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대중지성_시즌3] <늙어감에 대하여>2회차 공지
<늙어감에 대하여> 1회차 메모가 기억납니다.
"<늙어감에 대하여>라는 직설적인 책제목이 퍽 마음에 들었다. 소제목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나이듦, 늙어감의 매 순간 갈등과 체념, 수용의 경험을 하는 나로서 매우 흥미로울 것 같은 인상이 들었다. 서문에 나오는 시도, 모험, 탐색, 관찰, 공감, 성찰, 주관적 이런 단어도 좋았다."
또는
"‘늙어감’이라는 단어를 용감하고 정직하게 제목으로 썼다 는 것에 믿음이 간다. 각종 미사여구로 포장해 늙어감을 직면한다는 것이 무슨 더러운 것을 만지는 것처럼 여겨지게 하는 다른 책들과는 다르다. 내용도 정직하면서 디테일해서 좋다. 우 리 ‘나이듦 연구소’도 ‘늙어감 연구소’라고 하는 건? 멋지지 않나요? 용감하고 씩씩하게!"
그리고
"노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에 저항하는 노년의 실존 이전 농촌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속,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이 없다. 자연과 다양한 세대 가 섞여 자연스럽게 흘렀던 사회, 노인은 존경 받고 '지혜'로운 존재였다. 산업화로 '소유'가 존재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되면서 노인은 '쓸모'로 비하되고 부정적인 시선에 내몰렸다. 노인 대열에 들어가는 60대, 자존을 위한 '진짜 공부'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늙고 아픈 몸을 수치스럽고 불편해하는 마음. 그런 마음은 내 안에 켜켜이 쌓아온 시간, 즉 나의 역사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것이다. 나를 부인하는 것이다. 몸이 아프고 통증이 심해지자 일상생활에 당연시 하던 여러 일들이 제약을 받기 시작했고 일 단 마음부터가 소심해지고 주저함이 많아진다. 마음도 위축되고 우울감도 심해지는 것도 물론 이다. 이런 현상이 나의 자아/ 정체성에도 혼란을 일으킨다는 말인가 싶다. 나의 몸을, 아프고 병들어 가는 나의 신체를 어떻게 자연스럽게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좋은 건가 고민이 깊어진다."
1회차 세미나에서 나누었던 고민들이 2회차로 이어져 여러분들이 어떤 깨달음에 도달했을지 궁금합니다^^
장 아메리는 5부까지 치열하게 질문해 온 늙어감에 대해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일단락짓고 있습니다.
"A는 균형을 깨트리며, 타협을 폭로하고, 통속화를 짓밟으며, 싸구려 위로를 깨끗이 쓸어버리는 그 어떤 일을 해냈을까?
그는 그랬기를 희망한다."
장 아메리가 희망한 것에 대해 우리의 답을 내놓아 봅시다^^
메모는 월요일 밤까지 입니다~
화요일 세미나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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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대중지성_시즌3] <늙어감에 대하여>2회차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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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일리치의 죽음 >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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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대중지성_시즌3] <이반 일리치의 죽음>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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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대중지성_시즌3] <생물과 무생물 사이> 2회차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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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대중지성_시즌3] <생물과 무생물 사이> 1회차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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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사사회 후기(2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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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대중지성_시즌3] <각자도사 사회>(2)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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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대중지성_시즌3] <각자도사 사회>(1)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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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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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 2026.09.13 | 146 |
1. 더는 알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의 소외
유행, 속물근성, 각종 주의들, 아는 척 뻐기는 행위 따위를 거부하면서도 그저 어깨만 으쓱하며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이는 게 문화적으로 늙어가는 사람의 태도다. (135)
문화의 어떤 표시체계가 힘을 잃고 허약해지는 과정의 끝에는 죽음 혹은 죽음의 상징이 기다린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죽어간다'로 읽어야 하는 현상이다. (168)
문화적/사회적 노화, 세상을 더는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 곧 자기부정과 소외에 이른다. 다름아닌 죽음이다.
즐겨듣거나 간혹 부르는 노래의 레파토리가 수십년째 변하지 않는 것, 케이팝 아이돌들을 구별 못하는 거, 딸아이의 말을 가끔 못알아듣는 거, 스마트폰을 통해서 쏟아지는 다양한 주장과 정보들이 무슨 소리인지 어떤 세상/세계의 이야기인지 감도 안잡히는 거. . .
이미 나는 '죽어가고' 있다. 두렵고 무섭다.
2. 죽음을 감각적으로 알기
죽음을 내가 직접 목도한 적이 한번도 없다. 장 아메리는 죽음=숨을 거두는 것을 질식으로/ 호흡으로 설명한다. 즉각적으로 감각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나의 경험속에서 죽음을 설명을 할 방법이 없으니 상상으로 추측해 본다. 간혹 팔다리에 쥐가 나거나 근육경련 또는 염증(관절염등)으로 몸이 붓고 뻣뻣해지는 경험을 했던 기억에서 내 몸이 죽어가는 과정을 상상해 본다.
숨을 거둔다는 것, 심장이 멈추고 온 몸 구석구석 돌던 피가 순환을 멈춘다. 그와 함께 천천히 몸이 굳어간다. 뻣뻣하게 경직되어 간다. 호흡이 멈추는 것은 일시에 일어나는 일인데 비해 몸이 굳는 것은 서서히 진행된다. 콱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문자그대로 서서히 '죽어간다'. 서서히 굳어간다. 결국 통나무처럼 온몸의 관절과 근육이 굳어 뻣뻣해진다. 결국 죽음의 끝에 이르게 된다. 관절과 근육을 마음대로 의지대로 움직이거나 작동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모순이 곧 실존인 삶. 마지막 장의 제목이 ‘죽어가며 살아가기’라는 것을 보면서 <죽어야 사는 여자>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찾아보니 영화의 원제는 .
주인공 메릴 스트립은 아무리 해도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영생을 얻고 좀비처럼 살아가게 되고, 이는 자연스레 나이들고 죽는 브루스 윌리스의 삶과 대조된다.
영화에서 늙지도 죽지도 않는 삶이란, 살아 있음 자체가 죽음이라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속박이 없고 자유로운 삶, 스스로를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삶을 젊어서는 꿈꿨었다.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장 아메리와 같은 온 몸을 던지는 불사름과는 비교할수 없겠지만,
그가 말하는 ‘소유’에 의해 규정되는 ‘사회적 연령’에 도달하면 누구나 자기의 상당 부분을 죽여야만 살아갈수 있다.
이런 받아들임과 체념이 바로 노화가 시작되는 지점이 아닐까.
이렇게 하나씩 스스로를 죽여가고,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면서 소멸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
책을 읽어나가는 것이 뒤로 갈수록 숨이 가빴다.
빠르게 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너무 많은 것을 알고 경험한 그 머릿속에는 이 모든 생각들이 쓰나미처럼 쏟아져들어오지 않았을까 싶었다.
모순된 현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해석해 내야 살아갈수 있었을테니.
줄곧 A를 통해, 다른 학자와 작가를 통해 남얘기 하듯 이어오던 서술은,
뒷부분에서 불쑥 개인적인 목소리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 부분에 가서야 이 서술의 급박한 속도감이 제대로 이해가 되었다.
그의 몸에 쌓여온 시간은 나이듦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재에도 끊임없이 재생되는 두려움과 공포이기도 하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으며 맞닥뜨린 무수한 타인과, 자신의 죽음.
그가 겪은 부조리는 수용소를 나온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늙어가는 자신의 몸과 젊음을 바쳐온 가치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가운데, 잘 안다고 생각했던 죽음이 또 다른 절망으로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는 감각.
책을 거의 다 읽어갈 즈음에는 문득, 젊었던 내가 이 책을 읽었다면 장 아메리의 논리를 지루한 장광설로 느낄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긴박함, 현현하는 두려움에 공감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정도 나도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이겠지.
‘우리의 인생 전체는 피할 수 없는 것을 피해보려는 어처구니 없는 헛수로고 소진된다 (p.201)”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니 어떻게 죽음을 향해 살아갈 것인가.
그는 품위를 이야기한다. 체념과 동시에 저항을 통해서 실현될수 있는 품위.
문화적으로 늙는 일의 품위는, 그것이 그 가운데 자리 잡은 사회적 노화의 품위와 마찬가지로 다시금 오로지 모순된 저항, 모순과 철저히 싸우는 저항을 통해서만 실현될수 있다. (...)
그는 영웅이 아니라, 그저 누군가일 뿐이다. 그리고 늙어 죽어가는 모든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영웅적이다. (p. 169~170)
그를 사로잡은 속박이 심해질수록, 동통이 견딜수 없게 아플수록, 그는 무망한 노릇인줄 알면서도 거짓말로 경계를 무너뜨리고 벗어날수 있기를 갈망했다. 순간을 향해 그는 외쳤다. 멈추어라! 그러나 순간은 아름답지도 않았고, 그 순간에 매달릴수 없음도 잘 아는 그였다 (p. 208).
남은 날들은 쪼그라들며 메말라 비틀어지리라. 그럼에도 그는 진리만큼은 간절히 말하고 싶었다 (p.211).
1. 저자가 묻고 답하는 내용을 쫓아 가기가 너무 어지럽지만, 결론은 명쾌해서 좋습니다.
늙어감은 죽어감과 더불어 살아감이다.
2. P.143 살아 있는 생명체가 가지는 수십 억 개의 세포
fact check : 수십 억 개 > 수십 조 개 ( 정확히는 30~37 조 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