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휘청거리는 오후 (1) - 연탄때는 집으로 시집가고 싶지 않은 욕망
연탄 때는 집으로 시집가고 싶지 않은 욕망
“여보 중매쟁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귀신 같습디다. 우리 초희를 보자마자 첫밗에 한다는 소리가 연탄 때는 집으로 시집갈 애는 절대로 아니래요. 얼마나 잘 봤어요?”(294)
늦잠을 잘 수 있는 토요일... 새벽 3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제기랄...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해보았지만 영 글렀다.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이런 저런 민원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번 주 세미나가 영 마음에 걸린다. 그래 어차피 잠 자기는 틀렸고 차라리 후기를 쓰자.
내가 왜 그랬을까? 평소라면 입을 다물고 세미나를 관망했을텐데, 나도 모르게 음소거 버튼을 해제해버렸다. 허성씨를 옹호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헛다리 긁고 있는 나를 보고 문탁샘이 한 마디 하셨다. ‘논의의 방향이 허성씨를 옹호하는 편과 아닌 편으로 흐르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고 .... 교사직을 버리고 공장을 차리는 것이 보여주는 상징성, 박정희의 자본주의 육성, 강남 개발의 맥락에서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결혼 풍속도를 좀 보자’
세미나를 마치고도 나는 자꾸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를 닮은 다정한 남자와 연애결혼을 했다면 초희는 행복했을까? 만약 내가 계층상승이 가능할 만큼의 외모를 지녔다면 결혼에 대한 나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나는 73년생, 2001년에 사랑했던 남자와 결혼했다.(우리 밥은 적게 먹고 사랑은 많이 먹으면서 살자는 오글거리는 말을 해가면서... 아! 미쳐.... 뭐 하긴 결혼이란게 미쳐야 가능한게 아닌가!) 유유상종이라고 나와 친했던 친구들의 결혼은 엇비슷하게 고만고만했다. 나름 의식 있다고 생각하는 헛똑똑이들의 연애결혼, 형편에 맞는 전셋집, 혼수를 생략하고 그 돈을 전세금을 보태는 정도의 실용성...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기르면서 30대 후반이 되어서야 현타가 왔다.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들 중에 반포에 아파트, 분당에 아파트를 시댁으로부터 받고 결혼한 친구들이 꽤 있었다. 솔직히 많이 부러웠다. 전세금을 올려가며 이사하는 것이 힘들었고, 집 문제만 아니라면 별 걱정없이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나도 마담뚜한테 중매 부탁할까 봐.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어.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언니가 옳았어.”(365) 우희의 울음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나에게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쯤에서 내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해야겠다. 지방 소도시에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내 나이 9살에 망하셨다. 하루 아침에 남의 집 셋방살이를 시작하게 되고 화병으로 드러누운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드셨다. 참깨 여사까지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원망을 많이 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예인이 되셨으면 좋았을 분이시다. 음악공부를 하신적이 없지만 아버지는 울적한 일이 있을 때마다 혼자 아코디언을 켜시면서 마음을 푸신다. 여동생은 대놓고, 아버지가 그 때 사업만 안 망했어도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자기 꿈이 이루어졌을거라고 원망한다. 나는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원망했었다. 친구집에 놀러가면 전업주부인 어머니들이 내오시던 예쁜 간식과 깔끔하고 세련되게 꾸민 집안이 부러웠던 것 같다.
평생 성실하게 일하셨지만 벌이는 시원치 않았던 아버지는 예나 지금이나 무척이나 다정하시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많이 사랑했지만 내내 원망했던 것이 죄송스럽다. 이제야 좀 철이 드나보다. 그래서였던 것 같다. 허성씨와 내 아버지의 어떤 부분이 오버랩 되면서 허성씨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도대체 다 큰 딸들을 어디까지 서포트해줘야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순간 울컥했다. 도둑이 제발 저린 꼴이다.
결혼을 하고 나서 지겨운 카피가 시작되었다. 은근히 아버지를 구박하던 엄마의 모습이 내게 서도 나타난거다. 남편은 내가 변했다고 했다. 맞다. 직장생활과 육아, 그속에서 내 어머니의 피로가 내게 겹쳐왔다. 다정하고 세상 선하지만 풍족한 삶을 주지 못한 아버지와 남편이 오버랩 되면서... 뭐 그렇게 시간이 지나 지금은 감이당을 시작으로 여러 학당에서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나름 정신줄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숙샘은 초희네 가족이 지나치게 과표집된 것은 아닐까 하는 나의 질문에 ‘소설은 포착된 시대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박완서 작가는 말한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닌 보통으로 사는 사람의 생활과 양심의 몰락을 통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직한 단면을 보여주고자 했을 뿐이다.” 우리 시대의 정직한 단면,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욕망들.
개인은 사회로부터 주입된 욕망을 욕망한다. 이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모여서 공부를 한다. 주입된 욕망을 알아차리고, 내 안에 단단하게 똬리를 튼 그것들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버킹컴 같지만 다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시담론이 아닌 미시적인 접근이겠구나.
이제 24살 21살의 아이를 둔 어머니가 되니, 서서히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이 없다는 것이 실감난다. 내 딸은 “연탄 때는 집이 아닌" 다른 곳으로 시집갈 수 있을까? 딸도 제 아빠처럼 착한 남자랑 연애하는 걸로 봐서는 그른 것 같다. (이건 뭐 자본주의의 징후, 대를 이어가는 자본의 욕망인가?)
휘청거리는 오후가 신문에 연재되면서 독자들의 원성과 간섭을 받았다는 말이 실감난다. 간섭하던 독자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면서 나도 소설을 통해 공부를 하는 학인이기에 앞서 일차적으로 그런 독자가 된다.
파국을 맞이할 것이 예감되는 내 아버지를 닮은 허성씨가 애잔하면서, 그렇게 가혹한 운명은 지우지 말지 하는 원망이 들기도 하다. 모순덩어리인 인물들이 그래도 망가지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는 거다. 구박하면서 서로 적당히 잘 살았답니다, 뭐 이런 결말을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겠지. 소설의 3요소가 인물 사건 배경인데 사건이 안 일어나는 소설은 소설이 아니니까.
왜 이렇게 몰입이 되는 건가. 짜증나게...감정소모가 너무 크다. 어려운 철학 공부를 할 때는 어렵고 뭔말인지 몰라서 감정소모가 컸는데, 쉬이 읽히는 소설이라 행간의 의미는 읽히는 데 이번에는 감정이입이 너무 잘 돼서 괴롭다. 소설이라고 덥석 문 나를 원망해야할까?(역시 소설도 문탁샘과 공부하면 힘들다. 문탁샘 나쁘다) 여튼 내 안에서 충돌하는 독자와 학인 사이의 갈등은 내내 계속될 것 이고 멀미는 계속 날 것이 분명한 이 느낌적 느낌으로 휴일 신새벽 후기를 마친다.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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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회 공지- 휘정거리는 오후(2)] - 모녀간이란, 형제간이란 얼마나 지겨운 악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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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흉년2 후기] 70년대의 도시, 신화적 저주와 자본의 흉년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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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 이불'과 욕망의 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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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 2026.02.21 | 90 |
산책님^^ 후기 너무 좋네요~ 저절로 댓글을 달고 싶은 후기예요~~
산책샘과 저는 거의 복붙입니다.(물론 후기를 보고 그렇다는 것이니...)
그제 세미나 마치고 어제 아침에 현타가 왔습니다.
지긋지긋한 게 나의 모습이라서 그런 줄은 알았지만 나는 이제까지 지긋해하고만 있었구나....
시골출신인 저는 결혼 전인 동생들을 줄줄이 데리고 살았드랬습니다. 여동생이 결혼전 남친과 며칠을 여행간다길래, 저는 언니랑 통화하다 여동생의 스케줄을 말했을 뿐인데 노발대발하는 언니의 말에 여동생의 여행을 막았고 이후 보름동안 말도 않고 냉전기간을 보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전 그때 그냥 여행을 가도 생각했는데 언니가 제게 동생간수도 제대로 못하는, 니가 이상한거 아니냐고 할까봐, 그냥 그랬던거죠. 전 그때 도대체 무얼 저어했던걸까요. 참나...
근데 아마 이게 저인가 봅니다. 이제껏 살아온 꼴이...
또 한편의 자괴감은 박완서 선생님의 이런 소설을 외면하려는 저의 모습입니다.. 마치 그 안에 내가 있는 것처럼 괴롭고 지겹고..그러면서 난 아니라고 부정하고..
객관화하질 못한다는걸 결국 나를 직면하지 못하고 있는거겠죠.
문탁에서 가족에 대한 주제로 뭔가를 참 많이도 했던거 같은데 전 제대로 맥락파악도 못했고 헛돌고 있었네요..
이번 휘청거리는 오후 책에 한 조각의 포스트잇도 붙이지않았습니다. 제 속이 뒤죽박죽이라서. 괜히 박완서 선생님께 심술이 나서... 드라마라면 안볼거라며 쓸데없는 소리나 해대면서요.
읽는 독자들을 이리도 휘청이게 하는 소설이라니. 박완서 작가의 사진을 보면 늘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 내면이 얼마나 강하길래 이토록 냉정하게 시대를 그려냈나 싶습니다. 저는 박완서 소설에 나오는 남성들에게는 연민을 가지기 참 어렵습니다. 어찌 되었던 사회의 모든 혜택과 기회를 남성들이 독점하던 시대였으니까요. 다만 허성씨는 그 시대에 세 딸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여러 복잡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문탁 샘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70년대 중반이 중산층의 계층 이동에 대한 욕망이 극대화 되는 시기였음을 염두 해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90년 대 까지만 해도 중산층 이하 계급에서 계층 이동의 가장 확실한 사다리는 학벌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어지는 세밀하게 등급이 매겨진 '대학 간판!'. 그리고, 이 대학 간판의 값어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 '결혼 시장' 일 것입니다. 문탁 샘이 언급하신 '가족 비즈니스' 가 이루어지는 겁니다. 우리 엄마도 아들을 결혼 시장에 내세워 잘난 아들 둔 우쭐함을 누려보지 못하는 것을 꽤 아쉬워하셨더랬습니다. (오빠가 대학 1학년 때 올케를 만나버렸거던요. ^^) 오빠 친구 중에는 의대 졸업 후 소위 열쇠 3개를 받고 처가 덕으로 병원 차린 이도 있습니다. 초희의 애인 김상기도 결혼 시장에서 꽤 만족할 만한 값을 받은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대학 간판을 팔 수 있는 건 남자들의 이야기이고 여자들은 사정이 다릅니다. 여자들도 학벌이 좋으면 가산점이 붙긴 합니다만, 사회적 성취로 이어지지 못하는 대학 간판은 짝이 되는 남자들을 빛나게 해주는 트로피, 그리고 좀 더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2세의 지능을 보장하는 수준(?!) 정도면 되고, 젊음과 미모, 집안의 경제력과 품위까지 갖추어야 결혼 시장의 고급 매물이 됩니다. 허성씨가 이룬 경제력은 초희의 신분 상승을 이루어주기에는 모자라 수모를 겪고, 민수 부모의 잘난 아들 위세에는 값을 치러야 합니다. 아들 타령이 절로 나올 만 합니다. 아들 가진 위세가 너무나 기세등등한 시대였으니, 부모들은 딸이 조금이라도 더 대접 받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무리해서 혼수를 마련했을 겁니다. 허성씨도 가부장적 인식에 머물러 있는 사내이지만 세 딸의 아버지라는 위치는 그를 가부장제의 희생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네, 저도 허성씨가 측은 합니다.
산책샘 후기 잘 읽었습니다~ 우린 그 시절 왜 그렇게 덜컥 결혼을 결단했을까...요? ㅎㅎ
지난 시간에 기린샘은 소설 속 '결혼'에 지긋지긋함을 느끼셨다고 했는데, 저는 '혼전 순결'에 그랬습니다.
혼전 순결이 뭐길래… 예전에 나는 이걸 '순결 이데올로기'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불성실한 학인이었지만, 그래도 배운 바 있으니) 푸코를 소환해서 '순결 담론'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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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여자의 순결은 결혼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수단이었다. 초희는 그것을 잘 알고 결혼을 통해 신분 상승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남자들은 만났으되 순결만은 지킨다(물론 결혼 직전에 다른 선택을 하지만..). 우희는 민수와 함께 있기로 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로 '외박을 통보'하지만, 잠시 효심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 민수와 첫날밤을 보내고 난 후에는,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음에도 예상치 못한 수치심과 혐오감에 시달린다. 반면, 민수의 목소리는 하룻밤새 “기름지고 자신있게“ 변했다. 우희는 부모로부터도 '깨진 그릇' 취급을 당했고, 자신의 상황과 같은 다른 집 딸들을 끊임없이 험담하는 민여사(엄마)의 전화통화를 듣고 있어야만 했다.
푸코는 섹슈얼리티를 개인의 본능적.생물학적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장치를 통해서 만들어진 담론적 영역으로 보았다. 성은 단순히 억압되기 보다, 의학.교육.가족 등 다양한 공적인 담론 속에서 끊임없이 말해지고 분석되며 규제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성은 위험하고 관리되어야 할 대상이 되며, 그에 따라 관련 담론이 더욱 확장된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순결’은 개인의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좋은 여성’의 기준 ‘정상적인 결혼’의 전제로 작동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순결은 당시 우리 사회 전반에 작동하고 있던 담론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담론적 통제를 공고히 하는 장치들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처녀성(처녀막)이 생물학적 실체로 고착되며 순결의 표식이라는 의학적 지식이 있었다. '혼인빙자간음죄'(형법 제304조, 2009년 폐지)는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음행의 상습이 없는' 여성만을 법적 보호의 대상으로 한정함으로써 여성의 신체를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것'과 '배제되어도 마땅한 것'으로 이분법적으로 범주화했다. 문탁 샘이 가끔 언급하시는 [영자의 전성시대]나 [별들의 고향] 같은 영화도 문화적 장치로 작동했을 것이다.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순결‘을 잃으면서 '창녀'가 되니까... 이러한 의학적·법적·문화적 장치들은 순결을 단순한 도덕이 아니라, 여성의 삶을 조직하는 단단한 규범으로 만든다.
특히 우희가 경험하는 고통은 이 담론이 외부의 강제만이 아니라 내면화된 형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모의 비난이나 사회적 시선 이전에, 우희 스스로가 자신의 행동에 부끄러움과 혐오감을 끊임없이 느낀다는 점에서 그렇다. 푸코가 말한 것처럼, 권력이 억압을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규율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함을 보여준다.
민여사가 전화로 지인들과 나누는 (남의 딸들에 대한)험담은 성적 일탈을 끊임없이 말하게 하고, 그 기준을 공유하며, 개인이 스스로를 점검하고 고백하게 만드는 일상적 ‘고백 장치’처럼 느껴진다. 타인의 일탈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이 말하기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히 하면서, 동시에 듣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상태를 내면적으로 확인하게 만든다. 이때 우희는 단순한 청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검열하고 고백해야 하는 주체로 위치지워진다. 순결은 여성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담론적 장치였다.
아버지 허성씨에게 돈은 무엇이었을까. 애비노릇, 관대하고 이해성 있는 아버지노릇. 그에게 애비노릇은 가족인 아내나 딸아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아내나 딸아이가 원하는 것들이 자신의 바람과는 어긋나도 아내나 딸들이 그토록 원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다해 주고 싶어, 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공장 일을 벌려 손가락을 잘려가면서 꾸역꾸역 기름때를 묻히고 돈을 벌어댔다.
엄마인 민씨부인에게 돈은 무엇이었을까. 민씨부인에게 돈은 아메리칸 스타일(토스트와 우유)의 아침식탁이 상징하는 중산층을 넘어 상류사회의 진입로였다. 민씨부인이 손가락이 잘리고 기름때가 묻은 남편을 혐오하면서도 ‘돈돈돈’하며 사정없이 허성씨를 쥐여 짜는 것도, 첫째 딸 초희를 중매시장으로 내모는 것도 신분상승의 계단으로 올라서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미모를 갖춘 첫째 딸 초희에게 돈은 무엇이었을까. 대학을 나와 은행을 다녔던 아름다운 외모와 능력과 젊음을 지닌 초희는 어째서 엄마의 욕심에 주저 없이 올라타 중매시장으로 나갔을까. 그녀는 고생스러운 생활은 딱 질색으로, 분양을 앞두고 개방된 호화 아파트의 모델하우스 같은 풍요롭고 우아한 쾌적한 생활을 제공해줄 수 있는 남자라면 재취든 뭐든 상관이 없었다. 그리하여 부자들만이 할 수 있는 부자들 생활의 재미, 자가용 타고 앉아 걷는 사람, 버스 타는 사람을 깔보는 생활, 남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돈돈돈’ 한 것이다.
국민학교(초등학교)시절 새 학년이 시작되면 담임 선생님이 빠트리지 않고 하는 조사가 있었다.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가정환경을 조사하는 시간이다. 전화 있는 집 손들어, 텔레비전 있는 집 손들어, 본적이 어디냐, 자기네 집 형편이 상, 중, 하 어느 쪽이냐도 그 꼬맹이들에게 물었다. 본적이 전라도인 나는 경기도에 손을 들었고, 우리 집 형편에는 ‘중’에 손을 들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우리들에게 손을 들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가정환경조사서를 학년 초마다 작성해야 했다. 그때마다 늘 가정형편은 언제나 ‘중’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당시는 당연히 ‘중’인줄 알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니 사실 ‘하’에 동그라미를 그려야 했다.
1965년부터 군사정권은 국가발전기획의 큰 축의 하나로 국민들에게 ‘중산층’판타지를 대대적으로 불러일으켰다. 6,70년대에 초,중,고 시절을 보낸 나를 둘러싼 친구들 면면을 보자면 어느 누구도 소위 ‘중’은 없었다. 그러나 그 애들도 나도 모두 자기 집이 ‘중’이라고 믿었던 것 같다. 아마 지금쯤은 그 애들도 알았으리라. 중은 무슨. 그만큼 군사정권의 ‘중산층 판타지’ 전략은 그만큼 치밀하고 강력해 지방의 후미진 곳까지 전 방위적으로 집요하게 파고 들어갔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은 당신들이 ‘하’라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자라면서 아버지한테 내내 들었던 말씀이 두 가지였다. ‘니 인생은 니 것이다’, 그리고 ‘돈이 다가 아니다.’ 덕분에(?) 우리 세 딸은 모두 가난한 남자들과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은행에 다니셨다. 해마다 담임이 아버지가 은행장이냐고 매번 물었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때야 당시 아버지가 은행에서 경비를 맡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허성씨는 대학을 나왔고, 사업을 벌려 돈을 벌었고, 번듯한 양옥집을 마련했고 세 딸을 소위 대학에 보낼 재력(?)이 있었다. 70년대를 같이 통과했을 우리 아버지와 허성씨를 생각해본다. 차이점이 무엇일까. 우리는 중산층으로, 상류사회로 올라갈 건덕지가 전혀 없었고, 허성씨네는 그래도 뭔가 건덕지가 있어 중산층 판타지를 꿈 꿀 수 있었던 그 차이일까. 하긴 우리 집은 일단 딸들이 아름답지 않았고, 남편을 아무리 닦달해도 나올 돈이 없었다. 그런데 꼭 그것만이 다였을까.
“말희야 너두 알아두는 게 좋을 걸. 여자는 시집갈 때밖에는 기회가 없다는 거야. 좀 힘들더라도 그때 뛰어넘어야지. 그 울타리 속에서 궁둥이만 옮겨 앉으려면 무슨 맛에 시집을 가니?”
이 말은 1970년대 여성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당시 여성에게 결혼은 단순한 삶의 선택이 아니라 거의 유일한 사회적 상승의 통로였다. 아무리 대학을 나와도 전공을 살린 직업을 갖기 어려웠고, 취업을 하더라도 제한된 역할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좀 미모가 있으면 사장실 옆에 비서직을 하기도 했었다. )
교육 또한 이러한 현실을 반영했다. 학교에서 가사 시간은 보조가방 만들기나 과일 깎기처럼, 여성의 사회 진출보다는 가정 내 역할 수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결국 많은 여성들에게 ‘현모양처’는 자연스럽고도 거의 유일한 삶의 목표가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결혼은 개인적 사랑의 결과라기보다 계층 이동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기능했다. 소설 속에서도 드러나듯, 결혼은 개인 간의 결합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맺는 일종의 ‘가족 비즈니스’였다. 재력과 권력, 미모와 학벌이 서로 교환되며 혼인은 사회적 자본을 확장하는 수단이 된다.
“이 시대가 이 세상이 돈, 돈, 돈 하고 아우성치며 흐르는데 너무도 순순히 편승하고 있었다.”
이 문장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물질 중심의 가치관으로 기울어졌는지를 보여준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인간의 양심이나 관계보다 돈이 삶의 기준이 되는 현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솔직히 나 역시 완전히 물질에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한때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마음먹은 적이 있다. 그것은 어떤 결심이라기보다, 어쩌면 두려움에 가까웠다. 아버지와 언니들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오래 지켜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허성씨와는 다르게 아버지는 권위적이고 엄한 사람이었다. 자식을 위한다는 말 속에는 늘 어떤 기대가 들어 있었고, 특히 딸들의 결혼에 대해서는 더욱 그랬다. 좋은 집안, 더 나은 조건, 체면에 맞는 결혼. 그것이 아버지가 생각하는 사랑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니들은 그 틀을 벗어났다. 나보다 12살 많은 큰 언니는 가출해서 배부른 상태로 결혼을 했고 누군가는 아버지가 마련한 자리를 거부했다. 그렇게 언니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는 깊은 한숨을 쉬었고, 집 안은 오래도록 불편한 가시방석과 같았다.
마지막으로 남은 나 역시 결국 아버지가 원하는 길이 아닌 것을 선택을 했다. 결혼식 날, 아버지는 꺼이꺼이 우셨다. 그 눈물이 어떤 의미였는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딸을 떠나보내는 슬픔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기대가 어긋난 데서 오는 허탈함이었을까.
지금 우리자매들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가끔은 웃으며 이야기한다. “아버지가 맺어준 결혼을 했으면 지금쯤 대단한 사모님이 되어 있었을까?” 하지만 그 말끝에는 미련일지 어떤 안도감일지 알 수는 없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결혼이 예전처럼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끔은 생각한다. 여전히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조금 더 은밀한 형태로, 결혼을 통해 삶의 조건을 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휘청거리는 오후 1』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질문처럼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