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공지- 휘정거리는 오후(2)] - 모녀간이란, 형제간이란 얼마나 지겨운 악몽인가
전, <휘청거리는 오후>의 주제를 표현하는 단 한 문장을 뽑으라고 하면 주저하지 않고 바로 이 문장, “모녀간이란, 형제간이란 얼마나 지겨운 악몽인가”(1권, 296쪽)를 뽑겠습니다. 물론 ‘모녀’ 자리에 모자, 부녀, 부자 그 어떤 단어가 들어가도 상관없을 거구요.
아무튼 지난 시간 제가 컨디션 난조 등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은 찝찝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공지는 지난 시간 (즉 1권)을 좀 복기하는 것으로 대체할까 합니다.
1. 물신(fetish) 혹은 물신주의에 대해
우리는 <휘청거리는 오후>를 통해 1970년대의 물신주의와 마주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 개념을 조금 더 정확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신(fetish)’라는 용어 자체는 종교학과 인류학에서 먼저 등장했지만(물신=신통력 있는 물건), 맑스는 이를 자본주의 분석에 적용하여 ‘상품 물신성(commodity fetishism)’이라는 개념으로 재구성합니다. 그는 <자본론>에서, 상품이 단순한 사용가치를 넘어 교환가치를 지니는 순간,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더 이상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상품 간의 관계처럼 나타나는 현상을 지적합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이전 사회에서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비교적 분명하게 보였습니다. (문탁에서도 그렇죠. 쌍화탕을 누가 다리는지, 화장품을 누가 만드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그래서 화장품을 살 때는 가성비를 따지기 보다 친구들의 삶을 고려합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러한 관계가 점점 은폐됩니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들 간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적 관계”가 “물건들간의 관계 같은 신비한 형태”를 띠게 되는 것입니다. 즉 물건은 더 이상 인간의 노동과 관계를 반영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마치 스스로 가치와 힘을 지닌 존재처럼 등장합니다. 이때 물건은 일종의 ‘물신’이 됩니다.

특히 화폐는 모든 상품과 교환 가능한 ‘일반적 등가물’로서, 상품 세계 전체를 매개하는 특수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화폐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상품 세계 전체를 조직하는 중심적인 물신이 됩니다. 바로 “돈,돈,돈” 하는 세상이 되는 것이지요.
이 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강한 의미에서 물신주의적 성격을 띠게 됩니다. 물건과 화폐는 단순한 수단을 넘어, 삶을 조직하고 관계를 규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2. 김중배의 다이아는 어떻게 공회장의 에메랄드 목걸이가 되었을까?
<휘청거리는 오후>에서 이 물신주의는 결혼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스며들며, 예비 사위 조광욱 한복의 ‘금단추’ 같은 예단 혹은 상처한 공회장이 초희에게 주는 ‘에메랄드 목걸이’ 같은 선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전 이 지점에서 느닷없이 김중배의 다이아가 떠올랐습니다. 아시죠? 이수일과 심순애...그리고 김중배. 이수일이 대동강 부벽루에서 변심한 심순애를 원망하며 그 유명한 대사, “김중배의 다이아가 그렇게 좋더냐?” 라는 멘트를 날리죠. 그게 1913년이에요. 일본 소설 <금색야차>를 번안한 <장한몽>이 1913년 5월부터 <매일신보>에 연재되었으니까요. 아무튼 이 대사는 100년이 넘도록 한국사회에서 사랑을 배신한 물신주의를 상징하는 관용구가 되었고, 돈과 사랑에 대한 원형적 무의식을 형성했습니다. ㅋㅋ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서사가 ‘신파’였다는 점입니다. <장한몽>에서 물신은 분명 문제적입니다. 사랑을 배신하게 만드는 원인이며,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극복 가능한 것으로 남습니다. 이수일은 복수를 위해 돈을 모으고, 심순애는 불행한 결혼 끝에 자살을 시도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두 사람이 재회하며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되니까요. 권선징악, 해피엔딩, 하여 신파!!
즉 이때까지만 해도 물신은 문제이되, 끝내 도덕적 질서 속에서 회수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휘청거리는 오후>는 전혀 다른 길을 갑니다. 이 소설에는 신파적 화해도 도덕적 회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신은 더 이상 사랑을 배신하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사랑과 결혼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 작동합니다. 박완서는 물신이 어떻게 가족과 결혼을 재편시키는지, 정말 낭만, 판파지, 신파라고는 0.00000001도 넣지 않은 채 가차없이 낱낱이 해부합니다. 정말, 소설계의 해부학자가 따로 없더군요^^
박완서를 통해서 본 1970년대의 물신주의를 좀 더 이야기해볼까요?
저는 우선, 물신이 더 이상 특별한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이것은 공단이불이 아닙니다) 마치 공기처럼 주어진 조건이 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였습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선택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한다고나 할까요? 그것이 민여사가 말하는 “세상물정”(1권, p58)이고, 초희가 말하는 “시대”(1권, p90)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에피스테메로 작동하는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했듯이, 이는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형성된 사회적 조건(개발독재)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박정희는 정당성이 없는 군부구데타로 집권한 이후 경제개발계획을 밀어붙이면서 ‘중산층’이라는 삶의 모델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을 아파트라는 구체적인 생활 양식으로 가시화합니다. 아파트는 단순한 주거 형태가 아니라, ‘정상적인 삶’의 표준이 되었고, 중산층은 하나의 계급이라기보다 따라야 할 삶의 형식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동시에 이 시기는 사회적 유동성이 상당히 큰 시기였습니다.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가능했던 시기였고, 이른바 “개천에서 용 난다”는 서사가 현실적 설득력을 갖던 때였습니다. 이 점에서 1970년대 한국 사회는 흔히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과 유사한 구조를 갖는 것처럼 보입니다. 서부 개척 시대, 금광을 찾아 이동하던 사람들처럼, 더 나은 삶을 향해 이동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던 것이지요. (혹시 영화 <파 앤 어웨이> 보셨나요? 그야말로 금광을 향한 ‘질주’!!! )

물론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학적 분석이 아닙니다.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가능했는가가 아니라, 그러한 가능성이 어떻게 이미지로 작동했는가에 있습니다. (사족이지만, 저는 근대 여성교육과 관련해서도...그것을 ‘학교 열망’이라고 부른 바 있습니다) 허성씨네 세 딸 역시 이러한 조건 속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 ‘가능성의 이미지’를 살아내고 있는 것 같네요.
3.신데렐라 스토리는 왜 사랑받는가?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나”
네, <시크릿 가든>의 가장 유명한 대사이지요. 계층을 뛰어넘는 사랑, 선택받는 여성,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완성되는 삶. 말 그대로 낭만이자 판타지!!
이것을 비판하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더 유효한 질문은 왜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사랑받는지와 관련된 것입니다. 아마 그것은 여성의 계층 이동이 ‘노력’이 아니라 ‘선택받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현실을 전도된 형태로 너무 잘 그리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래서 다시 이 신데렐라 서사는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그것이 단순한 판타지 (현실에서 실현불가능하다는 의미)여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교환 구조를 은폐하고 교란하는 하나의 장치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현실의 결혼은 철저히 조건과 자원의 결합인데, 신데렐라 서사는 그것을 ‘운명’과 ‘사랑’의 이야기로 번역합니다. 말하자면, 교환을 낭만으로 위장하는 서사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여성의 ‘성공한 결혼’은 어떤 조건 위에서 가능했을까요. 역시 <휘청거리는 오후>는 당대 그 조건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아주 미시적으로 그리고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일단, 여성에게 미모는 필수적입니다. (<도시의 흉년>의 수연도 <휘청거리는 오후>의 초희도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입니다.) 지영샘이 이야기했듯이 미모는 여성이 결혼이든 취업이든 교환 시장에서 자신을 팔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자원(교환가치)입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학벌은 남편과의 교양과 수준을 맞추기 위한 조건이지요. (이것은 근대 신여성때부터 등장했습니다. 피아노도 좀 치고, 타이핑도 좀 하고, 아이들 숙제도 봐줄 수 있는 ‘교양있는 주부’^^) 그런데 우리는 소설 속에서 또 하나의 조건을 목격합니다. 즉 어느 정도의 수준 있는 집안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선호되었던 것이 교육자 집안이나 중소기업 사업가 집안 아니었을까요? 허성씨 같은 ‘공업인’은 자격에 못 미칩니다.
이쯤되면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혼 교환 시장에서 남성은 개인의 능력(그것으로 차지할 수 있는 직업)이 가장 큰 상품입니다. 이에 비해 여성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여러 조건의 조합으로 상품성이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여성의 ‘성공한 결혼’은 개인의 승리라기보다, 부모의 자본력과 딸의 신체적, 학력적 자본이 결합해 이루어낸 일종의 가족 프로젝트에 가깝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자, 드뎌 우리는 근대 핵가족의 작동방식을 분석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습니다.
4. 허성, 혹은 근대 가족의 가장
지난 세미나에서 가장 핫했던 토론은 바로 ‘허성’씨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였습니다. 한쪽에서는 손가락이 잘려 나가며 가족을 부양한 그에게 연민을 느끼는 ‘이입파’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가 보여주는 무기력과 우왕좌왕, 그리고 순결 이데올로기 등을 날카롭게 꼬집는 ‘비판파’가 있었지요.
저는 지난 시간 논쟁?을 보면서 보면서 1990년대 중반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소설 <아버지>(김정현, 1996)가 떠올랐습니다. 기억나시죠? 6개월 만에 200만 부가 팔리고, 중년 남성들을 책 사게 만들고, 대한민국의 아버지들이 다 울었다는, 소위 ‘아버지’ 신드롬과 ‘고개 숙인 아버지’ 담론을 만들어냈던 바로 그 소설 말입니다. 어쩌면 허성씨는 가족을 위해 자신을 지워버린 ‘현금인출기’로서의 가장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소설 <아버지> 속 주인공인 한정수의 선구적 모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허성 감정 이입파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신거겠죠. (사실, 이 아버지는 <폭싹 속았수다>에서도 반복됩니다. 박보검을 통해. ㅋㅋㅋ)

그런데 저는 그때도 그 ‘고개숙인 아버지’ 담론에 분기탱천했었습니다. 아니 여자들은 평생 고개 숙이며 살아왔는데...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가부장제의 모순을 아버지라는 개인의 ‘피해 서사’로 바꿔버리는 서사전략입니다. 이것은 신데렐라 이야기 같은 판타지 만큼이나 유해한 것입니다. 가부장의 고통을 강조함으로써 그 체제가 생산해내는 폭력과 소외를 가려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휘청거리는 오후>를 통해 전통적 가부장제 - 가문을 대표하던 ‘호주’와 봉제사접빈객을 미덕으로 삼던 ‘아내(며느리)’ - 가 압축적 근대화 시기에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전통적 권위가 붕괴된 자리에서 아버지는 가문을 지키는 어른이 아니라, 자본을 수혈해 가족의 계급적 생존을 책임지는 ‘자산 관리자’가 되어가고, 포스트 부모 세대인 초희와 우희 같은 자녀들은 부모의 욕망이 투사된 ‘최종 생산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말입니다.
아시겠지만 모든 비극의 원인을 “문제는 가부장제다” (혹은 "문제는 돈이다")라고 뭉뚱그리는 것은 ‘결론은 버킹검’ 식의 도식적인 해답이기 때문에 우리가 소설을 읽고 확보해야 할 지평을 축소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이 압축적 근대화 시기에 가부장제라는 메커니즘이 어떻게 재편되고 있는가? 부모는? 자식은? 어떤 욕망과 좌절, 어떤 불안과 원망을 가지고 있는가이고, 이것을 좋은 소설만이 가질 수 있는 구체적인 대사나 장면을 통해 미시적으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저는 <휘청거리는 오후>와 드라마 <스카이 캐슬>이 40여년의 시간차와 상관없이 비슷한 가족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어쩌면 민여사 혹은 초희(우희, 말희)의 모습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김성수의 문화 포커스] SKY캐슬 : 입시지옥과 계층상승욕구의 상관관계 < 김성수의 문화 포커스 < 스페셜칼럼 < 기사본문 - 뉴시안](https://i0.wp.com/www.newsian.co.kr/news/photo/201812/33577_10645_541.jpg?resize=450%2C234&ssl=1)
이번 하편 세미나에서는 이 작업을 좀 더 정치하게 해봅시다. 즉 근대 한국 가부장제가 어떻게 구성원 개개인의 실존을 잠식하며 파국으로 치달았는지 더 깊이 이야기봅시다. 자체의 모순으로 인해 파열될 수밖에 없는 그 지겨운 ‘가족이라는 악몽’의 실체를 함께 들여다보고 싶습니다.
피에쑤
1.이번 메모는 지금처럼 씨앗문장쓰고, 분석하기를 하셔도 좋고, 아예, 토론 토픽을 두, 세개 정리해서 올리셔도 됩니다.
2.이번 세미나는 조별토론으로 진행할까 합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더 열심히 토론에 함께 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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