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가 된 화장(火葬)
장사(葬事) 의례는 종교와 관련이 깊다. 지난 5월 헬기 사고로 사망한 에브라함 라이시 이란 대통령의 장례식은 3일장으로 치러졌다. 나라별로 차이는 있지만 국장은 최소 5일장 이상인 것을 감안하면 좀 짧은데 그 이유는 이슬람의 장례문화에 있다. 이슬람에서는 사후 ‘심판의 날’에 육신이 부활한다고 믿기 때문에 시체가 부패하기 전 빨리 매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24시간이내 늦어도 3일 이내에 매장을 해야 한다. 한편 영혼불멸과 부활을 믿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따르는 사람들(특히 미국)의 경우, 역시 매장을 선호하지만 매장 전 추모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온전한 모습의 시신을 공개(Viewing)하기 위해 화학약품으로 방부처리를 한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구성된 인간의 몸을 본래대로 돌려보내는 것을 이상적인 죽음의 의식으로 본다. 지금부터 1200년 전, 인도의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가 말했던 ‘인간을 불의 원소로 되돌리는 방법’인 화장은 그 중에서도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졌다.
북방불교에서 시신을 처리하는 네 가지 방법은 힌두교의 여러가지 성전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들과 일치한다. 인간의 몸은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빨리 이러한 원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화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여겨진다. 매장은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시신을 흙의 원소로 되돌리는 것이고, 수장은 물의 원소로 되돌리는 것이며, 풍장은 공기의 원소로 되돌리는 것이다. 풍장의 경우 시신을 먹는 큰 새들은 공기의 거주자로 인정된다. 그리고 화장은 시신을 불의 원소로 되돌리는 것이다.
– 파드마삼바바, <티벳 사자의 서>(정신세계사), 83쪽
서양에서 부활을 위한 매장을, 아시아에서 환생을 위한 화장을 했다면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이후 유교 문화에 따른 매장이 보편적 장사 방식이었다. 30년 전만해도 다섯 명 중 한 명 정도만 화장을 선택했다. 하지만 2023년에는 화장률이 92.5%에 이르러 이제는 매장을 하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화장은 전세계적으로도 확대되고 있는데 전통적으로 매장을 선호했던 미국도 코로나 펜데믹을 거치면서 화장률이 급증했다. 2000년대 초 27%에 머물렀으나 2020년에 절반을 넘어섰고, 2045년에는 81.4%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1)되고 있다. 국민의 99.9%가 화장을 하는 일본이 단연 세계 최고의 화장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북미, 유럽 등에서도 전반적으로 화장률이 높아지는 추세2)이다. 해외의 화장 증가에는 코로나로 인한 위생의 문제 외에도 매장 방식 대비 비용 절감의 측면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이런 변화로 인한 문제도 적지 않다.
화장(火葬)이 만든 환경 문제
한국장례문화진흥원의 <2022 장례문화 대국민 인식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이 화장을 선호하는 이유는 절차가 간편하고, 깨끗하며, 위생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간편하다는 것 외에 깨끗하고 위생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깨끗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근거는 화장으로 인한 오염물질 배출이다.
화장은 엄청난 온실가스(1구의 화장 당 CO2e3) 기준 영국은 128kg, 미국은 약 208kg)와 다양한 오염물질을 배출한다. 질소산화물, 일산화탄소, 황산화물, 수은이나 납 같은 중금속, 불화수소, 염화수소, 휘발성유기화합물과 같은 것들이다. 이에 따라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환경오염을 줄이는 방식의 친환경 장례법에 대한 연구와 합법화가 진행되고 있다.
출처 : 국회입법조사처
우리나라의 장례에 대한 정책적 관심은 해외의 방향과는 좀 다르다. 급격한 초고령화 사회 진입은 사망자의 규모도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로 화장시설을 늘리는 것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장사 방법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90년대 이후 묻을 땅도, 묘를 돌볼 사람도 없다는 인식에서 매장에서 화장으로 장사 방식이 빠르게 전환되었고, 화장 시설도 지속적으로 확충되었다. 그럼에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사망자 대비 화장장이 포화상태이거나 부족한 상황이 발생했다. 화장수용능력의 단계적 확대가 필수적이었고 친환경적 장사시설 조성이 다음 목표가 되었다. 이러한 연쇄적인 상황들 끝에 지금은 화장 후 남은 유골의 처리 문제가 새로운 현안으로 떠올랐다.
자연장은 과연 친환경적인가
Q : 내 집 앞마당의 정원 또는 나무를 이용하여 자연장지를 조성할 수 있을까?
A : 전용 주거지역, 중심상업지역, 전용공업지역이 아닌 경우라면 내 집 앞마당에 개인 자연장지, 가족 자연장지에 한해서 조성이 가능하다. 가족 자연장지는 조성 전에 관할 시군구청에 자진신고를, 개인 자연장지는 사후 신고를 해야 한다.
(출처: 한국장례문화진흥원, 장례문화교육홍보>주요실적>자연장-이런점이 궁금해요 Q&A Part1)
당초 자연장은 ‘매장이나 봉안에 비해 환경파괴나 국토잠식의 폐해가 없는 환경 친화적인 선진국형 장법’이라는 취지 아래 탄생했다. 하지만 자연장이라고 불리는 잔디장, 화초장, 수목장은 이름만큼 친환경적이지 않다.
우선 환경파괴가 없는 방식인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화장 후 남은 유골(재)의 주 성분은 인산칼슘이며 비료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높은 알칼리성과 나트륨 성분으로 인해 토양과 나무에 해를 줄 수 있다4). 따라서 이러한 성분을 상쇄시켜줄 수 있는 토양강화제와 혼합해서 묻어주거나 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현재는 생분해성 용기에 담아서 묻거나 용기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 흙과 1:1로 섞어서 묻으라는 지침이 있을 뿐이다.
두 번째, 국토잠식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가. 자연장은 한번 안장된 골분은 반환되지 않는 영구적인 장사법(개장(改葬)이 불가능)이라는 점에서 매장과 구분된다. 즉 장소를 특정해 기념하는 것 보다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방식이다. 하지만 현행 공원형 중심의 자연장은 지정된 장소에 토목공사를 한 후 그 위에 나무나 잔디를 식재하는 방식이다. 이는 묘지나 봉안당을 비싼 나무로 대신해 또 다른 공동묘지를 만들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보건복지부에서 권장하는 친자연적 지속가능한 장사시설은 공원형, 정원형, 수목형, 수목장림 자연장지의 조성이다. 이중 가장 자연친화적으로 보이는 수목장림 마저도 다른 나라의 수목장림과는 규모나 수적인 면에서 격차가 크다. 별도로 조성하지 않고 기존의 숲을 활용하는 정식 수목장림은 국립하늘숲추모원(양평)과 국립기억의숲(보령) 두 군데 뿐이다. 수목장림은 자연경사도 25도 이내의 산지에 조성이 가능한데, 우리나라의 지형 특성상 경사도가 낮은 숲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분의 방식, 해양장
나는 3년전 고모의 장례를 통해 해양장을 알게 되었다. 장례지도사에게 고인의 희망사항은 뿌려지는 것이었다고 말했더니 약간 난처한 태도를 보였다가 다음날 해양장을 알려주었다. 현재 부산과 인천에서 가능한데, 내가 경험한 곳은 인천 연안부두이다. 해안에서 일정 거리가 떨어진 곳에 산분이 허용된 부표가 있다. 배를 타고 이동 후 거기서 제사와 산분을 한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보여진 그 모습 그대로 밑이 열리는 바구니에 분골가루를 담아 물에 내려서 바다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것이 가능한 선에서 가장 깔끔하고 자연친화적인 장법이라고 생각했었다.
해양장 산분 모습, 출처 : KBS 다큐멘터리 3일
통계청의 ‘선호하는 장례방법에 대한 조사’ 결과(2021년 11월)에 따르면 화장 후 산·강·바다에 뿌리고 싶다는 의견이 22.3%로 봉안(34.6%), 자연장(33.0%)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매장을 원하는 사람은 9.4%에 그쳤고 자연장과 산분장을 원하는 사람들의 비중이 55.3%로 과반수를 넘는다. 사람들이 후손에게 부담을 주는 봉안 방식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 장례가 이뤄지는 방식에서는 봉안당(67%)>자연장(24%)>산이나 바다에 뿌리는 산분(8%) 순으로 아직 봉안당의 비중이 크다. 산분장을 원하지만 산분장이 허용되는 장소가 공설 화장시설 내 유택동산이나 특정 바다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개정안에 따르면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해양 등에 뿌리는 장사 방식을 제도화해 자연장 범위를 확대한다고 하니 반가운 소식이다.
출처 : 뉴스1
산분을 통해 실천하는 순환의 윤리
스웨덴에는 민네스룬드라고 하는 숲 형태의 공동 추모 공간이 있다. 전국 곳곳에 500여개가 조성되어 있어 화장된 유골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뿌려진다고 한다. 추모의 공간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만 산분은 비공개로 이뤄져 누가 어디에 뿌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어떤 표지도 기념물도 설치할 수 없다. 민네스룬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구분되지 않고 함께 하는 공간으로 사람들은 평소 산책하고 운동하면서 그곳에 친숙하게 드나든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은 특정한 사람에게 점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개방되고 공유되는 곳이라는 철학이 엿보인다.
산골은 골분(骨粉)을 그대로 뿌리는 방법과 환(丸)을 만들어 뿌리는 방법이 있다. 환은 반죽한 곡식가루를 골분과 섞어 작은 콩처럼 만든다. 연못이나 강의 물고기, 산속의 새나 들짐승에게 먹이로 주기 위해서이다. 여기에는 생전에 뭇 생명을 섭취하며 삶을 유지했던 고인의 몸을 자연의 생명에게 보시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불교에서는 산골을 할 때 자연의 근원으로 돌려보낸다는 뜻에서 염불기도를 하며 골분을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방위로 뿌리기도 한다.
(구미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의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화장한 유골의 골분을 뿌리는 산분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죽음을 통해 인간 또한 먹이가 되어 자연의 순환 체계로 돌아가려 했던 그때의 뜻에 감탄하게 된다. 보건복지부에서도 화장 후 분골의 처리와 관련해 앞으로 산분 수목장과 해양장 등 새로운 장사방식과 연계한 새로운 시신처리방식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 결과물이 순환과 공유의 윤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이기를 바란다.
1)미국 National Funeral Directors Association’s (NFDA), ‘2023 Cremation and Burial Report’
2) International Statistics 2022, The Cremation Society
3) Eurostat에서 공식적으로 정의한 ‘CO2e’(carbon dioxide equivalent, CO2eq라고도 함)는 다양한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등가의 이산화탄소(CO2)양으로 환산한 것으로 온실가스의 배출량에 해당 온실가스의 지구온난화지수(GWP)를 곱한 값. 지구온난화지수(GWP)는 이산화탄소 1kg와 비교했을 때 다른 온실가스가 가둘 수 있는 상대적인 열의 양을 나타내는 지수(두산백과). 1kg의 메탄은 1kg의 이산화탄소에 비해 100년 동안 25배 더 많은 온난화를 유발하므로, 메탄의 온난화지수는 25입니다(IPCC 2007 기준). 따라서 1kg의 메탄이 배출되면, 이산화탄소환산량으로 ‘25kg CO2e’이라 표현함. (1kg CH4 * 25 = 25kg CO2e) (출처 : 한국기후위기아카이브)
4)엔딩연구소(https://ending.co.kr), 화장한 유골재를 뿌리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