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작하는 마음
2025년 1월 ‘걷는 친구들’(이하 걷친들) 걷기 날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긴장감이 올라갔다. 작년의 걷기는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면, 올해는 나이듦연구소에서 나이듦의 기술로 ‘걷기’를 본프로그램으로 편성했다. 그런데 모집 공지가 올라가자 예상보다 빨리 정원이 차는 바람에 좀 어리둥절했다. 걷기에 이렇게 관심이? 이 관심들의 다양한 향방을 조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새로운 시작의 기대만큼이나 긴장도 점점 상승했다.
올해는 서울둘레길을 걷기의 주코스로 잡아서 1코스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도봉산역에 모이는 10시, 시간이 가까워올수록 한 사람 두 사람 아는 얼굴들이 보였다. 그런데 새로 오시는 분들이 모임 장소를 못 찾겠다는 톡이 올라왔다. 도봉산역이 1호선 7호선 두 곳인데, 정확하게 7호선 2번 출구라고 공지를 못했던 결과였다. 긴장감 1프로 더 상승. 전화를 하고 인상착의를 올리고 우왕좌왕 끝에 1 수락산 코스의 진입로인 서울 창포원에 다 모였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코스의 설명과 둘레길 걷기의 묘미 중 하나인 스템프 찍기 이벤트로 무마했다. 성향에 따라 관심 없음, 이왕이면 처음부터 스템프 채우자, 일찌감치 포기까지 다채롭게 반응했다. 이 관심들과 함께 시작하는 마음, 긴장을 즐기고 변화를 감지해 볼 참이다.
2.오르막 내리막의 리듬_1코스 수락산코스
1코스 수락산코스는 수락산으로 오르는 고개가 있어 경사가 좀 있는 편이고 내리막이 적당히 연결되어, 숨이 차게 오르면 가누면서 내려가는 리듬이 교차하는 길이다. 서울둘레길은 난이도로 상중하로 나뉘어져 있는데 난이도 상인 코스이다. 수락산(水落山)이라는 명칭은 거대한 화강암 암벽에서 물이 굴러 떨어지는 모습에서 따왔다. 수락골을 거쳐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통과한다. 이름에 걸맞게 암벽이 드러난 길로 이어지는데, 6,70년대 이 곳의 돌을 캐냈다는 채석장터라는 안내판이 나왔다. 채석장을 지나면 1코스는 끝나고 2코스로 향하는 길목에 스템프함이 있다.
오르막을 치고 올라와서 쉬는 타임에 걷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의견이 나왔다. 인솔자로 길을 안내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면 후미에서 따라오는 친구들을 살피기 어렵다. 열 네명이 길을 따라 이어지는 속도, 첫 번째로 나서서 열 네 번째까지 연결되는 흐름을 생각해 본다. 함께 걷는다는 건 그 흐름의 속도를 염두에 두고 잊지 않는 것이다. 일삼아 걷되 도착에 끄달리지 말고 함께 걷고 있는 조건을 잊지 않으며 애써서 나아가려는 기운을 내려놓기. 반드시 일삼아 하되 미리 기대 하지 말며 마음에서 잊지도 말며 조장하지도 말라(必有事焉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맹자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기 위해 필요한 덕목으로 일러준 문장이다.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멈춘 사이 친구의 말에 연이어 고전의 문장이 걷기에 첨부되었다. 시작하는 기운을 바루기에 유용한 문장 득템^^
3.걷기를 부르는 시 구절로 마무리
아는 얼굴, 모르는 사이들이 뒤섞인 모임에서 안면을 트기 좋은 방법이 있을까. 이 프로그램의 슬로건인 ‘우정과 명상의 걷기’에 걸맞으면 좋을 텐데 궁리하다 시를 골랐다. 돌봄이 여기저기 출몰하는 요즘 『자기돌봄의 시』(나태주 엮음)라는 시집도 있었다. 자연과 걷기에 어울리는 시 네 편을 골랐다. 한 구절씩 잘라서 제비뽑기로 뽑은 구절을 이어서 완성하는 게임을 하니 시 한편으로 연결되는 사이가 되었다. 시를 읽고 뜻을 음미하는 명상까지 바라는 건 과했다. 첫 만남의 어색함을 무마하고 뒷풀이의 흥을 돋우는 빌미로 적당했다. 모르는 사이도 아는 얼굴이 되는 시간으로 충분했다. 프로그램 진행자의 자리에서 벗어나 뒷풀이 수다에 끼었다. 2월은 2코스 덕릉고개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