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감에 대하여 (2) 후기

하현
2026-11-01 08:28
24

"젊어서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늙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농담이 아니라 선택지를 다 지워버린 문장같다.

늙지 않겠다는 말은 이른 나이에 죽음을 선택한다는 말 아닌가.

늙어감은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있는 무엇이 아니라 남은 유일한 길이다. 

 

안 될 줄 알았던 취직이 되었다. 몇 년만에 일자리였다. 전임자는 30대 초반이었다. 그는 아주 열정적으로 인수했고, 나는 그저 성실하게 인계받았다. 겉으로 보여도 그보다 나이가 많을 것 같은 나에게 그는 어떤 일들을 해 왔는지 묻지 않았다. 회계와 행정업무를 20여 년 동안 해왔다는 사실도, 그동안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업무에 익숙한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일할 때 아주 어렵거나 아주 열심히 했던 일들을 주로 인수했다. 내가 궁금하고 익숙하지 않은 업무를 물어보면 대충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질문을 했다가 무섭게 '그것도 몰라요?' 눈초리에 입을 다물었다. 혼나는게 무섭기도 했다. 내가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이전과 달라진 업무 방식을 알고 싶어서 묻는 것인지 설명할 기회도 없었다.나는 AI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전에 해온 일과 지금 해야 하는 일이 모두 같을 수는 없다. 새로운 조직에는 새로운 방식이 있고 새롭게 익혀야 할 업무도 있다.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해온 일은 무엇이었을까. 그동안 쌓아온 경험은 이곳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일을 배우는 것보다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더 낯설고 속상했다. 

 

하루는 전임자와 점심으로 부대찌개를 먹었다. 다음 날에 필요한 물품을 사러 마트와 문구점에 갔다. 사무실에 들어오니 전임자가 나의 얼굴을 보며 뭐가 묻었다고 했다. '머리카락에 뭐가 묻었나?' 털었다. 아니란다. 입가 주변이란다. '이런 젠장'. 내가 잘 닦아내지 못하자 그는 내 얼굴에 거울을 들이밀었다. 얼른 화장실에 가서 입 주변을 박박 문질렀다. 

 

아빠와 식사를 할 때면 늘 주변에 그날의 국과 반찬을 알 수 있어 엄마는 늘 아빠에게 눈짓, 손짓을 해 가며 딸, 아들, 며느리, 손주 앞에서 깨끗하게 먹길 바랬다. 아빠가 혼자서 처리하지 못하면 엄마는 얼른 휴지를 꺼내다가 아빠의 입주변을 닦아 주었다. 나이듦의 순간이라 생각했고 나이듦과 깨끗함에 대해서 아빠를 보며 한참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 나이들어가는 파트너가 점점 아빠와 비슷하게 뭔가를 흘리고 묻히는게 일상이 되었다. 이 사람도 늙어가는구나. 그 사람을 참 무안하게 만들었다 싶다. 아빠와 파트너에게 사과한다. 나 역시 늙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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