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세미나] 후기 -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삶을 배웠다
한스
2026-10-30 22:41
16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삶을 배웠다
- 웬디 미첼의 『One Last Thing, 생의 마지막 당부』을 읽고
어느덧 여섯 권의 책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동안 인지기능이 떨어진 환자들을 많이 보아 왔지만, 정작 치매를 앓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는 부족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치매 치료제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지만, 치매 환자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요.
죽음에 관한 이야기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좀처럼 하지 않습니다. 의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며 생명을 연장하는 방법은 열심히 배우지만, 정작 환자가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지는 충분히 묻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웬디 미첼은 쉰여덟 살에 조기 발병 치매를 진단받았습니다. 기억과 독립성을 조금씩 잃어가는 자신의 삶을 기록해 온 그녀는 이 책에서 죽음에 관한 대화를 시작합니다. 임종 돌봄, 치료 거부, 조력사망,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삶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마음에 남은 것은 죽음을 미리 이야기하는 일이 '남겨질 사람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면 죽음이 더 가까워질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죽음이 멀어지는 것은 아니지요. 오히려 나누지 못한 대화는 남겨진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후회와 갈등을 남길 수 있습니다.
치료 거부에 관한 대화에서는 의사로서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치료가 가능한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설명합니다. 그러나 미첼은 한 가지 질문을 더합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반드시 치료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존기간을 늘리는 것이 언제나 환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인 것도 아닐 것이고요. 중요한 것은 의학적으로 가능한 치료와 환자가 원하는 삶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일일 것입니다.
'조력사망'에 관하여
'조력사망'에 관한 논의는 더욱 어려웠습니다. 미첼은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권을 끝까지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반면 일부 완화의료 의사들은 취약한 환자들이 가족과 사회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죽음을 선택하게 될 위험을 걱정합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돌봄을 받기 힘든 사람들이 오히려 죽음의 선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저 역시 '조력사망'의 필요성에 공감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단순히 합법화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한 사회에서 죽음을 선택할 자유가 과연 얼마나 자유로운 선택일까요.
특히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미첼은 기억과 판단력을 잃고 타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삶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치매가 진행된 뒤에도 누군가를 보고 기뻐하고, 음악을 들으며 행복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그런 삶을 결코 원하지 않았더라도, 그 순간에는 살아 있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건강할 때 미리 밝혀둔 자신의 뜻과, 병이 진행된 뒤에도 느낄 수 있는 현재의 행복 중 무엇을 더 존중해야 할까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니라, 인간이 누구이며, 존엄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게 하는 병인지도 모릅니다.
죽음을 이야기 하는 것은 결국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죽음에 관한 이 책은 뜻밖에도 '삶에 대한 이야기'로 끝납니다. 미첼은 비행기 날개 위에 몸을 묶고 하늘을 나는 모험에 도전합니다. 참 멋진 모습입니다. 죽음을 의식하면서도 오늘의 기쁨을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그녀는 삶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을 때 오히려 더 부지런해졌다고 말합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오늘이라는 시간을 제대로 살아가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13 |
N
[치매세미나] 후기 -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에서 삶을 배웠다
(1)
한스
|
2026.10.30
|
조회 16
|
한스 | 2026.10.30 | 16 |
| 12 |
[치매세미나] 7회차 공지
(2)
인디언
|
2026.10.20
|
조회 48
|
인디언 | 2026.10.20 | 48 |
| 11 |
[치매세미나] 6회차 공지
(2)
인디언
|
2026.10.12
|
조회 59
|
인디언 | 2026.10.12 | 59 |
| 10 |
[치매세미나] 5회차 공지
(3)
인디언
|
2026.10.06
|
조회 52
|
인디언 | 2026.10.06 | 52 |
| 9 |
[4회차후기]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 불편하지만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2)
한스
|
2026.10.03
|
조회 60
|
한스 | 2026.10.03 | 60 |
| 8 |
[치매세미나] 4회차 공지
(3)
인디언
|
2026.09.29
|
조회 63
|
인디언 | 2026.09.29 | 63 |
| 7 |
치매니까 잘부탁드립니다.
(2)
상주
|
2026.09.27
|
조회 67
|
상주 | 2026.09.27 | 67 |
| 6 |
[치매세미나] 3회차 공지
(4)
인디언
|
2026.09.14
|
조회 80
|
인디언 | 2026.09.14 | 80 |
| 5 |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 관련 영상
(1)
haena
|
2026.09.10
|
조회 58
|
haena | 2026.09.10 | 58 |
| 4 |
[2주차 후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3,4부
(2)
haena
|
2026.09.10
|
조회 55
|
haena | 2026.09.10 | 55 |
| 3 |
[치매세미나] 2회차 공지
(4)
인디언
|
2026.09.07
|
조회 53
|
인디언 | 2026.09.07 | 53 |
| 2 |
치매세미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1,2부
(1)
오모나
|
2026.09.03
|
조회 74
|
오모나 | 2026.09.03 | 74 |
치매인은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하면서 윙워킹을 하는 멋진 웬디미첼이죠
존엄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살고싶어합니다
존엄사를 합법화하지 않기때문에 오히려 삶을 일찍 마감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선택권이 있다면 훨씬더 편안하게 남은 삶을 살수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도 존엄사를 반대하는 사람들과도 대화합니다
네덜란드에서도 존엄사를 합법화하기까지 30년이상 걸릴만큼 논점이 많은 주제이기도 하지요
80%가 합법화를 찬성한다지만 찬반보다는 우려되는 문제들을 포함해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한 많은 토론과 깊은 숙고가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10년 정도면 될까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