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ENING

 

안녕하세요, 나이듦연구소 소장 문탁(이희경)입니다.

충청남도 홍성군 장곡면과의 인연은 올봄 강의 요청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농촌 돌봄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된 이곳에서, 나이듦과 돌봄을 공부하던 독서모임 분들이 저의 공동체 경험을 듣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가 헷갈렸습니다. ‘돌봄마을’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182억 원이라는 사업비도 놀라웠습니다. 보건복지부가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한다는 것도 신기했고요. 그런데 그 돈으로 건물을 짓는다고? 그게 최선인 건가?

강의는 ‘오누이센터’라는 곳의 강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강당뿐 아니라 여러 공간이 함께 있는 모습도 인상적이었고, 강의를 들으러 모인, 대부분 ‘귀촌인’ 같아 보이는 분들의 포스도 남달랐습니다. 직감적으로 “여기에는 뭔가 있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하지만 ‘농촌알못’인 저는 짧은 만남만으로는 그 ‘뭔가’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킨즈 특집으로 농촌돌봄을 다루기로 하고, 지난 10월 14일 편집팀 세 명이 다시 내려갔습니다. 사회적협동조합 신소희 사무국장님의 안내로 온종일 돌봄 현장과 마을의 거점공간들을 돌아다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것은 시설을 짓는 사업만이 아니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함께 공부하고 마을의 문제를 의논하고 이웃을 돌보며 쌓아온 시간이 있더군요.

이번 특집에는 그 시간 위에서 만들어지는 돌봄마을을 세 편의 기사로 담았습니다. 제가 쓴 취재기, 기린님이 쓴 <마을학회 일소공도> 구자인 소장님 인터뷰, 서해님의 마을 공간 탐방기입니다. 사람과 공부와 공간이 어우러져 돌봄을 만들어가는 장곡면으로 함께 가보시죠.

 🖼️ KINZ SCENE

2026.10.27. 윤경
🏞️ 장곡면 돌봄마을 취재기

농촌마을, 가장 취약하고 가장 정치적인 곳

 

문탁

34통 8반에서 장곡면을 생각하다

올봄 내가 장곡면에 갔을 때는 지방선거 직전이었다. 그곳에서도 선거는 핫이슈였다. 그런데 초미의 관심사는 군수 선거였다. 시골에서는 ‘군수’가 중요하구나! 그런데 왜? 나중에서야 이 문제는 농촌의 현실, 특히 행정구역의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농촌에서 군(郡)은 서울의 종로구나 용산구, 경기도의 용인시와 같은 기초자치단체다. 그 아래 읍(邑)과 면(面)은 도시의 동(洞)에 대응하고, 읍·면 아래의 행정리(里)는 도시의 통(統)에 대응한다. 내가 사는 용인시처럼 인구가 50만 명 이상인 곳에서는 행정서비스의 편의를 위해 시와 동 사이에 수지구 같은 일반구를 둔다.

따라서 위상으로 보면 농촌의 군-읍·면-리의 구조와 도시의 구-동-통의 구조는 대응한다.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판이하게 다르다. 예를 들어 내게는 구청과 동주민센터의 차이가 크지 않다. 둘 다 서류를 떼고 민원을 처리하는 곳이다. 나는 전입신고를 할 때는 주민센터에 가고, 여권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지구청에 간다. 두 곳 모두 주거와 상가가 밀집된 곳에 있고, 내 생활의 동선은 그 행정구역의 경계를 넘나든다.

또한 도시, 특히 내가 사는 신도시 아파트촌에서 행정구역의 말단 단위인 통은 전혀 실감의 영역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내가 용인시 수지구 동천동 몇 통인지 알고 싶어서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전화를 해봤더니, 직원은 깜짝 놀라면서 아파트의 주소만 되풀이해 읊었다. 그것밖에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동주민센터에 전화해서, 내가 동천동 34통 8반 주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34통 8반이 도대체 무엇을 말해준단 말인가?

장소현상학의 관점에서 보면, 장소의 의미는 그곳에서 살아온 경험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내게 34통 8반은 이웃의 얼굴이나 함께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명칭이 아니다. 하지만 도시의 통에 해당하는 농촌의 리는 다르다. 농촌의 리는 전통적으로 이장, 부녀회장, 노인회장을 중심으로 서로의 살림을 아는 구체적인 관계의 단위였다. 다시 말해 누가 어디에 사는지, 저 집 할머니의 아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저 할아버지가 왜 일주일에 두 번 읍내에 나가는지 서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관계망을 낭만화할 필요는 없다. 이런 대면의 마을살이는 이주해 온 사람들에게는 감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론 토박이들의 텃세를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쳇말로 어느 집에 숟가락 몇 개인지까지도 잘 아는 리 단위의 관계망은, 그런 연유로 자연스럽게 돌봄의 관계망으로 작동해왔다.

한편 읍·면 소재지는 여러 마을 사람들이 행정복지센터와 농협, 하나로마트, 우체국, 병원, 약국, 목욕탕, 미장원을 함께 이용하는 공동생활의 거점이다. 주민들은 그곳으로 오가며 장을 보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고, 사람을 만났다. 리에서 맺어진 관계와 면 소재지에서 이루어지는 생활이 서로 맞물려 농촌의 일상을 지탱해온 것이다. 그래서 면 소재지는 지도 위의 행정적 중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 거점이 흔들리면 마을의 일상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군은 무엇인가. 군은 리 단위의 관계와 면 단위의 생활을 실제로 예산과 정책으로 묶는 단위다. 군수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버스노선과 의료·복지시설에 대한 지원 방향과 우선순위도 달라질 수 있다. 장곡면 사람들이 군수 선거를 이야기하는 이유일 것이다.

자료: 함께하는장곡사회적협동조합

장곡면 돌봄마을, 아래로부터 쌓아온 시간

오늘날 농촌의 위기는 농산물 가격의 불안정 → 생계 불안 → 농업 이외 일자리 부족 → 청년층의 유출 → 남아 있는 인구의 고령화 → 버스와 마트 등 생활 기반의 축소 → 생활의 불편으로 인한 인구의 추가 유출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발생한다. 장곡면 역시 이런 위기를 겪고 있다.

행정구역상 장곡면은 충청남도 홍성군 산하 11개 읍·면 가운데 하나다. 면적은 54.94㎢로, 서울의 종로구, 중구, 서대문구를 합친 것보다 넓고 은평구의 약 두 배에 이른다. 그러나 그 넓은 땅에 사는 사람은 꾸준히 줄어 2026년 7월 말 기준 2,643명에 불과하다. 반면 고령화율은 높아져 65세 이상 주민이 1,497명, 전체의 56.6%에 달한다.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부모를 부양하고 이웃을 챙기며 마을 살림을 꾸려온 사람들도 이제 60대 후반에서 70대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남을 돌보던 이들이 돌봄을 받아야 할 때, 그 역할을 이어받을 사람이 마땅치 않다. 사람이 줄어드니 학교는 하나둘 없어지고, 가게도 사라진다. 학교는 초등학교 하나만 남았고, 장곡면 안에는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가 없다. 신소희 사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생필품을 살 수 있는 하나로마트가 오후 6시에 문을 닫으면 맥주 한 캔을 사려 해도 8~10킬로미터 떨어진 이웃 홍동면이나 광천읍에 가야 한다.

그런데 이곳에는 이미 농업을 통해 돌봄을 실천해온 경험이 있었다. 도산2리의 <행복농장>이다. 2013년부터 준비를 시작해 2015년 협동조합으로 독립한 <행복농장>은 충남광역정신건강복지센터와 지역 농업인들이 협력해 만든 곳이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관계를 맺으며, 일부는 고용되어 동료로 일했다. 이런 ‘사회적 농업’은 주변 농장들로도 확산되었다.

면의 미래를 주민들이 함께 그리는 움직임도 시작되었다. 2019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마을학회 일소공도>가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협동연구에 참여해 진행한 ‘장곡면 2030 발전계획’ 수립이다. 주민들은 공동학습회와 면담, 간담회를 통해 면의 미래에 필요한 과제들을 정하고, 이를 이어갈 조직으로 주민자치회가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2020년 11월 26일, 장곡면 주민자치회가 출범했다. 기존 마을조직의 대표들이 참여했고, 사회적 농업을 실천하던 이들도 복지·돌봄분과에 합류했다. 코로나19로 모이기 어려웠던 이듬해에는 서른두 개 마을로 찾아가는 주민총회를 열어 536명의 의견을 들었다. 복지·돌봄분과에 참여한 사회적 농업 네트워크도 마을조사단을 꾸려 각 리의 이장과 부녀회장 등을 만났다.

이렇게 모인 이야기는 구체적인 사업이 되었다. 고령농가를 찾아가 영농폐비닐을 수거했고, 큰 이불을 세탁하기 어렵다는 요구에는 홍성군 주민참여예산을 확보해 공동빨래방을 마련했다. 폐비닐 수거 경험은 관련 조례 제정으로도 이어졌다. 특히 돌봄 분야에서는 활동을 지속하고 연결할 실행조직의 필요성이 커졌다. 2022년,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며 <함께하는장곡>이 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우리마을 돌봄반장’ 활동도 시작되었다. 이장 등의 추천으로 마을마다 주민 한 명을 돌봄반장으로 선정했다. 돌봄반장은 이웃의 안부를 살피고,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그것을 면 단위의 <함께하는장곡>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현재 32개 리 가운데 28개 리에서 돌봄반장이 활동하고 있다.

이런 과정 끝에 2023년 3월, 장곡면을 사업지로 하는 홍성군의 계획이 농림축산식품부 ‘농촌 돌봄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되었다. 선정 당시 확보한 사업비는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182억 원이었다. 사회적 농업과 주민자치회의 경험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래로부터 주민들이 십여 년에 걸쳐 필요를 발견하고, 활동을 벌이고, 조직을 만들어온 시간이 위로부터의 국가 지원과 만난 것이다.

사진: 홍주일보

묻고 듣는 일도 돌봄이 된다

취재 당일 <함께하는장곡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장곡사협’)에서는 여러 활동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나는 거점공간인 ‘공공장곡’에서는 빨래방을 운영하고 반찬배달을 준비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돌봄욕구조사를 위해 A 마을로 찾아가는 일이었다. 나는 활동가 두 명과 다른 마을의 돌봄반장 두 명으로 꾸려진 조사팀을 따라갔다. 함께 간 돌봄반장 두 분은 건강돌봄 주민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가는 길에 우선 네 분의 이력을 여쭤봤다. 활동 못지않게 사람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유승희님은 군청에서 의료급여 수급자의 건강관리와 의료이용을 상담하는 의료급여관리사로 일하다 올 4월 ‘장곡사협’에 합류했다. 알고 보니 간호사 출신으로 홍동면에서는 ‘뜸방’을 운영하셨던 분이다. 박성경님도 간호사 출신으로 다른 도시의 건강·복지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다. 함께 간 돌봄반장 두 분은 예상과 달리 토박이가 아니었다. 귀촌한 뒤 마을에 정착해 살아가는 주민이었다. 전문적인 경험을 가지고 이곳에 온 사람과 이웃으로 살면서 돌봄을 배우는 사람이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는 A 마을의 돌봄반장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곳에서 오래 살며 마을 일을 맡 아온 주민이었다. 할머니들은 이미 많이 와 계셨다. 곧 이장님도 나타났다. 활동가가 왜 할아 버지들은 안 오셨느냐고 묻자 바로 전화를 돌리셨다. 조금 후 할아버지들도 줄줄이 등장하셨 다. 이장님은 ‘힘’이 세다.

유승희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치매예방활동을 함께하고, 주민 한 분 한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돌봄카드를 작성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동이 어려운 주민들을 위해 주민강사가 마을회관으로 찾아가는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현수막에는 “2026 홍성군 역량강화사업-배후마을 연계서비스”라고 적혀 있었다. 하는 일에 비해 이름은 참 어려웠다.

함께 온 돌봄반장 중 한 분이 다음 차례로 나서 체조를 이끌었다. 먼저 손을 비비며 지금까지 나와 함께해준 손에게 고맙다고 말해보자고 했다. 이어 박수를 치며 숫자를 세었다. 스물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거꾸로 세어 하나까지. 박수를 치랴, 숫자를 세랴, 박자가 엉키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다음은 아랫배에 손을 얹고 크게 웃기였다. 전쟁을 겪고 자녀들을 키우며 쌓인 설움을 털어내보자는 것이었다. 왜 자꾸 모이자고 하는지 아시겠느냐고, 함께 이야기하고 옆 사람이 웃기면 또 웃게 되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웃으면서 살려고 같이 모이는 거예요.” 백미는 ‘나는 행복합니다’를 율동과 함께 따라 부르는 시간이었다. 한편으로는 유치한데 신기하게 흥겨웠고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제 오늘의 메인인 돌봄카드 작성 시간이었다. 돌봄카드에는 가구 형태와 이용 중인 서비스, 건강과 일상생활, 필요한 도움을 두루 묻는 질문이 담겨 있었다. 함께 간 네 분이 나눠서 면담을 진행하는 사이, 면담을 끝내거나 기다리는 주민들은 작은 손가방 도안에 색칠을 하셨다. 나는 돌봄반장과 면담하는 할머니 한 분 옆에 가만히 앉았다.

할머니에게는 생활지원사가 정기적으로 찾아오고 전화로도 안부를 확인한단다. 통증으로 걷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버스를 이용해 노인대학에 다니고 광천이나 홍성의 행사도 부지런히 찾아다니셨다. 다만 저녁 행사는 돌아올 차편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얼마 전 갑자기 몸이 아팠을 때는 마침 와 있던 자녀의 도움으로 병원에 갔단다. 자녀가 오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자녀가 있다는 것과 당장 곁에 누가 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두려운 것은 없느냐고 묻자 처음에는 그런 건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다 혼자 죽어도 며칠 동안 아무도 모를까 봐 두렵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회관에 나오지 않는 친구를 사람들이 딸네 갔겠거니 했는데, 뒤늦게 세상을 떠난 것을 알게 된 일이 있었단다. 자신도 자주 돌아다니니, 안 보여도 ‘어디 갔겠거니’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장도 보고 밥도 하고 빨래도 직접 하셨다. 면담을 진행한 돌봄반장님은 “특별한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으시겠네요”라고 물었고, 할머니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좀 더 이야기를 나누자 할머니의 필요가 조금씩 확인되었다. 신청해두고 기다리는 작은방 도배, 그리고 반찬이었다. “반찬 같은 거 해다 주는 건 안 돼요?” “나 혼자 있으니까 해 먹기가 귀찮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혼자서 매일 감당하기 버거운 일 사이에는 간격이 있었다.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시간을 들여 자세히 질문하고 충분히 들어드려야 그 간격은 드러난다. 돌봄카드 작성은 그런 점에서 그 자체로 돌봄 활동이었다.

장곡면의 돌봄반장이 주민들과 돌봄카드 작성을 위한 면담을 하고 있다.
장곡면의 돌봄반장이 주민들과 돌봄카드 작성을 위한 면담을 하고 있다.

돌봄의 빈자리를 찾아서

마을회관으로 나올 수 없는 주민은 집으로 찾아가 만났다. 마을 돌봄반장이 안내한 집에는 거동이 어려운 고령의 할머니가 성인 가족 한 분과 살고 있었다. 함께 사는 분도 건강상의 어려움으로 일상생활에 지원이 필요했다. 두 분은 각각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요양보호사는 할머니를 돌보는 한편, 함께 사는 분이 약을 먹었는지도 확인하고 있었다.

조사팀은 할머니와 직접 대화를 나누기 어려웠다. 인지기능과 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함께 사는 분도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어서, 활동가는 그분에게 본인의 병원 진료에는 누가 동행하는지, 약은 어떻게 챙겨 먹는지 물었다. 하지만 대화가 여러 차례 끊어져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요양보호사가 설명을 보탰다. 이전에는 다른 가족 한 분이 두 사람의 돌봄을 맡았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생계 때문에 도시로 나가 있다고 했다.

이제 마을로 찾아가는 개별면담은 끝났다. ‘장곡사협’으로 돌아와 각자 들은 이야기를 나눴다. 주민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당장 연결할 도움은 무엇인지 차례로 짚었다. 재밌는 것은 ‘집수리’라는 항목 하나에도 형광등을 갈아야 하는 것인지, 방 한 칸을 도배해야 하는 것인지에 따라 할 일이 달랐다는 점이다. 형광등 교체는 바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곳을 연결하고, 이미 신청한 도배는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수리 범위를 알기 어려운 집은 직접 방문해 살펴보기로 했다.

가장 길게 논의한 것은 우리가 방문했던 가구였다. 이전에 그 집을 찾아 활동지원서비스를 연결했던 박성경님은 함께 사는 분의 상태가 당시보다 나빠진 것 같다고 했다. 복약 상태를 확인하고, 병원에 동행해 집에서 관찰한 변화를 의료진에게 전달할 필요가 있었다. 두 사람만 지내는 시간이 길어 활동지원 시간을 늘릴 수 있는지도 알아보기로 했다. 마을에서 노인을 돌보는 일은 함께 사는 가족에게 필요한 돌봄까지 살피는 일이었다.

한편 프로그램의 지속성도 이슈가 되었다. 돌봄반장들은 마을회관 중심으로 진행된 그림 그리기나 요가 등이 단기 프로그램이라는 데 문제를 제기했다. 재미를 붙이고 사람들이 더 모일 만하면 지원이 끝난다는 것이다. 주민들이 원하고 참여하는 동안에는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새로운 사업을 얼마나 많이 시작하느냐만큼, 이미 시작한 일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도 중요해 보였다.

로컬에서 희망을

182억 원 규모의 ‘장곡면 돌봄마을 조성사업’이 이제 곧 첫 삽을 뜬다고 한다. 그곳엔 노인 주간보호센터와 노인 그룹홈(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과 장애인 공동생활홈, 주민사랑방, 공동체텃밭과 더불어 공공임대주택이 들어선다. 나는 돌봄의 계획 안에 ‘사는 곳’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농촌으로 오고 싶다고 누구나 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빈집이 많다는 것과 당장 들어가 살 만한 집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양미는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동녘, 2024)에서 “시골에서 안정적인 집을 찾는다는 건 어디까지나 운에 달려 있다”(129)고 썼다. 농촌에서 다른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에게도 우선 머물 집이 필요하다. 이번 주거계획이 반가웠던 것은 그래서다.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 특히 청년들이 마을에 정착하고 생계를 해결하며 마을 돌봄을 순환시키는 당사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곡면에서 만난 여성 활동가들도 사실 그랬다. 이들은 농촌을 구하겠다는 사명을 품고 내려온 사람들이 아니었다. 도시의 일과 생활에 지쳐서,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고 싶어서,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 먼저 자기 삶의 길을 찾던 사람들이었다. 내려온다고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것도 아니었다. 농사가 적성에 맞지 않기도 했고, 이전의 경험을 어디에 쓸 수 있을지 새로 찾아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 남아 사람들을 만나고 필요한 일을 맡으면서, 자기 삶의 문제가 조금씩 이웃의 삶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점에서 마을돌봄은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중인 사람들이 이웃과 함께 살아갈 조건을 마련하는 일이기도 했다.

물론 이주민이 늘어난다고 마을이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지역에 주소를 두고도 서로 다른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다. 새로 온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일을 앞세우다가 오래 살아온 주민들과 멀어지기도 한다. 장곡면에서도 그러했다. 신소희 사무국장은 귀촌인들이 선주민들과 부딪치고 깨지기도 했지만 함께 버티고 살아오는 동안 무엇이 중요한지 배웠다고 했다. 주민자치회를 만들고 마을의 일을 함께하는 과정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경험과 맥락의 차이를 조율하는 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에 이어 올해는 “흔들리며 살아가는 17인의 지역여성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우리는 로컬에서 산다』(이야기가, 2026)라는 책도 나왔다. 대구·경북 지역 여성들이 35년 전부터 지역을 ‘삶터’이자 ‘공부터’로 삼아 좋은 삶을 위해 노력해 온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로컬. 성장과 기회의 중심에서 멀어진 곳, 떠나야 할 곳으로 이야기되곤 하는 곳에서 누군가는 단절을 이어 붙이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장곡면도 그랬다. 어쩌면 가장 취약한 농촌마을. 하지만 내가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그 취약함을 함께 감당하려는 상호부조의 정신과 실천이었다. 각자의 어려움을 함께 책임질 문제로 바꾸어가는 일. 나는 그것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인 행위라고 부르고 싶다.

돌봄마을조성사업 조감도

📌  EDITOR’s P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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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100살까지 살면 어떡하냐? / 김수동 / 생각비행 / 2026

경기도 북한산 자락에 자리한 공동체주택 ‘여백’에 아흔여덟, ‘영주씨’가 산다. 백내장 수술을 하고, 임플란트 시술을 받고, 보청기를 끼고, 보행기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홀로 외출해 새로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온다.

이 책은 “지금이 제일 좋아!” 라고 말하는 어머니 영주씨를 아들 수동씨가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일상을 기록한 명랑노년 에세이다. 울지 않고, 미련 없고, 잔소리는 딱 한 번뿐인 냉정한 영주씨. ‘안티에이징’과 ‘노인 혐오’가 가득한 세상에서, 영주씨가 보여주는 ‘노인력(老人力)’을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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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와 상열 / 임옥희 / 어웨이크 (2026.11.11 출간 예정)

일흔한 살의 늙은 딸 옥희가 아흔 살의 치매 엄마 상열과 한집에 살며, 서로의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돌보는 이야기이다. 어느 날부턴가 엄마는 딸을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그런 엄마의 돌봄 노동자가 된 딸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엄마의 투정을 듣고, 씻기고 재우고 먹이고 치우며 오늘을 살아낸다. 두 여자가 함께 살아가는 일상과 돌봄의 시간을 기록했다.

평생 읽기와 쓰기의 세상에서 살아온 옥희에게 읽기는 엄마와 공존하기 위한 생존의 기술이 된다. 치매 100만 시대의 ‘노노(老老) 돌봄’을 가장 사적인 돌봄의 자리에서 기록하고 공존의 문제로 확장한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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