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있는 여자 후기] 생각이 산으로 왔다

도레미
2026-08-09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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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스물 여섯에 결혼해 만 4년을 못 살고 서른이 되던 해 이혼했다. 그리고 25년이 지났다. 그래서였을까. 결혼과 이혼을 겪어낸 그 시절의 나를 세미나 중반까지도 기억해내지 못했다. 연지가 자기 결혼의 실패 원인을 철민이보다 ‘남녀평등’을 더 사랑한 때문이라고 했을 때도 ‘뭔 소리야?’하고 휙 넘어갔다. 세미나를 하며 ‘이혼의 충분조건’이 무엇이었을지를 고민하는게 과제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래서 정리해본다.

 

이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아이였다. 아들이 만 세 살도 안 된 때였다. 내가 살기 싫다고 자식에게 ‘이혼 가정의 아이’라는 딱지가 붙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 딱지에 내가 동의하든 말든 사회적 시선은 견고했고, 아이에게 그 결핍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문제를 나에게 국한한다면, 나도 연지처럼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정리해내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거라고 자신만만해 했는데… 암튼,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낭만적 사랑과 결혼’을 통해 성공시키고자 했던 것이 문제였다고 결론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자기 가정을 일구는 것이 가장 합법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길이라 여겼고, 나는 그걸 성공시켰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귓등에서 튕겨버렸던 말그대로 결혼은 현실이었다. 물론 결혼 전 나도 현실을 따져봤겠지만 근거도 없이 사랑의 힘으로 모두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었다. “평등을 자신이 앞으로 애써 지혜롭고 고되게 획득해나갈 문제라고 여기지 않고 자기만은 쉽게 얻을 수 있다고 믿은” 것이 연지의 ‘중대한 착오’라는 박완서작가의 말처럼, 나 또한 남녀가 공히 독립적으로 자기 세계를 키워가는 가정을 나만은 쉽게 얻을 것이라는 중대한 착오를 범한 것이다. 

 

나는 '타인의 시선보다 개인의 취향과 주관을 중요시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경향이 강하다'고 당시 언론에서 떠들썩하게 다루던, 소위 X세대다(당시 언론에서 다뤄진 걸 보면 지금의 MZ세대는 그리 요란한 것도 아니다). 세미나에서 80년대 대졸 여성(연지)의 시대정신이 '평등한 결혼, 민주적 가정'을 이루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90년대 여성들에게는 '사랑으로 나만의 세계를 세울 수 있다'는, 더 개인화된 바람이 있었던 것 같다. 나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혼한 때에도 이혼이 흔한 일은 아니었다. IMF 이후 이혼이 급증하는 추세라는 보도들이 있기는 했지만, “이혼했다”고 하면 상대는 (심지어 자기가 결혼 여부를 물어봐놓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은 듯 당황한 기색을 보였었다. 끝까지 마음에 걸렸던 아이까지 있었음에도 내가 이혼을 선택한 건, ‘내 삶은 나의 것’ 이라는 생각에 힘입은 바가 크지 않나 싶다. 타인이 뭘 담아줄지에 좌지우지되는 뒤웅박은 필요없다는 생각. 그러나 경숙 여사는 그런 시대에 살지 않았다. 그야말로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담론이 만들어낸 규범들을 내면화한 여성으로서, 가정 잘 건사하고 교양있는 ‘교수 하석태의 부인’은 그녀의 삶 그 자체였을테니까. 경숙 여사에게 이혼의 충분조건은 끝내 만들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2

먼불빛 선생님의 메모 중 ‘연지가 아버지의 서재를 동경하지만 그 서재가 존립할 수 있는 어머니의 그림자 노동은 보지 않았다’라는 내용을 보면서, 불현듯 ‘돌봄(가사)노동’의 가치로 생각이 연결됐다. 그게 내내 찜찜했다.

연지(여성)가 자유를 누릴 ‘자기만의 방’을 가지게 된 것은 (여성의 삶에서) 진일보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가부장제가 가치 매겨놓은 아버지의 권리를 내면화하는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기 때문이다. 연지만이 아니라 ‘72년생 김지영(!)’인 나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저마다 자유로운 삶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돌봄노동의 가치는 누구에게도 제대로 물어지지 않은 채 남겨졌다. 평등한 가사 분담이 기본값으로 되어가는데도, 그 대가는 '82년생 김지영'에게는 병으로, 그 이후 세대에게는 아예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현상으로 나타난 것과도 관련 있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다 아침에 김희경의 신간 <<이 일에는 이름이 없다>>와 관련한 기사를 접했다. 김희경은, 가족 안의 누군가는 병원을 예약하고, 복지 제도를 찾아보고, 식단을 짜고, 일정을 조정하며, 앞으로 닥칠 문제를 먼저 생각하는데, 이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끝없는 정신적 과정을 '기획 노동'이라 이름 붙였다. 

경숙 여사의 시대와 지금을 비교하면 결혼과 성역할에 대한 규범은 상전벽해 수준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결혼은 여자가 손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는 건, 나누자는 합의가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밑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무엇을 '노동'으로 볼 것인가, 무엇이 애초에 나눔의 대상이 될 자격을 갖는가. 그 목록을 정하는 힘. 규범은 그 목록 위에서만 작동한다. 규범이 노동을 '나누는 방식' 뿐 아니라 애초에 '노동으로 보이게 만드는 방식'에도 관여한다. 그래서 이름이 생긴다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목록 밖에 있던 것을 목록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 안 보이던 것을 처음으로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일이다. 청희가 "남자도 팔자의 일부분일 뿐"이라며 팔자라는 말을 다시 썼던 것도, 김희경이 사랑이라 불리던 것에 ‘기획노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반갑다. 

 

다만 이름을 얻은 뒤에도 문제는 남는다. 요양보호사도, 가사도우미도 이미 이름과 가격을 가진 노동이지만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가장 낮은 임금 직군에 머문다. 목록에 오르는 것과, 그 목록에서 정당한 값을 받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름을 붙이는 일을 넘어, 애초에 그 목록과 값을 정해온 저울 자체를 다시 만드는 일수도 있겠다. 그걸 할 수 있을지는 가늠조차 안 된다… 박완서작가 때문에(덕분에?) 생각이 산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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