상을 걱정하는 정치인의 발언이 적혀 있었다. “남자는 일하러 가고, 여자는 가정을 지키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사라진다면 일본은 침몰하고 말 겁니다.” 전통적인 가치관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의 관계야말로 ‘침몰가족’이 아니냐며 한바탕 웃었다고 한다. 이후 자신들의 활동을 알리는 무료 소식지를 만들기로 하면서 소식지의 이름을 침몰가족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한 명의 아이를 돌보는 일에 열 명이 넘는 성인들이 연결되었고, 아이는 다양한 어른들의 가치관을 보고 배우면서 자신이 가장 편하고 좋은 것을 고르는 데 익숙해졌던 시간이었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다. 독박육아나 가족의 도움 또는 국가의 지원에 의존하지도 않은 엄마의 선택이 아이를 침몰로 몰아가지 않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2.다큐멘터리로 기록된 침몰가족 이야기
돌보미를 하러 오던 다른 이의 제안으로 공동육아가 공동주거로 확장된 침몰하우스가 생겼다.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 둘과 독신 세 명이 공간을 마련해서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스무 명 가까이 늘어난 돌보미들도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 되었다. 1996년 당시 일본은 전 해의 옴진리교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일어난 후 사회적으로 불안한 분위기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혹시 옴진리교 같은 수상한 집단이 아닌지 이상하게 보던 시절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취직이나 결혼 등 세상의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연대하는 ‘낙오연대’라는 모임이 활발하게 열렸고, 침몰하우스도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면서 재미나게 보냈다. 이들은 사회에서 낙오한 것에 대해 좌절하기보다는 스스로를 긍정하는 기운을 나누며 도쿄 주변의 역주변에 모여서 춤추고 노래하며 즐겼다.
<유튜브에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이들을 취재한 CBS의 기획 영상, 한번들 보시길, 재밌다>
도쿄 지역에 위치한 역에서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곳에 자리한 침몰하우스에서 주변의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금액으로 살 수 있었던 것도 공동생활을 하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쓰치는 그곳에서 여덟 살까지 여러 어른들과 함께 살다가, 엄마의 결정에 따라 섬으로 이사를 가면서 침몰하우스를 떠났다. 이후 대학에서 졸업과제로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영화로 만들기로 하고,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들을 찾아다녔다. 그들을 인터뷰한 영상과 그 시절의 자료 영상, 소식지 등을 편집해서 다큐멘터리 『침몰가족』을 완성했다. 책에는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 과정과 함께,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들도 함께 실려 있다.
<2025년 4월, 한국에서 <침몰가족> 다큐멘터리가 상영되었을 때 방문한 가노 쓰치 감독>
쓰치의 엄마 가노 호코는 “어쩌다” 생긴 아이에 대해 ‘만나고 싶어서’ 낳았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의 아버지와는 헤어지기로 결정했을 때, 가족들이 집으로 들어오라는 제안을 거절하고 책에서 본 적이 있는 공동육아를 해보기로 했다. 당시에 발간한 무료 소식지에 호코는 이러한 선택에 대해 까닭을 밝혔다. “①내가 원하는 일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 ②여러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쓰치가 자랐으면 좋겠고, 나도 그런 환경에서 지내고 싶다.”(책, 227쪽) 이러한 바람을 성취하기 위해 호코는 함께 돌봄의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쓰치는 남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평범한 어른이 되어 그 시절을 즐겁게 추억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행운까지 얻었다고 했다. 호코는 자신이 했던 일이 기록으로 남아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힌트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소감을 남겼다.
3.함께 돌볼 수 있다면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함께 돌봄에 대한 어떤 힌트를 얻었다. 호코는 섬으로 이사한 이후 계속 그곳에 거주했는데, 지금은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에는 그 곳에서 2013년부터 ‘우레P야’라는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고 한다. 요양보호사로 방문 서비스 담당자로만 만나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 한 달에 한 번 그 사람들과 따로 모여서 노는 모임이다. 노인도 있고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뒤섞여 재미있게 신년회를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그 후에는 사단법인 ‘하치조지마드롭스’라는 단체를 만들어 섬에서 돌봄과 관련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 이 단체는 “그 사람이 자기답게 지역 안에서 ‘살고 머물고 일하고’가 가능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을 지향한다고 한다. 공동육아에서 시작한 함께 돌봄을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현장이 떠올랐다.
<가노 호코가 프로그램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장면 캡쳐>
그의 실천은 거창한 철학이나 일방적인 헌신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자신의 취약함을 인정하고 타인과 연결되려고 애쓰면서, 재미있게 사는 것이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걸맞게 삶을 꾸려갔을 뿐이다. 섬으로 이사한 이후부터 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호코의 차에는 늘 동물의 냄새가 나고, 언제나 반바지에 장화를 신은 “이상한 차림”으로 섬을 돌아다니며 함께 돌보는 일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삶이라고 한다. 함께 돌봄 자체로 삶을 지속하는 그의 실천에는 누가 누구를 돌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돌보는 행위가 곧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