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망(1) 후기] <미망> 속 오디세우스
지연
2026-08-2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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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아침에 눈뜨자마자 유튜브를 열었다. 영화 '오디세이'가 그야말로 장난 아니라길래, 집 근처 극장의 빈 좌석을 발견하자마자 예매를 하고 영화를 봤다. 아이맥스 극장에서 보는 것이 제일 좋다지만, 2D 리클라이너 극장에서 보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과연 일반 좌석에서 약 3시간의 러닝타임을 견뎌낼 수 있었을까? 그렇지만 3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영화는 재밌었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았지만, 지략가라고 알려진 오디세우스가 그다지 영민한 지략가처럼 보이지 않은 점이 가장 의아했다.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판단과 행동을 하는 장면이 유난히 부자연스럽게 튀는 느낌이랄까. (특히 외눈박이 거인 폴리페무스에게서 벗어나 달아나다가 뒤돌아서 활을 쏘는 장면은 눈으로 보니 더욱 부자연스러웠다.) 각설하고, 집에 돌아와서 영화에 대한 각종 해설서와 영상을 찾아보면서 원인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부자연스러움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동의 '의도'였다. 그리고 오늘 펼쳐 든 주간지 시사인의 한 아티클에서 그 '의도'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게 되었다.
"오디세우스는 득의만만한 전쟁 영웅기라기보다 때로 흔들리고 자주 회의하는 개인에 가깝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그는 지략이 뛰어난 동시에 교활하고 영리한 영웅이지만, 놀란 감독의 시선을 거치며 전쟁의 대가를 무겁게 짊어진 인물로 바뀌었다. 영화는 질문한다. 그는 영웅인가. 트로이 목마는 트로이인들을 속여 선물로 받아들이게 했다는 점에서 환대의 규범인 크세니아를 악용한 계략이었다. 놀란 감독은 <오펜하이머>의 오펜하이머와 <베트맨>시리즈의 브루스 웨인처럼 완벽한 영웅보다 결정적 선택을 앞두고 고뇌하는 인물을 그려왔다. 오디세우스 역시 그 계보를 잇는다."
- <'극장의 시대' 되살린 거장의 품격>, 임지영 기자, 시사인 vol.987 (2026.8.18)
이 대목을 읽는 중에 전처만의 고뇌가 떠올랐다. 전처만은 고려에 대한 배반을 딛고 우뚝 선 조선에 대한 공적인 저항과 전처만의 부모/동생에 대한 양반 이생원의 패악질에 대한 사적인 복수심을 토대로 송상 중의 송상 즉, 거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돈으로도 장남의 목숨과 손녀 태임의 애정은 구하기가 어려웠고, 원한으로 시작한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비극적인 사건으로 돌아오는 운명을 겪는다. 난초공원 샘이 지적한 전처만의 빈자리는 이런 비극적인 생애에서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고, 그는 그 빈자리로 인해 항상 고뇌한다. 전처만은 얼핏 보기에 이룰 것 다 이루고, 시대의 변화까지 감지하는 예민한 촉으로 위험을 피하고 새 시대가 제공하는 이득을 취하는 능력을 갖춘 영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내, 자식, 손주에 관해서는 자신의 주관적인 가치관을 강요하는 구세대였고, 객관적인 진실을 두려워하는 범인(凡人)에 불과했다. 시대의 전환기에 인삼 유통에서 떠오른 사업가였으나, 그 또한 오디세우스처럼 '때로 흔들리고 자주 회의하는 개인'이었다. 과연 <오디세이아>는 박완서의 이야기에도 영향을 미친 '모든 이야기의 원형'이었다!
그래도 내 마음 속의 1권의 하이라이트는 여전히 아씨와 재득이다. 아씨는 억울한 운명 속에서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고난을 통한 자유를 획득하려 했고, 재득은 난데없이 들이닥친 아씨와의 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살 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다. 글로 쓰고 말로 하기가 쉽지, 환경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과 인생에만 초점을 맞춰 행동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 자신의 욕망 앞에 솔직한 인물들을 마주치는 일은 (그것이 비극일지라도) 즐겁다. 특히 나는 아씨의 '삶'에 대한 선택 대비 '죽음' 앞에서는 기존 제도에 굴복하는 것 같아 내심 실망했었다. 그러나 세미나를 통해 아씨에게 죽음이야말로 간신히 얻은 자유를 다시 잃어버리고 더욱 처참하게 구속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한 저항일 수도 있음을 깨닫고 보니, 새삼 아씨라는 인물이 용기 있고 대담해 보인다. 그렇다면 태임이의 주체적이고 당찬 성향은 결국 어머니로부터 이어내려 온 것일 수도 있겠다.
다음 권으로 넘어가기에 앞서 가장 궁금한 대목이 있다. 1권 말미에서 종상이는 태임에게 애정을 깊이 느낄 수록 태임의 어머니 즉, 아씨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의 원인의 원인이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아씨의 시어머니 홍씨 부인이 아씨에게 과한 노동을 시킨 이유가 민란과 민요가 일어날 것이라는 소문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그 민란이나 민요의 주도자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내가 속으로 간절히 바라던 것이 있다. 나도 모르게 '제발 태임과 종상이 사랑하는 사이가 된 이후에, 태임 엄마 죽음의 배경에 종상이가 있기 때문에 두 사람 사이에 파탄이 일어나는 막장이 되지 말기를'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한 종상이의 생각은 지나친 오지랖 또는 단단한 착각으로 보이기도 했다. 이런 나의 생각 또한 과도하게 앞서 나가는 것은 아닐지? 여러 가지로 다음 권 읽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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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만의 빈자리....
"영감은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상업적 밝은 눈과 남다른 배포로 당대에 큰 재산을 이룩했지만 그의 마음속엔 아직도 돈으로 채워지지 않은 빈자리가 있었다. "(34)
아마도 돈이 아니라 돈 너머의 지성?
태임에게조차 "아녀자들이 익혀야 할 수공과 범절 이상의 것을 가르치고 싶다는 굴뚝같은 바람..그런 엉뚱한 생각"(32)도 그 언저리 어딘가에 있겠지요.
물론 지성 대신 그 자리에 정신, 기개, 다른 삶...같은 것을 넣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원수 (개성인 +소작인)인 이씨조선의 양반적 지성은 아니기 때문에 전처만의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고, 외로움과 허전함이 커져가지요.
자, 2권의 전처만의 2세대들은 전처만의 빈자리를 어떤 방식으로 채워나가게 될까요?
동시에 전처만의 모순은 어떻게 극복 혹은 심화 혹은 변형되게 될까요?
미망 2,3권의 관전 포인트일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