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대중지성_시즌2] <돌봄의 역설>(2) 공지
자갈
2026-08-01 16:30
29
여름 더위가 절정을 향해 가는 듯 합니다만, 우리는 시작한 돌봄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겠죠? ^^
돌봄의 역설 후반부 3가지 주제는 '피어남의 돌봄', '구조 안에서 순환하는 돌봄', '돌봄은 돌보며 돌봄 받는 것' 입니다.
전반부 보다는 읽기가 수월한지요?
후반부에는 저자가 독창적으로 제시한 피어남, 뒤섞인 돌봄이라는 개념이 등장 합니다.
기존 돌봄 개념과의 차이는 무엇인지, 돌봄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지 서로의 경험을 기반으로 좀 더 심도 깊은 논의를 기대해 봅니다.
무더위에 지치지 않게 건강 유의 하시고,
세미나 메모는 8월 3일 월요일 오후 9시까지 부탁 드립니다.!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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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대중지성_시즌2] <돌봄의 역설>(2) 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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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동기화,자유> 2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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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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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1) 돌봄을 구체적 모양으로 ‘피어나게, 피어남’으로 설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돌봄 속에서 서로 ‘주의 기울이’고 ‘필요’를 찾아 해결하고 그 관계 속에서 서로 보람과 의미를 발견하는 상호작용인 돌봄의 정체성과 이어진다.
노인 방문돌봄 현장에서는 법으로 규정한 3시간 돌봄 중 ‘식사’ 지원 관련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요리하는 시간도 비중이 크지만 식사를 같이하며 나누는 말 벗 도움이 ‘피어남’의 현장이다. 가장 즐거웠던 때를 이야기 소재로 만들어 장을 펼치면 90년 살아온 시간의 향연이 밥을 먹으며 펼쳐진다. 긴 댕기 머리 16살 색시가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한 첫날 남편이 가까이(!) 오자 무서워서 문을 박차고 도망갔었다고, 그 와중에도 훔쳐 본 그 남편이 그리 잘생겼더라고. 조금 일찍 떠난 남편은 살면서 그 잘생긴 얼굴 때문에 스캔들 소문이 있긴 했으나 당신한테 참 잘했다고, 외출 할 때면 언제나 내외간 ‘손을 잡고’ 다녀서 군산시내에서 당신이 아내가 아니라 ‘첩’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고.
2) 의료현장에서 ‘공감’을 확장한 ‘민감함’을 돌봄의 핵심으로 다뤘다. 나는 그 민감함을 ‘감수성’으로 읽는다. 문학과 글쓰기, 영화 등 예술을 이용한 다양한 체험과 분석을 의료(돌봄) 현장에 도입하고 확장하는, 돌봄의 상호작용을 꽃피우기 위한 노력들에 응원을 보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수많은 도우미들이 각각 우영우의 역할에 도움을 주는데, 그중에서 배려와 도움과 한편으로 질투도 안고 있는 로스쿨 동기 친구 변호사 최수연과 대화,
최수연: 영우야,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우영우: 너는 ‘봄 날의 햇살’이야!
로스쿨 때부터 뒤에서 나를 지켜준 ‘밝고,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돌봄의 현장에서 ‘한 사람’, ‘한 마디’는 그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서 나오고 그 마음과 태도는 고스란히 전달된다. 상호작용은 포개 지고 또 포개 지고 어느 날 팝콘처럼 터진다.
*‘난잡한 돌봄’(promiscuous care)? 다양한, 경계 없는 돌봄 정도로 번역이 되면 좋겠다. ‘난잡한’ 표현은 보통 성적 관계에 쓰이는 말로,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다 보니 오히려 부정적이고 ‘대책 없는 돌봄, 무책임한 돌봄’처럼 읽힐 수 있다.
3)‘함께-돌봄’의 대안은 우리가 태생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며 취약한 존재임을 인식할 때 가능할 것 같다. 각자 도생의 시대에서 상호의존을 인식하고 나눌 ‘공간’을 다양하게 만들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삶의 모습 정의를 자립에서 상호의존으로 (재)전환하고. 원초의 공동체사회로 회귀는 불가능하지만 삶의 원형은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이렇게저렇게 모여 궁리하는 집단이 많아지고 그것들을 모아내고 제도권 안으로 넣기도 하고, 제도 밖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공동체도 계속 만들고.
아직 젊은 중장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이든 부모와 자녀, 그리고 내 삶까지 돌봐야 하는 끼인 세대 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 새로운 ‘돌봄’을 기획하는 것,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공정한 함께-돌봄’의 대안을 짜내기 위해 모이자, 모이자...우리끼리 해보자 하고 있다.
*옛날이야기
50호 정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십대까지 보낸 경험은 ‘꽃피는 산골, 울긋불긋 꽃대궐..’ 노랫말하고는 아주 다르지만, 나이 들어 돌아보면 삶의 원형을 체험한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마을사람들이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우리 세자매를 이전처럼, 이전보다 더 살갑게 사람 대접을 해줬고, 농기계와 아직 화학 농법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서로 돕지 않으면 농사일이 불가능했기에 ‘두레’(서로 일을 돌아가며 하는)는 일상이었고, 아이들은 사전 통보 없이 이웃집에 가서 밥 먹는 일은 다반사. 돼지 잡던 날, 우리집 인데도 돼지우리 근처에 어른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가까이 가지 못하고, ‘돼지멱따는소리‘만 들었다. 돼지고기를 온 동네 사람들이 나눠 들고 헤어지고. 겨울에는 방 윗 목에 콩나물 시루가 놓이면, 검은 천으로 씌워 놓은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어주는 것이 당연 아이들 몫 집안일이었는데, 이 콩나물이 다 자라면 하루 사이에 콩나물 뿌리가 길게 자라서 다 못 먹게 되므로, 바가지에 콩나물을 뽑아 이집 저집 나르는 일 또한 당연한 것, 이웃집들은 매일 콩나물국과 콩나물 무침을 똑같이 해먹어야 했다. 부자도 가난한 집도 차이가 보이지 않던 시절.
1. 저자는 “돌봄에서 피어남이란 지금의 필요만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대방의 삶을 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돌봄의 두 가지 양식으로 보존적 돌봄과 발산적 돌봄을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삶을 최대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는 보존적 돌봄과 생을 발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이 그것이다. 여기서 생을 발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이란 그 대상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포함하여 그 자체로 누군가의 생의 목적을 이룸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기에 발산하는 생은 다른 생과 다른, 보편성을 벗어난 특이성을 지닌다.
즉 피어나게 하는 돌봄이란 바로 생을 발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말기 돌봄 상황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고 존엄사를 요청하는 것, 시설을 벗어난 요양을 요구하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자신이 살던 집과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늙어가고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돌보기, 본인의 의사가 고려되지 않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 돌봄 등이 노인 돌봄과 관련되어 이야기 될 수 있는 “피어나는 돌봄”이 아닐까 생각된다. 각각의 돌봄 대상자의 특성에 따른 구체적인 돌봄실천은 다르다하더라도 피어나는 돌봄의 근본 원칙이 “생을 발산시키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2. 난잡한 돌봄, 뒤섞인 돌봄, 공감, 민감함 ...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가 그리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인가 싶었다.
가족적(또는 젠더화된) 돌봄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주체가 다양하게 돌보자는 이야기가 아닌가말이다. 내가 상대방의 자리에 놓일 수 있음을 알고, 상대방의 필요와 요청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발빠르게 움직일 때 돌봄은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뒤섞인 돌봄이라고 말한다.
노인돌봄의 경험 속에서 서비스 대상자인 독거노인과의 소통과 돌봄의 기회를 통해 지방에 거주하던 소원했던 시모를 떠올렸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안부인사와 소통을 하게 되었던 기억, 50대 중반을 통과중이었던 나의 노화와 노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공부를 하게 된 기회가 되었던 시간들, 그리고 시설과 기관, 정치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개진과 제안을 했던 경험들... 이런 모든 것이 뒤섞인 돌봄과 상호성을 인식하고 나름 고민과 실천을 시도해봤던 개인적 경험들이다.
3. ‘함께, 좋은 돌봄을 모든 곳에서’을 위해 저자는 우선 우리가 돌보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자기 삶에 돌봄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제들간에 부부간에 갈등상황이 두려워서 내가 하고 말지 하며 스스로 도맡아 왔던 위아래 돌봄실천이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내 개인적인 “함깨 좋은 돌봄”을 위한 첫번째 실천과제는 우선 내 가족과 형제들 간에 '함께 돌봄'을 수행해가는 것이다. 정서적, 신체적, 경제적 돌봄 모두 각자의 형편에 맞게 융통성있는 배분으로 함께 돌봄을 수행한다는 책임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을 시작함으로써 내 자신에 대한 돌봄도 가능하게 될것이다.
그 다음 내 가족의 차원을 넘어서 마을과 이웃을 함께 만들어 가는 실천을 하는 것이다. 최근 임종돌봄과 작은 장례 등을 위한 '채비플래너” 자격증 과정을 수료했다. 자격증 취득은 했으나 활동과 실천을 함께 할 동료나 이웃, 공동체가 없다보니 현재 나는 막연한 상황이다. 밥벌이 노동 외에 마을이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개인적 고민을 벗어나 함께 실천하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할 네트워크가 내겐 없다. 더 늦지 않도록 내 마을에서 내 도시에서 다양한 공동체와 시민들의 조직된 무언가를 다양하게 모색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 중이다.
친정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소도시의 외곽 마을에서는 천주교 성당을 중심으로한 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활성화된 공동체가 이러한 종교단체가 아닌가 싶다. 노령화된 종교인구를 생각하면 이러한 종교 공동체와도 다양한 지원과 돌봄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40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에서 노인정과 3곳, 어린이집과 돌봄센터만 5군데가 있다. 노인정과 어린이집의 통합 돌봄은 또 어떨까? 할머니와 꼬마들이 함께 놀이터에서 놀이를 하고 텃밭에 방울토마토를 키우는 모습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