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도가 넘는다고?
3월이 시작되고도 내내 쌀쌀한 편이었다. 3월 첫 주에 겨울 파카를 전부 빨아서 정리한 터라 봄 외투로는 찬 기운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너무 빨랐나 후회를 하다가도 이 겨울이 어서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이 더 컸기 때문에 견딜 만 했다. 3월의 걷기가 잡힌 23일의 일주일 전 일기예보가 떴는데 낮 최고 기온이 20도다. 3월 걷기에도 날씨 운이 따라줬다.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3월에는 야외에서 점심을 먹으며 자기소개를 할 예정이니 도시락을 모두 챙겨 오라는 내용을 공지했다.
서울 둘레길 불암산 코스(3코스)의 출발점인 당고개역에 모여 보니 연회원 13명, 월회원 3명, 인솔자까지 17명이 걷기를 출발했다. 맑은 하늘에 내리쬐는 햇빛이 점점 더 강렬해져서 기온이 올라갔다. 둘레길 주변의 나무들은 급격히 오른 기온에 꽃눈 틔워서 망울 지우는데 곤란할지도 모르겠다. 기후 위기의 시대, 인간이나 비인간이나 여러모로 곤란한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도 잠시, 오랜 만에 따뜻해진 기온에 걸음이 한결 여유로운 것에 들떴다. 걷는 친구들의 기운도 그래 보였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진달래꽃이 드문드문 핀 가지를 발견하고는 좋아라 했다. 아직 만발하지는 않았지만 1년 만에 다시 보는 꽃이 너무 반가웠다.
그래도 아직은 휑한 숲을 지나 점심 먹을 장소를 찾았다. 둘러 앉아 저마다 싸온 도시락을 펼쳐 놓으니 돗자리 한 상이었다. 잡곡이 꽉 찬 유부초밥, 미나리전에 묵은지 두부쌈, 직접 싼 김밤, 분식집 김밥, 찐빵, 만두, 과일, 참 오뎅국도 있었다. 이걸 언제 다 먹냐던 우려가 무색하게 돗자리 위의 음식들이 하나 둘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등뒤로 햇빛도 자글자글 끓고, 이제 자기소개를 할 타임이 무르익었다.
2.공부보다 공부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좋아요
1월, 2월은 추울 때 걸었던 터라 둘레길에서는 간단한 간식만 먹고 내려와서 밥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새로 만난 친구들과 제대로 통성명할 시간이 없었다. 오늘은 작정하고 각자 소개도 하고 걷기를 신청하게 된 계기도 함께 나누기로 했다. 첫 타자로 나선 친구는 57년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와~ 다들 그렇게 안 보인다는 말에 좀 수줍어 하셨지만(진짜 그랬다), 한 달에 한 번 함께 걷는 친구들을 만나면 활력도 되고, 이 날을 기준으로 한 달의 리듬이 생기는 것도 좋다고 했다. 작년에 함께 걸었고, 올해는 친구도 데리고 온 친구, 작년 걷기에 이어 올해도 열심히 걷고 있는 자매도 왔다. 함께 공부하는 인연으로 이어지고 걷기까지 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이 궁금해 하루에 한번은 홈피에 들른다는 친구는 앞으로도 계속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감이당 홈피를 통해 흘러 흘러 문탁을 알게 되었는데 걷는 프로그램이 있어 신청했다는 친구도 있었다. 자신의 이력을 읊어주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지금 친구들이 필요해서 왔다는 말에 다른 친구들이 환영의 박수를 보냈다. 그 중에서도 홈피를 통해 공부 프로그램을 보면 어려워서 망설여지는데, 걷기는 부담이 없어서 얼른 신청했다는 친구의 한 마디, 공부보다 공부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더 좋아요. 이 말에 모두 박장대소 했다. 이심전심이라나 뭐라나.
자기소개를 하고 나니 좀 더 가까워졌다. 서울, 일산, 수원, 용인, 의정부, 나주까지 수도권은 물론 전라도에서까지 걸으러 오는 열혈 친구까지 겸비하니 든든하다. 혼자 걷는 마음은 자신과 세계가 이어졌다 떨어졌다 하는 사이를 만든다면, 같이 걷는 마음은 그의 이야기와 나의 이야기를 타래지어 어우렁더우렁 어우러지는 사이를 만든다. 공부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걷기로 서로 서로 “멋진 주름을 만들어가는” 사이를 상상해본다.
아래 사진은 1월 걷기에서 초면에 서로 알아보고 의기투합한 세 언니들이다. 멋진 주름으로 나이드는 언니들이 있어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