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사회학>을 읽기 시작합니다.
1부를 읽고 나니 김영옥 선생이 이 책을 읽고 왜 “역시 우에노 지즈코다. 대단하다. 근본 토대를 향한 질문, 답변의 논리적 정합성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점검하는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 페미니스트 연구자로서의 타협하지 않는 위치성”이라고 했는지 알겠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저는 우에노 지즈코의 이름은 자주 들었지만 읽은 책은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딱 한 권이더군요.
아무튼 900쪽이 넘는 <돌봄의 사회학>과 같은 벽돌책으로 우에노 지즈코의 연구자와 작가로서의 진면목을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얼마전 시코쿠 순례하는 도중에 종종 장례식장, 데이케어서비스센터, 그룹홈 등의 건물을 보면서 아, 이게 말로만 듣던 그룹홈이구나, 시내에 장례식장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기도 하고요.
1부는 돌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면서 돌봄에 대한 여러 정의들을 검토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은데요. 서구에서 돌봄의 이론화는 주로 아동돌봄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 고령자 돌봄에 대한 이론화와 개념화 작업은 20세기 후반에나 시작된 일이라는 것도 새롭습니다. 참으로 당대적인 문제에 대해 우리가 공부한다는 실감이 나서 약간 설레기도 합니다.(그동안 우리 세미나에서 읽은 책들이 워낙에 고원한 담론들이어서 더 그런것 같습니다.^^)
1장과 2장의 돌봄의 정의를 읽다보면 고령자 돌봄은 재생산 노동인가? 라는 질문이 나오는데, 음.. 재생산 노동의 정의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웠는데, 나는 돌봄 노동을 외주화한 것일까, 아닐까. 공동육아로 아이를 키운 것과 부모가 돌봄을 필요로 하는 고령자가 되어 가족 안에서 책임을 나누어 돌봄을 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한 ‘사회학적’인 물음을 던지게 되기도 합니다. 또 철저하게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돌봄을 정의하려는 우에노 지즈코의 노력에 감탄하게 되기도 하고요.
3장의 당사자 주권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동안 장애운동을 바라볼 때 ‘당사자 운동’이라는 말을 자주 써왔는데, 당사자란 개념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니, 이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구나 싶습니다. 게다가 4년째 부모 돌봄 당사자로 살고 있는 저는 당사자, 니즈, 1차 니즈, 2차 니즈 이런 개념어들을 접하니, 그럼 나는 어떤 존재인가, 내가 하는 돌봄 노동은 어떤 성격인가, 이런 의문도 생깁니다. 당사자와 연대자는 같은 건가, 다른 건가 이런 의문도 듭니다. 이런 질문은 사회학적인 것일까, 아닐까요?
4장의 돌봄에 근거는 있는가는 아직 다 읽지는 않았는데, 돌봄의 근거라니요!! 이또한 흥미로운 문제제기입니다. 근데 아무래도 주로 ‘노동’의 관점에서 돌봄을 분석하는 우에노지즈코는 사회주의적 페미니스트구나, 느낌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합니다.
주마간산으로 읽고 주마간산으로 리뷰를 해보았습니다. 이제 좀 더 찬찬히 생각하며 질문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질문은 토요일 12시까지 댓글로 올려주셔요. 그동안 못뵈었더니 긍금하고 보고 싶습니다. 내일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