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시신기증을 희망한다는 것
K의 아버지는 심근경색으로 입원하신 후 퇴원을 기다리다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예상치 못한 일이라 경황없이 장례준비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아버지 지갑 속 시신기증등록증이 발견되었다. K의 아버지가 시신기증 이야기를 꺼낸 것은 돌아가시기 7~8년 전이었다. 아버지는 가족동의를 위해 딸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고 딸들은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비 없이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시신기증의 문제는 K와 가족들을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유지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신기증등록증에 있는 의과대학으로 연락을 하자 바로 담당자가 찾아왔다. 시신기증을 하게 되면 염습, 입관, 발인이 불필요하며 통상 24시간 내에 시신을 인도해야 한다. K의 가족은 하루 동안 빈소를 모시고 조문객을 받았다. 시신을 인도하기 전 의과대학 담당자가 가족들에게 고인의 모습을 한 번 보여주는데 이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고인이 가족에게 돌아온 것은 1년 반 후였다고 한다.
벌써 10년 전의 일이라 기억이 흐려졌지만 K는 당시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두 가지를 이렇게 회고한다. 우선 아버지의 시신기증 이유나 계기가 사전에 가족들과 충분히 공유되었더라면 장례의 과정에서 좀 더 그 의미를 기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다음은 장사(葬事)가 생략되기 때문에 가족들 입장에서 상당기간 황망한 마음을 달래거나 추모할 수 있는 장소가 없다는 점이다. 지금껏 장기기증을 결심한 사람들은 종종 볼 수 있었지만 시신기증의 경험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K의 귀한 경험담 덕분에 우리나라 시신기증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살펴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시신의 수집에서 기증으로
해부와 시신기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서양에서는 교수대에서의 처형을 사체해부로 대신하거나 사형 후 추가 형벌로 해부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18세기 초 해부학이 학문으로 자리잡으면서 이러한 방식으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도굴꾼이 동원되기까지 했다. 해부용 시신의 취득 경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극빈자, 사형수, 행려사망자, 적군의 시체 등 사회적 약자나 생명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도록 각국에서는 무연고 시신을 해부용으로 사용했다고 알려진다. 시신기증이라는 방식이 일반화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우리나라의 해부학 교육은 19세기말 이후에 서양식 의학이 도입되며 시작되었다. 해방 이후 의과대학 수가 증가했고 실습용 시체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한국전쟁 후 무연고 시신이 대량 발생하자 의과대학들은 이를 ‘수집’했는데 무연고 및 사회복지시설 사망자 시신을 해부실습에 사용하는 것은 당시 의료계의 일반적 관행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1962년 제정된 ‘시체해부보존법’ 때문이었다. 이 법은 사회복지시설 사망자 등 무연고 추정 시신을 신속하게 ‘인수자가 없는 시체’로 분류해 의과대학의 해부실습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렇듯 사망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시신을 해부에 사용하던 관행에 경종을 울리게 한 것은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1)이다. 가혹행위와 인권유린 문제 외에도 사망한 입소자들의 시신 상당수가 대학병원의 해부실습실로 보내졌다는 사실이 함께 폭로되었기 때문이다. 형제복지원 사건과 대전 성지원 사건 이후 대학병원들이 극심한 해부용 시체 부족을 겪었다는 사실은 당시 이처럼 반인권적인 시신의 수급이 얼마나 당연하게 벌어졌는지를 증명했다. 이러한 문제는 1995년 전후 장기기증운동과 함께 시신기증도 활발해지면서 개선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의과대학에서는 시신기증에 의한 카데바(Cadaver는 ‘쓰러진 것’ 을 뜻하는 라틴어 ‘Cadere’에서 유래된 단어로, 연구 목적을 위해 기증된 해부용 시신을 가리키는 의학 용어) 확보가 가능해졌다.
시신수급의 어려움
시신 기증에 대한 인식은 예전보다 높아졌지만 아직도 수요에 비해 충분한 시신 확보는 어렵다. 여기에 의대증원으로 인해 해부실습용 시체 부족 현상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더해졌다. 전국의 의과대학에서 해부학 실습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필요한 카데바의 수는 연간 1,200구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 5년간 37개 의과대학의 시체 수급 수는 총 4,403구(연평균 860구)이며 이마저도 선호하는 기관이나 지역별 편중이 나타난다.2)
이처럼 사람들이 시신기증에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유교적인 문화환경과 시신기증의 절차에서 찾을 수 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이라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죽고 난 후라도 신체를 훼손하는 일에는 여전히 거부감이 크다. 때문에 본인의 의사결정에도 불구하고 사후에 유가족이 이를 번복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절차적인 문제는 통합관리체계의 부재에서 온다. 장기 기증이나 인체조직의 기증과는 달리 시신기증은 정보를 통합하여 제공하는 기관이나 사이트가 없기 때문이다. 기증 희망자는 의과대학 또는 종합병원을 지정해 신청의사를 밝히고 자신과 가족의 동의과정을 거쳐야 한다(이 과정에서 기증 희망자는 어느 지역의 어느 의과대학에 시신이 더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물론 임종 시에도 가족이 해당 대학으로 연락을 해야 한다. 장례 과정만 비교해 봐도, 장기기증의 경우 뇌사 판정 후 기증자의 희망에 따른 장기이식 수술이 이뤄지고 시신을 바로 반환받기 때문에 가족들이 한 번에 장례식을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시신기증은 고인의 시신 인도 후 1년에서 3년을 기다린 후에야 제대로 된 장례를 치를 수가 있다. 그렇다면 대가도 없는데 매우 번거롭기까지 한 시신기증의 의미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첫째는 해부학에서 사체 해부 실습을 대체할 다른 수단이 없다는 것이며, 둘째는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예비의사를 길러내거나 의학의 발전을 위한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 . 시신기증은 본인과 가족들이 이러한 가치를 깊이 공감할 때 가능한 일이다.
시신기증의 윤리란
그러므로 이를 활용하는 의과대학과 의료기관의 사용자들에게도 시신에 대한 윤리가 철저하게 요구된다. 때문에 법률로 정해져있다. 시체 해부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 제 17조의 제목은 ‘시체에 대한 예의’이다. 여기에는 “시체를 해부하거나 시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표본으로 보존하는 사람 및 시체의 일부를 이용하여 연구하거나 이를 수집·보존하여 연구 목적으로 제공하는 사람은 시체를 취급할 때 정중하게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기증된 시신을 대하는 윤리에는 사자(死者)가 죽기 전 기증에 대한 명확한 동의 즉, 충분한 설명에 근거한 동의(informed consent)를 해야 할 것, 가족의 동의, 순수한 기증이어야 한다는 것, 시신에 대한 존중, 기증자와 가족에 대한 비밀보장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시신에 대한 윤리의식을 크게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의대정원 확대에 따른 카데바 부족 해결방안은, 대학 간 공유와 수입이었다. 이에 대해 의료 관계자들은 기증자들이 숭고한 뜻으로 기증한 시신을 마치 물건의 재고처럼 취급했다는 점과 수입을 할 경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진 전형과 변이를 배울 기회가 없어진다는 점을 들어 강력히 반발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올해 6월 헬스트레이너와 필라테스 강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사이트에 올라온 “프레시 카데바”를 활용한 유료 해부학 강의 사건도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통상 해부용으로 기증되는 시신은 실습을 위해 방부처리 후 보관되는데 프레시 카데바(Fresh Cadaver)는 방부 처리가 되지 않은 시신을 말한다. 즉 교육생들에게 싱싱한 시체로 생생한 근육을 보여주겠다는 취지의 홍보문구였던 것이다. 이 사건은 의대생들의 실습을 위해 대가 없이 시신을 제공한 기증자의 의사에 반하여 영리목적으로 시신을 이용했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주최측은 이 프로그램이 해부학 교수가 진행하며 참관 교육이라는 점에서 불법은 아니라고 해명하며 사과했고 클래스는 취소되었다. 시신의 활용 대한 윤리회복과 이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 없이는 향후 시신기증문화의 정착은 쉽지 않을 것 같다.
죽어서도 할 수 있는 일
국립보건연구원에서는 2016년부터 국가치매연구 활성화를 위한 치매뇌은행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뇌기증은 장기기증과는 달리 이식이 아닌 연구목적의 기증이다. 치매에 걸렸거나 걸리지 않은 뇌를 부검하고 신경병리학적 진단을 수행한다. 치매 인구 100만명 시대에 살면서 우리는 치매에 걸리지 않을 방법을 고민하지만 아직 그런 방법도 치료제도 없다. 그러나 앞으로 이런 결심은 가능하다. “내가 만약 치매에 걸린다면 나의 뇌를 연구해다오”.
2020년 4월 개정된 시체 해부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인체자원의 활용 범위가 사인(死因)의 조사나 병리·해부학적 연구는 물론 의생명과학 연구 목적까지로 확장되었다. 의대증원 이유 외에도 시체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 반면 시신기증 인식개선을 위한 정보제공이나 홍보는 여전히 미진하게 느껴진다. 지난해, 시신기증 등에 관심 있는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3) 결과만 보더라도 시신기증 의향은 본인의 경우 5점 만점에 2.91점, 가족의 경우는 2.7로 나타났다. 국가생명윤리정책원은 기증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추모 공간 마련, 기증자의 날 지정, 기증 의사표시에 대한 관리제도 마련, 유족에 대한 예우 등을 제안했다. 하지만 예우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자체의 의미를 공감하고 공유하는 일이다. 장기기증, 인체조직기증, 그리고 시신기증 필요성에 대한 홍보, 공론화를 통해 기증의 의미와 가치 전달을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해 보인다.
평생 내가 받았던 수많은 의학적 도움이나 생명의 지속은 누군가의 희생에 의해 가능한 것이었다. 시신기증은 내가 받았던 도움을 다른 누군가에게 돌려주는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시신기증이 가능한 상태로 생명을 다했다는 것도 어쩌면 다른 사람이 누리지 못한 행운일 수 있다. 그 행운을 나누는 것도 좋은 시체가 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다.
시신기증 FAQ
-시신기증을 하고 싶은데, 가족의 동의 없이 가능한지요?
시신기증의 경우 가족 분들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등록인의 의도를 가족 분들께 시간을 두고 설득하신다면 동의하실 것입니다.
-저는 가족 없이 혼자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요?
가족이 안 계시는 경우, 가까운 혈육(친형제, 자매, 장조카 등)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저는 장례식 없이 바로 기증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가능한지요?
가능합니다. 유족과의 간단한 서류절차를 마친 후 저희 대학으로 모실 수 있습니다.
-시신기증이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사후에 유가족이 반대하는 경우, 후천성면역결핍증(AIDS)환자, 또는 전염병의 경우, 15세 이하의 경우, 각종 사고 등으로 인해 신체가 손상되었거나 변형(부패)된 경우는 불가능합니다.
-장기기증과 함께 시신기증을 함께 신청하였는데 가능한지요?
뇌사(腦死)로 장기기증(체내 장기를 기증)을 한 경우는 시신기증을 하실 수 없습니다.
-기증을 신청하였는데 생전에 어떠한 혜택이 있습니까?
시신기증의 경우 등록인 사후(死後)에 모든 절차가 진행되어 생전에 어떠한 예우와 물질적 보상이 없습니다.
(출처 :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1)국가에 의한 총체적 인권침해 사례로 알려진 부산의 형제복지원 사건은 경찰 등 공권력이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길거리 등에서 발견된 무연고자, 장애인, 고아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인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한 사건이다. 당시 입소자들을 대상으로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등의 각종 인권침해가 발생했다.
2) 보건복지부, 가톨릭대학교, <시체 기증 활성화를 위한 연구 결과보고서>, 2023
3)국가생명윤리정책원, ‘시체기증에 대한 예우 및 지원 제도 개선방안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