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월의 걷기는
남한산성 둘레길 5코스로 잡았다.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동문에서 북문-서문-남문-동문으로 순환하는 8키로 구간, 세 시간 정도 걸리는 둘레길이다. 답사를 갔던 10월 3일의 남한산성의 하늘은 최고로 맑고 시야가 트여 구불거리는 한강 줄기는 물론, 멀리 북한산 봉우리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날씨였다. 10월 걷.친.초 당일 10월 27일에는 흐렸다.
<10월 3일의 남한산성 성곽에서 본 서울 시내 전경>
<10월 27일, 남한산성 성곽 주변의 단풍>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남한산성의 단풍은 아직 미흡하긴 했지만, 역사의 현장으로 영화의 배경으로 계곡의 유원지로 많이 알려진 데다 지하철역으로 접근하기 수월한 점은 좋았다. 10월의 이야기 주제로 ‘남한산성’을 잡아놓았으니, 소설 문장이라도 읽자고 김훈의 『남한산성』을 검색해 몇 문장 픽했다. 이를테면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피난했던 남한산성의 행궁에서 척화파 김상헌과 주화파 최명길이 대화 한 장면.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임금이 주먹으로 서안을 내리치며 소리 질렀다.
-어허, 그만들 하라. 그만들 해
-『남한산성』 143쪽
둘레길의 삼분의 이를 지난 지점 쉬는 시간, 자료를 꺼내서 친구들과 함께 읽었다. 낭랑한 친구의 낭송과, “죽음으로 지탱하지 못하는” 삶의 엄정함이 어우러져 잠깐 숙연해졌다. 고립무원의 성안에서 뒤엉켰을 어떤 삶들의 침묵을 떠올렸다는 김훈의 문장도 한 몫을 했다. 길 위에서 헤아려 본 역사의 어떤 장면이었다.
2.10월의 걷친들
10월 남한산성길은 가까운 동네니 오시라 톡을 했더니 봉옥샘이 화답했다. 약속 시간에 맞추진 못했지만 샘의 나와바리라 가벼운 마음으로 오셨다고 한다. 걷친초는 처음인 마음, 나와는 오래된 인연이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는 모두 낯선 인물, 거기에 절친인 세션까지 함께 해서 걷친초의 활기를 업그레이드 해 주었다. 두 사람의 인연을 연대기로 정리해 준 나를 신기해 한 두 사람, 걷친초의 인연에도 관심을 부탁드린다. 양생프로젝트 기초탄탄의 인연으로 걷다보면에서도 함께 걸은 시소, 일요일 여성 글쓰기를 마무리해서 시간이 되었다고 좋아했다. 무사와 수수는 이제 걷친초의 스텝급이다. 다음에는 어디를 걸을까 언제든지 묻고 싶은 든든한 파트너들이다.(내 마음의 파트너들) 또 한 사람의 파트너 서해, 나이듦연구소와 관련한 수다 떨기에 안성맞춤된 시간이었다. 바람~은 등산동아리부터 함께 했던 오래된 벗, 토요일 일리치약국에서 놀러와에서 클래식 기타 연주로 들은 ‘작은연못’의 여운이 수다로 이어졌다. 주중에는 일에 치어 사는 그믐, 일요일에 걸어서 너무 좋다니 나도 좋았다. 마지막으로 에코실험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토토로, 이번 걷기에서 가을 길 걷기의 낭만을 즐기도록 부추겨 준 토토로, 걷친초에서 걷는 재미, 쏠쏠했지요^^?
올해 걷친초는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간도 들쑥날쑥, 코스도 내맘대로 정했다. 내년에는 정규프로그램으로 좀 더 짜임새 있게 진행하고 싶었다. 내년에는 어떻게 걸을까요? 묻는 아이디어 자료를 펼쳐보며 10월의 걷친들과 한참 수다를 떨었다. 그 수다들의 기운이 모아져 내년에도 걷친초의 걷기가 계속 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