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충 공지) - 미망2를 읽기 위한 몇가지 역사적 정보
파랑은 문학적이라면, 저는 사회과학 쪽일까요? (나도 한 '문학' 하고 싶다^^)
예전에 둘이서 함께 근대 신문, 잡지(<개벽>, <별건곤>, <신여성>, <삼천리> 등)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때도 저는 연재소설만 나오면 도무지 뭔 이야기인지 이해가 안 되어서 헤맨 적이 있습니다.
각설하고,
파랑샘의 문학적 섬세함이 가득한 <미망> 2권 공지에 약간의 역사사회학 쪽 정보를 보태봅니다.
1.이 시기를 부르는 명칭
1876년 강화도조약과 이로 인한 강제적 개항/개방에서부터 1910년 한일병합까지의 시기를 부르는 몇 가지 명칭이 있습니다. 가장 넓게는 ‘개화기’라고 부르고, 그 안에서도 1897년 대한제국 수립 이후는 ‘대한제국기’, 특히 1905년 을사늑약 이후 국권 회복을 위한 교육,언론,산업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는 ‘애국계몽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대충 감이 오시죠?
‘대한제국기’라는 명칭은 대한제국이라는 국가와 광무개혁 등 위로부터 이루어진 근대화에 주목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반면 ‘애국계몽기’는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서세동점의 시기에 국권을 지키기 위해 민간에서 어떤 교육, 언론, 산업운동이 일어났는지를 강조하는 명칭입니다. 계몽운동가들이 전국을 돌며 연설하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학교가 세워졌다고 할 만큼 사립학교가 우후죽순 생겨나던 시대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1906~1909년 사이 전국에 2천 개가 넘는 사립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제가 학부 전공이 사학인데요...(아, 부끄러...) 그때는 민족사관이 워낙 강세였던 시기라 ‘애국계몽기’라는 말을 정말 많이 썼습니다. ‘애국’과 ‘계몽’의 파토스가 넘쳐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수유너머에 가보니 <대한매일신보>를 읽고 있던 팀(고미숙 이하 현대문학 전공자들)은 이 시기를 자연스럽게 ‘개화기’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때 저는 ‘아, 같은 시기를 시대와 전공과 문제의식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부르는구나’ 싶었습니다.
어쨌든 <미망> 2권의 종상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는 시대는 바로 이 ‘개화기’ 한복판입니다.
2. <독립신문>과 배재학당
개화기의 특징 중 하나는 근대적 신문과 잡지가 잇따라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1883년 정부 기관인 박문국에서 발행한 최초의 근대신문 <한성순보>는 외국의 정치,경제,과학,기술과 국내외 정세를 소개했습니다. 이후 1896년에는 서재필이 <독립신문>을 창간하여 국문 전용과 띄어쓰기를 채택하고 민권, 자주독립과 국민계몽을 내세웠죠.
1898년에는 배재학당 학생들의 <협성회회보>와 이를 계승한 <매일신문>, 대중과 여성 독자를 중시한 <제국신문>, 국권 수호와 외세 비판을 강조한 <황성신문>이 발행되었습니다. 1904년에는 베델과 양기탁의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어 항일 논설과 국채보상운동을 적극적으로 보도했죠. (당대의 ‘한겨레’?!!)
이 중 저는 <독립신문>을 창간호부터 끝까지 읽었습니다. ‘여성’과 ‘교육’을 키워드로 글도 몇 편 썼었고요.

독립신문 창간호
<독립신문>은 뭐랄까, 왕조의 신민을 근대적인 개인, 즉 스스로 배우고 일하고 자기 삶을 책임지는 자립적이고 독자적인 개인으로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전통적 생활습속의 거의 모든 것에 시비를 겁니다. 축첩, 조혼, 흰옷 입는 것, 느릿느릿 걷는 것, 트림, 방귀, 아무데서나 오줌 누는 것, 개인이 아니라 가문에서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 것 -이렇게 하면 독립심 아니라 의타심만 생긱, 공자·맹자 책만 읽는 것 등등. 심지어 불교와 ‘중’까지 낡은 미신과 관습의 일부로 취급했습니다.
아무튼 <독립신문>의 아젠다를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제 식으로 정리하면 ‘위생’, ‘남녀평등’, ‘교육’... 그리고 ‘식산흥업(殖産興業)’입니다.
<미망>의 종상도 ‘배재학당’에서 신학문을 배우고 <독립신문>을 통해 식산흥업의 비전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최초(물론 원산학사 있지만)의 근대적 교육기관이었던 배재학당은 패스할게요. 너무 길어져서. ㅋㅋ
다만 종삼과 같은 시기에 배재학당을 다닌 역사적 인물을 꼽자면 이승만과 주시경을 들 수 있어요. 재밌죠?
3. 식산흥업과 종상
식산흥업은 말 그대로 ‘산업을 일으키고 생산을 늘린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위와 아래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는 요렇게 설명되어 있어요.

종상이는 이제 송상의 ‘도가’를 근대적 ‘회사’로 변모시키려고 합니다.(p.48)
여기 ‘회사’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는 것에 주목하셔야 합니다.
사실 이때는 ‘회사’뿐 아니라 이와 비슷한 다양한 단어들이 쓰였습니다. 조합, 계(契), 상회(商會), 회사(會社), 협회(協會), 연구회(硏究會), 실업회(實業會) 등.... 모두 사람들이 돈과 힘을 모으고, 상권을 보호하고, 산업을 장려하기 위해 새롭게 만들어낸 조직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종상이 ‘도가’를 ‘회사’로 만들려고 한다는 건 꽤 의미심장합니다.
도가가 개성상인들이 신용과 인맥을 바탕으로 물건을 유통하던 전통적인 상업조직이라면, 회사는 여러 사람이 자본을 모으고 일정한 규칙과 조직을 만들어 사업을 운영하는 근대적 경제조직입니다.
이런 움직임 가운데 일부를 나중에 역사학에서는 ‘민족자본’ 혹은 ‘민족기업’의 형성 과정으로 설명합니다. 개항 이후 일본 자본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조선인들이 자본을 모아 상권을 지키고, 상업에 머물던 자본을 제조업과 금융업으로 확장하려 했던 움직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용어를 좀 조심스럽게 쓰는 모양입니다. 일본자본 대 조선 민족자본이 그렇게 깔끔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눠지지 않거든요. 조선 사람이 가진 돈이라고 다 ‘민족적’으로 움직이는 건 아니니까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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