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흉년> 세미나 후기는 아닌, 그냥 뻘글
1. 소설은 힘이 세다?
김승옥의 단편 「염소는 힘이 세다」가 떠올랐습니다.
아주 예전에 읽은 터라, 줄거리도 가물가물합니다만... 전혀 힘이 세지 않아 염소탕이 되어 버린 염소, 힘없는 소년과 누이... 힘없는 그저그런 것들이 매애애 울며 자신들이 힘이 세다라고 앵앵거리는 듯한 그런 느낌만이 제게 남아있습니다.
<도시의 흉년>의 세 번째 세미나를 마치고 뜬금없이 ‘소설/문학은 힘이 세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마도 소설이 우리 모두를 ‘환장’하게 만들었던 합리적인 이유ㅋㅋ때문인 거 같습니다(저는 거의 <도시의 흉년>에 의해 패대기쳐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문득 「염소는 힘이 세다」라는 제목이 연상되었던 거지요. 표현이 비슷하다는, 라임(?)이 반복된다는 거였는데, 막상 떠올리고 보니 그 의미가 묘하게 연결되는 겁니다.
힘없는 염소와 소년과 누이처럼 언제인들 소설이, 문학이 힘이 있다고 여긴 적이 있었을까요.
본래 소설은 대설大說에 미치지 못하는 잡스러운 이야기요, 문학은 먹고 사는 일과는 하등 상관없는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취급을 받아왔었으니까요.
하지만 읽는 이의 정신을 쏙 빼놓는 그 ‘환장스러움’은 차치하더라도,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는저 에너지는 분명 문학의 힘임에 분명합니다.
(그래서 어쩌라구....그 힘이 뭐냐고?? 이건 박완서읽기가 끝나갈 즈음 다시 생각해보겠슴다. 일단 패쑤함다~ )
2. 어디까지의 오독이 허용되는가 vs 오독은 없다
이쿠바쌤이 응답자를 콕 찝으시는 바람에, 엉겁결에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캄사~
넓고 다양한, 그래서 좋은 소설일수록 더더욱~~~~ 질문하시면서 대답해주셨네요 ㅋㅋㅋ
잘 알려진 것처럼 ‘텍스트 읽기의 무한한 변이와 생성’에 대한 논의는 역사가 깊습니다. 능동적 독서, 주체적 독서, 적극적 독서, 생산적 독서, 저항적 독서를 비롯한 독자반응비평으로부터 텍스트 사이의 상호 영향까지도 거론하며(미하일 바흐친) 뭐가 원본이냐, 원래의 의미라는 게 있냐는 등등의 수많은 설왕설래가 이어졌더랬습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37669.html

이런 방식으로 단순화할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재미나이 시켜서 그리게 했어요 ^^;;;)
그러하니 ‘오독’은 없습니다. 다만 게으른 읽기와 서투른 읽기 이런 건 있을 듯합니다.
게으른 읽기, 기존에 내가 살아온 방식과 고정관념에 텍스트를 꿰맞추고 아, 그러네 하고 끝.
또 ‘대가(大家)’의 텍스트, 고전 등에는 또다른 게으른 읽기가 되기 십상입니다. 예를 들면, 역시 박완서의 OOOO은 옳다, 과연 그러하다, 끝.
서투른 읽기, 내게 촉발된 새로움에 대해 구체적인 근거와 논거를 찾지 않고, 그냥 이랬어 하고 끝.
저는 훌륭한 텍스트란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길”을 가능케 하는, 그야말로 무한한 생성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무한한 길은 반드시 텍스트 내부로 촘촘하게 한 발짝씩 걸어들어갈 때만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텍스트를 매개로 내 생각과 내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즉 내가 텍스트를 통과하는 방식이어야한다는 거지요. 내가 왜 이렇게 생각했는지, 내가 왜 이런 걸 좋아하는 지, 왜 싫어하는지, 내게 왜 이런 느낌이 생겨났는지.... 등등 모두 텍스트 속에서 내가 찾아내고 내 말로 설명되어야한다는 겁니다.
(물론 저도 도달해야 할 먼먼 이상향입니다 흑흑...)
결국 나를 통과한 텍스트가 새롭게 쓰이는 리라이팅(rewriting)의 생성. 천 개의 눈으로 천 개의 길이 솟아나는 방식이 우리들의 책읽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소위 학술논문과 어떻게 다른 지도 또또 수다를 떨고 싶습니다만.... 일단 멈.춤.)
결론은,
힘내서 열심히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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