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이야기와 글쓰기] 벌써 그만두고 싶으시죠?
저도 예전의 악몽이 떠오릅니다.
저는 저대로 빨간펜 하느라 고생고생 하는데
주례사 비평, 혹은 쓰담쓰담이 아닌 방식으로 피드백하면
모든 분들은 백퍼 상처를 입습니다. ㅎㅎㅎ
아무튼....
어제 세시간을 넘게 했지만...후다닥 끝나버려서.. 담 주 어떻게 고칠지 좀 난감하실 것 같아서 개인별 피드백 드립니다.
(제가 오늘은 일단 세분 하고... 낼까지 나머지 세 분도 여기에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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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샘
1. 상식과 성심..이 두 개념으로 글 전체를 풀어보면 어떨까요?
그러려면 상식은 내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생각, 성심은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채 의지하고 있는 생각... 이런 식으로 구별을 짓는 게 좋습니다. 그러니까 왜 나는 성심을 상식이라고 생각하는가?가 이 글 전체의 논지이겠죠.
2. 장자의 이야기에서 성심과 관련하여 중요한 단어 중의 하나는 ‘스승’이라는 거 같아요. 똑똑한 사람이든 어리석은 사람이든 누구나 자기 생각이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거죠. 어쩌면 자연스럽구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사태를 판단할 때 자기 마음을 스승으로 삼는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는거죠. 성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리고 시비를 나눌 수 있다고 보는 거지요. 그게 장자 그 부분에서는 “是以無有로 爲有니”라고 표현됩니다. 그러니까 장자 입장에서 자기 생각을 상식으로 여기는 사람은 “오늘 월나라로 떠나서 어제 도착했다”는 식의 궤변론자이고, 심지어 우임금조차 그렇게는 못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샘의 문제의식이 뭔지는 알겠지만 실제로 논의를 풀어가면서는 상대주의에 대한 강조나 열린 태도, 민주주의적 관용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해요. (이게 바로 좀 뻔하게 느껴지는 부분입니다.) 조삼모사나 도추를 좀 더 예리하게 정의를 내려야 합니다.
4. 그런데...선생님의 이 글 역시 성심의 결과는 아닐까요? ㅎ
바람샘
1. 첫 번째 인용은 왜 하셨을까요? 그것이 본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없습니다.
2. 지금 글은 장자 이야기와 대안학교의 경험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장자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으면서, 더 결정적으로는 장자 이야기와 대안학교 경험 이야기가 따로 놉니다.
3. 장자 이야기는 때로는 해설서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예 - “제물론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고르게 하는 논리라는 뜻으로 세상을 차별 없이 평등하게 바라본다는 장자 철학의 핵심을 전하고 있다.”)
4. 하지만 더 문제는 조삼모사, 양생, 도추에 대한 이해가 (장자의 급진성이 사상된 채) "서로 인정하자" 정도의 태도로 수렴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5. 뿐만 아니라 절대진리, 탈진실, 주관적 정서, 인정, 존중, 얽힘, 상호의존, 능동적 반응, 상생 같은 단어들이 엄밀한 맥락과 정의 없이 한꺼번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논점을 분명하게 하셔야 합니다.
6. 질문을 좁히고 구체화하는 것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질문은 “대안학교를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은 높은 이상, 기개, 헌신이 있었는데, 왜 시시비비를 따지느라 갈등과 균열로 귀착되었는가?” 이겠죠? (아닐수도^^) 아무튼 선생님 문장으로 질문을 한문장으로 만드는 것부터 다시 시작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해정샘
1. 열심히 고민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하셔서 그걸 다 넣으신 것 같아요. (정원 이야기, 근대과학 이야기, 질소비료 이야기, 지렁이 이야기, 기후위기 이야기, 지식의 한계 이야기...^^) 이 글에서 어떤 이야기를 질문할 것인지가 좀 더 명료하면 좋겠어요.
2. 그러다보니 흐름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시작은 정원 이야기로 아주 좋은데, 그 다음에 갑자기 “춘추전국시대... 어쩌구” 가 나옵니다. ㅎ
3. 장자 설명부분에서 제가 걸리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절대적인 옳음인 도가 존재한다고 주장”, “용을 인간의 인식으로 알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생각”, “자연이 작동할 때 자연의 요소는 서로 통하여”.. 도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구별과 시비가 아직 생겨나기 이전의 상태에 가깝죠. 이 부분을 좀 더 고민해보세요.
4. 저는 정원사 경험, em과 지렁이 이야기가 좋을 것 같습니다.
<해성샘>
1.세미나 시간에도 말씀드렸지만 장자를 어디에서 어떻게 만나고 어떤 질문이 생겼는지가 명료하고, 그 점에서 지적 긴장이 살아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돋보입니다.
2. 그런데 지금은 그 긴장을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우회하고 계신데, 그 과정에서 질문이 젠더 정체성의 문제, 비언어적 언어의 문제, 영화 그 자체에 대한 감상 등으로 흩어집니다.
3. 장자가 말한 언어의 한계를 넘는 문제가 샘의 페이퍼에서는 춤, 몸짓 등의 비언어적 언어와 공명하는 것처럼 되어 있는데, 과연 장자가 말한 것이 그런 것일까요?
제가 해석하기에, 장자의 언어 비판은 "말 대신 춤을 써라"가 아닙니다. 언어든 춤이든 몸짓이든, 어떤 표현도 道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것이지요. 샘의 최초의 질문을 더 밀고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더 나은 표현 방식을 찾을 것인가"가 아니라 "표현 자체의 한계를 알면서도 어떻게 말하고 살 것인가"일 수 있습니다.
4. 애매함에 겸허하게 머물기...라는 말 자체가 애매하게 느껴집니다^^
<혜근샘>
1. 필력과 구성력은 샘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그런데 이번 글에서는 그 장점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습니다. ㅎ
2. 이번 글은 장자와 만나면서 어떤 질문이 생성된 것이 아니라 교사로서의 샘의 요즘 아이들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어쩌면 성심? ㅋ )
3.가장 큰 문제는 '용(庸)' 해석입니다. 지금은 용=평범=일상에서의 자립적 생활태도로 읽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장자가 말하고자 한 것인지? 연결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러려면 더 촘촘한 고리들이 필요해보입니다. 더불어 글 마지막의 조삼모사 이야기도 너무 가볍게? 혹은 너무 단정적으로? (“눈속임이자 껍데기”) 언급되고 있습니다.
4. 그런데 저의 고민은... 그래서 어떻게 고치는 게 좋은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글을 쓰기보다는 기존의 글을 고치는 게 더 좋은 글쓰기 프로세스인데... 음... 샘의 글에서 무엇을 새로운 질문으로 만들어야 할까요?
<유상샘>
1. 샘의 현장, 샘의 지금 절실한 질문으로부터 장자를 만나고 있다는 점이 샘의 글에서 확 느껴집니다. 이런 구체성이 장자의 물화도 현실에서의 준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시 사유하고 다시 해석하고 다른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니까요.
2. 다만, 두 가지 점에서 처음의 문제의식이 밀고 나가지는 게 아니라 반대로 좀 약화되는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구성과 관련해서인데, 지금의 구성은 준서 이야기와 장자 이야기가 좀 따로 노는 것 같습니다. 장자 파트는 장자 설명처럼 쓰여지고 있어요.
3. 두 번째는 바로 ‘호접지몽’의 ‘물화’에 대한 해석입니다. ‘변화’라는 것은 맥락을 충분히 드러내면서 자기 언어로 다시 정의되지 않으면, 그냥 그냥 평범한 말이 됩니다.
“장자에게 있어 각각의 존재가 본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물화의 과정 속에 있기 때문”, “서로의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며 서로가 서로를 조율해가는 과정 속에서 매번 새롭게 생성되는 관계”.. 이런 문장은 “준서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 서로를 이해하고 조율한다.-더 좋은 관계를 만든다.”의 결론으로 나아가잖아요? 결론 자체가 너무 안정적이에요. 물화 역시 급진성을 잃고 관계론이나 발달심리적인 개념이 되어버리고요.
4. 그러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 역시 고민입니다. 물화가 ‘되기’이고, ‘되기’ 라는 것이 탈영토화, 탈코드화의 문제라면, 샘의 교사로서의 탈영토화, 탈코드화 순간에 대한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당황했다는 말로 퉁치고 넘어가고 계셔서)
쉽지는 않습니다. 같이 고민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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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는 것에 화가 나면서 알고 싶다고 느낀 것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쌤의 피드백을 보면서 저야말로 성심에 갇혀있구나를 조금은 알게 되었어요.. (진부한 글을 쓴다는 자체가 그 증거일수도 있구요)
정성스런 피드백 감사합니다.
치열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넵 감사합니다.
선생님이 느끼신 딱 그대롭니다. ㅎㅎ 일단 이런저런 아이디어는 생각나는데 어떻게 정리해야될지 몰라서 되는대로 막 넣어놨어요. 일단 쓰고 정리는 나중에 해야겠다 싶어서요.
문탁 쌤이 처음 말씀하신 대로 아이디어 노트 정도로 만들었으면 글 쓰느라 시간도 덜 쓰고 여러분들 의견도 들을 수 있어 더 좋았을 거 같아요.
저도 오늘 고민을 해봤는데 정원쪽으로 가는게 좋을 거 같아요.
글쓰면서 매맞는거는 이제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어떤 매를 맞을까 기대까지 됩니다. ㅎㅎ 6명이라 아주 찐한 피드백 있어서 좋고요.
세미나를 하고 나서 글을 쓰면 글이 좀 더 수월하게(?) 나올 수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절대 반드시 그렇지 않음을 우리모두 다 알지요. ㅎㅎ)
하지만 저는 이런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도 좋은 거 같아요. 공부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면 세미나 뿐만 아니라 자기 혼자서도 벽돌책을 읽고 독해해내야 하잖아요.
독해 감각을 날카롭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직장을 다니지 않고 아이들도 웬만큼 커서 오후 3-4시까지 시간이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운동, 마당일 외에는 남은 시간은 거의 전부 공부에 할애합니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해도 됩니다.
하지만 직장 다니고 아이 키우는 선생님들은 그만한 시간을 쓸 수 없을텐데 다른 선생님들은 이 방식의 글쓰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할지 고민이 많지 않을까 추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