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30]중생(衆生), 그 중유(中有)적 존재들을 위하여 –<티벳 사자의 서>

중생(衆生), 그 중유(中有)적 존재들을 위하여 -티벳 사자의 서를 읽는 하나의 방법- 1.티벳에는 뭔가가 있다 공부는, 나에게 자기구원의 방법이었다. 인문학공동체에서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삶은, 나에게 좋은 사회를 만드는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만일 아니라면? 안된다면? 음, 티벳으로 가야지…. 티벳! 그곳은 오랫동안 나에게 달라이 라마의 자비심, 조장(鳥葬)이라는 무상(無常), 삼보일배의 곡진한 기원 등이 있는 곳이었다.…

[리뷰27] 지워진, 그러나 지울 수 없는 흔적 –<주름>

젊은 작가의 치매 노인 관찰기 “거울 속 당신의 모습이 아버지와 닮았다고 느껴진다면 이제 당신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뜻이겠지요. 거울 속 제 모습이 아버지를 꼭 닮아 갑니다. 또 아버지에게서 내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입니다.”(작가의 말) 스페인의 그래픽노블 작가인 파코 로카는 평소 사회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다 친구의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리뷰26] 예순 살의 취업-<예순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어떤 유고집을 떠올리다   쉰다섯, 공부를 다시 시작해서 대학 졸업장을 받았고, 독서논술 지도사, 미술, 문학, 심리상담 자격증과 전통 요리 자격증, MBTI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예순둘, 취업준비생이 되어 일자리센터를 찾았다. 두 장 빼곡하게 적힌 이력과 온갖 자격증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간의 이력을 모두 지우고 ‘중학교 졸업’ 한 줄을 마감했을 때야 등록을 할 수…

[리뷰25] 노년의 몸에 대한 응시-<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의 『너무도 쓸쓸한 당신』을 읽었다. 1998년에 나온 소설집이니 꽤 오래전에 나온 책이다. 이 소설집에는 아홉 편의 단편소설과 한편의 콩트가 실려 있다. 나는 「마른꽃」, 「너무도 쓸쓸한 당신」, 「길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끝나갈 때」 세 편이 좋았다. 어디서도 만나기 힘든 노년의 몸에 대한 솔직하고 투명한 응시가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을 펴낼 때 박완서의 나이는 67세였다. 우리는…

[리뷰13] 자유를 빼앗지 않는 돌봄의 세계-<돌봄, 동기화, 자유>

이 책은 다쿠로쇼 요리아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좌충우돌 히스토리를 담은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닙니다>(가노코 히로후미, 2017)의 후속편이다. 1991년부터 참여해 요리아이의 총괄 소장을 맡고 있는 무라세 다카오의 저서 중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된 이 책은 그가 경험담으로 풀어낸 특별한 치매노인 돌봄 이야기이다.(치매(癡呆)는 ‘어리석고 어리석다’라는 의미로 해당 장애의 특징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며 당사자에게 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리뷰12] 집에서 임종 맞기-<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

1.홀로 집에서 죽을 수 있습니까?    2015년에 출간된 이 책은 『싱글 행복하면 그만이다』 『독신의 오후』 와 함께 ‘싱글 시리즈’ 3부작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 우에노 치즈코는 혼자 사는 전문직여성으로 자식도 손자도 없다. 이 책을 출간할 당시는 68세였다. 그러니 이 책은 당사자의 시선으로 집에서 홀로 죽을 수 있을지를 탐색한 결과물이다.  …

[리뷰11] 나를 해부하는 글쓰기 –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1. 섹스 잠 섹스 밥 섹스 잠 섹스 “2023년 마지막 날을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섹스 잠 섹스 밥 섹스 잠 섹스로 지내다, 파트너를 보내 놓고 잠과 밥을 마쳤으니, 이보다 더 좋은 날이 없는 것으로…ㅎ” 올 1월1일 페이스북에서 이 포스팅을 읽는 순간, 와우! 라는 감탄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놀라움(아니 이런 이야기를…

[리뷰10]노년은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다-<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SF의 거장 어슐러 르귄의 에세이 모음『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를 읽었다. 사실 나는 이 책을 접하기 이전에는 르귄을 읽은 적이 없다. 작년에 버틀러, 해러웨이 등을 공부한 친구들로부터 페미니스트 철학자들이 여성 SF 작가인 르귄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알 정도로 르귄에 대해, SF에 대해 무지했다.(지금도 그렇다.^^) 내로라하는 여성 철학자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작가…

[리뷰9] 죽(이)거나 도망치거나 – <장녀들>

죽(이)거나 도망치거나, 다른 방법이 없다면 어쩔 것인가! 시노다 세츠코의 소설 세 편 <집 지키는 딸> <퍼스트레이디> <미션>이 『장녀들』 이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다. 세 명의 주인공은 30대 중반에서 40대의 비혼 장녀들.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결코 낯설지 않고, 일본이지만 한국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나의 노후는 어떻게 될까  나오미는 유능한 40대 돌싱…

[리뷰6] 62년생 김찬호 –<베이비부머가 노년이 되었습니다>

1. 김명인과 김찬호의 노년 이야기?! 책 표지가 인상적이다. 거기에는 내가 알던, 명민하면서도 다정한 눈빛, 까맣고 숱 많은 머리를 지닌 준수한 김찬호는 없다. 대신 훤하게 벗겨진 이마, 짧은 흰머리, 깊은 주름의 초로의 사내가 떡하니 박혀있다. 또 “격랑의 현대사를 주도해 온 베이비부머 세대는 노년의 라이프 스타일에서도 또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