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3회 엄마는 나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

2월 중순, 엄마는 장기요양등급(5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병원 퇴원 이후 신청했지만 ‘급성기’ 상태라고 기각 판정을 받고 6개월 뒤 다시 신청한 결과다. 안도했다. 보호자 대상 설명회에 갔을 때 참석자 연령대가 내 나이 또래부터 60대, 70대 어르신들이 많아서 내심 놀랐다. 노노(老老) 간병. 모르지 않았음에도 그랬다. 내가 어느새 여기까지 도착했구나 하는 느낌이 잠시 얼떨떨했다. 그들의 낯빛에서 나와…

살기 위해 숨는 용기

내가 속한 공동체 출신 김고은 작가가 은둔 고립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은 <너무 희미한 존재들>을 출간했다. 그는 ‘은둔 고립’을 통계에 갇힌 사회현상으로 박제하는 대신, 에두아르 콘의 ‘혼맹’ 개념을 빌려와 존재론적 층위에서 재해석한다. 스스로를 ‘자기’로 인식하지 못하고 세계와의 연결이 끊겨버린,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로 정의한 것이다. 관점을 이렇게 이동시키면 우리는 어떻게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게…

사회학의 눈으로 본 ‘죽어가는 자의 고독’

<죽어가는 자의 고독>,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학동네 아버지의 고독 우리 아버지는 올해로 90세가 되었다. 아버지 돌봄을 한지 햇수로 6년 차.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 ‘사는 것이 천형이다’를 들을 때마다 왜 이렇게 매사를 비관적으로만 볼까, 생각하며 그런 아버지에게 화가 나고 속이 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런 말이 단지 아버지의 부정적 사고 패턴에서 나오는…

[2026년 3월호]‘나이듦아카이빙’을 ‘KINZ’로 전환합니다.

안녕하세요? 나이듦연구소 소장 문탁(이희경)입니다. 지난 2년간 저희는 기존 저널의 나이듦, 죽음, 애도, 돌봄 관련 기사를 선별하여 재편집한 월간 뉴스레터 <나이듦아카이빙>을 발간했습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회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2년 만에 세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진짜 초고령사회로 돌입했고, 사회의 대응도 분주해졌고, 이에 따라 정보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달리] 2회 아찌고찌 엄마 손을 잡고

몇 해 전부터 엄마는 자신의 상태를 ‘아찌고찌 하다’고 말하고 있다. ‘아찌고찌’는 ‘저쪽과 이쪽’이라는 뜻의 일본어지만 엄마는 깜빡깜빡 잊어버리고 기억나지 않는 상태를 하소연할 때마다 쓴다. ‘노망’, ‘치매’를 일컫는 용어를 자기식대로 만들어 낸 것이다. ‘노망’, ‘치매’라는 단어와 병증에 대한 인지가 있는 상태여서 거부감과 두려움이 꽤 컸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도 깜빡깜빡 잘해.” 대수롭지 않은 듯 반응하며 상황에 맞춰…

새해에 하는 ‘뻔한’ 말

한국의 새해는 두 번이다. 이를 ‘이중과세(二重過歲)’라 비판하며 하나로 줄이자는 말이 나오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같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새해가 두 번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양력 새해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어도, 음력 새해라는 ‘패자부활전’이 다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번 설 연휴에도 1월 초에 써놓았던 문구를 다시 읽었다. “단정히 살고, 치밀하게 생각하고, 진득하게 공부하기.” 재밌는 사실은 몇년째 이 문장이 거의 바뀌지 않았다는…

[2026년 2월호]어디서 죽을 것인가

임종은 돌봄이 끝나는 시간이자 애도가 시작되는 시간이면서 장례절차가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택임종이 어려운 이유중 하나로 복잡한 장례절차를 드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 임종하면 의사로부터 사망진단서를 바로 발급받아 장례절차를 진행할 수 있지만 재택임종은 변사로 간주되어 사체검안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중에 번거로운 일을 겪지 않으려면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라고 조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절차상의 편의를 위해 응급실로 옮겨 임종을 맞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일까, 이 또한 생각해볼 문제다.

[달리] 1회 이틀 간의 병원 동행기

새벽 3시경이면 어김없이 깬다. 엄마 방으로 건너가 살그머니 침대 온기를 살핀다. 곤히 잠든 엄마의 미세한 호흡을 가만히 지켜본다. 잠자다가 죽는 것도 복이라는 말을 흔하게 듣지만, 그 상황을 마주하는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엄마 코 고는 소리를 듣고서야 안도한다. 웅크린 채로 뒤척뒤척 배회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새벽 6시부터 일어나 서두른다. 엄마에게 두유 한 잔과 풀빵을 데워 주고…

마르잔, 마흐사, 나르게스를 기억하며

이란을 잘 몰랐다. 축구, 팔레비, 호메이니 등 몇개의 단편적 사실들과 ‘핵’ ‘하마스’ ‘악의 축’ 같은 미국적 프레임이 인상의 전부였다. 그러다가 2008년 흑백의 강렬함과 소박함이 돋보이는 2D 애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를 만났다. 케첩 바른 감자칩과 아디다스 운동화를 좋아하고 이소룡을 동경하며, “왕에게 죽음을!”을 외치던 꼬마 ‘마르잔’. 그 천방지축 소녀의 성장기를 따라가면서 이란은 내게 ‘사람이 사는 땅’으로 실감되었다. 1979년의 이란…

[2026년 1월호]2026, 병오년엔 불 끄며 삽시다

2025년은 어떤 해였나? 일단 계엄 이야기는 너무 크기 때문에 패스. 그다음 떠오르는 생각들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우선 의성 산불. 아직도 후포에 사는 후배 어머니 조문하러 다녀오는 길에 목격했던, 끝도 없이 이어지던 불타버린 나무와 새까맣게 변한 산의 풍경이 선연하다. 그리고 2024년에 이어 역시 너무 더웠던 여름. 펄펄 끓었다. 강릉의 가뭄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