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흉년> 곳곳에 넘실대는 소위 '화냥기'에 대해

문탁
2026-03-23 15:29
63

‘화냥기’ 혹은 도처에 넘실대는 에로틱 씬들을 좀 전복적으로 읽어내고 싶었습니다. 가능할 것도 같았어요. 그런데 지영샘의 후기에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여성의 사회적 자본과 연결시키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 먼저 다루어보겠습니다.

 

1.공적영역과 여성성의 두가지 작동방식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제가 오래전부터 정리한 내용이 있습니다. (어딘가에 쓰기도 했는데 너무 오래되어 못 찾겠네요)

아시다시피 근대는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구분하고 남성에게 공적영역을 여성에게 사적영역을 할당하였습니다. 남성성=공적영역에 적합한 애티튜드, 여성성=사적영역에 어울리는 애티튜드로 분배되었구요. 그런데 문제는 여성이 공적영역, 즉 학교를 거쳐 사회에 진출하면서 발생합니다. 온통 남성의 문법만 존재했던 그곳에서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두 가지 방식이 존재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는 소위 ‘여성성’을 철저히 거세하여 상징남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방식입니다.

남장여자로 유명한 정신여고 출신의 김옥선 전 국회의원이 대표적입니다.

 

김옥선전의원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남녀공학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전 여성적인 것으로 보여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머리는 최대한 짧게 자르고 (제 뒷모습을 보고 “저 남자애는 꼭 여자애처럼 생겼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늘 바지만 입고 다녔고, 술, 담배, 음담패설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으며, ‘단칼’에 가까운 표정과 말투, 논리로 상대(주로 남성)를 제압했습니다.

남성 중심의 상징계에서 '나약한 여성'이라는 기표를 스스로 잘라내어 발언권을 얻으려 했던 처절한 시도였습니다. "나는 너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상징적 거세였다고도 말할 수 있고요.

 

다른 하나는 여성성과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자본화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실명을 거론하긴 힘들어도 우리 시대의 어떤 아이코닉한 어떤 여성 연극 배우나 특정 명문대 출신의 재원들 사이에서 흔히 발견되던 모습이죠. 그들은 세련된 교양과 우아한 여성미, 그리고 상대를 매료시키는 특유의 기운을 전략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남성 중심 사회의 높은 벽을 통과했습니다. 그들에게 '여성성'은 거추장스러운 굴레가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에 협상력을 높여주는 세련된 무기였던 셈입니다.

 

2. 박완서 소설 속의 ‘화냥기’들을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명동이라는 거리의 화냥기, 마담 그레이스의 화냥기, 이모의 화냥기, 엄마의 화냥기, 수연의 화냥기, 수희의 화냥기....

문제는 소설 속 이 화냥기들이 여성성을 자본화하는 것이라고 단정짓기도, 그렇다고 화냥기를 통제하려는 가부장제에 맞서는 주체들의 전복적 실천이라고 말하기도 좀 애매한 구석이 있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화냥기’는 분명 남성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관계를 열고, 때로는 여성에게 자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지영샘 말처럼 그것은 여성이 사회적 자본을 획득하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것은 결코 안정된 자본이 아닙니다. 그것은 언제든 휘발되고, 뜻대로 환전되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 자신을 더 깊은 결핍과 환멸 속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이모는 끝없이 남자를 고르지만 번번이 실속이 없고 엄마의 화냥기는 결국 파국을 촉진합니다. 마담 그레이스의 매혹조차 매번 다시 수행되어야 하는 불안정한 능력입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는 분명 자원이지만, 너무 쉽게 닳고 너무 쉽게 여성 자신을 소진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수연은 어떤가요?

수연의 ‘화냥기’는 이모나 엄마, 혹은 마담 그레이스와는 약간 결이 달라 보입니다. 그것은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관계를 통해 무엇을 얻어내기 위한 계산된 능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경계를 시험하고, 금기를 건드리고, 관계를 뒤틀어보려는 충동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섹슈얼리티는 종종 자기 내부의 어떤 균열과 흔들림에 직면합니다. 즉 그녀의 화냥기는 기존의 질서로부터 미끄러져 나가려는 도주선처럼 보이지만 매번 다시 포획되기도 하는 매우 불안정하고 잠정적인 도주선인 듯 보입니다.

 

전복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딘가 부족하고, 그렇다고 기존 질서에 완전히 포섭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그 어디쯤에 존재하는 수연의 ‘화냥기’,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수연의 그 미완의 움직임, 혹은 실패하는 탈주를 같이 목격하면서 응원하는 일일까요?

 

오늘은 여기까지 정리해보겠습니다. 지영샘 후기가 촉발시켜서 썼습니다. '꼬고무'처럼 누군가 또 이어가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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