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
우에노 지즈코, 현실문화
할아버지들은 왜
옥희살롱의 김영옥대표가 쓴 인터뷰집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중에서 노인 대상 주거복지서비스를 담당하는 김진구는 독거노인들, 특히 남자 독거노인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을 이렇게 표현했다.
“할아버지들은 정말 할머니들과 달라요. 아, 이분들은 옆에 가족이 없으면 안 되는 건가… 할머니들은 아무리 경제 사정이 나빠도 건강이 허락되는 한 사회 활동을 열심히 하시거든요. 할아버지들은 무기력하고 고독해요. 젊을 때는 분명 사회생활도 열심히 하셨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하나같이 가족들도 안 찾아오고 소통하는 이웃도 없어요.”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김영옥, 위즈덤하우스, 60쪽)
젊어서 왕성한 사회활동을 했던 남자들은 왜 할아버지가 되면 할머니들에 비해 더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며 고독사는 왜 남성들에게 더 두드러지는 것일까.
우리 연구소가 표방하는 ‘새로운 노년의 탄생’을 위해서는 새로운 할머니보다 새로운 할아버지의 탄생이 더 절실해 보인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 출간된 도서나 영화를 통해 남성, 한국 남성, 싱글 남성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 세대적 특성, 사례연구 등으로 ‘남성의 나이듦’을 탐구해 보려고 한다.
<여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男おひとりさま道(2009)>은 우에노 지즈코가 독신 여성들을 주제로 쓴 <싱글의 노후(2007)>의 남성판이다. <싱글의 노후>를 읽고 독신 남성 편도 써 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많아 싱글 남성들을 취재해 2년만에 출간했다.(우리나라에는 2014년에 번역출간) 이 책에는 남성의 나이듦에 도움이 될 만한 액션 플랜들이 많아서 내심, 마지막 회차에 마무리로 쓰는 게 어떨까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첫 번째 텍스트로써 갖는 의미는 나이듦과 돌봄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사회학자가 싱글 남성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친절하게 오리엔테이션을 해 주고 있다는 점이다.
혼자 사는 남자들
일본 역시 혼자 사는 남자들이 늘고 있다. 우에노 지즈코는 혼자 사는 남성을 비혼 싱글, 이혼 싱글, 사별 싱글로 구분한다. 여성은 원래 싱글이든 사별 싱글이든 비혼 싱글이든 일단 혼자가 되면 다들 똑같지만, 남성의 경우 비혼, 이혼, 사별로 혼자가 되어가는 과정에 따라서 생활, 가치관, 교우관계, 라이프스타일 따위가 크게 차이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들의 특성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비혼 싱글은 40대 초반부터 증가한다. 이 경우 주로부모에 의지해 살고 있어 부모간병의 당사자가 되기 쉬우며 돈, 가사, 간병 걱정과 자신의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큰 편이다. 이에 비해 이혼한 남성들은 아이와 아내를 모두 잃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이 대부분 친권을 가지기 때문이며, 이혼 후에 자식이 아버지를 돌보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혼 싱글들은 은퇴 후 동료나 친구들과도 소원해지면 초로의 우울증을 앓기 쉬워진다. 60대부터는 사별 싱글의 비중이 늘어난다. 아내가 떠난 후에는 자식들의 왕래도 줄어들고 더욱 쓸쓸해진다. 여기에 지인들의 부고까지 잦아지면서 자신의 장례를 걱정함과 동시에 혼자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진다.
이렇듯 남성 싱글들의 삶은 불안정하고 불편해 보인다. 그 불편함은 대체로 가사능력의 부재에서 온다. 하지만 일본에서 이혼 싱글이나 사별 싱글이 다시 커플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혼한 여성 싱글의 경우 이미 결혼이라면 진절머리가 나있는 사람들이고, 사별 싱글 여성이라면 먼저 사망한 남편을 돌본 대가로 연금이나 유산이 남기 때문에 그것을 포기하고 재혼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혼 여성 싱글은 애초부터 결혼 상대에게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롭다. 그렇다면 남자들에게 선택지란 남은 삶을 위한 싱글력을 기르는 것 말고는 없다.
내리막 길을 내려오는 기술
핀핀코로리(ぴんぴんころり)는 죽기 전까지 팔팔하게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뜨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9988234’로 표현하는데,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죽자‘의 의미라고 한다. 저자 역시 핀핀코로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에게도 나이듦을 거부하는 마음이 내재해 있음을 느낀다고 한다. 또한 미국에서 건너 온 성공적 나이듦(successful aging)개념이야 말로 늙음을 거부하는 최고의 사상이라고 지적한다. 이 개념은 ‘죽음 전까지 중년기를 연장하는 것’이니 여기에서는 노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갈망하는 것과는 달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와병상태 또는 치매(인지증)에 걸린 상태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현실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내리막 길을 내려오는 기술’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기술의 첫 번째는, ‘약점 드러내기’이다. 이 말은 홋카이도 우라카와 마을에 있는 지적장애인을 위한 생활공동체 베델하우스의 표어에서 따왔다. 약점이란 나쁜 점도 아니고 부끄러워할 점도 아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망가지지 않는 몸과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인간이 아니라 사이보그이다.
두 번째는 ‘약자가 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가 다른 점은 똑같이 약하면서도 자신의 약점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심각한지 저자는 이것을 ‘남자의 질병’이라 꼬집는다. 뒷장에서 ‘약점 드러내기’와 ‘약자가 되는’ 훈련을 위해서는 혼자서 여행을 떠나볼 것을 권한다.
세 번째는 ‘정년의 인정’이다. 정년에는 고용정년, 일정년, 인생정년이 있는데 우에노 지즈코는 여기에 가족정년도 포함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족정년에는 부부정년과 부모노릇정년이 포함된다. 남성의 고용정년은 아내에게 직장복귀(남편의 삼시 세끼를 챙기는 일)로 작용할 경우 부부 생활의 위기로 이어지기도 하니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부부관계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남성의 ADL(Activities of Daily Living, 일상생활 활동)능력이 필수적이다.
홀로 살기 위한 조건: 자립, 친구, 시간 때우기
나이듦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었다면 지금부터는 홀로 살기 위한 조건이다. 물론 이것은 꼭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싱글라이프를 위해서는 네 가지의 자립 조건이 필요하다. 경제 자립, 정신 자립, 생활 자립 그리고 신체 자립이다.
그 다음으로, 돈 보다는 사람부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사별이든 이혼이든 싱글이 되었다면 재혼을 생각하기 보다는 친구를 사귀길 권한다. 친구는 많을수록 좋다. 둘도 없는 친구 한 명 보다는 그냥 아는 열 명의 친구가 더 소중한 시기이다. ‘그냥 아는 사이’ 네트워크에서 하루하루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친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남편의 요즘 인간관계가 떠올랐다. 예전에는 오래된 학교 동창을 주로 만났는데 테니스에 빠진 이후로는 두 개의 그룹에 열심히 참여하면서 거의 매일 테니스를 친다. 운동 후에는 그들과 밥이나 술을 마시는 일이 다반사다. 내 눈에는 그 사람들과 그저 시답잖은 얘기나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데 굳이 그렇게 자주 시간을 보내야 하나 싶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들이 바로 남편에게 ‘하루하루를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그냥 아는 네트워크’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 나는 그 친구들을 내 멋대로 바라보던 마음을 몰래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시간 때우기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법칙이 있다. 첫째, 시간은 혼자서는 때울 수 없다. 둘째, 시간은 저절로 때워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함께 시간을 때울 동료가 필요하며 시간을 때우기 위한 노하우나 스킬, 인프라도 필요하다. 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데이즈>에 나오는 도쿄 토일렛의 청소부인 주인공 히라야마는 시간 때우기의 고수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자신과 식물을 돌보는 루틴이 있고, 일터에서도 틈틈이 자연과 감응하는 시간이 있으며, 일과 후에는 집 근처에 목욕탕, 단골 술집 같은 아지트와 친구들이 있다. 자기 돌봄의 기술과 주변과의 감응능력이 만들어내는 그의 하루는 별난 것이 하나도 없지만 언제나 충만하다.
마지막을 화해의 시간으로
우에노 지즈코는 돌연사를 기대하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죽음이 시간을 두고 찾아오기에 당사자는 물론 주위 사람에게도 ‘이 세상 떠날 준비’를 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에 그것이 더 축복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남성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것은 죽기 전 화해하기이다. ‘묻기 곤란해도 묻고 넘어가야 할 것’, ‘물어보고 싶지만 묻지 않는 게 현명한 것’, ‘지금 당장 부모와 화해해두고 싶은 것’ 이 세 가지를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하길 권한다. 이를 통해 그간 쌓였던 감정의 앙금을 풀어낼 수 있다. 죽음을 앞둔 시간에 서로에게 용서를 구하고 감사하며 작별을 고할 수 있다면 누구나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으리라.
사회학자 김찬호는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에서 자신의 세대를 ‘현역에서 물러나 노년층으로 편입되어가는 단계에서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집단으로 표현한다. 때문에 여생에 대한 밑그림도 그려지지 않았고 참고할만한 모델도 마땅치 않다고 했다. 현재 노년에 대해 가장 관심이 많은 세대는 당연히 베이비부머일 것이다. 나는 그들보다는 좀 더 젊은 남성들이 나이듦, 늙음, 노년의 삶에 대해 좀 더 일찍 관심을 가지고 노년으로의 연착륙을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우에노 지즈코가 이 책 제목에 道를 넣은 이유도 독신 남자들의 삶이 학습이나 숙달로 바꿀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조언이나 10계명이 많아 마치 자기계발서를 보는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그녀가 기꺼이 남성들을 향한 잔소리꾼이 되어 나이듦의 기술을 강조하는 까닭을 나는 이렇게 추측한다.
버럭하지 않고, 권위적이지 않으며 새 친구를 사귀거나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른 할아버지의 탄생.
“늘 함께해 기분이 좋은 상대, 자주 만나고 싶은 상대, 가끔 만나고 싶은 상대, 어쩌다 만나고 싶은 상대, 내가 어려웠을 때 도와주었으면 하는 상대, 내가 도와주고 싶은 상대, 마음이 가는 상대, 내게 마음을 써주는 상대. 이렇듯 다양한 상대가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면 얼마나 감사한 노릇인가. 이를 안전망(safety-net)이라고도 한다.”(『남자가 말하는 남자 혼자 사는 법』,184쪽)
우에노 지즈코는 분류정리의 달인인 것 같아요^^
친구들과 여행을 하면서 늙어가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싱글력!을 키우기 위해^^ 남편을 두고 여행을 자주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