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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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이후에 우리 사회에 어른 열풍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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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요요) 국어사전은 어른을 ‘다 자라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나이·지위가 높은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각자 어른에 대한 생각을 좀 나눠볼까요?

윤경 저는 서른이 넘으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줄 알았어요. 20대 후반에 작은 전셋집을 구해 독립했을 때 처음으로 ‘내가 내 생활을 책임지는 어른이 됐구나’ 느꼈죠.

인디언 최근에 존경하는 분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어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들었어요. 저에게 어른은 ‘존경할 만한 사회적 인물’이었나 봐요.

문탁 어린이는 역사적으로 발명된 개념인데 어른에 대한 담론은 따로 없었어요. 그런데 최근 어른이 담론 지형 안으로 들어왔죠. 계기는 다큐 <어른 김장하>(2022)와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OTT 역주행 열풍이에요. <나의 아저씨>는 “어른들은 애들을 보면 그냥 물어봐”,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버려” 같은 대사로 좋은 어른의 규범을 그려냈죠. 아이와 어른을 대비시키면서 불안정 노동에 처한 MZ세대의 곤고함도 잘 표현했고요. 저도 작년 칼럼에서 저를 ‘아는 어른’이라 썼는데, 알게 모르게 이런 흐름 속에 있었던 것 같네요.

도레미 제가 일상에서 느끼는 어른은 상징적 원로나 사회 지도자와는 조금 달라요. 아이가 어릴 때 학대당하거나 밥 굶는 아이들 이야기를 들으면 ‘어른으로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자주 생각했거든요. 사회적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고, 넘지 말아야 할 어떤 선을 지켜주는 시민이 제게는 어른에 가까운 것 같아요.

기린 친구들은 제가 비혼이고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아직 어른이 아니라고 말해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산전수전을 겪어야 진짜 어른이라는 거죠. 그런데 저는 오히려 남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꼭 가족이 아니더라도요.

서해 제게 어른은 두 층위예요. 내 삶의 준거가 되는 ‘모델로서의 어른(스승)’이 있고, 또 하나는 제가 계속 도달해 가고 있는 ‘성숙한 인간으로서의 어른’입니다.

사회자 저는 2015년 녹색평론 서평 「풍운아 채현국」에서 ‘진짜 어른’이라는 말을 처음 만났어요. 그 무렵 꼰대라는 멸칭도 유행하기 시작했고요.

문탁 공교롭게도 그해는 세월호(2014)와 메르스(2015) 직후예요. 두 사건으로 우리 사회의 바닥을 보았고, 기득권층만이 아니라 평범한 어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공감대가 생겼죠.

사회자 신자유주의가 정점을 찍으며 청년 담론이 폭발하고, 꼰대가 멸칭화되고, 어른 담론이 등장한 건 모두 연결된 현상이에요. 그런데 ‘진짜 어른’의 모델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에서, 어른은 나이만이 아니라 젠더와도 얽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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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에 관한 책의 저자는 30, 40대가 많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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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2040세대가 제목에 ‘어른’이 들어간 책을 찾아 읽는다는 서점가 트렌드를 따라, 우리도 직접 책들을 읽어봤습니다. 제가 읽은 박지현 PD의 〈참 괜찮은 말들〉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의 잔잔한 이야기 모음이에요. 저는 좀 심심했는데 독자 반응은 뜨겁더라고요.

윤경 최서영(1987년생)의 〈어른의 품위〉와 태수(1991년생)의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를 읽었는데, 두 책 모두 “실패해도 괜찮아”라는 위로와 ‘단단함’을 강조해요. 이런 위로가 필요한 2030이 그만큼 불안하다는 뜻이겠죠. 다정하고 좋은 사람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비슷해요

문탁 76세 이옥선 작가의 〈즐거운 어른〉은 노년 당사자가 쓴 유일한 책이에요. “남편 제사 안 지내기로 했다”, “고독사를 해야 마땅하다” 같은 도발적인 문장으로 노년의 통념에 맞서고 있어요. 그리고 정작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유’인데 제목은 트렌드에 맞춘 마케팅의 관점에서 붙여진 것 같아 좀 이상했어요.

서해 강원국(1962년생) 〈어른답게 말합니다〉는 말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인데, 뒤로 갈수록 자기계발서처럼 읽혀 반쯤 읽다 덮었어요.남인숙(1974년생)의 〈어른 수업〉은 ‘밉지 않은 이기주의자가 되자’가 요지인데, “회사에서 친구 사귀면 안 된다, 돈 안 주고 일 시키는 것과 같다”는 답변에 좀 충격이었어요.

인디언 어른연구소까지 차린 김경집(1959년생) 〈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주체성, 책임, 품위를 강조하는데 매우 규범적이에요. 그렇게 할 수 없는 조건에 놓인 사람은 어쩌라고? 하는 반발심이 들었어요.

도레미 〈어른 김장하〉는 어른 열풍의 트리거가 된 다큐의 각본집이에요. “평생토록 조용히 남몰래 아름다운 태도를 지켜가는 영혼은 흔치 않다”는 감독의 말처럼, 보고 나면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고 한대요. 이게 바로 어른의 효능감이 아닌가 싶어요.

기린 〈어린이라는 세계〉의 김소영(1978년생) 작가가 쓴 〈어떤 어른〉은 달랐어요. “나도 어른이면서 아닌 척하느라 존경하는 어른의 이름을 읊어온 건 아닐까”라는 자기성찰적 질문을 던지고, 어른의 규범을 제시하기보다 어린이와의 관계라는 현실적 장면에서 어른을 바라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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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열풍의 어른은 ‘무해한’ 단독자 어른인 것 같네요”

사회자 2040세대가 이토록 현명한 어른, 괜찮은 어른, 꼰대처럼 말하지 않는 어른에 대해 호감을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윤경 젊은이들이 회사나 일상에서 괜찮은 어른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책으로 찾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금기고, 가족과도 터놓고 말하기 힘드니 또래 외엔 기댈 어른이 없는 거죠.

서해 2030은 무엇이든 검색하고 학습하는 세대예요. 진짜 어른이 되기보다 어른’처럼 보이는’ 법을 자기계발 차원에서 배우는 거죠. 러닝 크루 같은 동호회에서도 뛰는 것 외엔 이야기 안 하는 게 불문율이 된 세상에서요. 일로만 사람을 대해야 하는 환경에서 예전이라면 자연스레 습득됐을 삶의 지혜를 이제는 책으로 배워야 하는 거예요.

문탁 세 가지를 짚고 싶어요. 첫째, 어른 열풍의 책들 대부분이 사회 구조를 묻지 않고 문제를 개인의 성숙으로 돌려요. 신자유주의의 파편화된 개인들의 선택이죠. 둘째, 그게 새로운 생산이 아니라 콘텐츠로 상품화되어 소비되는 형태예요. 노년을 혐오하면서도 자신이 그렇게 될까 두려운 MZ의 불안을 마케팅하는 거죠. 노인혐오와 어른열풍은 서로의 조건이에요. 셋째, 이들이 원하는 어른은 ‘단단한’, ‘품위 있는’, ‘친절한’ — 한마디로 ‘무해한 어른’이에요. 간섭하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은 알아서 하는. 최근엔 무해함에서 다정함으로 키워드가 또 바뀌고 있다네요. 어쨌든 구조를 문제 삼지 않고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아요. 만약 지속적 관계에 대해 생각하면 책임은 쌍방향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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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요요  70대가 쓴 <즐거운 어른>의 독자도 청년층인가요?

기린 아마 2030 여성들일 거예요. ‘나는 이런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할머니 열풍과도 통해요. 이옥선님은 김하나 작가의 어머니로, 팟캐스트 <여둘톡>에서 3040 여성들에게 멘토 역할을 해요.

문탁 유튜브 박막례 할머니와 비슷하죠. 박막례가 야성이라면 이옥선은 지성. 두 분 다 생생한 생활언어와 촌철살인으로 지금까지 없었던 할머니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줘요. “남자 잘못 만나 인생 망한 여자는 있어도 안 만나서 망한 여자는 없다”는 말을 들으며 젊은 여성들이 해방감을 느끼는 거죠.

인디언 반면 〈괜찮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동년배에게 “어떻게 현명하게 늙어갈까”를 묻는 책이에요. 너무 우아하고 규범적이라 반발심이 들었어요. 또 이 책은 젊은 세대와의 관계에서 디딤돌이 될지언정 걸림돌은 되지 말자고 이야기해요. 이것 역시 그렇게 할 수 없는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참 힘든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문탁 전근대사회에서 어른은 그 자체로 공경의 대상이었어요. 근대엔 결혼해서 아이 낳아야 어른이 됐고요.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의 어른 열풍은 ‘무해함’에 집중돼요. 영화 <사람과 고기>의 무전취식하는 노인, 침 튀기는 노인은 ‘진정한 어른’에서 배제되죠. 그러니 우리가 물어야 할 건 “진짜 어른이 뭐냐”가 아니라 그렇게 질문하게 하는 담론의 효과가 무엇인가, 이죠.

인디언 어른의 품위라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나이 들어 신체가 노쇠해지면 어쩔 수 없이 기저귀도 차야 하고, 똑바로 서서 걸어다니기도 힘든데, 어떻게 품위를 유지하라는 걸까요?

문탁 성숙은 개인적으로는 미덕이 될 수 있죠. 하지만 사람은 제각각이고, 한 사람에게도 여러 면이 있지요. 어떤 사람은 귀에 피날 정도로 좀 떠들면 안 되나요? (웃음)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진짜 어른’이 아니라, 그런 질문의 효과 ”

사회자 ‘진정한 어른’이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정상성 모델을 전제하게 돼요. 그 모델은 거기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게 자기가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명령하죠. 어른의 품위를 강조하는 것도 신체 노화를 부끄러운 일로 만드는 효과를 낳고요.

윤경 제가 읽은 책들의 MZ는 오히려 그런 정상성에서 벗어나자고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냥 나답게 살겠다는 거죠.

사회자 그런데 그게 또 다른 정상성 규범이 되는 건 아닐까요? “사회에 맞춰 살지 않아도 돼”가 새로운 관계의 룰로 제시되는 거요.

윤경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나다움’은 정상성이나 규범성이라기보다는 그냥 나 좋은 것을 하겠다. 그리고 남에게 좀 다정해지고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것 같아요. 나를 지켜서 상처받지 않고, 그 과정에서 점차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문탁 개인이 덜 상처받고 다정해지고 싶다는 지향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다만 탈정치적이라는 게 문제예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상처 없이 관계 맺고 혼자 단단해지는 게 가능할까요? 서로 상처 주고받으며 다정해지는 거지.

기린 사람들이 규범을 벗어나는 게 아니라 계속 규범 안에 속하고 싶어하는 방식으로 어른을 사유하는 건 아닌가 의심이 들어요. 자기 욕망이 새로운 규범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어른 열풍이 좀 병리적으로 느껴져요.

문탁 그렇다면 지금 필요한 건 어른 열풍이 아니라 ‘친구 열풍’인지도 몰라요. 나이나 동창 관계를 넘어, 위로와 격려와 따끔함을 나눌 친구요.

윤경 우리 분석이 너무 비관적인 것 같아요. 어른에 대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건 그만큼 절실하게 묻고 단단해지려는 2030이 있다는 뜻 아닐까요. 저도 20대 때는 좌충우돌하면서 살았는데, 지금은 이런 책이라도 있으니 좀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디언 저는 어른 열풍도 결국 정동적인 트렌드 같아요. 불안하고 파편화되어 있으니 뭘 믿어야 할지 모르는 거죠. 저는 빠르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수많은 열풍들 속에서 정신을 못 차리겠어요.

문탁 안전함에 대한 추구 그 자체는 불가피해요. 문제는 그걸 콘텐츠와 상품으로 엮어 마케팅으로 순환시키는 거죠. 존경할 모델을 또래가 아니라 성공한 남성 노년에서 찾는다는 점도 퇴행적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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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 세월호 이후 믿을 만한 시스템이 없다는 자각, 인간관계의 파편화와 경쟁, 팬데믹이 가속시킨 불안 — 이게 어른 열풍의 진짜 원인 같아요. 출판 마케팅은 결과지 원인이 아니에요.

서해 〈어른 김장하〉의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는 문구에 공감했었는데, 오늘 토론을 통해 ‘좋은 사람’의 정의도 세대마다 다를 수 있음을 깨달았어요. 기성세대에게는 사회적 기여를 하는 사람이지만, MZ에게는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는 ‘밉지 않은 이기주의자’가 좋은 사람일 수 있는 거죠.

도레미 후배들을 보면 쉬는 것조차 계획하고 성장에 도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AI 때문에 신입을 안 뽑으니 50, 60대가 계속 일해야 하고, 그게 또 세대 갈등을 부추기죠. 어른 열풍은 이런 현실의 결과인 것 같아요.

 

“어른 열풍보다 친구열풍이, 나아가 N개의 나이듦으로”

사회자 어른 열풍이 모든 세대를 완벽한 자기계발로 몰아붙이는 지금, 대안적 나이듦의 양식은 어떻게 발명되어야 할까요?

문탁  저는 늘 “규범이 아니라 레퍼런스가 필요하다”고 말해요. 초고령사회에서는 60대와 90대를 하나의 노년으로 묶을 수 없고, 어른도 마찬가지예요. 나이뿐 아니라 젠더, 계급, 지역, 가족 형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른은 이래야 한다’고 말할 수 없죠.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하나의 이상적인 모델이 아니라 다양한 삶의 참고 사례들입니다. 김장하만이 아니라 박막례, 이옥선, 조한혜정, 할머니 셋이 함께 사는 노루목향기처럼 서로 다른 나이듦의 모습들이 더 많이 발견되고 이야기되어야 해요. 다만 규범적 남성 어른 말고 현실 속 남성들의 다양한 레퍼런스는 아직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웃음)

도레미 더 많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코로나 이전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 떠올랐어요. 당시에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주 등장했고, 그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죠. 노년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늙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이 알려진다면, 특정 인물을 예외적인 존재로 소비하기보다 여러 삶의 스펙트럼 속에서 그 사람만의 고유함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어른 김장하’도 그렇게 읽힐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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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토론을 하면서 내가 처한 조건과 삶을 사회적으로 해석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듦연구소 활동을 하며 나의 사회적 위치성을 더 자각하게 되었고, 비혼 1인 가구로 초고령사회를 살아가는 삶의 기술 역시 개인을 넘어 사회적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디언 어른 열풍이 노인 혐오와 동전의 양면이라는 걸 오늘 확실히 깨달았어요. 청년들이 던지는 ‘의미충’ 같은 말에 가슴이 철렁했었는데, 그게 그들이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구조가 만든 불안 때문이라는 이해가 깊어졌네요. 다만 꼭 말하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자기계발하라는 명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이 들고 아프면 침도 흘리고 기저귀도 차게 되는데, 그런 삶을 존엄하지 못하다고 여기는 생각부터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요.

문탁 너무 오래 살게 된 시대라 어떤 노쇠가 내 몸에 올지 미리 짐작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완벽하게 준비하는 건 불가능해요. 삶의 내공도 홀로 단단해지는 품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낙담과 좌절, 불안과 위로, 실질적인 상호돌봄을 나눌 친구들 속에서 형성되는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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