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16회 공지_ 미망(2)] 아직도 여름 & <미망>이다
1.아직도 여름이다, 그리고 마냥 <미망>이다
아직도 여름이었다. 그리고 마냥 여름이었다. 기다려도 기다려도 종상이도 가을도 오지 않았다. / 문득 잊었던 생각처럼 생급스럽게 그 무성한 여름 사이로 소슬한 가을 기운이 지나간 것처럼 느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기다리다 지친 눈의 환각인 양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여름은 마냥 무성하고도 완고했다. (2_289)
덥습니다. 딱 저 모냥입니다(모양이라고 쓰면, 제 맛이 안나요 ^^;;;).
'태임'이는 '가을'과 '종상'이를 기다리다, 어느 날 아침 끈적이던 속적삼이 매끄럽게 흘러내리는 걸 느낍니다. 그리고 "마당의 그 무성하던 여름은 한바탕 좀이 집고 지나간 것처럼 허룩하고 엉성해져 있었다. 그 사이로 상큼한 가을 기운이 물결처럼"(2_290) 일렁거리는 것을 감지합니다.
우리도 그러하겠지요.
아직도 여름이고, 마냥 <미망>에 끄달려 다닙니다만... 2권의 휘몰아치는 이야기는 곧 결말로 이어질 터이고, 그러다 보면 서늘한 가을 .
그보다 더 싸늘한 파이널까지.... ^^;;;;;;
2.제각각 살아간다



<토지>의 최서희, <미스터 션사인>의 고애신, <미망>의 전태임.
‘격동의 시대’를 살아갔던, 매혹적인 세 여성 인물입니다. 실제로 <미망>은 <토지>를 연상시킨다는 말들이 있었고 (박완서 대담_<미망> 1권 세미나 공지 참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도 <토지>와의 비교가 잦았더랬습니다.
이들 셋은 그저 비슷한 시기를 살아갔던 유복한 집안의 애기씨라는 외연상의 공통점때문만은 당연히 아닙니다.
격동,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는 기세가 몰아치는 가운데 누군가는 내 입에 들어가는 것만을 좇아가고, 또 누군가는 나와 다른 이들도 먹고 살아야한다는 걸 알아채고, 또또 누군가는 더 멀리까지를 바라보고 살펴나갔더랬지요.
<미망>이나 <토지>, <미스터 션샤인>은 그렇게 제각각 살아가는 모습을 꺼내 들고, 우리에게 ‘너는 어떻게 살고 있냐’고 물어보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하니 <미망>이 거쳐나간 시대에서 태임을 비롯한 조선의 사람들이 어떻게 제각각 살아나가는지를 주목해보고 싶습니다.
더 나아가,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겪으며 무엇을 새롭게 받아들이며, 어떻게 살아나가는지도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이건 3권이 끝날 때? 박완서 세미나가 끝날 때? 먼먼 훗날..... 기약하기..... 모르겠습니다 ㅎ)
3.돈, 돈, 돈
<미망>에서 저는 좋은 의미의 자본주의에 대해 써보고 싶었습니다. 돈에도 인격이 있다는 것, 돈을 버는 데 피땀을 흘렸기 때문에 천격스럽게는 쓰지 않는다는 태도 같은 것 말이죠. 우리 근대 자본주의의 선구자들이라 할 개성 상인들의 나름의 풍속과 자부심 같은 걸 그리고 싶었습니다.
(최재봉-박완서 대담,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p.84)
개성상인을 통해서 박완서는 "좋은 의미의 자본주의"를 그려보고 싶었다 합니다. 그건 "돈에도 인격이 있다"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일테지요.
그런데 익히 알다시피 화폐경제는 자연경제의 고유 특성인 인격성과 물질적 관계의 결합을 해체합니다. 따라서 돈은 모든 경제적 소유 형태에서 전대미문의 비인격성을 창출합니다. 이러한 비인격성은 한편으로 모든 개인을 독립된 경제적 주체로 만들어 신분과 관계를 넘어선 형식적 평등을 가능하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적 관계를 물질적 관계로 환원함으로써 인간소외를 낳습니다.
따라서 박완서가 말하는 ‘돈에도 인격이 있다는 것’은 사실상 ‘돈’을 쓰는 '사람' 즉 화폐와 인간의 관계를 전제한 말입니다. 그렇다면 문제의 핵심은 돈 자체가 아니라, 당연히 돈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바로 그 '돈을 쓰는 사람'을 정면으로 문제 삼은 책 중 하나가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고미숙, 북드라망) 입니다.
서문에 따르면, 이 책은 ‘문탁 여사’의 편지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네, 그 여사님이 우리 문탁쌤입니다 ㅋㅋㅋ
문탁 여사님이 곰숙쌤에게 ‘상상력의 경제학 / 카오스의 경제학’에 대한 책을 쓰라고 다그치고(“문탁의 공세는 계속되었다”고 나옵니다. 언제 어디서나 한결같은 문탁쌤 ㅋㅋ) 그리하여 책을 쓰게 되었는데, 이로부터 “경제와 삶, 화폐와 일상을 구성하고 재배치하는 용법”을 실험하고, 공부하겠다고 합니다. 화폐와 삶이 어떻게 자유의 새로운 공간을 열어갈 수 있는가를 실험해보겠다고, 화폐의 ‘식성’에 맞서 삶의 창조성을 지켜내는 비전과 출구를 찾아보고, 실천해보겠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1권에서부터 이어지는, 전 영감으로 대표되는 개성상인들의 '상혼'은, 태임이가 지키고자 하는 '돈'은, 우리는 어떠한가요. '돈'에 대한, 어떤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만드는 건가요.
예를 들어 1권에서 이런 장면도 매우 흥미롭지 않습니까.
“그놈은 왜놈 장사꾼과 밀통을 했어. 국법을 어기고.” / “밀통이 아니라 장사를 했습죠. 주인어른도 한창때 금령을 어기고 일본에 인삼을 밀수출해서 큰 돈을 버시지 않았시니까. 잘못이 있다면 태어날 때부터 장삿 속에 밝게 타고난 이성이가 농사꾼이 된 게 잘못입죠.” (1_111)
전처만은 자신이 한 짓과 이성이가 한 짓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익의 주인/주체' 여부를 따지기도 하고, '제 나라를 좀먹는 짓'을 따지기도 합니다만, 이걸 단지 순정한 애국심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일까요. 개성상인들의 돈에 대한 윤리의식_상혼과 연결짓는 한편으로 <미망>의 사람들이 ‘돈’에 대해 어떤 감각을 가지고, 어떻게 관계맺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울 듯합니다.
2권에서 언급되는 송방의 계율, '공씨 어른'의 삼업 조합 구상, 황도중 어른의 조합 구상 등등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또 아직 제게 희미한 윤곽일 뿐입니다만, <땅-인삼-화폐>의 맥락도 궁금합니다. ‘인삼’이 그저 개성 특산품으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아닌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ㅎㅎ
“어쩌면 70년대 박완서가 천착해 온 중산층 가족의 계보학을 쭉 위로 당겨서 탐구하는 것인가”(1권 공지)라는 질문 겸 예감도 다시 끌어오자면, 이때의 중산층 가족에서 또한 핵심이 되는 것은 당연히 ‘돈’일 테니까요.
4.가부장_ 부계 혈통 / 가모장_ 모계혈통... 모계 서사
<미망> 1권 공지에서 문탁쌤은 혹시 '근대 조선의 안토니아스 라인'이 그려지는 걸까...라고 했습니다.
글쎄요, 아직 딱 이거라고 답을 내놓을 수는 없습니다만, [머릿방아씨-태임-여란]으로 이어지는 모계 서사는 아주아주 중요해보입니다.
“큰 부자가 되리라고. 샛골땅을 다 살만큼 돈을 벌기 전엔 절대로 용수산을 넘지 않으리라”던 전 영감의 맹세는(1_65) 얼추 이루어졌습니다만, 그와 함께 핏줄에 대한 집착은 계속 됩니다.
머릿방 아씨의 친정 나들이(해산)에 딸려 보낸 ‘전 영감의 동고리’는 그저 며느리에 대한 측은지심이나 늙은이의 아량만으로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혈통 밖의 아들에게 “우리 태임이 사내 동생”(1_267)이라 명토 박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손수 ‘태남’이라 이름 짓고, 훗날을 기약하는 비늘 모양의 신표까지 마련해두었지요.
태임이는 태남이에 대한 전 영감의 “비정상적인 집착”(2_32)을 고스란히 이어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저 할아버지의 뜻을 받드는 차원을 훌쩍 넘어선 “벽창호 같은 고집”으로 맹목의 소유욕을 고수합니다(2_159). 이는 현실적/심리적인 측면으로 여러 이유가 당연히 있겠습니다만, 조선-식민지 근대로 접어드는 시대적 배경과 개성이라는 공간적 특성(서울 양반과의 대척점, 상업 도시)을 고려한다면 좀더 넓은 의미에서 깊은 해석도 가해져야 할 듯 싶습니다.
참고로 [토지]의 최서희는 간도에서 낳은 두 아들에게 최씨 성을 붙여버립니다. 이걸 그저 가문 지키기라고만 해석하면 너무너무 아숩고, 서희라는 매력적인 여성 인물의 빛이 바래지는 느낌입니다. 마찬가지로 태임이의 소유욕/집착도 액면 그대로 읽고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즈음에서 전 영감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의 혈통 수호와 가족 & 공동체, 태임이로 대표되는 모계 서사가 그려내는 가족과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짚어봐야한다는 거지요. 물론 이는 4세대인 여란/상철, 경우, 경국, 경순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3권에서 마무리지어야할 문제이긴 합니다만, 2권에서 나타난 만큼 그려진 만큼 찾아보고 정리해보고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특히 태임이가 종종 드러내는 ‘여자’에 대한 생각/말은 그저 “꿈꾸듯 몽롱한 소리”(2_176) 그 이상의 무엇입니다. 이건 3권에서 여러 방향으로 뻗쳐지니 계속 주목을 요합니다만... 하여간 태임뿐만 아니라, 종상, 태남과 달래가 그려보는 가족(공동체), 그리고 전통에 더 다가가 있는 삼촌들과 숙모 그외 인물들에게서도 가족/공동체 서사는 아주 흥미롭습니다.
그 밖에도 <미망> 2권에서 넘쳐나는 이야기와 인물들이 수두룩하지요.
태임의 혼삿날 벌어지는 개성음식의 향연과 풍경은 그저 입이 떡 벌어지고요. 괴력과 울분과 욕망에 휩싸였던 태남의 변모, 건장한 종아리였던 재득의 죽음, 시대감각이 남다른 종상도 예의 주시할 인물임은 당연하고요.
돈 대신 권력의 힘을 탐닉하는 박승재를 비롯하여 “새로운 세상에의 꿈”(2_112)이 제각각으로 나타납니다. 닥터 스톤 내외를 비롯한 서양의 문물, 호수돈 여학교/진달래, 기차(경의선 열차)에서 만난 조선 사람들, 간도의 민족학교/무관학교... 그리고 머릿방 아씨의 한이 서린 돈궤가 마침내 도끼날에 작살납니다.
겹겹이 등장하는.... 아아, <미망> 2권도 역시나 차고 넘칩니다. 그동안의 박완서 소설에서 <미망>만큼 "깍짓동"같이 퉁퉁한 이야기다발을 안고 있는 책도 드물지 싶습니다.
그러하오니 여러분의 눈이 곳곳에 내려 꽂히리라, 담대한 생각이 마구마구 펼쳐지리라 생각됩니다만...
발제문은 씨앗문장을 2-3개 뽑되(이건 마음대로~), 가능한 한 [인물 /주제] 하나로 모아주시면 좋겠습니다.
9월 2일 수요일 밤 9시.
C조 여러분의 시원한~~~ 메모를 기다리겠습니다.
앗! 9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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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하고 경이롭다는 말 밖에 할 수 없는 작품 앞에서 내가 감히 뭘 해석할 수 있을까, 내가 뭔가를 보태는 게 맞나하는 자괴감을 안고 메모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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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나게 후루룩 읽었어요. 더 꼽고 싶은 주제는 있는데 말발이 딸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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