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대중지성_시즌2] 2회 <돌봄, 동기화, 자유> (2) 공지

서해
2026-06-2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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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 동기화, 자유> 두 번째 시간입니다.

'2부 동기화가 어긋나면 자유로워진다' 역시 인지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태와 그것을 함께 하는 돌봄의 현장이 그려집니다.

돌봄 전문가들의 활약상도 드러나지만, 돌봄의 윤리와 돌보는 사람의 한계도 짚어냅니다.

최근에 새로 번역된 <두근두근 노인돌봄>(미요시 하루키 지음, 조승미 옮김, 동녁)이라는 책도

1950년 출생인 또다른 남자 돌봄러가 주인공인데요,

이 책에서도 돌보는자의 윤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돌보는 사람 역시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좋은 돌봄러가 될수도 아닐수도 있다.

친절하게 대하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돌봄받는 사람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그게 중요한 기술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기에 너무나 기이한 행동이나 돌봄을 곤란하게 만드는 상황 속에서도

이들이 발휘하는 창의적인 돌봄센스에 웃음이 절로 나오는 책입니다.

여튼, 저는 치매관련된 책을 여러 권 접하다 보니, 그 병에 대한 친근함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지난 시간 기린샘의 질문에 대한 호응이 좋아서 저도 따라해 봅니다.

혹시 메모 내용이 고민되신다면 아래 질문에 대한 생각을 적어주셔도 좋습니다.

  1. 여러분은 가즈에 할머니처럼 신체와 환경의 동기화된 경험이 있으신지요?
  2. 돌봄의 책임자로서, 아니면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완벽한 안전’과 ‘운나쁘게 죽을 수 있는 자유’ 중 어떤 것을 택할 수 있을까요?
  3. 지속가능한 돌봄이 되려면, 돌보는 사람의 ‘도망칠 권리’ 이외에 또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월요일 밤 9시까지 이 글에 댓글로 메모 남겨주세요.

 

PS. 요리아이라는 곳이 궁금하실 것 같아서 유튜브를 찾아봤습니다.

우리나라 유튜브는 없어서 일본어로 찾았는데요, 다행이 짧은 홍보영상이라 보시는데 무리는 없습니다.

 

일본 제9회 요양시설(개호시설) 어워드 2025」에 [공식 노미네이트]된 『택로소 요리아이(宅老所よりあい /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가 자신들의 노력과 현장에서의 실천,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마음을 약 1분 동안 소개하는 영상입니다.

댓글 8
  • 2026-06-22 21:40

    돌봄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일들은 돌봄 현장의 특징적인 성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 사회에 있는 병리가 구체적인 형태로 돌봄 현장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p. 196)

    피할수 없는 슬픔. 도망칠 수 없는 후회.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 숨길 수 없는 보신주의. 예를 들어 이런 ‘고통’들을 서로 돌볼수 있는 관계를 기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가족과 지역을 끌어들이면서 ‘당당해지기 위한 고통 분담’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필요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최악의 사태를 줄이는 길이기도 했다. (p. 197)

    몇번이나 나오는 ‘용서’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라져 헤메이던 노인을 찾았을때 무심하게 ‘알게 뭐야’, ‘지금 바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용서받은 기분이 들다니…그러다
    ‘당당해 지기 위한 고통분담’이라는 말을 여러번 곱씹어 보며 용서받는 다는 느낌이 조금씩 와 닿았다.
    어르신의 최악과 나의 최악을 생각하게 되는 순간. 노인의 실종은 언제나 최악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고 사람다움을 일깨워주는 노인의 모습에서 자유를 느낀다. 그 안도감을 저자는 용서받았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순간에 지역사회를 끌어들인다. 반경 200미터 안의 집들에 노인의 존재를 알리고 부탁하는 일을 하고 실제로 도움을 받는다.
    거대한 숲의 나무들은 오래된 하나의 뿌리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타인을 돌보는 일이 손이 얼굴을 씻듯이 자연스레 해야 하는 일임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 대가를 바라고 좌절하고 참지 못해 폭발한다.
    그래서 더더욱 집단적인 이해를 나누는 시간은 소중하다. 유리아이에서 매일 아침 간밤의 일과 마음을 나누는 행위는,장어덮밥 만드는 봉사를 하다가 무상 돌봄을 받게된 할아버지가 지어내는 이야기 만큼이나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이다.
    ‘돌봄 현장에서 태어나는 ’나’의 작은 붕괴와 소소한 재생’은 나를 자연으로 돌려놓는다. 어쩔수 없는 노화와 쇠퇴, 죽음의 과정을 돕는 일은 그 안에서 자유롭게 한다.

  • 2026-06-22 22:03

    ​1. 가즈에 할머니처럼 신체와 환경이 동기화된 경험이 있으신지요?
    ​가즈에 할머니가 치매로 인해 언어를 잃었음에도, 돌봄자의 몸짓, 방 안의 공기, 바람의 흐름 같은 미세한 '환경'과 세포 단위로 반응하며 리듬을 맞추던 모습은 참 인상깊었습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보청기를 사용하시는 친정엄마와의 소통입니다. 엄마는 기계에서 나는 차가운 쇳소리, 귀가 꽉막힌 것 같은 답답함, 본인의 목소리마저 웅웅 울리는 블편함이 있지만 타인과의 소통을 위해 보청기를 착용하십니다. 엄마에게 저하고 있을 때만이라도 불편한 보청기를 잠시 빼어 두자고 했습니다.
    마주 앉아 저의 입모양을 보이고, 또박또박 발음하고, 목소리를 좀 높이며 소통하니 좀 느리지만 충분한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오히려 보청기를 했을때보다 감정 소통이 더 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2. ‘완벽한 안전’과 ‘운 나쁘게 죽을 수 있는 자유’ 중 우리는 어떤 것을 택할 수 있을까요?
    ​현대 노인 돌봄 시스템은 대부분 '완벽한 안전'을 택합니다. 침대 묶고 주변에 가림막을 치고, 넘어지지 않게 감시합니다. 하지만 무라세 다카시는 그것이 노인의 '살아있음'을 빼앗는 행위일 수 있음을 지적합니다. 인간은 안전하게 살아남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답게 살기 위해' 존재합니다. 조금 위험하더라도 내 발로 마당을 밟아보고 싶고, 딱딱한 음식을 씹어보고 싶은 욕구는 인간 존엄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를 극단적으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낙상을 막기 위해 묶어두는 편안함 대신, '조금 멍이 들더라도 한 걸음 더 걸어보게 하는 불편한 자유'를 지지해 줄 수 있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완벽한 안전이 때로는 인간의 살아있음을 빼앗는 행위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3. 지속가능한 돌봄을 위해, 돌보는 사람의 ‘도망칠 권리’ 외에 또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자는 돌봄자가 죄책감 없이 '도망칠 수 있어야' 역설적으로 다시 돌아와 온전히 돌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지속가능성을 더 단단하게 지탱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더 필요합니다.
    ​첫째, 돌보는 사람이 노인의 자유를 존중해 주다가 사고가 났을 때 사회나 가족이 돌봄자에게 모든 법적·도덕적 책임을 묻는다면 돌봄자는 결국 가장 방어적이고 딱딱한 '매뉴얼 돌봄'으로 숨어버리게 됩니다. 돌봄 현장의 우발적인 사고를 '운 나쁜 과정'으로 수용해 주는 사회적 면책과 신뢰 시스템이 없다면 자유로운돌봄은 불가능합니다.
    ​둘째, 돌봄을 '돈을 주고 사는 서비스'나 '한 개인의 독박 책임'으로 보면 결코 지속될 수 없습니다. 돌보는 나도 언제든 돌봄을 받는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지역사회 전체가 그 취약함을 함께 나누어 짊어지는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인상깊게 읽은 대목입니다.
    192페이지 ‘나는 지금껏 어르신이 만족할때까지 함께 걸었다. 걷다보면 머지 않아 기력도 바닥이 났다. 그때가 찾아올 때까지 함께 걸을 뿐이었다’
    208페이지 ‘가능하면 집에서 죽기를’
    237~8페이지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인격과 인품에 기초한 돌봄이 아니라 한계를 피하는 기술이다. 아니면 한계를 맞이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수 있는 ‘여유’,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혼자 노력하는게 아니라 집단이 함께 노력할 필요가 있다’
    290페이지 ‘돌봄시설의 차량임을 모르도록 송영에 쓰는 차량에 시설명을 인쇄하지않았다’

  • 2026-06-22 22:13

    마리
    1. 동기화 경험
    노화 과정에서 생기는 두 가지 슬픔을 잃어 버리는 것 자체에 대한 상실의 슬픔과 '할 줄 아 는 사람'에서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긍정하지 못해서 생기는 슬픔으로 저자 는 설명했다.
    내가 만났던 84세 어르신은 이전 교통사고 후유증이 80세 이후 나타나 허리 통증으로 고통 받고, 보행기 도움 없이는 걸을 수가 없었다. 오래 서있기가 힘들어 솜씨 좋은 요리를 할 수 없는 것이 화나는 원인 중 하나였다. 혼자 계실 때는 우울 감에 빠진다고 했다.
    내가 전성기 때의 이야기를 유도하면, 남편이 서동요 처럼 다른 남자들이 접근 못하도록 '임자 있다!'고 온 동네 소문을 내는 바람에 결혼하게 된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고, 우리는 같이 맞장구치고 웃으며 돌봄을 하였다. 나름의 '동기화'를 이뤄냈던 2년 전 스토리가 아직도 내 머릿속에 가득하다.

    2. 돌봄의 책임자로서 지녀야 할 책임이란 '완벽한 안전'이다. 어르신들에게 어떤 자유를 드릴 수 있을지 고민 된다. 우선은 주야간보호센터자리가 시내 한 복판이다. '외출은 곧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운 나쁘게 죽을 수 있는 자유'는 드릴 수 없다. 돌봄 시설은 문 닫아야 된다.
    대부분 돌봄 시설의 비젼은 ‘존엄돌봄’이다. 존엄은 당사자 선택권에 방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실제 안전의 문제 앞에서는 거의 존중되지 못한다. 만약 어르신이 ‘외출’을 미리 알려준다면(“집에 빨래하러 다녀올게.”)외출 동행(미행)은 해보고 싶다. 당사자선택, ‘자유‘에 대한 여러 사례를 남기고 싶다.

    3. 돌봄제공자에게 ’도망 칠 자유'를 줄 수 있는 책임자가 되는 것 자체가 과제다. 요리아이에서 돌봄경험을 매일 나누며 그 경험을 체화하는 시간은 돌봄제공자를 성장시키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나도 돌봄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감동과 이해를 높이고 있다. '도망칠 자유'를 책임져주는 책임자라니, 그곳에 근무하는 돌봄제공자는 결코 도망치지 않을 것 같다.
    한편으로 상담사들에게 제공되는 수퍼바이저 상담처럼 돌봄제공자들에게 치유 프로그램이 제공되면 좋을 것 같다. 돌봄제공자가 행복해야 좋은 돌봄이 나올 것이므로.

    p270~273 창작되는 이야기/이혼조정, 유두, 네덜란드인
    ..어느쪽이든 기억이라는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고민 끝에 자기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내는 힘, 그리고 과정은 어쨌든 결과로부터 현재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태도에 압도되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에서는 일종의 강함이 느껴졌다...
    ..나는 점점 ‘이야기’의 시간을 좋아하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지적 행동력에 내 가슴은 두근거렸다.
    ..‘지적 능력’과 ‘살아가는 힘’의 관계를 다시 깊게 생각해보고 싶었다...

    돌봄은 ‘돌봄제공자와 당사자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어떻게 서로 대응 하는가에 따라 당사자가 얼마든지 ‘나 답게’ 살아갈 수 있음을 여러 사례가 보여준다.
    다양한 어르신들의 사례
    -“알게 뭐야!“, “지금 바쁩니다.“- 멋지게 살아내고 계신 모습에 응원을 보낸다.

  • 2026-06-22 23:27

    요리아이의 어르신들을 위해 마을 주민 전체가 돌봄에 말려드는 과정은 감동적입니다.
    처음에 파란색으로표시되었으나 분홍색으로 변모한 집들도 있을 겁니다. 우리 모두가 돌봄에 말려드는 훌륭한 예시인 거 같습니다.
    그런데, 도시에서도 가능할까? 제대로 된 돌봄 시설이 도시에서는 자리 잡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가 (물론 비싼 임대료, 인건비가 제일 크겠지만) 익명성을 버리고 돌봄 네트워크에 말려들게 하기 힘들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파트 촌에서 돌봄 네트워크가 가능할 지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7장 - 한 꺼풀 벗겨보면 '이야기'에는 지어낸 사람의 기쁨,슬픔,분노,작은 죄의식 등이 숨어 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삶'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 '이야기'에서는 사실보다 진실의 존재가 느껴진다. 어르신들의 이야기에서 '사실'보다는 '진실'을 찾으려는 저자의 태도가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몇 번이나 했던 레파토리를 반복하거나 간혹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얘기만 해도 확 짜증이 나는 소견으로는 그 도량의 깊이를 헤아리기 힘드네요. ^^. 황당한 이야기라고 흘려 듣지 않고 그 사람의 삶의 진실을 파악하려고 하는 태도를 배워야 겠습니다. 한편으론 제가 나이가 들어 인지가 떨어지면 어떤 이야기를 지어낼 지 .. 겁이 나기도 하네요.

  • 2026-06-22 23:51

    2회차 특강 시간에 우에노 지즈코가 돌봄을 정의하면서 돌봄의 1차성은 받는 쪽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당사자 주권’을 내세웠다. 인지증 당사자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밝힐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여전히 쉽게 결론내릴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돌봄을 하는 입장에서도 2부에 나온 대로 “돌봄 사고로 인한 소송과 배상 책임을 두려워한 나머지 관리책임자가 어르신의 자유와 존엄보다 안전을 우선하기 쉬운 것”(194)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오해를 무릅쓰고 말하겠다는 전제를 달고 “당사자에게 비극이란 운 나쁘게 죽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손에 속박당하고 가두어져도 저항하지 못한 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당사자에게도 괴로운 사실은 그 일에 최종적으로 가족이 동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를 강요하는 것은 바로 우리 전문가이다.”(197쪽) 라고 썼다. 당사자의 입장에 서면 사고가 생길 수 있더라도 안전보다는 자유를 원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는 책임을 져야 하는 자신의 입장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저자도 그런 자신의 경험을 전한다. “어르신이 사라지면 핏기가 싹 가신다. 처음에는 어르신의 안부를 걱정하며 찾지만, 점차 나 자신을 더 신경 쓰게 된다.”(181)고. 자신에게 어떤 고통이 다가올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고통들을 서로 돌볼 수 있는 관계를 기르는 방법으로 “최악의 사태를 아예 없애려는 노력이 아니라 최악의 사태를 품어낼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 가족과 지역을 끌어들이면서 ‘당당해지기 위한 고통 분담’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했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최악의 사태를 줄이는 길이기도 했다.”(197) 고 썼다. 없애려는 노력이 아니라 품어낼 수 있는 노력을 위해 가족과 지역을 끌어들였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이들에게 높은 윤리관을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못 본 척 할 수 없어서 말려들게 하는 정도를 기대했다. 저자의 이러한 주장을 읽으며 당사자의 주권이 보장되기 위해서는 사회적 협력과 지원이 함께 시행되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 못지 않게 안전망이 중요하다. 장차 자신이 살던 곳에서 나이들고 임종까지 맞기 가능할 수 있으려면 더더욱 이러한 안전망에 대한 감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26-06-23 11:11

    1. 행복한 노혼이 가능하려면
    '알 게 뭐야' (가즈에 할머니)
    '지금 바쁩니다' (할아버지)
    - 어르신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어르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189쪽)
    - 당사자에게 비극이란 운 나쁘게 죽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손에 속박당하고 가두어져도 저항하지 못한 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197쪽)
    - (노혼 아니면 누워지내는 것 밖에 선택할 수 없다고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이 노혼을 택했다. 주민들은 노혼때문에 사리를 분별할 수 없게 되면 내가 폐를 끼친다고 못 느낄거다. 그러면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니 누워서 꼼짝 못하는 것보다 움직일 수 있는 노혼을 선택하겠다고 주장했다. (201쪽)

    => 노혼의 상태에서도 여전히 자기답게 생활하고 본인의 의지와 상반되는 구속과 제한을 받아들이지 않게 살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나 역시 당연히 이것을 선택할 것 같다. 그런 자유와 행복을 내가 선택할 수 있으려면 가족과 시설과 마을이 동의하고 함께 도와줘야 할텐데 아직 갈길이 멀다.

    2. 돌보는 자의 '선의'와 '도망칠 권리'의 제도화가 필수
    나는 '상냥함'이라는 말에 경계심이 있다. '사랑' '배려' '선의' 등 비판하기 어려운 말에 기초해 돌봄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237)
    이럴때 필요한 것은 인격과 인품에 기초한 돌봄이 아니라 한계를 피하는 기술이다. 아니면 한계를 맞이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여유'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이 혼자 노력하는게 아니라 집단이 함께 움직일 필요가 있다. (238)

    돌봄의 묘미는 하나의 행위를 두 사람이 함께 하는 과정에서 그때까지 몰랐단 '나'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238)
    돌봄현장에서는 그런 관계에서 태어나는 '나'의 작은 붕괴와 소소한 재생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시설장을 비롯한 현장의 리더는 솔선수범해서 '나'의 붕괴와 재생을 이야기함으로써 암묵적인 터부에서 현장을 해방해주는 존재라 할 수 있다. (256)

    => 돌봄제공자 개인의 선의나 헌신은 한계가 있다. 돌봄을 주고 받는 두 주체인 '나'들의 붕괴와 재생이 반복되는 가운데 그 이야기들을 풍부하게 공유하게 하고 도망칠 권리와 공간을 제도화, 공식화 해줄 수 있는 정책이 반드시 지원되어야 할 것이다.

    3. '버그'로 보지 않는 인식의 전환의 유의미성
    할아버지의 반복된 행동은 사회에서 보면 시스템을 방해하는 버그 같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사회는 프로그램에서 버그를 제거하고 수정하는 데 힘을 쏟는다. 내가 생각하는 여유란 어르신의 '반복'에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 시간을 주면 '반복'은 점점 성숙된다. 어르신도 우리도 '반복'에 익숙해진다. 반복으로 가득했던 시간은 그에 대항한 집단 속에 쌓인다. 사회에서 보면 지장의 원인에 불과한 '혼란'과 '버그'를 없애지 않고 집단이 직접 그릇이 되어 받아들이고 품어준다면 시간에 따라 분해될 수 있다. 분해된 '것'들은 축적되어 그릇을 이룬다. 그릇이 만들어진다. 그런 축적의 과정을 '집단의 지성'이라고 해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306-307)
    => 의미없는 버그같은 '반복'된 행동들에 함께 어우러지다보면 그 시간들이 축적되고 분해되어 '그릇'이 만들어진다고 보는 인식의 전환이 놀랍다. 그런 축적의 과정을 '집단지성'이라고 볼 수 있다니.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고 근본적인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되었다.

  • 2026-06-23 11:31

    187
    할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다. 종이컵을 사 와서 마실 수 있는 정도만 따라 건네주었다. 할머니는 그제야 차를 마셨다. 그 사람다움이란, 참 성가신 것이다.
    ‘마시기’라는 행위 하나에도 그 사람다움이 반영된다.

    201 노혼과 누워지내는 것의 선택

    237 상냥함이라는 말에 경계심이 있다. 사랑, 배려, 선의 등 비판하기 어려운 말에 기초해 돌봄을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육체의 한계.
    인격과 인품에 기초한 돌봄이 아니라 한계를 피하는 기술이다. 아니면 한계를 맞이하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여유,

    306 내가 생각하는 여유란 어르신의 반복함에서 어우러지는 것이다.

    290
    이 사회에는 지적장애를 보고 바보 같다고 깔보는 태도가 두껍게 깔려 있고 우리에게도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다. 여러 세대에 걸쳐 길러진 편견과 차별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았을 때견딜 수 없는 슬픔이 나에게 생겨난다.
    설령 내면에 편견이 없다고 해도 잃어버림에는 슬픔이 깃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노쇠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슬픔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리는 것 자체에서 생겨나는 상실의 슬픔, 그리고 할 줄 아는 사람에서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변해가는 자신을 긍정할 수 없어 생기는 슬픔이다.

    300 할아버지에게는 문제가 아니었던 일들이 타인의 개입으로 문제가 되어갔다.

    이 책에서 가장 마음 깉이 닿았던 것은 195-197쪽이다.

    나는 돌봄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운 나쁘게 죽을 수 있는 자유를 선택하고 싶다. 응급실과 심폐소생은 거부하고 싶고.

    지속가능한 돌봄이 되려면, '도망칠 권리' 이외에
    안정적인 급여, 노동 시간, 노동의 양. 노동의 질.
    인권과 윤리 의식.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6-06-22 12:55

    1. ‘신체와 환경의 동기화(몸에 새겨진 기억)’ 경험의 유무: 현재 가까운 지역에 살면서 정기적으로 돌봄을 나누고 있는 친정부모님의 경우 집 현관문을 나서고 들어오실 때 일종의 의례가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강박적인 행동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신발 주걱, 슬립퍼, 신발장 안에 위치한 신발들의 위치가 늘 일정한 자리에 있어야 하고, 나가실 때 하는 행동과 들어오실 때의 행동에도 순서에 차질이 없을 때 안도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간혹 순서가 뒤바뀌게 되거나 물건들이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지 않을 때 매우 당황하시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신다. 그리고 연세가 드실수록 떠나온 고향(평안북도 신의주)을 살아 생전에 가볼 수 있다면 기어서라도 가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도 몸과 마음에 새겨진 기억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친정아버지의 경우 드실 것을 넉넉히 가져가면 너무 많이 가져왔다고 화를 내신다. 처음에는 다소 섭섭했으나 이 역시 남기거나 버리는 것은 용납되지 않기에 남으면 결국 억지로 자신이 먹어야 된다는 몸에 새겨진 기억 때문이 아닐까? 책 내용에 등장하는 일단 입을 대면 차를 남기지 않고 다 마셔야 하기에 다 마실 자신이 없으면 차를 아무리 권해도 마시지 않는 할머니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또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호화스럽고 멋있는 외국 여행 후에도 익숙한 자기집에 도착하면 저절로 나오는 ‘역시 우리집이 최고야!’라는 표현을 하게 됨은 가장 일반적인 신체와 환경의 동기화의 예라고 여겨진다.

    2. ‘돌봄의 책임자’로서 또는 ‘돌봄을 받아야 할 상황’에서 나는 ‘완벽한 안전’과 ‘운 나쁘게 죽을 수 있는 자유’ 중 어떤 것을 택할 수 있을까?: 먼저 돌봄의 책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당장 생명에 위험이 덜하도록 ‘완벽한 안전’의 입장에 우선해 선택할 것 같다. 그러나 돌봄을 받아야 할 상황에 내가 놓여있을 경우는 주저하지 않고 ‘운 나쁘게 죽을 수 있는 자유’를 선택할 것 같다. 처음에는 현재 돌봄의 책임자 입장에 가까운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좀 더 바람직할까 고민이 되었지만, 내 자신을 양쪽 입장에 대입해 보니 ‘사람이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위험성을 당사자가 스스로 떠안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정답임이 너무나 선명해진다. 그래서 요리아이 요양소는 미쓰코 할머니를 위한 요리아이 주위 반경 200미터 안의 중계기지들 만들기를 시도하면서 활짝 열린 환경 조성을 선택했다고 본다. 과연 그러한 환경 조성이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할까? 싶지만 ‘걱정만 하느니 일단 해보면 별일 아니다’라는 말에서 희망이 생긴다. 그리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가지 않도록 어디까지나 ‘미쓰코씨를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자연스러운 참여를 유도하는 시도는 매우 사려 깊고 지혜로운 접근이라고 여겨진다.

    3. 지속 가능한 돌봄이 되려면, 돌보는 사람의 ‘도망칠 권리’ 외에 또 어떤 것이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돌보는 당사자가 우선 몸과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돌보는 나 역시 취약하고 의존적인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돌봄을 시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즉, 양질의 돌봄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충전 받을 수 있는 쉼의 시간과 공간이 보장될 수 있는 여건을 먼저 마련하고 돌봄에 임해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돌보는 자가 되었다면 중간에라도 사이사이 회복하고 올 수 있도록 다른 가족들의 협조나 지역사회에서 얻을 수 있는 도움을 찾아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조건으로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점점 쇠약해 가는 어르신들을 돌보며 회의가 들 때 ‘내가 생각하는 여유란 어르신의 반복에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306쪽)’라는 글귀를 늘 기억한다면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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