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7장~9장, 질문과 메모 올려주세요
7장에서는 균류를 만납니다.
<나무: 삶과 죽음의 이야기>에서 나무와 공생하는 외생균근과 내생균근을 통해 만났던 균류를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식물을 생산자, 동물을 소비자, 균류를 분해자라고 말합니다. 균류는 그 분해의 힘으로 이 세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암석으로 뒤덮여 있던 지구 표면을 생물이 살 수 있는 흙으로 만든 것 역시 균류 덕분입니다. 조류와 균류의 공생체인 지의류가 그 일을 해냈다고 합니다. 저자들은 분해자로서의 균류에 대해 “물질의 윤회를 담당하고 있다”는 멋진 말로 정리를 해 줍니다. 공생의 대가이면서 물질 윤회의 매개자인 균류!, 정말 매혹적이지 않나요?^^
저는 몇 년 전부터 버섯사랑에 빠졌는데요. 숲에서 산책할 때 버섯을 뱔견하는 것이 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자주 비가 와서 대지가 축축해지고 기온이 높을 때면 숲 곳곳에서 버섯을 볼 수 있답니다. 우리가 숲에서 만나는 자실체가 있는 그물버섯, 광대버섯, 무당버섯 등의 대부분의 버섯은 담자균류에 속합니다. 동물괴 식물의 경우 성에 암, 수의 구별이 있는데요. 버섯은 그야말로 n개의 성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생명체입니다. 균류에는 암, 수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동식물의 정세포, 난세포처럼 형태와 기능이 다른 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담자균류는 교배형이 수백 수천가지라고 하는데요, 자신과 다른 교배형이면 어떤 교배형이든 교배가능하기 때문에 유전적 다양성이 엄청나게 확장될 수 있습니다. n개의 성이라는 말이 비유나 상징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지요. 반면 자낭균류의 경우는 +, - 두 개의 교배형만 있다고 합니다. 두 개의 교배형밖에 없는데도 암수라고 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 포자들의 모양과 기능이 똑같고 다만 유전자만 다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낭균류의 경우는 공기중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포자들이 떠다니고 있기 때문에 교배형이 단 둘 뿐이어도 자신과 다른 교배형을 만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또 자낭균류는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이 다 가능하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과 다른 교배형을 만나야 할 필요도 없고요. 그런데도 유성생식을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유전적 다양성이 확보되어 종의 지속이 가능하기 때문이겠지요?^^

8장, 햇빛의 변환에서는 식물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저는 8장에서 식물의 세대교번과 속씨식물의 중복수정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느라 좀 힘들었어요. <나무>를 읽으면서 양치식물의 세대교번에 대해 알게되어 기뻤는데, 양치식물만 그런 게 아니었다니!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아는 게 아니었습니다!ㅎㅎㅎ 생명의 세계는 참으로 놀랍네요. 그런데 식물 이야기를 하나 했더니 우리 저자들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 모두 태양이 길러낸 존재들이라는 큰 이야기로 확장해나갑니다. 그 과정이 아주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저주받은 역할’ 파트에서 저자들이 조르주 바타유의 <저주의 몫>(1949)과 종으로 횡으로 엮어내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결국 이 이야기는 지난 주 세미나에서 토론주제가 되었던 ‘자연선택’ 문제로 이어지는군요.^^

<저주의 몫>으로 번역되었다 한동안 절판이었던 책이 2022년에 <저주받은 몫>으로 번역이 되었군요!
9장에서 린 마굴리스는 진화론을 지지하면서도 다윈을 비판했던 새뮤얼 버틀러의 생각을 소개하면서 우리를 ‘선택’의 문제로 더 깊이 끌어들입니다. “다윈이 신의 목적이라는 목욕물을 내다버리면서 생명의 합목적성이라는 아기까지 버리고 말았다”는 버틀러의 이야기는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 같습니다. 저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버틀러는 라마르크의 획득형질을 지지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획득형질은 한 때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버려진 이론이었지만, 다시 ‘후성유전’으로 살아났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기계론과 목적론, 자연발생설과 설계론 등등 여러 주장들의 대결이 등장하는데, 철학이 그러하듯이 과학의 세계에서도 그 어떤 것도 완전히 버려지는 것은 없는 것 같군요. 우리의 저자들은 버틀러가 비판한 다윈의 기계론을 한 번 더 비틀어서 다윈의 자연선택은 설계론을 숨긴 것일 수도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주 셈나에서도 지난 주에 이슈가 되었던 문제들이 다시 한 번 등장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이 질문에 대해 각자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궁금합니다. 세미나를 마치기 전에 "생명은 ooo이다" 각자 한 문장을 생각해 오셔서 이야기 나누면 좋겠습니다.^^(아렘샘이 후기에서 말한 숙제입니다.ㅋㅋ)
메모와 질문은 토요일 12시까지 올려주셔요~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 136 |
나이듦대중지성_시즌2-1회 <돌봄, 동기화, 자유> 1회 공지
기린
|
2026.06.07
|
조회 74
|
기린 | 2026.06.07 | 74 |
| 135 |
2026 나이듦 대중지성 시즌1을 마치며
(1)
코난
|
2026.05.25
|
조회 73
|
코난 | 2026.05.25 | 73 |
| 134 |
나이듦 대중지성 1분기 미니 에세이데이 공지
(11)
기린
|
2026.05.15
|
조회 204
|
기린 | 2026.05.15 | 204 |
| 133 |
나이듦 대중지성 [죽음을 배우는 시간] 2회차 후기
(1)
베짱이
|
2026.05.14
|
조회 68
|
베짱이 | 2026.05.14 | 68 |
| 132 |
[죽음을 배우는 시간] 2회차 공지
자갈
|
2026.05.10
|
조회 101
|
자갈 | 2026.05.10 | 101 |
| 131 |
[죽음을 배우는 시간] 1회차 공지
서해
|
2026.04.26
|
조회 197
|
서해 | 2026.04.26 | 197 |
| 130 |
나이듦 대중지성 시즌 1 8회차 <몸의 일기> 후반부 후기
(2)
엄지
|
2026.04.26
|
조회 81
|
엄지 | 2026.04.26 | 81 |
| 129 |
나이듦대중지성 시즌1 8회차 세미나 <몸의 일기-2> 공지
기린
|
2026.04.19
|
조회 158
|
기린 | 2026.04.19 | 158 |
| 128 |
나이듦 대중지성 7회차 <몸의 일기> 전반부 후기
(2)
블루밍
|
2026.04.17
|
조회 111
|
블루밍 | 2026.04.17 | 111 |
| 127 |
나이듦대중지성 시즌1 7회차 세미나 <몸의 일기-1> 공지
자갈
|
2026.04.11
|
조회 205
|
자갈 | 2026.04.11 | 205 |
| 126 |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후반부 후기
(1)
머루
|
2026.04.08
|
조회 120
|
머루 | 2026.04.08 | 120 |
| 125 |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2회 공지
서해
|
2026.04.05
|
조회 172
|
서해 | 2026.04.05 | 172 |
8장 꽃의 설득: ‘사람들은 매년 가장 달고 수확량이 많은 종자를 선택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옥수수를 완전히 인간에 의존하는 식물로 만들어놓았다. 이제 옥수수는 사람이 손이나 농기계로 수확해서 껍질을 벗기고 씨를 심어주지 않으면 번식하지 못한다. 이러한 도움 없이는 섬유질 껍질 속에 파묻혀 있는 낟알이 싹을 틔울 수 없다.’ 이걸 조금 비틀어 생각하면 이제 몇몇 옥수수는 번식을 위해 스스로 섬유질 껍질 속에서 나올 필요가 없어졌고 심지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으로 많은 개체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옥수수는 인간을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한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산 주변의 이제 몇몇 식물들은 꿀을 찾는 인간들을 이용해 보다 손쉽게 번식에 성공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세상이 참 신기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9장 버틀러의 신성모독: ‘버틀러의 무의식 기억 이론은 모든 생물이 습관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 중 일부는 (무수히 반복함으로써) 진화 과정에서 생리적인 것으로 통합된다고 본다. 우리는 눈이 언제 처음 생겨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버틀러는 쓰고 있다. 미래의 어느 날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읽고 쓰는 법을 이미 학습한 상태일 것이고, 태어날 때부터 읽고 쓰는 법을 아는 사람도 종종 있을 거라고 버틀러는 말한다.’ 이게 참 허무맹랑한 소리인데, 우리는 분명히 물질과 세균의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이럴거 같은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셨는지요?
책전체: 그렇다면 생명은 무엇일까요? 저자들이 단골로 장의 마지막에 하던 질문입니다. ‘플라스틱도 생명이다'라는 문장을 긍정하는 맥락 어디쯤에 생명에 대한 설명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게는 그랬습니다.
9장의 마지막은 ‘인류의 절정기’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기술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은 종말이 아니라 힘을 비축하는 일시적인 고요다”
“지금은 인류의 절정기다. 바야흐로 지구는 씨앗을 뿌리려고 한다.”
저자들은 기술이 인류와 다른 생물들에게 해를 입히기도 하지만 앞으로 생물권의 주요 변화에서 선도역할을 할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공생물권도 생물권이라고 보는 저자들의 관점은
현재의 기후위기나 생태계 파괴 이슈에 대한 기술주의자들의 낙관론 선상에 있는데.
저는 원래 그런 의견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박테리아와 균류의 활약상을 알게 되니 상상을 좀 하게 됩니다.
플라스틱을 비롯해 인간들이 만들어낸 많은 폐기물들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등장한다거나 그것과 공생하는 생물이 등장하거나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생물로 진화한다거나…
인간이 개척하게될 미래상 보다는 그런 환경의 변화에 따라 진화하는 박테리아와 균류가 만들어낼 미래에 대해 기대가 생기기도 합니다.
생명은 자신을 초월한다. 박테리아와 균류는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은 ?
p.304 버틀러는 다윈이 “생물학에서 생명을 도려냈다.”고 빈정댔다. p.305 버틀러는 지각 있는 생명을, 작은 결정을 무수히 행하고 자신의 진화에서 부분적인 책임을 지는 존재로 묘사했다. 진화가 소박한 목적들로 이루어지는 종합적인 결과라는 버틀러의 관점(……) 버틀러의 논지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 하나는 생물체가 일종의 기억소로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구체화한다는 것이다. 버틀러에 따르면 생명은 자의식, 기억, 방향성, 설정된 목적을 부여받는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목적론적, 말하자면 살고자 분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버틀러는 다윈주의자들이 목적론(생명은 목적을 향해 스스로 행동한다)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신의 목적이라는 목욕물을 내다버리면서 생명의 합목적성이라는 아기까지 함께 버리고 말았다. p.306 모든 생물은 지각력이 있고 자기 생산을 지상 과제로 지니는 내적 목적이 있다.
→버틀러는 생명체가 수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살아남으려는 목적을 가진 존재임을 주장했습니다. 다윈주의적 진화론은 개체의 의도나 목적이 진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단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 중에서 환경에 더 잘 적응한 개체만이 살아남아 번식한다는 것입니다. 버틀러는 이러한 관점이 생명체에 내재된 목적성을 무시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마굴리스는 자연선택이 부적응한 개체를 환경에서 배제하는 역할은 하지만, 새로운 형질이나 종을 만들어내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다윈의 자연선택은 특정 형질을 가진 개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부적합한 개체를 배제하는 역할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마굴리스는 버틀러의 비판을 인용하여 자연선택이 생명 진화의 원동력이 아니라, 생명 진화에서 공생과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생명체가 단순한 유전자의 전달자가 아니라 주체적인 선택과 활동을 통해 진화해왔다는 자신의 '공생 진화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원래 독립된 박테리아였다가 다른 세포와 결합하여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진핵세포)를 만들어냈다는 이 이론은 새로운 종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통해 서서히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생을 통한 융합으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1. 식물이란 무엇인가
6장의 ‘동물이란 무엇인가’에서는 이동하고 감각하는 것을 동물의 고유성으로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만일 그렇게 규정하게 되면 세균이나 원생생물도 동물이 되고 마니까요. 대신 저자들은 동물은 동물의 생활사를 공유하는 존재들이라고 말합니다. “동물은 도시의 어느 컴컴한 술집에서든 달빛이 비치는 적도의 모래톱에서든 모두 동일한 생활사를 공유한다. 크기가 서로 다른 두 세포, 즉 난자와 정자가 만나 동물성의 과정이 시작된다. 정자와 난자가 하나의 수정란으로 합쳐지고 유사분열로 포배를 형성한다. 세포분열이 계속되어 수정란은 배가 되는 것이다. 배는 동물계와 식물계의 특성이며, 포배는 동물과 식물을 구분하는 특징이다. 식물의 배는 모계조직 안에 단단한 덩어리로 있지만, 동물의 포배는 대개 모계조직과 떨어져 물속에 존재하며 보통 속이 비어 있다. 동물의 배는 동물의 개체성을 보장한다.”(219쪽)
그렇다면 식물이란 무엇일까요? 7장에서 저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식물을 구별짓는 특징은 광합성 자체가 아니라 그들 모두 생활사 중 어느 단계에서는 포자(胞子)로부터 생장하고 다른 단계에서는 배(胚)로부터 생장한다는 점이다.”(273쪽) 사실 생각해보면 남세균이나 조류도 광합성을 하므로 식물의 특징을 광합성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식물이 포자의 단계(포자체)와 배의 단계(배우체)를 거친다는 것은 세대교번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저자들이 생각하는 식물의 특징은 세대교번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양치식물의 경우는 포자체-배우체를 반복하며 세대교번이 일어난다는 것이 이해가 쉽습니다. 배우체의 형태와 포자체의 형태 자체가 완전히 다르니까요. 그러나 겉씨식물과 속씨식물의 경우는 포자체 안에서 배우체 단계가 일어나다 보니 세대교번이라는 것이 직관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됩니다. 수백년 수천년을 사는 나무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일년초인 초본식물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그런데, 식물의 진화사에서 꽃을 피우는 초본 식물이 대형 초식동물의 창자에서 공진화한 원생생물과 세균과 함께 공진화하며 가장 마지막에 나온 존재라는 것도 참 재미있습니다.^^)
2. 개체성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다시 의문이 생깁니다. 6장의 인용문에서 동물의 배가 동물의 개체성을 보장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식물의 배는 식물의 개체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식물의 경우는 수정으로도 번식이 되지만 꺽꽂이로도 번식이 됩니다. 그러니 꺽꽂이로 새로운 개체가 만들어졌을 때 이것을 독립된 개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또 하나의 뿌리로부터 나온 숲도 있다고 하니 식물에게 개체성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균류도 마찬가지입니다. 균류는 무성생식으로도 유성생식으로도 번식하는데 무성생식으로 균사체가 생기면 그건 같은 개체일까요 아닐까요? 또 균사체는 위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계속 갈라지면서 뻗어나갑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하나의 균사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미국 오리건주의 잣뽕나무버섯의 경우 유전자 분석으로 수만 제곱킬로미터에 뻗어있는 균사체가 하나의 DNA라고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개체성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야말로 참으로 동물 중심적이지 않나요?^^ 그리고.. 이렇게 개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단지 발생과정에만 초점을 맞춘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3. 기계론과 목적론 혹은 자연선택
이 책은 생명에 대한 물활론 대 기계론의 대립을 제시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물활론은 불가사의한 생명의 원리가 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DNA의 발견은 기계론으로 생명을 이해하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았고, 그 성과 위에서 우리는 유전공학이나 생명공학의 기술 발달이 만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들은 “생명을 기계로 보는 것과 물질을 살아있다고 보는 것 모두 잘못된 것이 아닐까”(22쪽)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기계론은 너무나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이유 때문에, 물활론은 비과학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부한다“(23쪽)며 물질과 에너지의 창발적 작용으로서의 생명을 탐구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윈을 비판한 버틀러의 입장을 맨 마지막에 소개하는 것 또한 이와 관련되어 있다고 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린 마굴리스가 대결한 것은 다윈이 아니라 신다윈주의자이 아닐까 합니다. 생명의 본질을 DNA에서 찾는 신다윈주의자들의 입장을 기계론으로 보고 이의 대안으로 린 마굴리스는 공생과 협력, 가이아와 생물권 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계론과 물활론으로 시작된 글이 기계론과 목적론으로 귀결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자연선택에서 ‘자연’과 ‘선택’에 대한 입장과 관련되겠지요. 린 마굴리스는 신다윈주의자가 생각하는 ‘자연’은 (눈 먼) 신을 숨기고 있고, ‘선택’은 설계를 숨기고 있는 기계론이라고 보는 것 같습니다. 물론 린 마굴리스가 목적론을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이라는 것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 자신이 놓인 맥락 속에서 선택을 해나가는 구체적 존재들의 작용, 경쟁과 협력을 자연선택을 생각할 때 놓쳐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어쩌면 다윈이 제시한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는 여전히 정해진 답이 없는,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 속에 놓인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7장 ’어쩌면 수백만 년까지도 지구 환경은 기이한 변종이나 급속히 퍼져나가는 개척자, 기회주의적인 괴물을 용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생물은 번식의 한계에 직면할 것이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라 지구 전체의 생물과 함께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어떤 무지막지한 개체군도, 통계가 불가능한 ‘암적 존재’도 지구에서 자신의 질서를 발견한다. 성장하는 모든 개체군은 생물권의 기능에 통합되지 않으면 멸종의 길을 걷게 된다.‘ 저는 이전 글들에서 저자가 인류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해악에 대해 ’언젠가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균류가 타날 것이다‘라는 등 낙관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냥 ’뿌린 대로 거두리라. ‘라는 거였네요. 지구 자원 소비 수준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떠올랐습니다.
9장 세상을 설명하는 데 과학이 종교 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고 주장하는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과학자이니 당연할 듯도.) ’생명이 드러내는 사실, 즉 진화 이야기는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중략] 편협한 신화나 신앙을 요구하여 사람을 분열시키는 종교적 전통보다도 훨씬 설득력 있게 세계를 설명하게 되었다.‘ 뒤에서 ’인간이 대규모로 자신을 기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라는 것‘이라고 한 거에서도 종교에 대한 저자의 태도가 드러나는 거 같습니다. 저자가 얘기하는 진화의 과학적 증거는 인간도 생물계의 부분일 뿐이고, 협력과 공생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음을 드러내는 데 반해 특히 인간 중심/우월을 강조하는 종교일수록 고립과 독단으로 치닫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기세를 올리는 세상에서 진화의 의미를 공생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된 게 의미 있네요.
그리고, 마지막 절 소제목이 ’인류의 절정기‘입니다. 저는 이제 쇠퇴와 종말의 시기가 온다..라고 읽었는데. 어떻게들 생각하셨나요? ^^
**이번 분량은 읽기는 읽었는데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만 한 느낌입니다. 여러 지식이 결합된 단어와 문장들은 깊이 이해하기 어려워 작가의 뜻에 가 닿지 못했음을 알겠어요. 그리하여 질문사항은 너무 많으나 그런 단순한 질문은 이 자리에서는 합당치 못하지요. 따라서 책의 마지막 부분이라도 정확히 알고자 질문하니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일부 환경보호론자들의 종말론적 어조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지구의 기능에 한층 더 통합되고 있다. 비록 기술이 인류와 다른 생물들에게 해를 입히고 그들의 성장을 우롱한다 하더라도, 기술은 앞으로 일어날 생물권의 주요 변화에서 선도역할을 할 잠재력도 가지고 있다.(321쪽)
*기계는 인간의 생활을 위협하는 요소가 아니라 분리할 수 없는 자연의 연장이었다.(323쪽)
*호모사피엔스는 여러 누대에 거려 축적된 부를 소비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 지구의 리듬은 점점 최고조로 치닫는다. 우리의 창조적 파괴행위도 속도를 올린다. 그러나 자연은 끝나지 않으며, 지구가 구조를 요청하지도 않는다. 기술이 만들어낸 불협화음은 종말이 아니라 힘을 비축하는 일시적인 고요다.(326쪽)
*그리고 만원경은 초인간 생물의 복잡한 눈의 일부, 즉 렌즈인 셈이며, 초인간도 생물권의 한 기관이다.(327쪽)
*녹색 생태학의 관점에서 보면 첨단 기술과 지구 환경 변화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완벽하게 이치에 맞는 행동이다. 지금은 인류의 절정기이다. 바야흐로 지구는 씨앗을 뿌리려고 한다.(327쪽)
→1. 녹색 생태학의 관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326쪽에서 ‘녹색생태학이나 생태보호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깊이 파묻혀 있다’ 이런 문장이 있는데 이 문장을 보면 인간은 지구에서 그저 하찮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연결을 해도 잘 이해가 안되네요.
2. 위의 5개 인용 부분을 보면 작가는 인간의 기술을 긍정하는 쪽이고 현재 인간은 ‘창조적 파괴행위’로 불협화음이 있지만 이런 것들이 힘이 되어 기술은 결국 우리의 미래를 희망으로 이끌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제 독해가 맞나요?
3. 우리는 무생물에서 균으로 결국 인간으로 진화했는데 인간 다음은 뭐가 없을까요? 완전 신처럼 전지전능한 존재... 인간은 그대로 있고 기술을 이용해 거의 전지전능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논리는 현재도 실현되고 있습니다만... 이것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의 탄생이 가능할까요?
4. 이건 좀 뜬금없는 질문인데 기술의 발달로 요즘 태어나는 아기들은 태어날 때도 적정한 온도의 병원에서 태어나고, 여름에도 덥지 않고 겨울에도 춥지 않게 지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거의 바깥에서 생활을 하지 않고 집에서 주차장으로 어린이집이나 학교도 다 냉난방이 되니까 날씨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살게 됩니다. 3,40대 직장인들도 아침에 지하 주차장에서 회사 지하 주차장으로 사무실로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에 겨울에도 외투없이 그냥 다니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주팔자가 이제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장) 제목부터 매력적입니다. 지구라는 육체! 균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었네요. 2만 5천종이나 되는 지의류가 계를 초월한 공생으로 비약적으로 진화하고, 한 개체의 수명이 4천년에 달하는 것도 있다니, 놀라운 생명체인 것 같아요. 환각을 일으키는 균류, ‘윤회를 담당’하는 균류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네요.
균류는 지구라는 육체의 일부로, 다양한 지역, 척박한 장소에서도 살아갈 수 있고, ‘균류의 생활양식은 개체성에 대한 우리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독단적인지 경고’(263)해준다. ‘4억년 동안 균류는 열대에서 극지방에 이르는 전 지역에서 지칠 줄 모르는 재활용자였’고, ‘물질의 윤회를 담당’하고 있다.(263)
생물의 화합물을 순환시켜 주는 균류 덕분에 우리는 죽어서도 생물권에 의미있는 존재가 될 수 있군요. 살면서 만나는 곰팡이들을 다시 보게 될 것 같네요.
8장) 조르주 바타유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모든 경제는 광합성 생물과 태양에서 비롯된다.’는 태양의 경제가 재미있습니다. 태양과 식물에서 나온 에너지가 부(富)의 기초이고 사회는 필요보다 잉여에 의해 더 많이 좌우되는데, 잉여분을 어떻게 소비하거나 저축하는지에 따라 문화가 결정된다는...
(276) 식물이 없다면 대부분의 동물은 굶어죽을 것이다. 사실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도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모두 죽게 되어 있다. 묘지는 위대한 평등주의자이며, 우리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소유하고 있음을 일깨워준다.... 우리 몸의 원소는 원래 있었던 곳인 생물권으로 돌아간다.... 생물학적 현실인 태양의 경제에서 우리들 개개인은 모두 다음 세대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처분된다. 대부 받은 우리 몸의 탄소, 수소, 질소는 행물권 은행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모든 생물은 바타유가 “저주받은 몫”이라고 이름 붙인, 광합성에서 파생된 그 끊임없는 잉여분을 이용하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9장) 인간이 만든 기술은 생물권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요. 자연선택과 인위적 선택은 같은 걸까요, 다른 걸까요. 다윈에 대해 ‘생물학에서 생명을 도려냈다’고 빈정댄 버틀러의 주장은 매력적이네요. 기계론과 목적론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군요.
기후위기 국면에서 뭔가 위로를 받아도 되는 건지? 이건 잘 모르겠습니다.
(297) 자기 초월적인 생명은 결코 자신의 과거를 지우지 않는다. 사람은 동물이고 미생물이고 화학물질이다.... 우리가 선택 의지라고 느끼는 것을 모든 생물이 공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우리는 자연을 넘어설 수 없다. 자연 자체가 초월하기 때문이다. 자연은 우리로 끝나지 않으며 동물사회를 초월하여 가차없이 나아간다.... 실제로 사람들은 이미 인간 이상을 만들어냈다. 서로 의존하고 기술로 연결되는 초인류를 형성했다. 우리 각자가 구성체세포를 초월하는 것처럼 우리의 활동은 개인을 훨씬 초월하는 무엇인가를 향해 우리를 이끌고 있다... 인류는 사회를 새로운 차원의 유기체로 바꾸고 있다. 우리 개체군은 마치 지구 생명체의 뇌나 신경조직인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다. 더 많은 인구가 정착해 살면서 기술로 증대된 우리 인간의 지능은 지구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지구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다.
(305) 버틀러에 따르면 생명은 자의식, 기억, 방향성, 설정된 목적을 부여받는다.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목적론적, 말하자면 살고자 분투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버틀러는 다윈주의자들이 목적론을 놓쳤다고 주장했다. 다윈은 신의 목적이라는 목욕물을 내다버리면서 생명의 합목적성이라는 아기까지 함께 버리고 말았다.... 모든 생물은 지각력이 있고 자기 생산을 지상과제로 지니는 내적 목적이 있다. 어떤 생물이라도 다양한 수준에서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다.
생명은 변태다. 할아버지 육신에서 손주가 출현하는... 그래서 할아버지가 손주를 그렇게 예뻐하나 보다. ^^
P. 273, 17
조류 ( 藻類, Algae )
일반적으로 물속에서 살고 엽록소 a와 이산화 탄소를 이용한 광합성을 하면서 관다발이 없고, 뿌리·줄기·잎의 구분이 없으며 포자 혹은 이분법으로 번식하는 생물이다. 부영양화 조건에서 녹조나 적조를 발생시키기도 한다.
유의어인 해조(seaweed)가 해초(seagrass)와 혼용되는 경우가 많은데, 해초는 잘피처럼 바다에 뿌리내려 서식하는 종자식물을 일컫는 말이다. 그럼 해조는 식물이 아니라는 말이냐고 물을 수 있는데, 이는 해조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현재 생물학적 관점에서 김과 같은 홍조류와 회청조류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고, 다시마나 미역 같은 비원시색소체생물계에 속하는 조류들은 명백히 식물에 포함되지 않는다. 녹조류인 파래와 홍조류인 김의 관계는 균계인 버섯과 동물계인 인간의 관계보다도 생물학적으로 더 큰 차이가 있다. 심지어 갈조류인 다시마는 식물보다는 짚신벌레와 더 가깝다. 따라서 해조가 식물이냐는 질문에는, 아니라는 대답이 나온다.
한때 조류라는 용어가 하나의 생물학적 분류군을 일컫는 용어로 쓰였지만, 계통분류학이 발달하고 이들이 한 데 뭉뚱그려 모을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게 밝혀지면서 더 이상 정식으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단세포 조류도 있지만, 다세포 생물도 존재한다. 즉 조류를 과거처럼 같은 종류로 분류하면 동식물 및 진균류(버섯, 곰팡이)에 포함되지 않는 유일한 다세포생물이 되어 버린다. 왜냐면 대롱편모조식물(SAR 상군)이 조류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세포 조류에는 크게 홍조류(김, 우뭇가사리), 녹조류(파래, 매생이), 갈조류(다시마, 미역) 이렇게 3가지가 있는데 전부 동아시아에서는 두루 식재료로 사용해서 과학계가 아닌 실생활과 요리 계통에선 편의상 조류를 파기하지 않고 사용 중이다.
아주 예전, 생물을 간단히 동물, 식물 두 가지로만 나눌 때엔 조류 역시 식물에 포함되었다. 이후 원핵생물과 진핵생물을 따로 분류[3]하게 되면서, 조류에 포함되어있던 남조류는 남세균이라는 이름으로 원핵생물에 따로 편입되었다. 이후 진핵생물 중에서 동식물이 아닌 것들을 분류하기 위한 개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동식물도 아니고 균류[4]도 아닌 그 외 것들을 모아둔 원생생물이라는 개념이 생겨난다. 식물은 아닌데 어쨌건 광합성을 하기는 하는 조류 역시 원생생물 속 조류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게 된다. 하지만 이 원생생물도 '그외잡'이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묶여진 분류군이었기에 결국 생물학계에서 폐기된다.
( 그림 참조 )
P. 276, 1
바타유는 한 사회의 특성은 필요보다 잉여에 의해서 더 많이 좌우된다고 파악했다.
농사 또는 농업에 의한 잉여농산물때문에 생긴 불평등에 의해 인류사회의 혁명적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한 유발 하라리의 글이 생각납니다.
P. 302, 17
소박한 목적
P. 304, 2
지적 부채
다윈은 다윈의 시대보다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는 진화현상에 대한 생각들을 참조하여 오랜 여행 끝에 만들어진 자신의 관찰결과 그리고 그 이후의 연구들을 집대성하여 진화현상에 관한 생각들을 Descent with modification(변이를 수반한 유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고 이 생각을 받아 들인 허버트 스펜서는 이에 진보라는 생각을 도입하여 진화( evolution )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작가들은 새뮤얼 버틀러의 '생명의 합목적성'을 중시하고 이를 자신들의 생명권에 관련지어서 길게 설명하였습니다. 이 긴 글들은 합목적성 편집이기도 합니다.
P. 310, 15
근육기억
근육은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근육에는 운동뉴런만 연결되어 있고 기억뉴런이 없어 뇌에 기록된 기억뉴론의 동작들을 운동뉴런을 통해 전달받아 수동적으로 동작할 뿐입니다.
( 그림 참조 )
생명이란
생명을 정의하려면 생명의 조건 5가지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어 생명은 OOO이다라고 정의형 서술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OOO한 특성이 있다라고 서술을 해야 할 듯합니다.
생명의 시작은 ( 열역학법칙을 거스런 ) 우연이지만 생명의 끝 ( 죽음 )은 필연이다.
P255 '땅에서는 균류가 생물권의 쓰레기 처리를 대부분 도맡아 한다. ~ 지구에서 쓰레기는 밖으로 배출되지 않고 주변 어딘가에 쌓인다. 인간은 이제야 4억 년 전에 균류가 터득했던 위생적인 효율성 수준에 접근해가고 있다. 균류는 쓰레기를 내다버리지 않고 재활용한다. 균류는 세균을 끌어들여 탄소와 질소, 인 등을 재활용한다. 동식물이 우세한 대륙에서 그들은 전 지구적인 자기 생산성을 건조한 육지로 확장하며 지구 표면을 영원히 변화시키고 있다.'
결국 지구를 지속시키는 최종 열쇠는 균류의 손에 달려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벌써 거의 20년 전(2008 개봉)에 봤던 '월E' 라는 디즈니 PIXAR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폐허가 된 지구, 거기서 쓰레기를 청소하는 로봇 월E. 영화의 영상에서 폐허라 함은 마르고 딱딱한 쓰레기산과 온통 메마른 먼지로 뒤덮임 뿐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지구에 식물이 있는지, 식물을 찾으러 온 이브라는 로봇이 나타나지요. 이브는 결국 식물을 찾았고 이브를 통해 지구로 귀환하려는 목표를 갖고 돌아온다는.
그 영화는 쓰레기 청소부인 균류의 존재를 알았을까요. 아마 지금도 어느 나라 어느 국책연구소에선 새로운 균류를 찾고 있거나, 새로운 균류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을 거 같습니다.
환경운동가인 툰베리의 활동을 보여주는 영상에서 영국인가 어느 유럽나라에서 배출되는 CO2 를 받아 모아서 대기로 내보내지 않고, 그걸 새롭게 다른 걸로 전화시키는 아주 거대한 장치가 있는 걸 봤습니다. 이미 그런 것들이 실행이 되고 있으니 언젠가 그런 고마운 균류가 탄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게 자연발생적이면 순리대로 복원이 되겠지만, 정말 인간이 조작해낸 거라면 또다른 어떤 위험이 뒤따르지 않을까 염려되는 부분이기도 할 거 같습니다. 자연발생적인 균류를 기대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 누가 좀 빨리 만들어줬으면 좋겠단 조바심이 생기네요.
저는 생명은 마르지 않는 것이라고... (P263 균류는 모험적인 개척자였고 건조에 잘 견디는 저항가라고 하긴 합니다만, 아직은 와닿지는 않아요)
7-9장 요약입니다
질문 편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