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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nnel>
		<title>나이듦연구소</title>
		<link>https://naidum.org</link>
		<description>다른 노년의 탄생</description>
		
				<item>
			<title><![CDATA[[장자, 이야기와 글쓰기] 남의 글을 잘 보면, 자기 글도 잘 쓴다]]></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9]]></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7px;"><strong>1. 우리가 쓰려는 글의 형식과 분량</strong></span></p>
<p> </p>
<p>지난 주 세미나 중간에 해정샘이 제 이야기를 요약해서 딱 요렇게 카톡에 올려놓으셨지요.</p>
<p> </p>
<p><img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4/202606/6a2c8c13859155350693.png" alt="" /></p>
<p> </p>
<p>그리고 지금 이 시간 기준, 두 분이 올리셨어요. (얼릉얼릉)</p>
<p> </p>
<p><span style="font-size:17px;"><strong>2. 좋은 글은 어떻게 생산되나?</strong></span></p>
<p> </p>
<p>자, 글쓰기와 관련하여서는 수없이 많은 담론이 있지만</p>
<p>아무튼 여기서 제가 딱 한가지만 이야기하자면 그건, <strong><span style="color:#ff0000;">시간을 들여야 한다</span></strong>, 는 것입니다. </p>
<p>쓰고, 고치고, 다시 쓰고 뒤집고, 또 다시 쓰고 줄이고, 또또 다시 쓰고 바꾸고........ 이것을 '토 나올 때까지' 해야 합니다.</p>
<p> </p>
<p>그래서 보통 글은 주관적으로 만족해서가 아니라</p>
<p>죽을 것 같아서 마감하거나</p>
<p>마감시간이 되어서 종료됩니다. </p>
<p> </p>
<p>휘리릭 생각나는대로,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쓰시면 아니됩나이다.</p>
<p>"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 만든 시크릿가든 현빈의 추리닝같이</p>
<p>그렇게 <span style="color:#ff0000;"><strong>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strong> </span>써야 합니다. ㅎㅎ</p>
<p> </p>
<p><span style="font-size:17px;"><strong>3. 피드백이란 무엇인가</strong></span></p>
<p> </p>
<p>그리고 하나 더,</p>
<p>다른 사람의 글을 잘 볼 수 있으면 자기 글도 잘 쓰게 됩니다.</p>
<p>그러니까 글에 대한, 좋은 글에 대한 안목을 높여야 하는 거지요.</p>
<p> </p>
<p>다행히 이번에 우리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전원의 전원에 대한 피드백을 합니다.</p>
<p>그런데 그냥 감상을 이야기하지 않기 위해서</p>
<p>자기가 생각하는<span style="color:#ff0000;"><strong> 피드백의 기준</strong></span>같은 것을 먼저 세워보세요.</p>
<p> </p>
<p>예를 들면, 저 같으면</p>
<p>1.주제가 선명한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한문장으로 요약해봐")</p>
<p>2. 구조가 잘 짜였나? </p>
<p>         -도입/전개/결론의 흐름이 매끄러운가</p>
<p>         -중언부언이 없는가</p>
<p>         -논리적 비약은 없는가 (설득력이 있는가)</p>
<p>3. 문장의 호흡과 리듬은 어떤가?</p>
<p>4. 구체성이 있는가?</p>
<p>5. 독창성이 있는가?</p>
<p> </p>
<p>정도를 볼 것 같습니다.</p>
<p> </p>
<p>혹은  1. 이 글의 장점</p>
<p>         2. 이 글의 약점</p>
<p>         3. 이렇게 다시 써보면 좋을 것 같다</p>
<p>이런 식으로 접근해도 되겠죠?</p>
<p> </p>
<p>물론 다른 방식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에를 들면 7~8개의 항목에 5점 기준 별점으로? ㅋㅋ)</p>
<p>자기가 글 쓸 때처럼 다른 사람의 글도 정성껏 읽어옵시다</p>
<p> </p>
<p> </p>
<p> </p>]]></description>
			<author><![CDATA[문탁]]></author>
			<pubDate>Sat, 13 Jun 2026 07:59:0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4"><![CDATA[양생프로젝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장자, 이야기와 글쓰기] 2주차 소요유 칼럼]]></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8]]></link>
			<description><![CDATA[<p>여기에 새로 올리면 되겠죵?</p>]]></description>
			<author><![CDATA[해정]]></author>
			<pubDate>Fri, 12 Jun 2026 15:05:29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4"><![CDATA[양생프로젝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lt;돌봄, 동기화, 자유&gt; 1회 후기]]></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7]]></link>
			<description><![CDATA[<p> 나이듦에서 돌봄 주제로 넘어온 대중지성 시즌2가 시작되었다. 이번 시즌에 새로 합류한 김은영님, 마음정원님, 유유님은 각각 돌봄과 관련해서 연관이 많은 분들로 보였다. 은영님은 현재 보건소에서 행정업무쪽을 하고 있는데, 보건소라는 공간의 특성상 돌봄과 연관된 일이 많이 다룰 것이다. 마음정원님은 상담심리쪽 일을 오래 하시고 지금은 현역에서 물러나 공부하러 오신 경우다. 유유님은 재작년에 돌봄 주제로 함께 공부했던 터라 컴백이 더 반가웠다. 그리고 마리님, 엄지님, 소요유님이 모였으니 돌봄의 경험이나 생각하는 바에 대한 이야기가 더 풍성하겠다는 기대감도 상승했다.</p>
<p> </p>
<p> 첫 세미나는 『돌봄, 동기화, 자유』 1부를 읽고 해 온 메모를 중심으로 했다. 첫 번째로 메모를 읽은 엄지님은 돌봄이란 주제가 선뜻 다가오지 않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낯섬에서 벗어나 책 속으로 푹 빠져드는 경험을 밝혔다. 일본의 인지지하증 전담 시설인 ‘요리아이의 숲’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글쓴이의 풍부한 현장경험 덕분이었다.</p>
<p> </p>
<p> 이 시설에서는 인지저하증이 진행중인 어르신과 감각을 맞추는 것을 ‘동기화’라고 한다. 글쓴이는 동기화란 “동조하다, 타이밍을 맞추다, 동시에 일어나다”라고 설명하며, 덧붙여 “돌봄에서 동기화란 둘이 함께 지금 여기를 인식하는 것”(114) 이라고 정의한다. 돌봄을 하는 이나 받는 이 사이에 벌어지는 수많은 변수를 헤아려 그 순간에 적절하게 대응할 때 동기화된다는 것이다. 4장 &lt;시간과 장소, 우리들&gt;에서 나온 에피소드들은 인지저하증 속에 살면서 ‘자기다움’이 어떻게 드러나고 그것에 익숙해지는가 하면, 또 새롭게 습득하게 된다는 점에서 노쇠의 세계를 “몸이 점점 자유롭지 않게 되면서 사회의 개념적인 것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과정이 늙는 것”(65)으로 정의하는 글쓴이의 사유를 구체적으로 맛 볼 수 있었다. 인지저하증의 상태를 사회적인 규범에서 벗어나 자기다움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인식에 대해서 다들 놀랐다. 인지저하증과 자유는 좀처럼 연결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p>
<p> </p>
<p> 세미나 책을 읽고 자신과 부모님 사이의 돌봄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보청기를 자주 빼고 지내는 어머니를 답답해하며 끼시라고 채근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분, 시아버지가 알콜성치매 상태 진단을 받은 후 가족과 의견이 달라서 곤란했던 경험, 90이 넘으신 어머니의 수면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했던 자신이 떠올랐다는 분, 현재 돌봄 시설을 운영 중인 분이 전해 준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부모님과 신체적 접촉이 거의 없었다는 분은 이번 책을 읽고 몸을 만지는 일을 시도해 보고 싶다는 의견도 있었다. 돌봄은 받는 이나 하는 이나 간에 더 많은 경험들이 공유되어서 돌봄에 대한 인식에 더 많은 전환이 일어났으면 좋겠다.</p>]]></description>
			<author><![CDATA[기린]]></author>
			<pubDate>Fri, 12 Jun 2026 11:54:5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10"><![CDATA[나이듦대중지성]]></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세계 도시 정책 동향: 노인 주거 정책 - 서울연구원]]></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6]]></link>
			<description><![CDATA[<p>2026년 5월 서울연구원이 발행한 세계의 노년주거 연구자료입니다.</p>
<p> </p>
<p>     [심층리포트]</p>
<ul>
	<li class="p1">초고령사회 일본의 노인 대상 주거정책과 시사점</li>
</ul>
<p>    [정책 돋보기]</p>
<ul>
	<li class="p1">보스턴시 | 고령자 주거 안정을 위한 일시 임대료 보조정책</li>
	<li class="p1">상하이시 | 민간 • 준공공 협력으로 노인주거 안정 임대시장 육성</li>
</ul>
<p> </p>
<p><a href="https://www.si.re.kr/atch/filePreview.do?cnncSn=2606020005&amp;cnncTy=bbs&amp;ordr=1">자료 다운로드 링크</a></p>]]></description>
			<author><![CDATA[나이듦연구소]]></author>
			<pubDate>Wed, 10 Jun 2026 15:50:5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1"><![CDATA[통계]]></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장자, 이야기와 글쓰기] 1주차 후기_소요적 읽기]]></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5]]></link>
			<description><![CDATA[<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장자와 글쓰기’의 첫 번째 세미나가 끝났다. 그 전에 우리는 석 달동안 아침 6시부터 30분간 &lt;장자&gt;와 &lt;노자&gt;를 낭송하는 시간을 가졌다. 낭송의 시간을 통과한 후에 우리는 ‘장자, 이야기와 글쓰기’ 앞에 섰다. </p>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작년에 처음 접한 동양고전은 나에게 아리송한 존재였다. &lt;계사전&gt;, &lt;장재집&gt;, &lt;기학&gt;은 읽었으되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들이다. 꼼꼼히 읽으려고 해도 구절이나 단락 사이가 말도 안 되게 띄엄띄엄해서 촘촘하게 읽을 수가 없었다. 동양고전으로 에세이를 쓰는 건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그래도 동양고전과 친해져보고 싶었다. 올해 1년짜리 세미나로 ‘장자, 이야기와 글쓰기’와 ‘박완서 다시 읽기’가 오픈되었을 때 고민하다가 ‘장자, 이야기와 글쓰기’를 선택한 이유이다.</p>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3월부터 시작된 낭송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프로그램 오픈 전에는 ‘낭송으로 하루에 얼마나 읽겠어? 낭송으로 읽은 분량만큼 매일매일 꼭 복습하리라’고 다짐했는데 웬걸....원문과 해설 부분은 다 빼놓고 번역문만 홀랑 낭송하니 하루에 4-50페이지씩 쭉쭉 진도가 나갔다. 첫날 나는 원문과 해설까지 읽으며 복습을 해보려고 했으나...이거 가능한 걸까....찝찝한 마음으로 복습을 하다말다 하면서 한 달 정도 보내고 난 후엔 복습을 포기했다. 그 뒤론 그냥 마음 편하게 부지런히 새벽에 일어나 낭송 시간 중의 듣고 읽기에만 집중했다.</p>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그래도 낭송이 끝나갈 무렵엔 &lt;장자&gt;에 한 걸음 정도는 가까워져 있었다. 그 익숙함을 느꼈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동양고전이 나에게 그토록 난해한 존재였던 것은, 글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 때문일지도 모른다는...&lt;계사전&gt;이며 &lt;장자&gt;, &lt;도덕경&gt;은 지금까지 읽어왔던 서양 철학 기반의 텍스트와는 논리가 전개되는 방식이 전혀 다르고 글의 구성도 전혀 다르지 않은가. 그런 동양고전을 가지고 늘 그래왔듯이 나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독해를 하려고 하니 잘 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그러면 &lt;장자&gt;는 어떻게 독해해야 하는 것일까.</p>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장자, 이야기와 글쓰기'의 첫 번째 세미나는 &lt;장자&gt; 내편 중 {소요유}에 대한 것이다. {소요유}를 반복해서 읽으면서 소요와 방황은 목적지와 방향을 정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란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세미나 시간에 문탁 선생님이 소요를 팀 잉골드의 &lt;선의 인류학&gt;과 연결시켰을 때는 너무 재미있었다. 근대 사회 이전에 삶은 선을 따라가며 장소를 만드는 행위였다. 그런 삶은 근대를 통과하면서 고정된 장소로 구겨져 들어가 점이 되었고, 선은 장소와 장소를 잇는 직선으로만 남았다. 오늘날 방황의 정의는 그러한 직선의 개념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이리저리 헤매며 돌아다님’,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 하지만 팀 잉골드는 방향이 없음이야말로 선을 따라가는 삶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정해진 목적지 없이 환경에 반응하며 구불구불 이어가는 삶. 장자의 소요는 팀 잉골드가 말하는 그러한 삶의 방식과 맞닿아 있다.</p>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낭송은 읽기가 소요와 만났을 때 나타난 읽기의 한 가지 방식이다. 우리는 낭송을 하면서 &lt;장자&gt; 속에 등장하는 온갖 사물과 인물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미처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들과 관계를 맺고 또 그 속의 어딘가에 우리 자신을 자리매김했을 지도 모른다. 저자의 의도와 텍스트의 논리를 촘촘하게 이해하겠다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직선적 읽기는 &lt;장자&gt;를 풍부하게 읽어내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닐까.</p>
<p class="p1"><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장자, 이야기와 글쓰기'를 통해서 나는 낭송과는 다른, 새로운 소요적 읽기를 연습하려 한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단어의 의미를 고민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연결하려 애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한 채 엄청 ‘헤맬’ 것이다. 그래도 어쩌면 &lt;장자&gt; 속의 방황이 조금은 덜 괴롭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p>]]></description>
			<author><![CDATA[해정]]></author>
			<pubDate>Tue, 09 Jun 2026 20:51:34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4"><![CDATA[양생프로젝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이듦대중지성_시즌2-1회 &lt;돌봄, 동기화, 자유&gt; 1회 공지]]></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4]]></link>
			<description><![CDATA[<p>나이듦의 주제를 이어 돌봄과 관련하여 질문을 이어가며 생각을 넓혀볼 시즌2.</p>
<p>첫 책은 &lt;돌봄, 동기화, 자유&gt; 입니다.</p>
<p>저자는 시작하는 말에서 스물 세살  첫 직장인 특별양호노인홈에서 겪은 일화로 시작합니다. </p>
<p>신출내기의 경험이 쌓일수록 생각이 많아진 저자</p>
<p> </p>
<p style="padding-left:80px;"><span style="color:#0000ff;">"어르신 한 사람 한 사람의 느낌에 내 느낌을 동기화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오히려 어르신과 제대로 동기화할 수 없을 때, 더 이상 손 쓸 수단이 없어졌을 때야말로 자유롭게 해방되었습니다. 어르신과 나, 두 사람의 ‘바람’이 성취되지 않을 때, 그 너머에서 ‘해주다’와 ‘받다’를 뛰어넘어 서로 돌보는 상황이 태어나는지도 모릅니다." (10)</span></p>
<p> </p>
<p>저자가 말하는 '동기화'는 돌봄과 자유 그 사이에서 각자의 체감에 의존하는 '나'가 상대가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깨달아가며 두 사람의 나이면서 서로 감각을 맞춰 나가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그러면서도 순조롭게 동기화에 이르지 않을 때 왠지 안도감이 든다고 합니다. 동기화가 목적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저자의 미덕이 빛나는 부분이었습니다. </p>
<p> </p>
<p>1회 세미나는 1부 &lt;자유롭지 않은 몸끼리 동기화하다&gt;를 읽고 진행합니다.</p>
<p> </p>
<ol>
	<li>1부에 나오는 인지저하증이 진행되는 가운데 살아가는 어르신의 케이스 중 인상적인 것과 그 까닭을 이야기 나눠 봅시다.</li>
	<li>이번 텍스트를 통해 인지저하증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봅시다.</li>
	<li>돌봄과 자유 사이에 균형점을 찾기 위한 동기화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태도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봅시다.</li>
</ol>
<p> </p>
<p>이 외에도 각자 읽으면서 떠올리게 된 질문을 바탕으로 메모를 하시는 것도 권합니다^^</p>
<p> </p>
<p>화요일 저녁 8시 1회 세미나에서 뵙겠습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기린]]></author>
			<pubDate>Sun, 07 Jun 2026 22:03:5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10"><![CDATA[나이듦대중지성]]></category>
		</item>
				<item>
			<title><![CDATA[&lt;10회 저문날의 삽화1~5 후기&gt;]]></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3]]></link>
			<description><![CDATA[<p>6월 3일 전국지방선거일, 휴일을 맞아 &lt;박완서 읽기&gt;세미나는 오프모임으로 진행되었다. 줌에서 화면으로만 보던 얼굴들을 실제로 뵈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세미나는 오프로는 처음 뵙는거니만큼 서로의 간단한 소개로 시작했다. 반가움을 뒤로 하고 C조의 메모로 들어갔다. </p>
<p> </p>
<p>멀리 미국에서 접속하신 해야님 먼저 읽었다. 해야님은 삽화 3 중에</p>
<p>"나만큼 너그럽고 인정 많은 사람도 흔치 않을 거라는 자기 황홀이 즉흥적으로 장황한 미사여구를 늘어놓게 했다."</p>
<p>를 씨앗문장으로 꼽고 화자의 "베푸는" 점에 대해 짚어주었다. 이러한 위치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는 은근한 자기 포장에서 기인했고 자기황홀이라는 시혜를 베푸는 데까지 갔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화자의 자기기만과 허위 의식은 만수네 분녀에게 보낸 편지 속의 문장들로 표현되었다. 자신의 말로 인해 빚어진 사건을 만수네의 파렴치하고  뻔뻔한 가난의 밑낯으로 치부해버린다. 그 속내가 단 사흘만에 까발려지자 만수네는 편지를 찢어버리고 가버린다. 방 위에 남아있는 찢어진 편지들은 "예리한 사금파리가 되어", 화자의 업이 되어 화자에게 돌아왔다.</p>
<p> </p>
<p>나는 분녀에게 갖고 있던 허위의식이 도자기를 만드는 딸에게도 미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화자와 딸과의 관계는 세미나에서 많이 이야기 못했는데, 나는 자신을 '사기장이'라고 스스로 부르는 딸에게 더 눈길이 갔다. 허위 의식을 가지고 있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그런가, 왜 자신의 도예 작품들이 조금만 어긋(?)나도 신들린 것처럼 부수는 모습이 지금 우리 시대 청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다.</p>
<p> </p>
<p>또 다른 허위 의식은 삽화 1에 나오는 화자부부에도 적용된다. 화자는 남편의 친구 아들 영택을 양자로 받아들이지만 계속 말할 수 없는 껄끄러움이 있었다. 고해실에서 고백하려 해도 자신의 밑바닥 허위 의식의 불편함을 내비치지 못했다. 남편과 영택이의 친밀한 부자 사이도 마뜩찮다. 영택이가 남편의 진짜 아들이 아니냐면서 지독한 의심한다. 나는 이 부분이 상당히 지질해 보였는데, 그 시대의 여자들의 한계였을까. '왜 그렇게 남편과 영택의 관계를 시기했을까?'  반면 남편은 영택이 불온 서적을 읽고 그런 친구들을 자신의 집안에 들였다는 사실로 분노해 영택을 내친다. 환대의 마음으로 데려다 키웠는데 이렇게 갚다니. 화자와 영택의 관계, 남편과 영택의 관계, 다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딱 그 만큼의 관계로 마무리됐다. 이 지점에서 '혈연 가족'은 무엇일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혈통주의는 무엇일지? 짐작하게 해준다.</p>
<p> </p>
<p>삽화 1, 2는 운동권에 참여했던 아들과 운동권인 남편이 등장한다. 그래서 세미나에서도 운동권의 남자들의 권위적인 면과 허위 의식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특히 삽화2의 운동권 남편 중에 제일 어이없었던 부분은 판사, 의사들도 처가 덕을 보는데 왜 더 중요한 일을 하는 자신은 처가 덕을 보면 안되느냐는 지점이었다. 밖에서는 권위적 사회와 싸우면서 집안에서는 본인도 권위적으로 자신의 아내를 잡는 모습은 아이러니였다. 그와 관련된 많은 간증이 있었다. </p>
<p> </p>
<p>그밖에도 삽화 4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마이카 시대, 자동차의 등장에 대해서..특히</p>
<p>"건조하기 전의 맏물 고추처럼 순전한 빨간 빛깔의 르망과 짙은 회색의 스텔라, 군청색의 프레스토 그리고 흰색 맵시가 길에서 비켜나 송림 사이에 머리를 처박고 정차해 있었다."</p>
<p>라는 부분에서 희미해진 기억의 차들을 소환해주며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다. 유유샘은 삽화 4에서 자신의 지난날을 회상했다. 또 삽화 2가 재미있었다고 많은 분들이 소감을 밝혀주었다.</p>
<p> </p>
<p>은사자님은 삽화 5를 이야기 해주셨다. 아직도 '또각구두'를 신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  남은 가족들이 순대로 죽기를 바라는 아내의 소원. 그러나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식을 먼저 보내 순서껏 죽지 못한 아내 집안의 내력 덕에 생긴 아내의 소원은 무참히 깨진다. 은사자님은 이 부분을 현진건의 &lt;운수좋은 날&gt;처럼 '예감-예감의 실현'이라는 구조라고 알려주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이 보내오는 신호들은 허무와 조소와 쇠락과 탄식이지만 그 신호들은 푸르름과 온갖 색깔의 현란함 사이에 있기도 하다. 이 부분에선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짚어주었다. </p>
<p> </p>
<p>일단 여기까지 기억나는 대로 정리했어요. 나머지는 댓글로 부탁드려요~~~</p>
<p> </p>]]></description>
			<author><![CDATA[단순삶]]></author>
			<pubDate>Sat, 06 Jun 2026 12:30:5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5"><![CDATA[집중탐구학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박완서읽기 오프세미나의 풍경]]></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2]]></link>
			<description><![CDATA[<p>총 20회의 세미나, 박완서 작가의 장편 완독^^ 한 달에 두번 목요일 밤 가열차게 세 시간을 넘기는 줌 세미나~~</p>
<p>우리의 세미나를 소개하는 말은 이렇게 남다릅니다.</p>
<p>그 중에 딱 두번 오프로 진행되는 세미나 일정 중 첫번째 오프 세미나가 6월 3일 지방선거 휴일을 맞아 열렸습니다.</p>
<p>오전 10시 나이듦연구소 공간에 모였습니다.</p>
<p> </p>
<p><img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6/6a2236b84db827401106.jpg" alt="" /></p>
<p><img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6/6a2236ce382162628202.jpg" alt="" width="721" height="541" /></p>
<p>미국에서 줌으로 접속한 해성님, 부산에서 접속한 은사자님, 경기도에서 접속한 평등님, 그리고 손녀 돌이라 불가피하게 참석을 못한 별장별빛님.</p>
<p>그리고 오프에 모인 16명의 회원들입니다~~ 참, 무이님은 아직 산티아고를 걷고 있느라 결석 중입니다.</p>
<p>이번 회차에 읽은 &lt;저문 날의 삽화&gt; 1-5까지를 읽은 후 세미나에서 오고 간 내용은 3조 메모 회원님들이 꼼꼼하게 후기 올려 주실거고요.</p>
<p>전 반장으로서 오프 세미나의 후끈한 열기를 사진으로 전해드립니다^^</p>
<p> </p>
<p><img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6/6a2237e6ca3205607303.jpg" alt="" /></p>
<p> </p>
<p><img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6/6a2238038cb4a1953116.jpg" alt="" /></p>
<p>박완서 작가의 필력에 대한 감탄을 연발하면서 세미나를 마치고 회원 분들이 싸온 간식과 파랑튜터님이 쏘신 김밥과 연구소에서 준비한 중국음식과 맥주를 푸짐하게 펼쳐두고 냠냠, 맛있는 음식을 공부하는 친구들과 함께 먹는 재미는 오프 세미나가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입니다~~</p>
<p> </p>
<p>이제 박완서 읽기 세미나도 후반부로 접어 들었습니다^^</p>
<p>남은 장편 다~~ 읽고 12월 오프 세미나때 또 재밌는 시간을 누려 봅시다^^</p>
<p>세미나 내내 내년 공부 커리를 끝없이 소개하던 문탁 튜터님의 공부 열정에 호응하던(?) 여러분의 반짝이는 눈빛으로 남은 세미나도 흥미진진하게 나아가 봅시다요^^</p>]]></description>
			<author><![CDATA[기린]]></author>
			<pubDate>Fri, 05 Jun 2026 11:50:0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5"><![CDATA[집중탐구학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인 고령자 가구의 자발적 상호돌봄 제도화를 위한 입법·정책 과제 - 국회입법조사처]]></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1]]></link>
			<description><![CDATA[<h4 class="vw-ti">1인 고령자 가구의 자발적 상호돌봄 제도화를 위한 입법·정책 과제</h4>
<p>-김주경,허민숙,이윤경,한진옥</p>
<p>Ⅰ. 왜 1인 고령자 가구에 주목해야 하는가<br />
  1. 한국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와 그 이면의 그림자<br />
  2. ‘가족 기반 돌봄’의 약화<br />
  3. 세대구성의 변화와 동반자 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br />
  4. 연구 목적과 주요 내용<br />
<br />
Ⅱ. 1인 고령자 가구의 건강 실태와 돌봄 공백<br />
  1. 1인 고령자 가구의 취약성: 건강문제와 복지공백을 중심으로<br />
   가. 사회적 고립, 정신건강에 취약한 1인 고령자 가구<br />
   나. 의료적 위기 상황과 질병기 돌봄에 취약한 1인 고령자 가구<br />
   다. 1인 고령자 가구의 경제·주거환경의 취약성<br />
  2. 1인 고령자 가구 지원 정책의 한계와 대안<br />
<br />
Ⅲ. 외국의 생활동반자법 사례 및 건강 영향 분석<br />
  1. 프랑스(PACS): 시민연대계약과 사회적 고립 완화 효과<br />
   가. 제도의 보편화와 고령층 이용 추이<br />
   나. 사회적 고립 해소와 정신건강 증진 효과<br />
   다. 질병기 돌봄의 안전망<br />
  2. 독일: 공적 건강보험 연계를 통한 의료 빈곤의 구조적 해소<br />
   가. 제도의 특징: 가족보험의 적용<br />
   나. 예방 의학적 성과<br />
   다. 소결<br />
  3. 미국의 등록동반자 의료 결정권 및 돌봄 휴가 보장<br />
   가. 의료 결정권과 면회권: 환자 권리 표준의 변화와 심리적 안정<br />
   나. 가족의료휴가(PFL)의 확장과 ‘내 집에서 나이들기(Aging in Place)’ 성과<br />
   다. 소결: 법적 인정, 위기 상황의 안전망<br />
<br />
Ⅳ. 생활동반자법 발의 현황과 쟁점<br />
  1. 역대 국회에서의 입법 시도<br />
   가. 제19대 국회: 조직적 저항과 입법의 마비<br />
   나. 제20대 국회: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유예된 입법과제<br />
   다. 제21대 국회: 최초 발의와 프레임의 고착화<br />
   라. 제22대 국회: 재발의 및 구 발의안과의 비교<br />
  2. 생활동반자법 논의의 주요 쟁점과 한계<br />
   가. 제도적 쟁점: 기존 법체계와의 정합성 문제<br />
   나. 사회적 쟁점: 가치 갈등에 따른 입법 지연과 정치적 역학<br />
   다. 행정부의 관망과 정책 로드맵의 부재<br />
<br />
Ⅴ. 개별법 개정을 통한 자발적 상호돌봄 제도화 방안<br />
  1. 의료 결정권 및 면회권 보장을 위한 「의료법」 개정<br />
  2. 돌봄과 사회적 고립: ‘내 집에서 나이들기’를 위한 제도 기반<br />
   가.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돌봄 휴가 대상의 현실화<br />
   나. 「노인장기요양보험법」 개정: 비혈연 돌봄의 제도 편입<br />
  3. 주거 및 경제적 안전망 보호를 위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br />
  4. 존엄한 마무리와 애도의 권리 보장을 위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 개정<br />
<br />
Ⅵ. 초고령사회 맥락에서 본 「생활동반자법(안)」 제정의 함의</p>
<p> </p>
<p><a href="https://www.nars.go.kr/report/view.do?cmsCode=CM0156&amp;brdSeq=49091">자료 다운로드</a></p>
<p> </p>]]></description>
			<author><![CDATA[나이듦연구소]]></author>
			<pubDate>Sun, 31 May 2026 16:41:36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1"><![CDATA[통계]]></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장자 글쓰기 6월7일 (일) 개강 공지]]></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10]]></link>
			<description><![CDATA[<p>낭송이 끝나니 글쓰기가 떡... 남아 있지요?</p>
<p> </p>
<p>일정을 다시 한번 공유하면 다음과 같습니다.</p>
<p> </p>
<p><img src="https://i0.wp.com/naidum.org/wp-content/uploads/2026/05/KakaoTalk_Photo_2026-05-10-08-23-21-003-e1778369658756.jpeg?resize=618%2C516&amp;ssl=1" alt="KakaoTalk_Photo_2026-05-10-08-23-21-003-e1778369658756.jpeg?resize=618%2C516&amp;ssl=1" /></p>
<p> </p>
<p>소요유 2번, 제물론 2번, 양생주 2번...이런식으로 내편 7편을 2주씩 배당했는데</p>
<p>1주차는 세미나이지만, 다른 2차 서적을 읽는게 아니고 각자 써온 씨앗문장 메모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할 것입니다.</p>
<p> </p>
<p>그러니 모두 <span style="color:#ff0000;"><em><strong>세미나 48시간 전까지 (그럼 6월 5일 저녁 7시가 마감</strong></em></span>입니다) 씨앗문장 메모를 써오시면 됩니다.</p>
<p>메모라고는 하지만 구조를 갖춘 글을 써오셔야 하고 분량은 a4 1장에서 1장 반입니다. 이곳에 댓글로 올려주세요 </p>
<p>2주차는 그것을 바탕으로 글을 완성시켜올텐데...글의 형식을 '칼럼'으로 할까, 생각 중입니다.</p>
<p> </p>
<p> </p>
<p>샘플로 신영복 샘의 &lt;강의&gt; 중 장자 부분을 인터넷에서 바로 읽을 수 있는데요...바로 신영복 아카이브입니다.</p>
<p>여기부터 읽으시면 됩니다.</p>
<p><a href="https://www.shinyoungbok.net/shinyoungbok/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325">https://www.shinyoungbok.net/shinyoungbok/archive/srch/ArchiveNewSrchView.do?i_id=325</a></p>]]></description>
			<author><![CDATA[문탁]]></author>
			<pubDate>Fri, 29 May 2026 13:34:0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4"><![CDATA[양생프로젝트]]></category>
		</item>
				<item>
			<title><![CDATA[[10회 공지_ 저문 날의 삽화 &amp; 오프 세미나]]]></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9]]></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20px;"><strong>1. 몹시 분주합니다</strong></span></p>
<p> </p>
<p>김복실 여사([도시의 흉년])가 ‘공단이불’에 꽂혔을 즈음에는 &lt;레이디 두아&gt;의 부두아 백을 오가느라 분주했었고, 이번에는 현이와 남상이([오만과 몽상])를 거쳐 황동만과 오정세(&lt;모.자.무.싸&gt;)를 쳐다보느라 몹시 분주합니다.</p>
<p> </p>
<p>거기다가 ｢저문 날의 삽화｣(1-5)도, 6월 3일의 중간 종합 세미나도 있고... 또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언제나 이어지는 별별 공사다망까지... 분주할 밖에 없습니다.</p>
<p>그렇지만 분주함이야말로 활발발한 삶의 기본값이 아니겠습니까. 그 속에서 공부가 이루어져야하는 것 또한 당연지사 아니겠습니까.</p>
<p>(이 와중에 드라마 보기를 당연지사로 슬쩍 끼워넣다니, 제 스스로가 몹시 기특합니다 ㅎㅎㅎ)</p>
<p> </p>
<p> </p>
<p><span style="font-size:20px;"><strong>2.저문 날 그리고 ‘삽화(揷話)’</strong></span></p>
<p> </p>
<p>｢저문 날의 삽화｣는 1987-1988년에 씌여진 단편소설들입니다.</p>
<p> </p>
<p>1987_ ｢저문 날의 삽화 1｣([분노의 메아리-여성동아문집], 전예원)</p>
<p>           ｢저문 날의 삽화 2｣([또 하나의 문화 4호: 여성 해방의 문학])</p>
<p>           ｢저문 날의 삽화 3｣([현대문학] 6월호)</p>
<p>           ｢저문날의 삽화 4｣([창작과비평] 1987)</p>
<p>1988_ ｢저문 날의 삽화 5｣([소설문학] 1월호)</p>
<p> </p>
<p>당시 작가는 50대 후반이자, 등단한 지 십수 년이 지난 중견 소설가였으며, 1985년부터는 [문학사상]에 [미망]을 연재하는 중이었습니다.</p>
<p>그야말로 ‘분주한’ 한 가운데에 있던 작가가 자신과 비슷한 연배의 여성 화자를 내세워 다섯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겁니다. 그리고는 ‘삽화(episode)’라 칭합니다. 애초에 ‘삽화’란 어떤 이야기나 사건의 줄거리에 끼인 짤막한 토막이야기를 의미합니다.</p>
<p>｢저문 날의 삽화｣가 1-5라는 번호가 매겨져 있으니, 연작 소설같기도 하고, 짧은 이야기 모음같기도 합니다만, 그 엄밀한 분류나 정의와는 별개로 작가가 펼쳐 놓은 풍경 속으로 성큼 들어가보았으면 합니다.</p>
<p> </p>
<p>어느 동네 언덕배기 비스듬한 나무에 기댄 채,</p>
<p>그림자 위로 어둠이 겹쳐지는 그즈음에,</p>
<p>오십대 후반의 여성이 있습니다.</p>
<p>그리고 그녀의 집, 그녀의 가족과 ‘가족’이라는 테두리, 상처와 고통, 삶과 죽음, 행과 불행이 견뎌지는 시간을 천천히 따라가봤으면 합니다.</p>
<p> </p>
<p> </p>
<p><span style="font-size:20px;"><strong>3.우리들의 세미나 ‘삽화’</strong></span></p>
<p> </p>
<p>6월, 10번째 세미나에서 우리 또한 ‘삽화’를 하나쯤 펼쳐 놓을 수 있을 듯합니다.</p>
<p>｢저문 날의 삽화｣ 1-5를 바탕으로 하되,</p>
<p>그동안의 세미나에서 달아올랐던 주제들, 인물들도 되짚어볼 시간일 테니까요.</p>
<p> </p>
<p><span style="color:#0000ff;"><strong>이번 세미나 발제는 3조(C조)입니다.</strong></span></p>
<p> </p>
<p>(1) ｢저문 날의 삽화｣ 1-5에 대해서 지금처럼 씨앗문장 쓰고 분석하기를 하시되,</p>
<p>(2) 지금껏의 책들에 대한 토론 토픽 혹은 남겨진 생각들을 갈무리해주셨으면 합니다.</p>
<p> </p>
<p><span style="font-size:20px;"><strong>*</strong></span> (1)에 대해서 더 많이 치우시거나 아예 ｢저문 날의 삽화｣만 다루셔도 좋고,</p>
<p>혹은 ｢저문 날의 삽화｣는 짧게 언급하시고, (2)에 대해서 더 집중해주셔도 좋습니다.</p>
<p> </p>
<p><strong><span style="color:#0000ff;"><span style="font-size:20px;">**</span> 6월 2일(화) 낮 12시까지 올려주시어요.</span></strong></p>
<p>수요일 일찍부터 이동하셔야할 쌤들을 고려한 시간입니다만, 발제자쌤들께는 잔혹(?)하군요. </p>
<p>그러나 마감 시간은 그 어느 때이든, 누구에게나 괴롭다는 것 또한 냉혹한 사실이니 어찌합니까. ^^;;;;;;</p>
<p>박완서는 그 괴로움을 이렇게 전합니다.</p>
<p> </p>
<p><b>“</b><b>그때는 지겹더니만 독촉하는 소리를 안 듣게 되고 나니 그때가 그립다</b><b>. </b><b>채찍질이 있어야만 움직일 수 있는 나의 한계를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b><b>”</b></p>
<p>                                                                                                                                                    ([오만과 몽상 ]작가 후기, 1982)</p>
<p> </p>
<p><strong><span style="font-size:20px;">***</span></strong> 이번 세미나로 인해, 이후 일정 변경이 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17회차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를 개인 독서로 돌리고,</p>
<p>       [오만과 몽상] 2부터 일정을 순연하고자 합니다.</p>
<p> </p>
<p>그럼, 신나는 발제문와 신나는 세미나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p>
<p>꾸~ 벅~~~</p>
<p> </p>
<table style="height:794px;width:74.4825%;" border="1">
<tbody>
<tr style="height:40px;">
<td style="width:9.64998%;height:26px;">
<p style="text-align:center;"><span style="color:#000000;"><b>회차 </b></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26px;">
<p><span style="color:#000000;"><b> 날짜</b></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26px;">
<p><span style="color:#000000;"><b> 주제</b></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26px;">
<p><span style="color:#000000;"><b> 비고</b></span></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40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0</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40px;">
<p><span style="color:#000000;"> 0603</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40px;">
<p style="text-align:left;"><span style="color:#000000;"> 저문 날의 삽화 (1-5)</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40px;">
<p><span style="color:#000000;"> 오프세미나 &amp; 중간 종합</span></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1</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0618</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오만과 몽상 2</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2</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0702</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 (1982-1983)</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3</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0716</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2</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4</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0806</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서있는 여자 (1985)</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5</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0820</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미망 1 (1985-1989)</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6</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0903</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미망 2</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7</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0917</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미망 3</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8</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1001</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2)</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19</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1015</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5)</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20</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1105</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아주 오래된 농담 (1999-2000)</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21</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1119</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그 남자네 집 (2002)</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22</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1203</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글쓰기 초고</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 </p>
</td>
</tr>
<tr style="height:56px;">
<td style="width:9.64998%;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strong> 23</strong></span></p>
</td>
<td style="width:13.593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1219</span></p>
</td>
<td style="width:49.677%;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글쓰기 발표</span></p>
</td>
<td style="width:101.509%;height:56px;">
<p><span style="color:#000000;"> 오프세미나 &amp; 마무리</span></p>
</td>
</tr>
</tbody>
</table>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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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 </p>]]></description>
			<author><![CDATA[파랑]]></author>
			<pubDate>Wed, 27 May 2026 11:15:1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5"><![CDATA[집중탐구학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2026 나이듦 대중지성 시즌1을 마치며]]></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8]]></link>
			<description><![CDATA[<p><br />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해파리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몸의 일기』, 『죽음을 배우는 시간』— 다섯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며 우리 안의 노년에 대한 편견과 그 시기를 준비하는 일, 죽음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시간이었습니다. 각자의 환경에서 노년을 이야기하다 보니 미처 몰랐던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고, "어떻게 나이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힌트도 많이 얻었습니다. 나이듦연구소의 이런 활동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고요.<br />
마지막 시간은 바쁜 중에도 시간을 내어 쓴 각자의 에세이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br />
사랑의 노동을 읽고 장애인활동지원사 일을 하면서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소중하게 나눠주신 니은님, 사회적 울타리 안에서 낯설고 빛나는 노년을 꿈꾸는 마리님, 지금까지 잘 살아온 자신을 토닥이며 응원하는 소요유님, '인생의 친척'이라는 말로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블루밍님, 가장 절실한 것은 결국 오늘을 잘 사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새봄님. 참선과 명상으로 내면을 쌓아가며 두려움에서 한 발 멀어지고 싶다는 엄지님, 자신의 나이듦을 상상해보고 싶다는 머루님,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Freitod)'을 통해 무가치한 삶으로부터의 자유를 이야기해주신 앙코르석공님, 루미의 명제 "삶은 붙잡는 것과 놓는 것 사이의 균형 잡기"를 나눠주신 배짱이님, 우리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늙어가며 타인의 돌봄이 필요해지는 순간임을 짚어주신 무지개전사님.<br />
소중한 생각을 나눠주신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각자의 에세이에서 촉발된 질문들, 그리고 그 질문들이 이끌어낸 예상치 못한 답변들도요.<br />
함께해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이끔이로 수고해주신 서해, 기린, 자갈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즌2를 계속 하시는 분도, 잠시 쉬었다가 시즌3에 합류하시는 분들도 모두 건강하세요.<br />
또 다른 나이듦연구소 활동에서 반갑게 만나요.</p>]]></description>
			<author><![CDATA[코난]]></author>
			<pubDate>Mon, 25 May 2026 20:35:1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10"><![CDATA[나이듦대중지성]]></category>
		</item>
				<item>
			<title><![CDATA[&lt;오만과 몽상&gt;1부 후기_낯설지 않은 가난]]></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7]]></link>
			<description><![CDATA[<p>『오만과 몽상』은 가난의 문제를 전면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1부를 읽으면서 가난과 관련해서 떠오르는 것들이 내내 겹쳤다. 남상의 가족이 살고 있는 동네를 묘사할 때는 『도시의 흉년』에서 비슷한 환경이었던 순정이 떠올랐다. 철거민촌의 화장실 문제나, 현이 살고 있는 공간을 묘사할 때는 영화 &lt;기생충&gt;에 나왔던 반지하에 살던 주인공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떠오르기도 했다. 남상이 제대 전에 일했던 공장의 사장은 번듯한 단독주택을 짓고 새로운 공장부지도 마련하여 승승장구하는 3년의 시간, 자신의 가족에게는 아무런 변화로 일어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는 모습에서는 그의 박탈감에 공명 되었다. 왜냐하면 남상이 목도한 현실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가난이 대물림 되는 현실이 심심찮게 신문의 사회면을 차지하고,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80년에서 45년이 흐르는 동안 세상살이는 더 강퍅해졌다.</p>
<p> </p>
<p>남상의 친구인 현은 집안의 지원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의대를 다니고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영자를 만났다. 현의 옆방에 살고 있는 영자와 같이 살고 있는 언니는 현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며 그 좋아하는 라디오도 안 듣는다고 했다. 영자의 이야기에 현은 자신의 방이 따로 두 개나 마련되어 있는, 떠나온 집의 독립적인 기능을 떠올린다. 근대화를 통과하면서 한 집에 바글거리며 붙어 사는 문화는 미개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돈을 벌고 성공한다는 것은 번듯한 양옥을 짓고 자식들도 각자 방을 가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독립성을 획득하기를 너나할 것 없이 지향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점점 더 가난에서 벗어났다고 여겼다. 하지만 또 다른 가난이 계속해서 들이닥쳤다. 상대적 빈곤, 상대적 박탈감 등의 이름으로.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독립적인 공간을 가지고 있는 환경이라도 우리는 여전히 가난 때문에 불행하다는 심리적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소설 속 주인공의 가난이 낯설지 않으면서 갑갑하게 여겨진 지점이었다.</p>]]></description>
			<author><![CDATA[기린]]></author>
			<pubDate>Fri, 22 May 2026 17:36: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5"><![CDATA[집중탐구학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9회 공지-오만과 몽상(1)]]]></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6]]></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7px;"><strong>1.작가의 말에 따르면 이 소설은</strong></span></p>
<p> </p>
<p>1)"&lt;한국문학&gt;에(1908년부터)  2년여에 걸쳐 연재됐던 장편"입니다. </p>
<p> </p>
<p>2 )대립되는 두 가계의 후손으로 태어난 두 젊은이가 그런 더러운 상식에 각기 나름의 방법으로 항거하는 이야기입니다. </p>
<p> </p>
<p style="text-align:left;"><span style="font-size:16px;">"매국노는 친일파를 낳고, 친일파는 탐관오리를 낳고, 탐관오리는 악덕 기업인을 낳고, 악덕 기업인은 현이를 낳고.....</span></p>
<p style="text-align:left;"><span style="font-size:16px;">동학국은 애국투사를 낳고, 애국투사는 수위를 낳고, 수위는 도배장이를 낳고, 도배장이는 남상이를 낳고...."</span><br />
<span style="font-size:16px;"> (1권, 103)</span></p>
<p> </p>
<p>3)'오만'과 '몽상'은 현과 남상에게 각기 할당된 정동이 아니라 그 둘 모두를 "젊음의 특질, 특권"으로 보고, 10대 후반 주인공들의 오만과 몽상이 30대에 이르러 "비굴과 현실추종"으로 귀결되지 않고, 오히려 '겸허'와 '현실'로 귀착되기를 지켜보는 이야기입니다. </p>
<p> </p>
<p> </p>
<p> </p>
<p><span style="font-size:17px;"><strong>2.자... 우리는 여섯번째 장편에 이르러 박완서 소설에서 매우 드문 남성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strong></span></p>
<p> </p>
<p>박진 평론가는 이 소설을 "아버지-자본의 타락한 법에 맞서 청년은 어떻게 성장하는가?"고 읽었네요.</p>
<p>방민호 평론가는 이 소설을 "불결함에 맞서는 희생제의의 전통성"이라고 하네요. (&lt;박완서 문학 길찾기&gt;/ 세계사)</p>
<p> </p>
<p>음..저는  평론가들 비평 읽는 게 정말 힘듭니다. ㅜㅜ  거의 공감가는 게 없었구요. ㅋㅋ</p>
<p> </p>
<p>좌우지간  이 소설은 지금까지와는 좀 더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죠?</p>
<p>여러분들이 어떤 메모를 가지고 오실지 매우 기대됩니다.</p>
<p> </p>
<p> </p>
<p> </p>
<p> </p>
<p> </p>
<p>피에쑤 : 양쪽 어깨에 이어 손목도 탈이 났습니다. (뼈가 약한 건지, 노동을 많이 한 건지...ㅋㅋ)</p>
<p>물론 꼭 그래서 공지를 짧게 올린 건 아니지만, 무관하지도 않습니다. ㅠㅠㅠ</p>
<p> </p>
<p><img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5/6a092ebe799728792434.jpg" alt="" width="422" height="562" /></p>
<p> </p>
<p> </p>]]></description>
			<author><![CDATA[문탁]]></author>
			<pubDate>Sun, 17 May 2026 11:56:30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5"><![CDATA[집중탐구학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이듦 대중지성 1분기 미니 에세이데이 공지]]></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5]]></link>
			<description><![CDATA[<p>나이듦 대중지성 시즌1의 마지막 시간, 미니 에세이 발표 준비 잘 되고 계신가요^^?</p>
<p>뭔가 쓰는 일은 마음을 내고 진득이 자리에 앉아 시간을 쓰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엉덩이의 힘으로 쓴다고 하겠습니까?</p>
<p> </p>
<p>시즌 1 ‘나이듦’을 주제로 읽었던 책은 『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해파리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몸의 일기』, 『죽음을 배우는 시간』입니다.</p>
<p>공지를 쓰기 위해 저도 이번 시즌에 읽은 책들을 다시 열어보았습니다.</p>
<p> </p>
<p style="padding-left:80px;"><span style="color:#0000ff;"><strong>어떻게 하면 오늘날의 중장년층인 우리가 나이듦에 대한 기존의 편견 어린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절실히 필요한 걸 더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서 시작되겠지만 사회가 외면하라고 지시하고 결국 많은 사람이 우릴 외면하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진정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존재로서 대우받기 위해서 보이고 인식되어야 한다면, 그리고 버려지고 잊힐 집단으로 취급되지 않으려면, 나는 더 많은 사람이 ‘어떻게’라는 질문 속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strong></span></p>
<p style="padding-left:400px;">『나는 언제나 늙기를 기다려왔다』 ‘나는 나이 든 여자입니다’ 187쪽</p>
<p style="padding-left:520px;"> </p>
<p style="padding-left:80px;"><span style="color:#0000ff;"><strong>직장인·노동자 정체성이 ‘자기이해’의 주축을 이루는 대다수 남성은 일터를 떠나야 할 때 역할 상실로 인한 급격한 단절과 소외를 겪을 확률이 높다. 더구나 ‘노년 되기’의 사회문화적 맥락을 평소에 생각해보지 않았던 남성이라면, 이것은 다른 새로운 것을 향한 이행의 기회가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낙인으로 감각될 수 있다. (....) ‘자기’를 경제·계급뿐 아니라 젠더나 지역, 문화활동, 성 정체성, 종교 등 다양한 요소들이 교차하는 맥락 속에서 다중적으로 구성되는 정체성으로 이해하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자기 이해에서 출발해 자기와 타인을 돌보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strong></span></p>
<p style="padding-left:440px;">『늙어감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 64쪽</p>
<p style="padding-left:720px;"> </p>
<p>초반에 읽었던 텍스트에서 우리의 ‘나이 들어감’에서 벼려볼 질문과 염두에 두어야 할 맥락을 다시 떠올려봅니다. 이러한 점들과 더불어 의료화 된 노년에서 벗어나 다른 나이듦으로 배치를 바꿔보는 상상력도 함께 펼쳐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p>
<p> </p>
<p>에세이 소재와 관련해서는</p>
<p> </p>
<ul>
	<li><span style="color:#ff0000;font-size:18px;">다섯 권의 책을 읽고 쓴 메모를 다시 훑어보며 생각을 더 밀고 나갈 수 있는 이야기</span></li>
	<li><span style="color:#ff0000;font-size:18px;">책 한 권을 택해 그 안에서 씨앗 문장을 고르고 그와 관련해서 생각을 진전시키기</span></li>
	<li><span style="color:#ff0000;font-size:18px;">자신의 몸을 관찰(열흘 정도의 기간)하는 일기를 통해 알게 된 내용</span></li>
</ul>
<p> </p>
<p>등을 제안 드렸습니다.</p>
<p> </p>
<p>미니 에세이 마감 시간은 5월18일 밤 12시까지입니다.</p>
<p>미니 에세이 발표하는 <strong><span style="font-size:18px;">12회차 세미나는 7시 반</span></strong>에 시작합니다.</p>
<p>5월 19일 화요일 밤 7시 반에 뵙겠습니다^^</p>]]></description>
			<author><![CDATA[기린]]></author>
			<pubDate>Fri, 15 May 2026 15:06:32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10"><![CDATA[나이듦대중지성]]></category>
		</item>
				<item>
			<title><![CDATA[나이듦 대중지성 [죽음을 배우는 시간] 2회차 후기]]></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4]]></link>
			<description><![CDATA[<p>나름 '숙제' 하느라 오랜만에 시간에 쫓기기도 했던^^ 나이듦 대중지성 세미나가 마무리 되었다. 우리 대부분은 서해님의 얘기 처럼 죽어감에 대해 지식, 성찰, 공부가 부족했는데 마지막 책, &lt;죽음을 배우는 시간&gt;은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의 선택들이 지니는 함의에 대해 우리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했고, 앞으로의 생각거리도 던져주어 다를 유익했다고 느꼈던 시간이었던 듯하다.</p>
<p>    죽음과 관련된 선택이나 결정은 단지 나 자신이나 나이 드신 부모님의 문제가 아니라 형제자녀들, 친한 친구들을 포함하는 보다 확장된 인간관계의 그물망에 얽혀 있는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을 앙코르 석공님, 새봄님, 코난님, 마리님, 등 여러 멤버들의 얘기들이 다시 환기시켜 주었다. 그런 만큼 한편으론 나의 죽음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단호한' '입장천명'이 필요하다는 점에 많은 공감대가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저귀 걱정'이나 '곡기 끊기'도 막상 때가 되면 마음이 변할 수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을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논의도 제기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죽어감에 대한 새로운 담론' 구축 과정의 첫걸음을 떼고 있는 것이겠다.</p>
<p>    개별적 차원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엔딩노트 작성을 넘어 죽음과 관련된 실천들에 관한 사회전체적 인식전환과 공론화, 제도적 차원의 전환과 시스템 마련의 필요성에 대한 기린님과 무지개전사님의 지적에도 다들 공감했다. 새봄님은, "나는 시간을 늘여서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 즉 어떻게 죽는가 보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고 실천하는 것의 중요성을 환기해 주셨고, 제가 제안했던 '좋은 죽음이라는 문화적 관념 놓아버리기' 연습도 결국은 같은 방향의 문제제기가 아닐까 싶다. '새로운 죽어감의 담론'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삶과 죽음을(가령,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따로 떼어 사유하고 평가하려는 지배문화의 상투적 욕망과 두려움도 낯설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p>
<p>    마지막으로, 그동안 혼자서는 이런저런 이유와 핑계로 하지 않았을 책읽기와 글쓰기와 얘기 나누기를 가능하게 해 주신 모든 '도반'님들과 이런 자리를 마련하느라 애쓰신 이끔이 선생님들 감사드려요! 또 만나요!^^</p>]]></description>
			<author><![CDATA[베짱이]]></author>
			<pubDate>Thu, 14 May 2026 22:55: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10"><![CDATA[나이듦대중지성]]></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죽음을 배우는 시간] 2회차 공지]]></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3]]></link>
			<description><![CDATA[<p>어느 덧 시즌1 세미나의 마지막 회차 공지 입니다.</p>
<p>'늙기'에 대한 성찰을 담은 에세이,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나이듦'을 고민하는 이들에 대한 인터뷰, 불멸을 샘을 향한 인류의 도전을 담은 과학 에세이, 몸에 대한 적나라한 고백을 담은 소설, 그리고 죽음의 현장에서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실질적인 조언을 던져주는 마지막 장만 앞두고 있는데요, 3개월 간 같이한 이 여정이 어떠셨나 조심스레 여러분들의 소감을 묻고 싶습니다. ^^</p>
<p> </p>
<p>저는 이번 회차 분량에서 김현아 교수가 에필로그에 남긴 '엔딩 노트' 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신에게도 노환과 죽음이 다가온 다는 것을 과감하게 인정하고, 각 단계에 따른 지침을 자녀에게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엔딩노트'에 대해서 어떻게들 생각하셨는지, '엔딩노트'를 써 본 경험이 있는지도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바라는 장례식의 모습에 대해서도 같이 얘기 나누어 보면 좋을 거 같습니다.</p>
<p> </p>
<p>5월 11일 월요일 오후 9시까지 메모 올리는 거 잊지 마시고,</p>
<p>남은 주말 평안히 보내시고 화요일 저녁에 뵙겠습니다.~~ </p>
<p> </p>
<p> </p>
<p> </p>]]></description>
			<author><![CDATA[자갈]]></author>
			<pubDate>Sun, 10 May 2026 16:09:45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10"><![CDATA[나이듦대중지성]]></category>
		</item>
				<item>
			<title><![CDATA[&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 후기 - '그 여자'에 대해]]></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2]]></link>
			<description><![CDATA[<p>&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은 유독 소설을 읽을 때는 불편했고, 세미나가 끝나고는 자의식이 많이 올라왔었다. 헛다리 짚고 쓸데없이 내 이야기를 많이 했나? 싶어 부끄럽기도 했다.;; 또한, 대체로 세미나가 끝나면 다른 샘들의 말씀에 동의가 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이번 세미나는 유독 '나 혼자 딴생각하고 있나?'싶었다. 물론, 나 역시...</p>
<p> </p>
<p>“70년대 초에 태어나 ‘그 여자’가 놓인 시대에 사회. 남녀의 일상적 차별, 직장생활로 아이 양육에 소홀히 하고 있다는 죄책감 사회 시스템 자체가 여성에서 열등감과 죄책감을 내재화하는 거대한 가스라이팅의 구조라는 후에 따라온 인식.(도레미샘)”,“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구체적으로 가정이라는 일상적이면서도 사적인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며, 여성 억압의 기제로서 구조화되고, 재생산되는지를 압축하여 보여주기로 작정한 소설인 것 같았다.(먼불빛샘)”</p>
<p> </p>
<p>위 말씀들에 모두 동의하고 분노를 느꼈다. 그런데 나에게 청희는 딱 희생자로만 정의하기 어렵게 복잡한 캐릭터로 느껴졌었다.  나는 그 여자, 청희가 (가부장제 권력에 가스라이팅 당한)불쌍한 여자라기보단... 논쟁적인 여자로 읽혔다. </p>
<p>소설의 초반부부터 청희에게 연민보단 존경심을 먼저 느꼈다. 빌런스런 남편(인철)까지 케어하며 시어머니(송여사)를 모진 수고와 고생으로 돌봄하면서도, 시어머니(송여사)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을 놓지 않고 있다는 면에서.. 놀라웠다. 그래선지 웬만한 종교지도자보다 더 종교인 같이 영적인 사람으로까지 보였다. 마치 호피스피 병동에서 돌봄 노동을 하는 수녀님들을 보는 듯... 그래서 인철이 옥희를 통해 자기 “청춘을 복습”하며 이기적이고 덜 숙성된 인간성으로 비쳐지는 데 반해, 청희의 이런 돌봄 노동은 숭고하게 서술돼 있는 면이 있다고 보았다. (나는 이 지점에서 박완서 작가님이 여성의 돌봄 노동에 대해 혹 종교적인 의미를 두시거나 하는 게 아닌지 궁금증이 생겼었다.)</p>
<p> </p>
<p>그래서인지 옥희(인철과의 사건, 난 옥희 자신은 '강간을 당했다는 걸' 아직 해석하지 못하고 있지만... 청희는 강간으로 그 사건을 보고 있다고 읽었다)에 대한 청희의 태도가 극단적으로 다르다고 느껴졌던 거 같다.  왜 그 여자의 영적일 만큼 숭고한 돌봄이, 가족 안에서만 작동했던 걸까.  나는 '그 사건을 겪고' 옥희도 돌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청희 역시 피해자일 수 있는 입장에서 어려운 일일테지만...</p>
<p>여기서 뭘 더 써보려 해도, 다시 말문이 막히는데... 나 역시 그 여자, 청희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p>
<p> </p>
<p>이쯤에서 혹 내가 청희를 꼬아서 보거나, 지나치게 영적으로 보고 있었나... 라는 의문도 든다. 고백하자면... 나는 '그 여자'에게 분노와 숭고함이나 안타까움 등을 느끼긴 했지만... 뜨거운 연대의 감정은 느끼지 못했다. 왜 그렇게 '그 여자'를 똑바로 못 볼까... 혹 내 안에 정상.중산층 가정이 되지 못 한다는 긴 무기력감이 있어, 필터링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 아... 모르겠다. 어렵다! </p>
<p> </p>
<p>-</p>
<p>잘 정돈이 안 됐지만... 더 생각이 나아가지가 않아, 여기서 짧게 마칠게요. ;;  </p>
<p>그리고 이번 세미나가 끝나고 질문이 있었는데... 놓쳤어요. </p>
<p>텍스트주의자라는 건 어떤 태도로, 어떻게 텍스트를 읽는 걸까요? 텍스트주의자가 되면... 괜찮은 오독을 할 수 있는 거겠죠? </p>
<p> </p>
<p> </p>]]></description>
			<author><![CDATA[이쿠바]]></author>
			<pubDate>Sun, 10 May 2026 00:47:27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5"><![CDATA[집중탐구학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8회 공지-살아있는 날의 시작] - 살아있는, 살아 날뛰는 이야기]]></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1]]></link>
			<description><![CDATA[<p><span style="font-size:18px;"><strong>1. 제목, 참 심상치 않습니다</strong></span></p>
<p> </p>
<p>콧구멍이 두 개니까 숨을 쉰다...는 말이 실감나는 이야기, 소설 속 표현을 빌자면 “관자놀이를 단근질” 당하는 듯한 이야기를 펼쳐 놓고 “살아있는 날의 시작”이라니요. 어흑.... </p>
<p>작가는 이렇게 말하는군요.</p>
<p>“사람을 사람답게 살지 못하게 억누르는 온갖 드러난 힘과 드러나지 않은 음모와의 싸움은 문학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말입니다.</p>
<p>그동안 박완서의 소설에서 &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 &lt;서 있는 여자&gt;, &lt;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gt;는 여성/젠더 문제를 예각화하고, 그 ‘싸움’을 제대로 드러내는 일종의 3부작처럼 여겨져왔습니다.</p>
<p>특히 &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은 “대중적인 방식으로 재생산 노동자로서 여성의 계급과 재생산 노동의 모순을 가시화했다는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왔지요. (김영희, ｢여성문학론의 비판적 검토｣, &lt;창작과 비평&gt; 16(3), 1988.; 이명호·김희숙·김양선, ｢여성해방문학론에서 본 80년대의 문학｣, &lt;창작과 비평&gt; 18(1), 1990.; 박혜란, &lt;작가세계&gt; 8, 1991.)</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trong>2. &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이 놓여있는 자리</strong></span></p>
<p> </p>
<p>&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은 ‘문청희’와 ‘정인철’이라는 부부와 그들의 가족 이야기입니다.</p>
<p>그런데 ‘그 여자’로 지칭되는 아내와 ‘인철’로 불리는 남편의 가족/가정은 조금 다릅니다.</p>
<p>‘그 여자’에게는 본가인 친정과 시집살이(시어머니)&amp;가족(남편과 자식)이 겹쳐진 가정으로 구별되는데 비해, ‘인철’에게는 본가와 자신의 가족/가정이 하나로 묶여 있으니까요.</p>
<p> </p>
<p>또 ‘그 여자’ 청희는, 지금껏 우리가 읽어왔던 박완서의 소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아내이자 어머니입니다.</p>
<p>&lt;도시의 흉년&gt;의 김복실 여사와 견줄 만합니다만, 학력이나 생활력, 사업 수완에서도 ‘그 여자’가 한 수 위입니다. 이는 달라진 시대의 여성의 위상 변화이기도 하겠지요. 이즈음부터 박완서 소설에서 중산층 전업주부와 소위 ‘워킹맘’에 해당하는 인물형이 점차 부각됩니다. 이로부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관계, 가정과 가족, 결혼, 재생산 노동과 같은 문제들이 주요 주제로 이어집니다.</p>
<p>1980년대 즈음 ‘그 여자’가 있던 풍경으로 조금 더 들어가보겠습니다.</p>
<p> </p>
<p><strong>(1) 여성의 직업, 그리고 ‘결혼 퇴직’</strong></p>
<p>“재직 중에 결혼하게 될 경우에는 자진 사직하겠음을 서약하겠습니다.”</p>
<p>1970년대 중반까지 은행 대부분은 여성 행원 채용 때 결혼하면 퇴직한다는 ‘결혼퇴직 각서’를 받았습니다. ‘서른 살이 되면 그만둔다’는 각서까지 요구하는 은행도 있었다 합니다.</p>
<p>1975년 겨울에 조흥은행의 여행원이 결혼을 앞두고 사측의 결혼 퇴직에 맞서 입사 때 서약한 ‘결혼 각서’의 무효화를 주장하면서 기혼 여성의 노동권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고 여성 단체가 여행원의 투쟁에 가세하면서 1976년 5월에 결혼퇴직제는 폐지되었습니다.</p>
<p><a href="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02841"><u>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8/0002602841</u></a></p>
<p><img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5/69f471dc22b153374468.jpg" alt="" width="302" height="202" /><img class="alignnone"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5/69f471eba36875176985.jpg" alt="" width="317" height="242" /><img class="alignnone"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5/69f471e37cb3b8689879.jpg" alt="" width="252" height="234" /></p>
<p> </p>
<p>겉으로는 성별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제 질서는 실제로는 여성의 가사 노동과 같은 보이지 않는 노동에 기대어 유지되어 왔습니다. 심지어 소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는 성별 노동 분업에 기반하여 성적 불평등을 심화시켰으며, 이는 비자본적 인간 존재인 여성에 더 많이 의존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p>
<p>(웬디 브라운, &lt;민주주의 살해하기 Undoing the Demos: Neoliberalism's Stealth Revolution&gt;)</p>
<p> </p>
<p><strong>(2) 유한부인·유한마담</strong></p>
<p>‘워킹맘’ 이전에 근대적 가정과 그 담당자인 현모양처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면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한 것이 ‘유한마담/유한부인’이었지요.</p>
<p>원래는 고운 비단을 휘감고 보석반지를 끼고 희희낙락하는 듯이 보이는 ‘화류계’ 여성을 지칭하는 말이었으나 점차 가정 부인에게로 그 방향이 전환됩니다.</p>
<p>남편의 벌이에 ‘기생’해서 살아가는 아내, ‘소소한’ 집안일 외에는 그저 무의미하게 보내다 향락에 빠지기 일쑤인 아내... 유한부인이자 유한마담인 거지요.</p>
<p><img class="alignleft"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5/69f47331eab167837627.jpg" alt="" width="328" height="324" /></p>
<p> </p>
<p>1978년 9월 16일자 경향신문에는 &lt;유한마담에게 세금을 물리자&gt;는 기사가 실립니다.</p>
<p>국회의원과 각계 여성단체 대표들이 모인 세미나에서 나온 제안이었습니다.</p>
<p>"수천만원을 들여 대학을 나온 여성들이 ‘복부인’이 되고 카바레 등에나 출입하고 있는 여성의 자세가 문제”이니 “이들에게 ‘유한마담’세를 물리도록 하자”는 것이었지요. 비록 “이색 제안”이라 지칭하고, 뒤이어 밤늦게 맥주홀 등을 드나드는 남자에게는 ‘유흥장출입세’를 물리자는 말도 나와서 폭소가 터졌다.... 고 마무리 되기는 합니다만,</p>
<p>이 시절의 분위기를 가히 짐작할 만합니다.</p>
<p> </p>
<p> </p>
<p> </p>
<p> </p>
<p><strong>(3) 날치는 여자 vs 아내의 영광</strong></p>
<p><img class="alignright"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25/202605/69f47381574837430179.png" alt="" width="260" height="378" /></p>
<p>&lt;남편은 이렇게 출세시켜라&gt;(1979). 이건 70년대 라디오 방송작가 김한주가 &lt;아내가 리드하는 샐러리맨 출세전략&gt;이란 이름으로 여성잡지에 연재했던 글을 묶은 책입니다.</p>
<p>이 책은 일종의 ‘처세서’로 분류됩니다만, 살짝 내용을 들춰보자면 이러합니다. </p>
<p>제1장은 [깨울 때는 잔인하고 에로틱하게]입니다.</p>
<p>남편의 출세를 위한 첫걸음은 회사에 지각을하지 않는 것이고, 이는 남편의 의무가 아니라 아내의 의무랍니다.</p>
<p>“정 안 일어나거든 세숫대야에 물을 가득 담아다가 끼얹을 각오라도” 해야 하며, 그래도 안 일어나면 남편의 품에 안겨 코먹은 소리로 “여보, 일어나요”를 흥얼거리는 방법을 쓰거나 남편의 가슴 한 가운데에 입을 대고 에로틱한 키스를 해서라도 잠든 남편을 깨워야 한답니다. 그런데 혹시라도 잠에서 깬 남편이 강력히 ‘사랑’을 요구하는 일이 벌어지면 “오늘 밤을 약속하는 선에서 ‘노 땡큐!’”를 외치고 출근 준비를 시키는 “타인배려”와 “자기절제의 합리적 이성”까지 발휘해야 한답니다.</p>
<p>그러한 시대였습니다.</p>
<p>[남편의 출세 = 아내의 영광]이라는 명제가 당연하게 &amp; 공공연하게 말해질 수 있었습니다.  </p>
<p> </p>
<p>앞서 &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이 놓인 자리라고 했습니다. 80년대라고 했습니다. </p>
<p>그럴까요? 그때였었다.... 그럴 뿐일까요. </p>
<p> </p>
<p><span style="font-size:18px;"><strong>3. 다양하게 &amp; 깊이 들어가 봅시다</strong></span></p>
<p> </p>
<p><strong>(1) 인물에게 돋보기를</strong></p>
<p>소설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이라고 하지요.</p>
<p>&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에서 등장 인물과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복장 터지기는 합니다만ㅎㅎ.... 그야말로 핵심이라 생각합니다.</p>
<p>남자다움을 신봉하는 가부장 남성은 어떠셨는지요. 모든 게 ‘엇갈리는’ 맞벌이 아내는 어떠셨는지요. 아들 집에서 말년 복을 누렸다는 시어머니, 딸 집에서 늘그막 최악의 망신을 당한다는 장모, 남자 형제들에게 희생하는? 희생당하는? 누이.... 이들은 어떠셨는지요.</p>
<p>또 상대적으로 분량이 적지만 명구(청희의 장남), 재남(옥희의 둘째 오빠), 애리엄마(청희의 올케)도 저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p>
<p>그들은 가족 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들이 내세우는 기준(가치)과 실제 모습은 어떠한지요. (경제적) 유불리로 협잡·공모하기도 하고, 또 파열을 일으키기도 하는 희한 얄궂은 모습들에 돋보기를 비추어보고 싶습니다.</p>
<p> </p>
<p><strong>(2) 어머니, 모성 혹은 모녀 관계</strong></p>
<p>박완서 소설에서 어머니, 모녀 관계는 늘 중요한 주제입니다만, &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에서는 지극히 80년대다운 어머니 노릇이 등장합니다. 자녀교육과 가정 건사라는 어머니 노릇 말입니다. 지금의 대치동 학원가와 ‘돼지엄마’를 연상케하는 과외집과 주동자 엄마, 공교육으로서의 학교 현장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여기에서 소위 ‘워킹맘’의 문제도 나오고요.</p>
<p>또 청희와 친정어머니의 관계를 주목한다면, 모녀관계도 더 깊이 생각해보고, ‘돌봄’에 대해서도 더 살펴봐야할 듯합니다.</p>
<p> </p>
<p><strong>(3) 연민, 그리고 돌봄</strong></p>
<p>연민이나 돌봄은 자칫 교만과 오만으로 점철될 우려가 다분합니다. 나보다 약자, 하등한 사람을 내가 기꺼이 보살핀다는 권력의 위치가 전제되어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일찌기 ‘친절한 금자씨’는 ‘너나 잘하세요’라고 속삭여주었나 봅니다.</p>
<p>&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에서는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돌봄을 보여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운운합니다. 소위 Care라는 행위를 넘어서는 다른 관점이 생겨나고 있는 걸까요? [돌봄의 윤리]에서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돌봄’은 단순히 수발을 드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내 삶으로 받아들이는 윤리적인 태도라고. 박완서가 포착한 돌봄이 무엇이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p>
<p>또 타인에 대한 연민, 동정 그리고 공감까지. &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에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주는지, 나와 외부의 관계 맺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곰곰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p>
<p> </p>
<p><strong>(5) 몸, 정동</strong></p>
<p>박완서 소설의 특장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고약한 느낌의 형용을 어찌 이리 생생하게 그려내는지요.</p>
<p>&lt;살아있는 날의 시작&gt;의 ‘엇갈리는 느낌’, ‘미열’, ‘불안’, ‘혐오’, ‘강박’ 등등은 제가 겪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입니다.</p>
<p>익히 아시는 것처럼, 정동(affect)은 감정의 해석 이전에 발생하는 신체적 반응이자, 신체와 외부 세계의 접촉에서 생성되는 강도와 잠재적 힘을 가리킵니다. 반면 감정(emotion)은 이러한 정동이 사회·문화적 의미 체계를 통해 해석되고 명명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브라이언 마수미, &lt;정동정치&gt;).</p>
<p>박완서 소설에서 감정과 정동을 구별하자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인물들에게서 저와 같은 신체적 반응이 어떤 지점에서 발생하고, 어떻게 드러나는지, 나아가 그것이 어떤 이행이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잠재적인 에너지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p>
<p> </p>
<p><span style="color:#0000ff;"><strong>** 다양하고 &amp; 깊은.... 쓰기</strong></span></p>
<p> </p>
<p><strong>(1) 특정 인물에 대해 혹은 특정 주제를 전제한 가운데 씨앗문장을 쓰고 분석해봅시다.</strong></p>
<p><strong>(2) 아울러 함께 나눌 토론 주제를 덧붙여주셔도 좋습니다.</strong></p>
<p> </p>
<p><span style="color:#0000ff;">1조 여러분의 활활발발한 메모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span></p>
<p>꾸우벅~~</p>
<p> </p>]]></description>
			<author><![CDATA[파랑]]></author>
			<pubDate>Fri, 01 May 2026 18:40:3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25"><![CDATA[집중탐구학교]]></category>
		</item>
				<item>
			<title><![CDATA[[죽음을 배우는 시간] 1회차 공지]]></title>
			<link><![CDATA[https://naidum.org/?kboard_content_redirect=600]]></link>
			<description><![CDATA[<p class="p3">이 책은 기본적으로 이반 일리치가 쓴 &lt;병원이 병을 만든다&gt;(1974)에서 제기하는 문제의식에 기반하고 있습니다.</p>
<p class="p3">이반 일리치는 ‘진찰과 치료가 도리어 병을 만들어 낸다’면서 ‘사회적 병원병病院病)’의 문제를 지적했었지요.</p>
<p class="p3"> </p>
<p> </p>
<p><img class="aligncenter" src="https://naidum.org/wp-content/uploads/kboard_attached/10/202604/69edda87bbd476554272.jpg" alt="" width="252" height="361" /></p>
<p> </p>
<p class="p3">저자인 김현아교수는 서문에서 이 책을 쓴 목적이 “병원의 죽음 비즈니스에 속하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생을 마무리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 알리기 위함”이라고 밝히고 있지요.</p>
<p class="p3">시스템화된 대형병원에 재직하고 있음에도 마치 내부고발자 같은 입장으로, <br />
철저하게 병원시스템에 이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환자와 보호자들, 그리고 획일화된 죽음의 장면을<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적나라하게 묘사합니다.</p>
<p> </p>
<p class="p3">1장에서는 김현아교수가 의사로서 목격한 안타까운 죽음의 장면들이 등장합니다.</p>
<p class="p3">환자와 보호자들이 생사의 기로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 없는 연명의료와 병원시스템 그리고 중환자실의 문제를<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꼬집고 있습니다.</p>
<p class="p3">2장에서는 장수와 노화, 노환, 죽음의 질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p>
<p class="p3">특히 완화의료 부분이 중요하게 와 닿았습니다.</p>
<p class="p3">저는 지난 해 12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용인에 있는 호스피스 병원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요.</p>
<p class="p3">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병원을 ‘죽으러 가는 곳’으로 잘못 이해하지만<br />
중환자실에 비하면 호스피스병동은 상당히 평화롭습니다. 물론 의식이 없는 환자들도 많습니다만, 의식이 있는 분들은 주변 사람과 눈을 맞추고 대화도 하고 기운이 있으면 밖에 나가 햇빛을 쬐고 바람을 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현행 제도 상 말기 암 환자만 입소가 가능하니 거기 계신 분들이 굉장히 우울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환자도 보호자도 그렇게 침울한 분위기는 아니에요. 그 모습을 보면서 저는 심각한 고통을 겪게 되는 상황이 오면 호스피스에서 지내거나 가정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되었지요.</p>
<p>그래서 김현아교수가 자연사와 완화의료에 대해 강조하는 것에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p>
<p class="p3">여러분은 이 책의 전반부를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합니다.</p>
<p class="p3">발제문에 적은 것처럼,</p>
<p class="p3">다음과 같은 질문들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보고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p>
<p> </p>
<p class="p4">*본인 또는 가족이 중대한 병(암)에 걸렸을 때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p>
<p class="p4">*자연사 혹은 그 유사한 방식(단식 존엄사)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있나요?</p>
<p class="p4">*호스피스나 완화의료에 관한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볼까요?</p>
<p class="p5">그럼 월요일 오후<span class="s1"> 9</span>시까지 여러분의 생각을 담은 메모를 올려주세요<span class="s1">.</span></p>
<p> </p>
<p>[추가 정보]</p>
<p>1.김현아 교수는 이 책(2020년)을 쓴 이후에도 &lt;의사 외전&gt;(2021), &lt;의료 비즈니스의 시대&gt;(2023), &lt;가짜 환자&gt;(2026) 등 우리나라 병원 시스템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일깨우고 있습니다. 최신작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lt;의료 비즈니스의 시대&gt;도 읽어볼만한 책입니다.</p>
<p class="p1">그리고 아래는 &lt;죽음을 배우는 시간&gt;과 관련된 강의 동영상입니다.</p>
<p> </p>
<p class="p1"><a href="https://www.youtube.com/watch?v=ny-xB05O37w">https://www.youtube.com/watch?v=ny-xB05O37w</a></p>
<p> </p>
<p>2.완화의료에 관해서는 제주MBC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2부작<span class="Apple-converted-space">  </span>&lt;어쩌면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gt;도 한번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p>
<p class="p1">일본에서 재택의료가 가장 먼저 시작된</p>
<p class="p1">야마나시현 고후시 호스피스 의사 나이토선생님과 환자들의 이야기를 7년동안 기록한 다큐입니다.</p>
<p class="p1">1부 <a href="https://pp21.org/QuHUlJ">https://pp21.org/QuHUlJ</a></p>
<p class="p1">2<span class="s1">부</span> <a href="https://pp21.org/cmgMbz">https://pp21.org/cmgMbz</a></p>]]></description>
			<author><![CDATA[서해]]></author>
			<pubDate>Sun, 26 Apr 2026 18:39:21 +0000</pubDate>
			<category domain="https://naidum.org/?kboard_redirect=10"><![CDATA[나이듦대중지성]]></category>
		</item>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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