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죽을 것인가

나 같은 베이비붐 세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경험하며 성·건강·삶의 방식 전반에서 ‘자기결정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젊을 때는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죽음의 자기결정권’에 마음이 간다. 당연히 스콧 니어링에 매혹됐다. 그는 백 살 되는 날 죽음을 맞이하겠다고 결심하고, 6주간 단식 끝에 생을 마쳤다. 나도 니어링처럼 죽어야지. 그런데 어느 날 선배의 일갈이…

[종교와죽음] 영적인 죽음 수행, 살레카나

『살레카나_자이나교의 자발적 단식존엄사』 양영순지음, 씨아이알(2025) 의사조력 자살, 안락사일까 존엄사일까 형제들과 돌아가며 아버지 돌봄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우리의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가 있다. 아마도 우리가 부모님 돌봄을 하는 마지막 세대, 자식들에게 돌봄을 받지 않는 첫 세대가 될 거라는데 내 형제들은 모두 동의한다. 자식들에게 돌봄을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할 생각도 없는 마처세대여서…

에디터 이희경의 한달 제주살이 중 친구와 함께 새벽바다에서 한 컷

‘두 거점 생활’, 우에노 지즈코의 싱글 에이징을 엿보다

이번 여름, 나는 제주에서 한 달을 살았다. 작년 연말 북토크 때문에 제주 조천에 갔었는데, 그때 우연히 만난 선흘 그림할망들에 완전히 홀렸고, 반드시 한 달쯤 시간을 내어 할망들의 세계를 인류학적으로 탐색해 보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처음 계획은 단순했다. 한 달 동안 한편으론 할망들을 탐구하고, 또 한편으론 혼자 조용히 밀린 글을 쓰다가 힘들면 평상시 읽고 싶었던 책을 룰루랄라 읽으며 보내는 것. 그래서 책을 거의 30권쯤 싸 들고 갔다. 하지만 그 책들은 표지도 들춰지지 않은 채 다시, 고스란히 용인으로 돌아왔다. 예상과 달리 제주에서는 책 따위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