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공지_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

파랑
2026-06-25 15:43
35

1.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왠지 모르게 입에 착 감기는, 익숙한 문구입니다.

지난 세미나 말미에서 몇몇 분이 그러셨지요.

아, 그 영화? 그거?

네, 맞습니다. 1984년에 개봉했던 배창호 감독의 영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유지인(수인), 이미숙(오목), 안성기(일환))의 원작 소설입니다.

서울에서만 10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후 대종상, 영화평론가상,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며, 1988년에는 KBS 드라마로도(나영희(수지), 김도연(오목), 김영철(일환)) 방영되었더랬습니다.

 

 

박완서는 당시 KBS가 방영한 <이산가족 찾기>를 언급하면서 “내가 소설로 만든 비극보다 현실의 비극이 훨씬 처절”했다고 회고합니다. 또한 “영상매체의 기동성과 박진한 현장감은 상대적으로 언어의 무력을 통감”하게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가 전하는 비극의 처절함과 영상 이미지가 주는 즉각적인 선명이야 말해 무얼하겠습니까. 그러나 소설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와 영화는 조금 다른 자리에 놓여있는 듯합니다.

배창호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서 “화해와 용서”를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전쟁에, 이산가족… 나는 직접적으로 그런 체험이 없고 주위에도 그런 사람이 없지만, 내 아픔처럼 느끼고 꼭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소재였거든요. 근데 원작의    그 심리는 내가 이해를 못하겠단 말이에요. (중략) 이산가족을 이야기하면 거기에 따르는 전쟁의 비극성이 더 강조되어야 되지 않는가. 그럼 마지막에 용서해      야  되겠다. 용서해야 이 여인의 한이 씻겨질 것이다. 또 그것이 감동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바꾸게 된 거죠.

                                                                                                                            (안재석, 「배창호 인터뷰」, 2010년 2월 10일)

 

전쟁의 비극과 그로부터 비롯된 한(恨), 그리고 그것을 씻어내는 화해와 용서.

많은 관객들이 이 지점에서 눈물을 흘렸고, 그것이 전쟁과 이산가족을 바라보는 당대의 공감대이자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둔 이유였을 겁니다.

반면 박완서는 ‘난리통의 모든 사람들’이 “공모자”였으며 모두가 “인두겁을 쓴 짐승”이었음을 직시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한국사회의 추악한 속물성에 들이대는 피할 수 없는 거울이자 그 기원과 과정을 반추하는 불편한 보고서”(소영현, 해설)가 되어버렸다 합니다.

 

2.가족 이야기, 끓어오르는 “진한 핏줄의 정”

 

[나목], [목마른 계절] 등등에서 이미 봐왔듯 전쟁으로부터 ‘생존’은 절체절명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살아남은 자들에게 ‘전후(戰後) 재건’은 시대정신이자 각자에게 주어진 필생의 과업이었습니다. 이처럼 생존과 재건이라는 거대한 강박 아래, 한국 사회는 전쟁이 남긴 참혹한 상흔을 온몸으로 견뎌내야 했습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휴전 이후 남한 사회에는 집을 잃고 길에서 방황하는 약 200만 명의 전재민과 1,000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고 합니다. 김동춘은 이러한 경험이 자기 근거로부터 뿌리 뽑힌 한국인의 집단심성, 소위 ‘피난민의 정서’를 주조했다고 지적합니다.(김동춘, [전쟁과 사회]). 상실된 삶의 토대 위에서 혈연은 자아를 지탱할 유일한 심리적 귀환지였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복원에 필사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실제로 [희망], [명랑], [아리랑] 같은 당대의 대중잡지를 살펴보면 이러한 열망이 도처에서 확인됩니다.

 

"부모형제를 잃고 보니 이 세상에서 저 혼자만이 외로운 몸인 것같고 고적하여 의지할 곳이 없습니다. 어머님 또는 형제의 인연을 맺어 주실 분은 친부모 형제 다름없이 섬기겠사오니 연락해주십시오."   - 제100부대 하사관학교 본부 하사 염재석 [명랑 1958년 4월호]

 

 

전쟁으로 흩어진 혈연을 찾는 이런 사연들 속에서, ‘수양부모’, ‘의형제’처럼 새로운 대안가족을 맺으려는 욕구도 매우 강렬했습니다. 1950년대 후반 잡지에서 유행어처럼 번진 ‘가족 같은’, ‘가족처럼’이라는 수사는, 위태로운 현실 속에서 혈연적 신뢰를 갈구했던 사람들의 ‘가족적 상상력(familial imagination)’을 잘 보여줍니다.

이때 ‘가족’이란, 친밀성의 강렬한 농도, 즉 혈육으로서의 유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현실의 제 조건과 관련되지 않은 순수한 인간관계의 원형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근대 핵가족의 중심인 부부는 개인의 선택으로 생겨난 관계 구성물이지만, 부모-자식-형제라는 혈연적 유대는 이성적 판단과 선택이 작동하지 않는, 불가역적인 관계이지요. 따라서 전후 현실에서 가족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내고 그것을 재구축하려는 욕망은 위태로운 삶의 조건 속에서 혈연관계로 상징되는 깊은 신뢰와 지속적인 사랑을 갈구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박완서는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에서 이와 같은 전후 현실의 산물이자, 오늘날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강력한 ‘가족적 상상력’에 야멸차게 딴지를 걸고 나선 겁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그동안 박완서는 ‘가족’을 겨냥해 집요하게 쿡쿡 찔러대왔니, 새삼스럽지는 않습니다.

 

   “가족이란 말처럼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말은 없다. 여북해야 남남끼리도 사귀기 편하면 곧 가족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러나 와해하기 직전이라든지,         이미 와해한 걸 겉모양만 엉구어 매놓은 가족 관계처럼 불편하고 거북한 건 없다.”( [휘청거리는 오후])

 

3. ‘외면하고 망각한 것’을 제대로 봐주기

박완서는 작가의 말에서 ‘6.25때 헤어진 수지와 오목이라는 이산 자매’로부터 “못 본 척에 의해 생긴 단절 이야기”를 풀어놓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짐짓 외면하고 망각한 것들의 편린”을 봐달라고 당부합니다.

1차적으로는 '수지'와 '수철 '등등이 무엇을 외면하고, 무엇을 망각했는지를 따라갈 터이지만, 그건 결국 우리 모두가 외면하고 망각한 것과 마주하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또한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는 우리가 지금껏 읽어왔던 박완서 소설과 여러모로 잘 엮여져서 풍부하게 읽혀질 듯합니다.

예를 들면, ‘오목’이와 ‘영자’([오만과 몽상])는 어떠신지요.

또 ‘빛깔 고운 홈웨어’와 ‘공단이불’([도시의 흉년]의 김복실), ‘어마어마한 집안’([휘청거리는 오후]의 민여사)에 대한 갈망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가족/식구/집, 계급-중산층, 속물, 위선/자선, 출세/성공, 행복

또 그리고,  수지, 오목, 수철, 일환과 인재, 기욱.... 등등의 내면...

못 본 척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수두룩합니다.

또또 그리고, 소설 속에서 생생하게 재현되는 1970년대 서울의 풍경도 흥미롭습니다.

시골 출신 청년의 ‘인재’가 입사한 20층 빌딩은 1977년 완공된 23층의 대우센터빌딩을 연상시키며, 종로 학원가와 연탄보일러 기술자, 냉동고압가스 학원 등으로 대변되는 당대의 열기, 도시 개발과 맞물린 부동산 열풍, 단독주택 지하실 차고를 개조한 신혼방 등등 다채롭고 세밀하게 도시 구석구석이 되살아나 있습니다.

 

 

그러하니

B조 여러분의 살뜰한 발제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7월의 첫날을 멋지게 열어주시어요.

7월 1일 수요일 저녁 9시, 마감 시간입니다.

 

 

** <글쓰기 발표>_ 마지막 & 오프 세미나 날짜, 12월 20일로 바뀌었습니다. (원 계획표는 12월 19일)

  생각만해도 씨원하시쥬? 아님, ‘수지’처럼 겨울 추위와 허기가 막막 느껴지실까요?

  어쩌면 우리도 언젠가...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라고 떠올릴 수 있을 듯도 하고 ㅎㅎㅎ

  12월 20일의 그날까지 잘 달려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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