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저문날의 삽화1~5 후기>
6월 3일 전국지방선거일, 휴일을 맞아 <박완서 읽기>세미나는 오프모임으로 진행되었다. 줌에서 화면으로만 보던 얼굴들을 실제로 뵈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세미나는 오프로는 처음 뵙는거니만큼 서로의 간단한 소개를 하고 시작했다. 반가움을 뒤로 하고 C조의 메모로 시작했다.
멀리 미국에서 접속하신 해야님 먼저 읽었다. 해야님은 삽화 3 중에
"나만큼 너그럽고 인정 많은 사람도 흔치 않을 거라는 자기 황홀이 즉흥적으로 장황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게 했다."
를 씨앗문장으로 꼽고 화자의 "베푸는" 점에 대해 짚어주었다. 이러한 위치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는 은근한 자기 포장에서 기인했고 자기황홀이라는 시혜를 베푸는 데까지 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화자의 자기기만과 허위 의식은 만수네 분녀에게 보낸 편지 속의 문장들로 표현되었다. 자신의 말로 인해 빚어진 사건을 만수네의 파렴치하고 뻔뻔한 가난의 밑낯으로 치부해버린다. 그 속내가 단 사흘만에 까발려지자 만수네는 편지를 찢어버리고 가버린다. 방 위에 남아있는 찢어진 편지들은 "예리한 사금파리가 되어", 화자의 업이 되어 화자에게 돌아왔다.
나는 분녀에게 갖고 있던 허위의식이 도자기를 만드는 딸에게도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화자와 딸과의 관계는 세미나에서 많이 이야기 못했는데, 나는 자신을 '사기장이'라고 스스로 부르는 딸에게 더 눈길이 갔다. 허위 의식을 가지고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그런가, 왜 자신의 도예 작품들이 조금만 어긋(?)나도 신들린 것처럼 부수는 모습이 지금 우리 시대 청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
또 다른 허위 의식은 삽화 1에 나오는 화자부부에도 적용된다. 화자는 남편의 친구 아들 영택을 양자로 받아들이지만 계속 말할 수 없는 껄끄러움이 있었다. 고해실에서 고백하려 해도 자신의 밑바닥 허위 의식의 불편함을 내비치지 못했다. 남편과 영택이의 친밀한 부자 사이도 마뜩찮다. 영택이가 남편의 진짜 아들이 아니냐면서 지독한 의심한다. 나는 이 부분이 상당히 지질해 보였는데, 그 시대의 여자들의 한계였을까. '왜 그렇게 남편과 영택의 관계를 시기했을까?' 반면 남편은 영택이 불온 서적을 읽고 그런 친구들을 자신의 집안에 들였다는 사실로 분노해 영택을 내친다. 환대의 마음으로 데려다 키웠는데 이렇게 갚다니. 화자와 영택의 관계, 남편과 영택의 관계, 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딱 그 만큼의 관계로 마무리됐다. 이 지점에서 '혈연 가족'은 무엇일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혈통주의는 무엇일지? 짐작하게 해준다.
삽화 1, 2는 운동권에 참여했던 아들과 운동권인 남편이 등장한다. 그래서 세미나에서도 운동권의 남자들의 권위적인 면과 허위 의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특히 삽화2의 운동권 남편 중에 제일 어이없었던 부분은 판사, 의사들도 처가 덕을 보는데 왜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자신은 처가 덕을 보면 안되느냐는 지점이었다. 밖에서는 권위적 사회와 싸우면서 집안에서는 본인도 권위적으로 자신의 아내를 잡는 모습은 아이러니였다. 그와 관련된 많은 간증이 있었다.
그밖에도 삽화 4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마이카 시대, 자동차의 등장에 대해서..특히
"건조하기 전의 맏물 고추처럼 순전한 빨간 빛깔의 르망과 짙은 회색의 스텔라, 군청색의 프레스토 그리고 흰색 맵시가 길에서 비켜나 송림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정차해 있었다."
라는 부분에서 희미해진 기억의 차들을 소환해주며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삽화 4가 재미있었다고 많은 분들이 소감을 밝혀주었다.
은사자님은 삽화 5를 이야기 해주셨다. 아직도 또각구두를 신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 남은 가족들이 순대로 죽기를 바라는 아내의 소원. 그러나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식을 먼저 보내 순서껏 죽지 못한 아내 집안의 내력 덕에 생긴 아내의 소원은 무참히 깨진다. 은사자님은 이 부분을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처럼 '예감-예감의 실현'이라는 구조라고 알려주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이 보내오는 신호들은 허무와 조소와 쇠락과 탄식이지만 그 신호들은 푸르름과 온갖 색깔의 현란함 사이에 있기도 하다.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짚어주었다.
일단 여기까지 기억나는 대로 정리했어요. 나머지는 댓글로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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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편집의 제목 "저문날의 삽화"에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50대후반~60대의 나이가 과연 "저물"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요즘의 그 나이는 저물고 싶어도 저물 수 없는 현실이 아닐까? 세미나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깔끔한 결론을 내진 못했다. 해야샘의 말씀에서처럼 박완서 작가는 다만 자기성찰이 깊어질 수 있는 노년기의 "가능성"을 보여주려 했을거라는 거에는 공감하는 정도이다. 나 역시 6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지만 여전히 생계를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아직도 학생신분인 두 아이의 학비를 지원하고 있으며 여전히 불안한 노후를 (딱히 실체도 없는) 두려워 하며 결론없는 고민을 반복 중이지만 그렇다고 딱히 내 삶이, 나의 인생이 '저물고 있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다.
또 하나의 생각거리는 "삽화"라는 말이다.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단면'들= '삽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인생에 수시로 끼어드는 여러가지 사건=에피소드=삽화들로 우리의 삷과 인생은 구성되며 그러한 삽화들로 인해 우리는 다양한 경험과 감동, 교훈, 깨달음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나의 삶도 그러하다.
이번 작품집에서는 내내 '자동차'라는 물건의 상징과 그것을 통해 당시의 시대풍경과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경제적 풍요를 상징하는 마이카시대에 사람들은 기를 쓰고 차를 사고 운전하며 다녔다. 당시의 '자동차'와 관련된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공유되었다. 박완서 작가가 지금 살아계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과 허위의식을 드러내는 작품을 쓰신다면 주식투자 열풍에 대한 이야기는 어떨까 생각해봤다. 문탁샘마저도 고민하게 하는 주식투자라니ㅋㅋ
오프현장세미나에서 샘들을 만나다 보니 훨씬 더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역시 세미나는 직접만나서 해야 제맛이지싶다. 맛있는 간식과 풍성한 점심준비해주신 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역시 세미나는 간식이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