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대중지성_시즌2] <돌봄의 역설>(2) 공지

자갈
2026-08-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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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더위가 절정을 향해 가는 듯 합니다만, 우리는 시작한 돌봄 이야기를 마무리 해야겠죠? ^^

돌봄의 역설 후반부 3가지 주제는 '피어남의 돌봄', '구조 안에서 순환하는 돌봄', '돌봄은 돌보며 돌봄 받는 것' 입니다.

 

전반부 보다는 읽기가 수월한지요?

후반부에는 저자가 독창적으로 제시한 피어남, 뒤섞인 돌봄이라는 개념이 등장 합니다.

기존 돌봄 개념과의 차이는 무엇인지, 돌봄 현장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 지 서로의 경험을 기반으로 좀 더 심도 깊은 논의를 기대해 봅니다.

 

무더위에 지치지 않게 건강 유의 하시고,

세미나 메모는 8월 3일 월요일 오후 9시까지 부탁 드립니다.!

 

 

댓글 7
  • 2026-08-02 13:13

    마리
    1) 돌봄을 구체적 모양으로 ‘피어나게, 피어남’으로 설명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돌봄 속에서 서로 ‘주의 기울이’고 ‘필요’를 찾아 해결하고 그 관계 속에서 서로 보람과 의미를 발견하는 상호작용인 돌봄의 정체성과 이어진다.
    노인 방문돌봄 현장에서는 법으로 규정한 3시간 돌봄 중 ‘식사’ 지원 관련이 비중을 많이 차지한다. 요리하는 시간도 비중이 크지만 식사를 같이하며 나누는 말 벗 도움이 ‘피어남’의 현장이다. 가장 즐거웠던 때를 이야기 소재로 만들어 장을 펼치면 90년 살아온 시간의 향연이 밥을 먹으며 펼쳐진다. 긴 댕기 머리 16살 색시가 얼굴도 못 보고 결혼한 첫날 남편이 가까이(!) 오자 무서워서 문을 박차고 도망갔었다고, 그 와중에도 훔쳐 본 그 남편이 그리 잘생겼더라고. 조금 일찍 떠난 남편은 살면서 그 잘생긴 얼굴 때문에 스캔들 소문이 있긴 했으나 당신한테 참 잘했다고, 외출 할 때면 언제나 내외간 ‘손을 잡고’ 다녀서 군산시내에서 당신이 아내가 아니라 ‘첩’이라고 소문이 나기도 했었다고.

    2) 의료현장에서 ‘공감’을 확장한 ‘민감함’을 돌봄의 핵심으로 다뤘다. 나는 그 민감함을 ‘감수성’으로 읽는다. 문학과 글쓰기, 영화 등 예술을 이용한 다양한 체험과 분석을 의료(돌봄) 현장에 도입하고 확장하는, 돌봄의 상호작용을 꽃피우기 위한 노력들에 응원을 보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수많은 도우미들이 각각 우영우의 역할에 도움을 주는데, 그중에서 배려와 도움과 한편으로 질투도 안고 있는 로스쿨 동기 친구 변호사 최수연과 대화,
    최수연: 영우야,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해?
    우영우: 너는 ‘봄 날의 햇살’이야!
    로스쿨 때부터 뒤에서 나를 지켜준 ‘밝고,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야.
    돌봄의 현장에서 ‘한 사람’, ‘한 마디’는 그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서 나오고 그 마음과 태도는 고스란히 전달된다. 상호작용은 포개 지고 또 포개 지고 어느 날 팝콘처럼 터진다.

    *‘난잡한 돌봄’(promiscuous care)? 다양한, 경계 없는 돌봄 정도로 번역이 되면 좋겠다. ‘난잡한’ 표현은 보통 성적 관계에 쓰이는 말로, 그대로 가져다 사용하다 보니 오히려 부정적이고 ‘대책 없는 돌봄, 무책임한 돌봄’처럼 읽힐 수 있다.

    3)‘함께-돌봄’의 대안은 우리가 태생적으로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며 취약한 존재임을 인식할 때 가능할 것 같다. 각자 도생의 시대에서 상호의존을 인식하고 나눌 ‘공간’을 다양하게 만들어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삶의 모습 정의를 자립에서 상호의존으로 (재)전환하고. 원초의 공동체사회로 회귀는 불가능하지만 삶의 원형은 어디에나 존재하므로 이렇게저렇게 모여 궁리하는 집단이 많아지고 그것들을 모아내고 제도권 안으로 넣기도 하고, 제도 밖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공동체도 계속 만들고.
    아직 젊은 중장년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나이든 부모와 자녀, 그리고 내 삶까지 돌봐야 하는 끼인 세대 이기도 하지만, 나를 위해 새로운 ‘돌봄’을 기획하는 것,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공정한 함께-돌봄’의 대안을 짜내기 위해 모이자, 모이자...우리끼리 해보자 하고 있다.

    *옛날이야기
    50호 정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십대까지 보낸 경험은 ‘꽃피는 산골, 울긋불긋 꽃대궐..’ 노랫말하고는 아주 다르지만, 나이 들어 돌아보면 삶의 원형을 체험한 것 같다. 지나고 보니 마을사람들이 엄마가 갑자기 돌아가신 우리 세자매를 이전처럼, 이전보다 더 살갑게 사람 대접을 해줬고, 농기계와 아직 화학 농법이 일반화되기 전이라 서로 돕지 않으면 농사일이 불가능했기에 ‘두레’(서로 일을 돌아가며 하는)는 일상이었고, 아이들은 사전 통보 없이 이웃집에 가서 밥 먹는 일은 다반사. 돼지 잡던 날, 우리집 인데도 돼지우리 근처에 어른들이 많이 모여 있어서 가까이 가지 못하고, ‘돼지멱따는소리‘만 들었다. 돼지고기를 온 동네 사람들이 나눠 들고 헤어지고. 겨울에는 방 윗 목에 콩나물 시루가 놓이면, 검은 천으로 씌워 놓은 콩나물 시루에 물을 부어주는 것이 당연 아이들 몫 집안일이었는데, 이 콩나물이 다 자라면 하루 사이에 콩나물 뿌리가 길게 자라서 다 못 먹게 되므로, 바가지에 콩나물을 뽑아 이집 저집 나르는 일 또한 당연한 것, 이웃집들은 매일 콩나물국과 콩나물 무침을 똑같이 해먹어야 했다. 부자도 가난한 집도 차이가 보이지 않던 시절.

  • 2026-08-02 17:20

    1. 저자는 “돌봄에서 피어남이란 지금의 필요만을 충족하는 것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대방의 삶을 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돌봄의 두 가지 양식으로 보존적 돌봄과 발산적 돌봄을 구분하여 설명하는데 삶을 최대한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는 보존적 돌봄과 생을 발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이 그것이다. 여기서 생을 발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이란 그 대상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포함하여 그 자체로 누군가의 생의 목적을 이룸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그러기에 발산하는 생은 다른 생과 다른, 보편성을 벗어난 특이성을 지닌다.
    즉 피어나게 하는 돌봄이란 바로 생을 발산시킬 수 있도록 하는 돌봄이라는 것이다. 그 예로 말기 돌봄 상황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요구하고 존엄사를 요청하는 것, 시설을 벗어난 요양을 요구하는 것 등을 들고 있다.
    자신이 살던 집과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늙어가고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돌보기, 본인의 의사가 고려되지 않은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하는 돌봄 등이 노인 돌봄과 관련되어 이야기 될 수 있는 “피어나는 돌봄”이 아닐까 생각된다. 각각의 돌봄 대상자의 특성에 따른 구체적인 돌봄실천은 다르다하더라도 피어나는 돌봄의 근본 원칙이 “생을 발산시키도록 돕는 것”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2. 난잡한 돌봄, 뒤섞인 돌봄, 공감, 민감함 ...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뭐가 그리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인가 싶었다.
    가족적(또는 젠더화된) 돌봄의 한계를 넘어 다양한 주체가 다양하게 돌보자는 이야기가 아닌가말이다. 내가 상대방의 자리에 놓일 수 있음을 알고, 상대방의 필요와 요청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발빠르게 움직일 때 돌봄은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뒤섞인 돌봄이라고 말한다.
    노인돌봄의 경험 속에서 서비스 대상자인 독거노인과의 소통과 돌봄의 기회를 통해 지방에 거주하던 소원했던 시모를 떠올렸고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안부인사와 소통을 하게 되었던 기억, 50대 중반을 통과중이었던 나의 노화와 노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공부를 하게 된 기회가 되었던 시간들, 그리고 시설과 기관, 정치인들과의 소통을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개진과 제안을 했던 경험들... 이런 모든 것이 뒤섞인 돌봄과 상호성을 인식하고 나름 고민과 실천을 시도해봤던 개인적 경험들이다.

    3. ‘함께, 좋은 돌봄을 모든 곳에서’을 위해 저자는 우선 우리가 돌보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자기 삶에 돌봄을 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형제들간에 부부간에 갈등상황이 두려워서 내가 하고 말지 하며 스스로 도맡아 왔던 위아래 돌봄실천이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내 개인적인 “함깨 좋은 돌봄”을 위한 첫번째 실천과제는 우선 내 가족과 형제들 간에 '함께 돌봄'을 수행해가는 것이다. 정서적, 신체적, 경제적 돌봄 모두 각자의 형편에 맞게 융통성있는 배분으로 함께 돌봄을 수행한다는 책임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것을 시작함으로써 내 자신에 대한 돌봄도 가능하게 될것이다.
    그 다음 내 가족의 차원을 넘어서 마을과 이웃을 함께 만들어 가는 실천을 하는 것이다. 최근 임종돌봄과 작은 장례 등을 위한 '채비플래너” 자격증 과정을 수료했다. 자격증 취득은 했으나 활동과 실천을 함께 할 동료나 이웃, 공동체가 없다보니 현재 나는 막연한 상황이다. 밥벌이 노동 외에 마을이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활동을 해본 경험이 없다보니 개인적 고민을 벗어나 함께 실천하고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모색할 네트워크가 내겐 없다. 더 늦지 않도록 내 마을에서 내 도시에서 다양한 공동체와 시민들의 조직된 무언가를 다양하게 모색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겠다고 생각 중이다.
    친정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소도시의 외곽 마을에서는 천주교 성당을 중심으로한 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활성화된 공동체가 이러한 종교단체가 아닌가 싶다. 노령화된 종교인구를 생각하면 이러한 종교 공동체와도 다양한 지원과 돌봄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4000세대가 넘는 대단지 아파트에서 노인정과 3곳, 어린이집과 돌봄센터만 5군데가 있다. 노인정과 어린이집의 통합 돌봄은 또 어떨까? 할머니와 꼬마들이 함께 놀이터에서 놀이를 하고 텃밭에 방울토마토를 키우는 모습은 어떨까?

  • 2026-08-03 12:59

    책의 후반부에서 작가는 돌봄의 순환을 이야기 하면서 더욱 세밀한 시선으로 우리 삶에 스며 있는 돌봄을 포착해 내고 그 의미를 이야기 한다.
    작가의 확장된 시선을 따라가면서, 과거가 새롭게 소환되어 오고 현재가 다른 파도로 다가옴을 느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내가 알지 못한 수많은 돌봄이 있었고, 어느새 나는 돌봄을 제공하는 존재가 되어 살고 있구나.
    보이지 않던 순환의 인드라망이 느껴져 가슴이 벌렁거렸다.

    책을 덮고 크게 남은 세가지는 피어남과 장애의 역할, 그리고 밥상차리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개인이 바랐던 함과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을 뒷받침하는 관계적 역량, 그 성취로서의 피어남. 나는 이것이 돌봄의 관점에서 따져보아야할 삶의 목적이자 행복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p. 290)
    비록 장애가 그 신체를, 또는 정신을 뒤틀었을지라도, 그리하여 그가 당당 경제적 쓸모를 증명하지 못할지라도 그 삶이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난과 고통만이 만들어낸 생의 결은 다른 누구도 흉내 내거나 비출수 없는 고유한 것이다. 견뎌내는 일, 고통을 감내하는 일은 누구와도 비견할수 없는 생을 만든다. (p. 326)
    나에게 밥상 차리기는 여러 면에서 돌봄을 잘 보여주는 행위이다. 돌봄은 거창하지 않고 지겹도록 반복되는 일이지만,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p. 356)

    세미나를 진행해 오면서 돌봄이 수행(종교적 수행이라기 보다는 마음 수양에 가까운)과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수행은 곧 돌봄(저자가 말하는 포괄적인 의미로서)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승불교의 사홍서원(불자들의 네가지 큰 서원)의 가장 첫 구절은 모든 생명이 행복해지도록 돕겠다는 다짐이다.
    내가 먼저 괴로움에서 벗어난 다음에 남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는 가운데 나의 구원도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아니더라도 인구의 몇퍼센트 정도는 “함께, 좋은 돌봄을 모든 곳에서”라는 개념을 인식하고 실천한다면 조금은 더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 2026-08-03 16:50

    -여러 가능성을 담은 채로 태어나 여러 돌봄들(과 돌봄 관계들), 양육, 교육, 가족과 친구관계, 사회에서의 인정 등을 받으며(맺으며) 자라나 자신의 가능성을 펼치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것까지를 삶의 과정이라고 할 때, 이 과정을 오롯이 누리는 것이 바로 피어남이다.(p.227)
    -내가 생각하는 피어남의 모습은 해풍을 견디며 뒤틀어진 모습으로 자라난 소나무다. 피어남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만드는 과정이고, 그렇게 그늘이 되어 다음 세대가 자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다.(p.228)
    -돌봄은 삶을 보존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생을 발산시킬 수도 있어야 한다. 현재 돌봄의 다수 형태인 돌봄 노동은 전술한 것처럼 삶의 보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p.269)
    -개인이 바랐던 함과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을 뒷받침하는 관계적 역량, 그 성취로서의 피어남, 나는 이것이 돌봄의 관점에서 따져보아야 할 삶의 목적이자 행복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돌봄윤리는 함께 피어남을 이루는 것이다.(p.290)
    -돌봄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서로의 삶에 관한 깊은 이해, 심지어는 나 자신에 국한된 삶을 넘어 타인의 삶으로 건너가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 떨어져 있는 삶들을 연결하여 우리의 연약함들을 견디어 낼 때, 그래서 생이 “기쁨의 불꽃을 피워” 낼 때를 나는 피어남이라고 부른다.(p.338)

    1. ‘피어나게(꽃피움)’ 하는 돌봄은 기존 돌봄의 양식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기존 돌봄은 대부분 삶의 보존에 초점이 맞추어져 돌보는 자 중심으로 일반화된 신체적 돌봄의 기술이 주어졌다면, 피어나게 하는 돌봄이란 대상과 상황에 따라 각자의 특이성을 존중해 주면서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가 함께 변화하며 삶을 살아내는 과정이라고 생각된다.
    노인 돌봄에 있어서 피어나게 하는 돌봄의 적용은 ‘요리아이’ 요양소에 등장하는 여러 사례들(인지저하증 어르신들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책임지고 있었고, 그 사실을 염두에 두고 어르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요리아이 직원들의 행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민감성을 기반으로 한 돌봄 현장에서의 상호성의 사례는?:
    저자는 ‘난잡한 돌봄’은 돌보는 이와 보살핌 받는 이의 뒤섞임을 생각하지 않는데 비해, ‘뒤섞인 돌봄’은 내가 얼마든지 그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알고, 그의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나 또한 저런 처지에 얼마든지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움직일 때 돌봄은 시작된다고 보고 있다. 나 역시 지금 우리 사회에 돌봄의 결핍이 도드라지는 것은 누구도 돌봄이 자기 일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장애인이나 노인의 돌봄 현장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항상 돌보는 자의 위치라는 것에서 탈피해 나 역시 돌봄을 받는 처지에 놓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할 때 보다 자연스러운 상호적 돌봄이 이루어질 것이다. (현재는 친정부모님을 내가 돌보는 입장에 가까우나 이제 10년 후만 되어도 지금 부모님의 모습은 바로 나의 모습임을 매일 자각하게 된다)

    3.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공정한 ‘함께-돌봄’의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이상적이지 않더라도 무리하지 않으면서 현재 나의 입장에서 실천하고 있거나 앞으로 할 수 있는 돌봄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본다. (싱글 60대 지인이 삶의 고민을 상담해 올 때 상담자와 내담자로서 아닌 노년을 맞는 동료로서 함께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시며 함께하는 시간을 1년에 3~4회 갖고 있음, 아들 내외가 1달에 2번 정도 휴일에 오면 손녀와 함께 즐거운 시간 가지면서 아들 부부가 잠깐의 쉼을 누릴 수 있는 선에서 할머니 역할을 하고 있음, 친환경운동 및 유기농 농산물 판매하는 한살림생협회원으로 등록, 일산에 살고 계신 60세 이상 중장년 10명을 대상으로 하는 서로돌봄관계망 만들기 프로젝트에 8월9일부터 참석할 예정임)

  • 2026-08-03 18:54

    '피어남'이라는 개념에서는 “돌봄은 어떻게 서로를 성장시키는가?”라는 기존 인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흔히 누군가의 신체적·기능적 결핍을 채워주거나,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최소화하는 기능적 역할로 한정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저자는 돌봄을 단순한 결핍의 보충이나 일방적인 수혜에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돌봄이란 깊은 관계 맺음을 통해 돌보는 사람과 돌봄을 받는 사람 모두가 각자의 고유함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함께 성장해 나가는 '피어남의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이는 표준화된 매뉴얼과 효율성 중심으로 운영되어 온 기존의 돌봄 현장에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집니다. 돌봄을 시혜적 서비스가 아닌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의 회복'이라는 관점으로 전환할 때,
    돌봄 현장은 단순한 노동의 공간을 넘어 서로의 존재를 확장하는 가치 있는 공간으로 되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어서 '뒤섞인 돌봄'은 실제 돌봄 현장이 지닌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실을 정확하게 포착해 내는 틀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흔히 돌봄을 행정적 기준이나 공적 제도의 매뉴얼에 따라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돌봄은 결코 매끄럽게 나눠지지 않습니다.
    ​현장의 돌봄 속에는 제도와 일상, 감정과 노동, 그리고 전문적 판단과 주관적 관계가 뒤섞여 존재합니다. 규정과 감정이 부딪히기도 하고,
    공적 역할과 개인적 유대감이 모호해지는 순간들이 끊임없이 발생합니다.

    '피어남'과 '뒤섞인 돌봄'의 현장의 사례로 ‘노노케어’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노노케어는 ​‘수혜자에서 타인에 대한 돌봄을 통해 주제자로써 삶의 의미를 다시 피워내는 과정’입니다
    ​기존의 전통적 복지 행정에서 어르신은 복지 혜택을 받는 수동적 대상이자
    관리가 필요한 서비스 수혜자로 고정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노케어는 돌봄을 제공하는 어르신에게 단순한 소득 보장이나 소일거리를 넘어
    ‘사회적으로 여전히 필요한 존재’라는 자존감과 삶의 활력을 되찾아 줍니다.

    나아가 돌봄을 받는 어르신 역시 또래의 시니어로부터 깊은 공감대와 유대감을 바탕으로 편안함을 느끼며,
    점차 마음을 열고 관계를 회복해 나갑니다.
    ​이처럼 노노케어는 돌봄을 주는 어르신과 받는 어르신 모두가 복지 제도의 수혜자라는 틀을 깨고,
    서로의 존엄과 삶의 가능성을 함께 '피어내는' 쌍방향적 성숙의 장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노노케어’는 ​제도와 일상, 전문성과 삶의 지혜가 유연하게 얽히는 현장입니다.
    요양보호사의 돌봄이 객관적 매뉴얼과 정해진 노동 시간에 엄격히 기반한다면,
    노노케어는 '공적 제도'와 '지역 사회의 일상'이 정교하게 뒤섞여 작동합니다.
    어르신 참여자는 간호사나 사회복지사처럼 정형화된 메디컬·행정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동시대의 삶을 살아온 이웃으로서 어르신의 정서적 외로움, 동네 소식,
    소소한 일상의 불편함, 잊혀진 옛 기억까지 자연스럽게 품어냅니다.
    ​이 현장에서는 공적 복지 지침과 이웃 간의 정과 안부, 그리고 자원봉사,일자리라는 노동적 성격과
    인간적인 유대감이 자연스럽게 '뒤섞이게' 됩니다.
    노노케어는 행정이 다 담아내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와 경계면을 삶의 지혜와
    관계성이라는 유연한 틀로 메워주는 '뒤섞인 돌봄' 의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 2026-08-03 22:31

    1)개인이 바랐던 함과 삶을 살아내는 것, 그것을 뒷받침하는 관계적 역량, 그 성취로서의 피어남. 나는 이것이 돌봄의 관점에서 따져보아야 할 삶의 목적이자 행복의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누스바움의 ‘역량접근법’을 설명하면서 10대 핵심역량 목록을 나열한다. 생명, 신체건강, 신체보전, 감각⸱상상⸱사고, 감정, 실천이성, 관계, 인간 이외의 종, 놀이, 환경 통제다. 10대 역량이 인간 존엄성에 기대고 있으며, 역량 접근법은 각각의 역량을 최저 수준 이상으로 보장할 것을 정의의 이름으로 국가에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저자는 웰빙을 누릴 수 있는 구체적 지표를 위해 객관적 목록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저 목록에 애초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들을 고려하기 어렵다는 점, 관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들을 목록에서 다루기 어렵다는 점 때문이다. 개인이 바랐던 함과 삶을 살 수 있는 역량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관계적 역량으로서의 돌봄이 있어야 성취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돌봄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적 역량은 “돌봄을 말할 때 여러 사람의 관점을 함께 고려”와 “거리를 둔 공감 대신 민감성”을 통해 성취될 때, 저자는 이를 피어남이라고 보았다. 번영이나 성장과는 조금은 결이 다른 의미라고 강조한다. 민감성을 논할 때, 밥상을 차리는 마음에서 포착해낸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누군가 먹을 상대가 있는 밥상을 차릴 때는 아무래도 상대가 뭘 좋아하는지 고려를 하게 된다. 그래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성취, 그것이 돌봄에서 피어남이라고 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인 돌봄에서도 보살핌 받는 이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돌봄 동기화 자유>에서 나왔던 사례들이 다시 호명되었다. 그 책에서 저자가 인지증 상태의 노인들이 보이는 다양한 행위의 맥락을 헤아리는 관점, 상대의 요구를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노력 말이다. 그 결과 돌보는 이도 보살핌을 받는 이도 어떤 성취가 있는 상태가 되는 역량, 돌봄은 피어나게 한다는 것이다.
    2)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공정한 함께-돌봄
    :이번 책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관계적 역량을 키우면 상호적인 돌봄이 이루어진다고 본다면, “단일의 진정한 나는 환상이다. 오히려 여러 사람과 관계하며 나타나는 여러 모습 각각이 모두 진정한 나이며, 한 사람은 그런 나들의 조합이다. 문제는 이런 여러 모습이 거짓이고, 어딘가에 진정한 나의 모습이 있다는 환상을 유지하며 괴로움을 겪는데 있다”(337 각주)는 사실을 인식하는 노력? 관계 속에 있는 존재로서 자신을 알아차리는 노력을 통해 돌봄의 네트워크에 연결될 수 있도록 배치하는 일. 저자는 돌봄을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일이라고 정의하며, “돌봄은 타인을 향한 민감성을 통해 그의 필요와 욕망을 살피고, 상대의 고통을 들어줄 수 있는 실천”(349)라고 했다. 이 민감성은 계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으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훈련을 제시한다. 소설읽기, 영화보기 등등. 자신이 ‘서사의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목적도 민감성 계발이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이런 훈련에 더해, 무엇보다 내 삶에 타인의 자리를 온전히 만들기부터 해야 돌봄에 관한 훈련이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 2026-08-03 22:50

    아직 책을 다 읽기 못했습니다.
    내일 부지런히 다 읽어서 참석할께요.
    조송합니다.

    저는 이 책이 잘 읽히지가 않네요.
    읽을 부분을 읽고 또 읽고 해도 집중이 안 되고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6가지 좋은 돌봄이란 전제에는 공감이 가는데 내용을 읽어보면 좀 어렵습니다. 이리저리 철학자와 영화, 책을 뒤섞어서 정작 저자가 주장하는 하고 싶은 말이 딱 뭐다, 이런 느낌이 안듭니다.

    돌봄을 '피어남' 이라고 하는 것도 공감이 가질 않아요. 자꾸 뾰족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피어남'이라는 말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확산 발산..성장....이런 피어남만 돌봄일까 라는 생각도 들고 너무 고귀하게 아름답게 이쁘게만 포장한 느낌.
    결이 다르긴 한데 '피어남' 이란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소녀상'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좀 거부감이 듭니다.

    우영우의 시니어선배 역할과 친구의 우정 관계도 어떻게 봐야할지....
    저는 돌봄, 피어남이라고 보이지 않아요. 그냥 인간관계. 모든 인간관계는 돌봄일 수도 있지만 굳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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