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무 징조도 없이 너무 황망하게.
근래 어머니는 컨디션이 좋으셨다. 나는 낙상만 조심하면 된다며 잔소리했고, 어머니는 “넘어지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냐”며 볼멘 대꾸를 하곤 했다. 그런데 정말 보행기 바퀴가 무언가에 걸리면서 크게 넘어지신 것이다. 이어진 응급실 뺑뺑이. 어머니가 다니던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는 아예 환자를 받지 않았고, 다른 곳은 긴급수술이 필요해도 자기들은 못한다고 했다. 결국 다른 병원으로 갔지만 거기서도 응급실 밖에서 30분 넘게 대기해야만 했다. 나는 까무룩 의식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며 애간장이 녹았다.
어머니는 엿새 만에 돌아가셨다. “임종하실 것 같아요”라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바로 어머니를 면회할 수는 없었다. 중환자실 임종 면회는 다섯 명을 채워야 가능하다고 했다. 동생들과 함께 열을 재고 손을 소독하고 비닐 옷과 비닐 장갑을 장착하고서야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어머니를 만져봤지만 차가운지 따뜻한지 비닐의 촉감으로는 알 수 없었다. 그것조차 겨우 20분 동안만이었다.
임종 직후 망연자실한 우리를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경찰 변사팀과 과학수사대였다. 어머니 사망의 종류가 ‘외인사’라는 것이다. 그날 밤 과학수사대는 집으로 와서 현관 밖에서부터 거실, 어머니가 넘어진 안방까지 샅샅이 사진 채증을 해갔다. 어머니가 넘어질 때 집 안에 함께 있던 손주는 새벽에 경찰에 불려가 두 시간 넘는 조사를 받았다. 죽음에 의혹이 없는지, 혹시 부검을 원하는지 등의 질문도 있었다고 한다. 이 모든 절차 후,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장례를 치러도 좋다는 법적 확인서, ‘검시필증’이 나왔다. 거기에는 “고인 ○○○의 명복을 빕니다. 시신을 유족에게 인도하도록 경찰에 지휘하였습니다. ○○지검”이라 적혀 있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비현실적이고 아득하게 느껴졌다.
<죽음>의 저자, 철학자 장켈레비치는 인칭적 죽음을 이야기한다. 1인칭 죽음은 어떤 죽음과도 통약불가능한 개인적·실존적 죽음이고, 3인칭 죽음은 추상적인 익명의 죽음, 생물학과 사회학의 대상인 비개인적인 죽음이다. 2인칭의 죽음은 나에게 소중한 ‘너’의 죽음으로 자기 죽음만큼이나 고통스러운 비극이다. 그러나 응급실 뺑뺑이, 연명의료 중단, 팬데믹 시대 중환자실 매뉴얼, 외인사와 검시필증으로 에워싸인 어머니의 죽음은 익명의 3인칭 죽음처럼 ‘문제’로 취급되었다. 애도 시간은 의료적 개입, 법적 절차 등으로 자주 중단되거나 지연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 시대 표준적 죽음의 모습일 것이다.
나는 이제 어머니가 없는 텅 빈 집에서 낮인지 밤인지 분간이 안 되는 시간을 허우적거리며 보내고 있다. 프로이트의 말대로 애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겪게 되는 단기적 우울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도 ‘처리’할 일이 남았다. 사망신고를 해야 하고, 어머니 휴대폰과 은행 계좌를 해지해야 한다. 이 행정의 시간이 가면, 비로소 어머니의 상실을 슬퍼하고 그녀를 그리워하는 시간이 도래하려나? 애도도 쉽지 않은 시대의 죽음을, 지금 온몸으로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